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11. 2. 12:05

 

간밤에 수북하게 내린 함박눈이 오후의 태양빛을 비스듬하게 받으며 반짝일 때, 한 무리의 중년들이 낙동강 상류 내성천의 모래밭을 찾았다. 떠들썩한 수달도 자제했는지, 어떤 발자국도 없는 내성천은 푹신했고, 50을 훌쩍 넘긴 일행은 모처럼 소년이 되었다.

 

어릴 적 기억으로 되돌아가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에 조심스레 발자국을 남기더니, 누가 먼저랄 게 없이 드러누워 몸을 굴렸다. 상기되어 물가로 굴러간 일행은 맑디맑은 내성천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마셨고, 얇고 투명한 살얼음을 나눴다. 한없이 청량했던 그날, 살얼음 아래 소리 없이 흐르던 내성천의 모래바닥에 작은 물고기가 인적에 놀랐는지, 어디론가 달아났다. 흰 수염을 가진 마자. 흰수마자였다.

 

참마자, 돌마자, 여울마자처럼 마자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우리나라 담수어류들은 대개 맑은 물이 멈추지 않는 모래강에 산다. 낙동강과 금강, 그리고 임진강의 모래 바닥에 드물게 분포하는 한국특산종 흰수마자도 그렇다. 아가미 뒤에서 옆구리를 따라 꼬리까지 예닐곱 개의 모래 색 무늬를 가지런히 잇는 5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몸은 연갈색의 둥근 등과 은백색의 납작한 배로 모래 바닥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며, 눈과 코앞의 작은 한 쌍의 수염과 입 주변의 3쌍의 커다란 수염으로 먹이를 감지한다.

 

자갈이 거의 없이 얕은 모래 여울에서 조그마하게 무리 짓는 흰수마자는 작은 곤충을 노리는데, 저 역시 몸집이 작으니 천적을 조심해야 한다. 자잘한 자갈이 깔렸다면 몸을 잠시 숨길 수 있지만 물살이 조금만 늘어도 자갈은 흘러갈 터. 흰수마자는 자갈 하나 없어도 천적의 공격을 용케 피한다. 흐르는 방향으로 몸을 맞춰 먹이를 찾던 흰수마자는 천적의 기척을 느끼자마자 수면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하얀 몸을 반짝이며 달아난다. 모래 틈으로 맑은 물이 샘솟듯 올라오는 여울에 반짝이는 흰수마자는 현재 멸종 위기다. 낙동강과 금강의 모래 여울에 천적이 늘어난 건 아니다.

 

땅 속에서 천천히 굳어 형성된 화강암이 모래로 풍화돼 물에 휩쓸리며 흐르는 강은 우리에게 특별할 게 없지만 세계적으로 그리 흔한 건 아니다. 백두대간의 단단한 화강암 바위의 틈에 비집고 들어가는 물은 수 억 년 동안 얼다 녹기를 반복했고, 빗물을 타고 모래와 자갈로 강에 흘러드는 건, 우리에게 상식이지만 화강암이 드문 나라의 강은 달랐다. 그냥 마시면 수인성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토의 60퍼센트가 경사 급한 산악이고 내리는 비의 절반 이상이 여름에 집중되지만,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지구에서 영겁의 세월동안 굽이치던 우리 강은 언제나 모래를 품었고, 덕분에 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기슭에 쌓였다 하류로 떠밀리기를 반복하는 모래는 물을 정화하며 머금기 때문이다.

 

화강암이므로 석영과 장석과 운모로 형성된 금모래와 은모래는 부딪히며 흐르다 운모가 먼저 닳아 작은 틈을 만드는데, 거기에 미생물이 깃들며 물속의 유기물을 정화한다. 빙하가 휩쓸지 않아 유기물이 풍부한 백두대간의 고생대 지층에서 타고 흐르는 유기물을 취하는 모래 속의 미생물은 플랑크톤의 먹이가 되고, 플랑크톤은 강에 사는 곤충의 먹이가 될 터. 수많은 물고기와 새들을 끌어들이는 강도래, 민도래, 다슬기들이 그들인데, 내성천의 흰수마자도 그 한 자리를 차지한다. 낙동강에 사람들이 기대기 한참 전부터일 게다.

