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11. 7. 12:17

 

자본이나 수출입 물건의 자유로운 이동은 보장하지만 정적 자본과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국가 사이의 협약이 FTA. NAFTA는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 3개국의 자유무역협상을 말한다. NAFTA를 체결하기 전에 미국은 멕시코 사이의 국경선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멕시코 인의 밀입국을 철저히 차단하기보다 엄선하려는 목적이었다. NAFTA가 효력을 발생해 미국의 기업이 티후아나와 같은 멕시코 국경 도시에 공장을 열면 밀입국자가 늘어날 거로 미국 당국이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헐값으로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산 옥수수 탓에 자급기반을 잃자 멕시코 농민들은 국경 도시에 마련된 일종의 수출자유지역, 마킬라도라에 모여들었다. 농민일 때 몰랐던 잉여인간이 된 것이다. 미국 기업에 취직해 일하면 목말랐던 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던 건데, 그게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농사로 자급할 때 유용했던 현금은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도시에 나오자 자신을 구속하고 말았다. 물려받은 화덕을 버린 농민은 노동자가 되어 옥수수가 아니라 옥수수로 빚은 또띨라를 구해야 했는데, 옥수수 자본이 독점하는 또띨라의 가격은 해가 갈수록 오르기만 한다.


일자리 찾는 농민이 늘어나면서 임금은 줄어드는데 식료품 가격은 상승한다. 밤낮 없이 혹독한 노동에 지친 마낄라도라의 잉여 노동자들은 국경선을 넘으려 들었다. 복지나 고용 보장과 관계없는 저임금 노동자를 원하는 미국 국경도시의 쇠고기 가공업체들이 월경하는 멕시코 인을 원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양국의 국경 지대에서 혹사당하는 멕시코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자의 자리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조합을 순한 양으로 만들면서 임금을 깎아냈고, 저항하는 노동자를 잉여인간으로 쫓아낸 것이다. 그만큼 돈을 더 벌어들이는 양국의 자본가는 늘어난 잉여인간을 마음껏 부려먹으며 내칠 권리까지 획득하게 되었다.


카리브 연안의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은 부서진 조개껍질이 만든 순백의 해안을 자랑한다. 완만하고 따뜻한 칸쿤 해안은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호텔들이 저마다 화려함을 뽐내는데, 그 화려함은 고단한 원주민이 그 곳에 있기에 가능하다. 몇 푼의 현금을 위해 막대하게 발생하는 쓰레기를 청소하고 위험한 일을 마야족 원주민들이 떠맡지 않는다면 칸쿤의 화려한 명성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서울 강남의 휘황찬란한 건물도 마찬가지다.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강북의 고단한 노동력이 아니라면 건물은 광채를 잃었을 것이다. 그런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잉여인간은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헐값에 부려먹을 수 있는 잉여인간이 없으면 기득권은 권력을 유지하기 어렵다. 기득권은 잉여인간 스스로 자신의 신세를 인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기득권 눈치를 살피며 일감을 감지덕지 얻어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에 풀칠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기득권에 대들면 어렵사리 구한 일감도 빼앗길 수 있다는 걸 명심하게 길들여야 한다. 그를 위해 부려먹을 인간은 일감의 수보다 언제나 많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득권이 펼치는 정책은 길들어지는 잉여인간의 유지를 염두에 두고 결정해야 한다. 교육도 그 일환이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실패자를 양산하는 교육은 잉여인간을 보급하는데 유용하다. 1986년 일선 교육청에 돌아다닌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라는 게 있었다며 그 구체 사항이 인터넷에 소개되었다. 20여 가지 중에 지나치게 열심히 공부를 가르치려는 교사”, “학생들에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사고뭉치 학생과 상담을 자주하는 교사라는 항목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 인기가 많은 교사를 경계하라고 했다는데, 실패하는 학생이 없도록 개개의 인격과 개성을 배려하는 교육을 하지 말라는 지시로 들린다.


잉여인간을 줄이려는 교육에 당시 기득권이 아연 긴장했던 모양인데,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된 요즘 시국이 1986년 상황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교육계뿐이 아니다. 잉여인간이 늘어나는 사회 현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을 기득권의 탄생을 위해 수많은 실패자를 요구하는 모습을 반영한다. 늘어나는 소비에 