 

내성천의 밤을 지배하는 수달은 동사리나 갈겨니처럼 커다란 물고기를 잡지 자그마한 흰수마자에 관심이 낮다. 갯버들 가지의 눈 밝은 물총새를 조심하면 그만인 낙동강의 흰수마자는 주역이 아니더라도 위기는 아니었는데, 왜 요사이 멸종 위기로 몰린 걸까. 짐작하다시피 모래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크기를 한도 없이 늘리는 사람의 욕심은 쌓이는 족족 강가의 모래를 퍼갔고. 밀려드는 모래보다 퍼내는 양이 훨씬 늘어나면서 먹이와 맑은 물을 잃는 흰수마자들은 다른 마자들과 더불어 오랜 터전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부랴부랴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했건만 모래 채취는 결코 진정되지 않았다.

 

모래 채취가 아무리 극성이어도 내성천의 흰수마자는 터전을 지켜낼 수 있었다. 상류 지역의 농공단지와 축산단지에서 오염된 물이 들어와도 흘러내리는 모래가 정화하기에 예나 지금이나 깨끗한 물이 굽이치기 때문인데, 이제 장담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낙동강을 타고 바다로 흘렀던 모래의 절반 이상을 공급하던 내성천의 상류가 다목적을 과시하는 영주댐에 가로막힐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영주댐이 물길을 막대하게 차단한다면 모래 흐름도 예전 같지 않을 게 분명하다. 모래가 차단될 경우, 눈밭을 뒹굴며 살얼음을 뜯어 나누고 물을 떠 마시는 이는 수인성질병으로 톡톡히 고생할지 모른다.

 

아니! 흰수마자의 멸종위기 등급을 낮추겠다고? 모래가 사라진 낙동강에서 버림받아 내성천에서 명맥을 가녀리게 유지하는 흰수마잔데, 멸종위기 정도를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낮출 예정이라는 정부의 발표가 느닷없이 나왔다. 흰수마자의 등급을 낮추려는 건, 4대강애서 벌이는 토목 사업을 거리낌 없이 진행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받기 충분했는데, 황당하게도 멸종 위기가 아니라고 정정하기까지 했다. 공사 중에는 상류로 피난간 뒤, 돌아올 거라고 흰수마자에게 의견을 묻지 않은 정부는 장담했지만, 어떨까. 4억 톤이 넘는 모래를 퍼올린 토목공사로 낙동강 본류의 물살이 빨라지면서 상류와 지천의 모래까지 마구 휩쓸리는데, 피난 떠난 흰수마자는 온전할 겐가.

 

어라, 방생할 테니 걱정 말란다. 금강의 어름치처럼 몇 마리를 포획해 인공수정으로 개체를 늘린 뒤, 공사 종료 후 풀어주겠다는 건데, 마음 놓아도 되나. 물려받은 유전자의 다양성을 대부분 잃을 흰수마자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맑은 물이 샘솟듯 올라오는 얕은 모래 여울에서 살아가는 흰수마자는 모래를 잃은 낙동강과 금강의 본류는 물론이고, 대형 보에 흐름이 멈춰 썩어가는 모래에서도 살 수 없다. 흘러드는 모래가 대폭 줄어들 내성천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낙동강의 흰수마자는 이제 싫든 좋든, 광산 갱도의 카나리아가 되고 말았다. 훗날 결국 복원될 낙동강 본류에 돌아오게 할 내성천의 흰수마자마저 사라진다면, 자연에 기대야 건강한 사람도 온존할 수 없다. (전원생활, 201112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7. 18. 03:08

 

1990년대 중반, 장마철에 진행된 설악산 학술조사에서 물두꺼비를 보았다. 작은 산과 이어지는 농가에 어슬렁거리는 두꺼비와 달리 체구가 작고 동작이 빠른 물두꺼비는 숲이 울창한 계곡을 떠나지 않는데, 십이선녀탕 부근 계곡의 어두컴컴한 바위 아래에서 눈에 띄었다. 햇빛이 강한 여름의 낮 시간에 여간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 울울창창한 계곡에 비가 내려 어두워지자, 물살이 빨라진 바위 아래에서 먹이를 찾아 엉금엉금 기어 나왔는지 모른다. 넓적한 두꺼비와 달리 얼핏 무당개구리처럼 날렵하게 보이는 물두꺼비가 진한 갈색의 오돌토돌한 피부를 노출시킨 채, 굳이 조사자 눈앞에 나타난 까닭은 자신의 터전을 그대로 보전해달라고 우리에게 당부하려는 듯했다.

 

1990년대 초, 한 언론사에서 이곳만은 지키자!”는 기획의 일환으로 경기도 포천군 백운계곡 주변을 찾았을 때, 물두꺼비를 잡은 적 있다. 사진 기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눈앞의 실체였는데, 그날도 장맛비가 억수 같았다. 구름 사이에 햇살 비추자 비는 잠시 그쳤고, 평상이 뒤덮인 백운계곡을 벗어나 광덕산으로 오르자 과연 물두꺼비가 나타났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광덕산을 이 잡듯 뒤지던 중 바위틈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물두꺼비를 소중하게 잡아 사진기자의 카메라 앞에 내놓았는데, 더 그럴싸한 사진을 구상하는 기자. 그래서 주변의 벼메뚜기 서너 마리를 잡아 뒷다리를 떼어 물두꺼비 눈앞에 놓았더니, 역시! 두꺼비가 그렇듯, 슬그머니 다가서더니 순식간 긴 혀를 쑤욱 빼고 날름 잡아먹는 게 아닌가. 카메라 셔터보다 속도가 빨랐다고 기자는 푸념을 늘어놓았고.

 

그때 물두꺼비를 처음 만난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 가을, 논문을 구상하던 대학원생은 백운계곡을 찾았다. 어느새 윗도리를 여며야 하는 가을철. 광덕산과 백운산 기슭을 적신 계류가 흘러드는 백운계곡에 무릎까지 빠지며 들어가 넓적한 돌을 들출 때마다, 어쩌면! 내년 봄에 알을 낳겠다며 짝짓기 자세를 단단하게 취한 물두꺼비가 한두 쌍 숨은 게 아닌가. 밝은 갈색의 암컷 등에 올라간 진한 갈색의 수컷이 작은 체구의 앞발 엄지로 암컷의 배를 결사적으로 끌어안은 모습, 포접(抱接)하고 있었다. 그때 물두꺼비를 처음 만났고, 보고서에 그리 썼는데, 보고서를 읽은 언론사 기자가 동행 조사를 요구했던 거다. 그래서 몇 년 후, 백운계곡과 이어진 광덕산에서 몇 마리 겨우 잡았던 물두꺼비를 설악산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1990년대 초에서 12년이 지난 2000대 초반의 깊은 가을날, “이곳만을 지키자, 그 후 12을 다시 기획한 언론사와 세 번째 찾은 광덕산. 1990년대 십이선녀탕에서 터전이 파괴될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였던 물두꺼비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어 보였다. 겨울잠을 위해 계곡 아래의 바위 밑으로 벌써 포접 상태로 들어갔을 계절이었지만 백운계곡은 이미 제 모습을 잃고 있었던 거다. 넓었던 계곡을 좁다랗게 남기고 들어선 식당마다 대형 관광버스에서 연실 내리는 형형색색의 관광객에게 쇠갈비 팔기 바빴고, 백운계곡으로 이어진 하수구마다 불판 닦아 시커먼 물이 연실 보태지고 있었다. 15년 전 기억을 더듬으며 오염된 바위를 거푸 들춰내자 간신히 발견한 수컷 한 마리. 이후 10년 가까이 더 지난 지금, 그 자리에서 물두꺼비는 후대를 잇고 있을지.

 

산에서 이어지는 논에 물을 대려고 오래 전에 파놓은 방죽을 알 낳으려 찾는 두꺼비와 달리 어두운 계곡에 은둔하는 물두꺼비는 시방 위태롭다. 주택단지로 사라질 방죽을 두꺼비를 위해 행동해 힘겹게 보전한 시민단체는 청주에 있지만, 백두대간 서편의 계곡에 터전을 정한 물두꺼비를 거들떠보는 이는 거의 없다. 계곡을 멀리 벗어나지 않는 물두꺼비는 산허리를 이리저리 휘감는 임도(林道) 공사장에서 흘러나오는 토사로 제 터전을 맥없이 잃을 따름이다. 계곡의 바위에 토사가 쌓이면 산소동화작용 못하는 물이끼가 뿌리를 잃고 먼저 떨어져나갈 터. 물이끼를 뜯는 곤충의 애벌레도 차례로 자취를 감출 것이다. 주로 밤에 나와 곤충과 거미, 그리고 애벌레를 즐겨먹는 물두꺼비는 오랜 터전을 잃는다.

 

두꺼비와 달리 물갈퀴가 있는 물두꺼비도 두꺼비처럼 염주 같이 길게 이어지는 알들을 두 줄 계곡의 돌에 감아 낳는다. 여름에 이르기 전, 계곡이 따뜻해질 무렵, 막 변태한 어른 손톱만한 물두꺼비들은 계곡 주변으로 흩어지는데, 그때 물두꺼비와 두꺼비는 쉽게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호수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의 아스팔트에서 비 내리는 밤 필사적으로 이동하다 바퀴에 로드킬당하는 어린 두꺼비들을 물두꺼비로 착각하는 이가 많다. 계곡의 물두꺼비들도 오프로드 자동차와 산악 바이크에 변을 당하지만 워낙 드물어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데, 계곡에서 첨벙이다 음식 찌꺼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인파는 걱정거리다. 물두꺼비는 오염된 계곡에서 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산개구리로 착각한 사람이 잡아먹고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가 가끔 나올 정도로 강력한 독을 피부에서 분비하는 물두꺼비는 인적 드문 계곡을 여전히 지배하지만 어느새 멸종위기가 되었다. 기온과 수온이 낮은 차갑고 깨끗한 계곡이 오염될 뿐 아니라 파괴되기 때문인데, 온실가스 증가는 심신산골마저 뜨뜻하게 만든다. 산허리를 휘젓는 임도만이 아니다. 흘러 들어오는 물을 화학물질로 오염시킬 뿐 아니라 햇볕으로 달구는 골프장이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울창했던 숲을 도려낸 41개로 모자랐나? 아스팔트로 계곡까지 끊는 골프장이 다시 41군데 더 들어선다고 아우성인데, 물두꺼비는 이제 달아날 곳이 없다. 9월이면 포접해 이듬해 이른 봄 알을 낳을 계곡을 도저히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자신이 사는 계곡의 상류가 오염되거나 파괴돼 터전을 잃는 물두꺼비는 앞으로 하류를 더 걱정해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바닥이 깊어진 강 본류는 지류의 침식을 가속시킬 태세인 탓인데, 알 낳을 곳, 먹이 찾을 곳이 점점 좁아지는 물두꺼비는 오직 우리나라에만 사는 특산종이다. 이렇듯 한국인이 돌보지 않는 한국특산종 물두꺼비는 겨울잠에 들 곳마저 찾지 못하는데, 우리 환경부는 보호할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지정조차 하지 않았다. 백운계곡이나 십이선녀탕에 가녀리게 남았을 물두꺼비는 멸종위기야생동물의 목록에서 해제된 두꺼비를 오히려 부러워할지 모른다. (전원생활, 20119월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5. 3. 16:55

 

투망질. 그거 쉬운 게 아니다. 오른손잡이라면, 풀려나가기 쉽게 감은 투망 끈을 왼손에 살며시 잡고 왼쪽 팔뚝에 납추가 무거운 투망의 절반 정도를 걸쳐야 한다. 오른손으로 나머지 투망의 앞쪽을 움켜쥔 채 잔잔한 물속을 유심히 바라보다 별안간, 왼쪽으로 움츠린 허리를 오른편으로 획 돌리며 목표 지점을 향해 오른손과 왼손을 순식간에 뻗는 기술. 허리와 팔이 떨어져나가라 휘돌려도 뭉친 채, 어쩌다 초승달처럼 풍덩, 발치에 빠뜨리는 신출내기는 감히 흉내낼 수 없다.

 

목표 지점이 멀면 왼손에 쥔 끈이 팽팽해질 만큼 멀리, 장애물이 있으면 반달이나 역삼각형으로 펼치며 투망을 던져야 시간 안에 목표를 채울 수 있었다. 한 지역에서 천 마리 이상을 조사해야 이상적이지만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래도 천 마리의 4분의1은 채워야 통계에 유의성이 인정되므로 해지기 전에 250마리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신출내기의 성의는 사양해야 했고 능숙하게 그물을 던지는 이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연구원은 바빴다. 잡힌 종류와 개체수를 후다닥 파악해야 했으니까.

 

잠시 하늘로 솟았던 투망이 보름달처럼 펴지며 강바닥까지 내려가면 투망 안에 있는 물고기들은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물코보다 작은 녀석들은 황급히 빠져나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큰 녀석은 그물코에 아가미가 끼어 꼼짝달싹 못하거나 바닥에 깔린 추가 좁혀오는 공간에서 허둥대다 그만 투망 아래의 주머니에서 퍼덕거리게 된다. 그런데 투망만으로 담수어류 생태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바위틈이나 아래 들어가 숨는 꾸구리는 여간해서 투망에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10센티미터 미만으로 작기 때문만이 아니다.

 

꾸구리. 참 생소한 이름이다. 이름처럼 생긴 모습도 독특한 녀석은 오로지 한강과 금강의 중상류의 모래바닥에 산다. 게다가 특산종이다. 우리나라 이외는 물론이고 한강과 금강 밖의 수계에서 전혀 볼 수 없다. 잉어목 잉어과 모래무지아과에 속하는 꾸구리는 사촌 사이인 누치나 어름치처럼 덩치가 크지 않고 새미나 쉬리처럼 예쁜 것도 아니라서 투망 들고 천렵 나온 이들의 관심 밖이지만 어떤 물고기도 갖지 않은 특징이 있어 관련 학자들에게 주목받는다. 고양이처럼 홍채를 세로로 좁히며 빛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덕분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한강의 모래바닥을 누빌 수 있으리라.

 

꾸구리는 크고 작은 자갈이 모래 사이에 흩어진 강에 분포한다. 그래서 몸은 모래와 같은 옅은 갈색이지만 등에 자갈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대여섯 개의 진한 갈색 띠가 꼬리로 이어진다. 무늬 때문에 투망을 피하게 되는 건 아니다. 햇살이 눈부셔도 바위틈으로 들어가지 않아 투망이 날아오는 걸 진작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겠지만 그보다 물살이 아무리 거세도 동작이 재빠른 까닭이다. 투망이 수면에 닿기 전에 바닥의 돌 틈에 잽싸게 숨어들어가니 납추가 아무리 촘촘한 투망이라도 소용없는 것이다.

 

남한강의 생태계 구조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족대를 추가했다. 햇살이 투명하게 강바닥을 비추는 날, 족대를 들고 살금살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래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운 좋으면 눈을 가늘게 뜨고 아가미를 빠끔거리는 꾸구리를 모래바닥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곤충을 노리던 꾸구리는 문득 사람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잽싸게 작은 바위 숨어들 터. 그때 우리는 바위 아래에 족대를 세우고 반대편에서 그 바위를 걷어차자마자 족대를 들어 올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그 짓을 거듭하다 보면 실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꾸구리 한두 마리를 알현할 수 있었다.

 

강이 깨끗한 건 주변의 드넓은 모래밭이 걸러주기 때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강물이 남긴 유기물을 모래 속의 숱한 생물이 제거하는 까닭이다. 꾸구리가 노리는 물속의 곤충은 모래에 묻는 유기물을 먹고, 유기물은 빗물을 타고 강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모래로 강이 깨끗하기에 꾸구리가 게 있는 것이지만 어쩌면 꾸구리가 있기에 강물이 깨끗한 건지 모른다. 꾸구리가 없으면 유기물을 처리하는 곤충이 조절되지 않을 게 아닌가. 꾸구리가 있어 논밭과 과수원과 축사, 심지어 공단을 적시며 흘러든 강물이 여전히 깨끗한 것이리라.

 

여주군 남한강변의 지명은 금사면(金沙面)이다. 신륵사 앞을 흐르는 강변을 조상은 ‘은모래금모래’라 이름붙였다. 장마철마다 노도처럼 불어나는 강물이 누세월동안 쌓은 모래가 햇살이 강한 대낮에는 은빛으로 석양이 드리우는 저녁이면 금빛으로 찬란해지는 텐데, 거기에 꾸구리가 산다. 배지느러미를 흡반처럼 모아 바위나 자갈에 몸을 붙이며 물살 빠른 여울을 지키는 꾸구리는 입가 두 쌍의 짧은 수염으로 먹이를 감지하면서 남한강에 모래가 쌓인 이래 지금껏 산다. 오랜 옛날 어떤 천재지변으로 분수계(分水界)가 흐트러지면서 북한강과 금강에 흘러들어갔을 테지만 본디 백사장이 넓은 남한강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서울의 서빙고동과 동빙고동은 겨울철 잘라온 한강 얼음을 여름이 지나도록 보관했던 시설이 있던 곳이다. 임금에게 시원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얼음 창고는 강물이 깨끗하기에 유용했을 텐데, 드넓은 백사장을 거느리던 한강이 겨우내 꽝꽝 얼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한강은 얼지 않는다. 백사장도 없다. 하지만 백사장이 남은 남한강은 겨우내 언다. 축사와 과수원을 적신 물이 모이지만 백사장을 스치는 물은 떠먹고 싶을 정도로 투명하다. 그래서 꾸구리가 산다.

 

최근 신륵사 앞의 남한강은 흙탕물이다. 대형 보 3개를 위한 가물막이 공사를 벌이며 모래를 퍼내고 콘크리트를 들이붓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가미에 끼는 흙먼지와 독소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누치와 함께 꾸구리가 떼로 죽어나갔다. 그 참혹한 모습을 발견한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자 공사 담당자는 황급히 흙으로 덮어 흔적을 덮으려했지만 그런다고 꾸구리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공사 중에 상류로 이동했다 흙탕이 가라앉으면 돌아올 것을 공사 책임자는 장담했지만 꾸구리는 모래가 없는 상류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보로 막혀 흐름을 잃은 강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꾸구리는 사람보다 훨씬 먼저 은모래금모래의 남한강에 터 잡았을 텐데, 이제 작별을 고하려 한다. 꾸구리가 사라진 남한강은 타고난 생명력을 잃고 수로로 변질될 텐데 사람인들 건강할까. 삶터가 오그라들어 죽어간 꾸구리는 사람의 내일을 예견하는 건지 모른다. (사이언스타임즈, 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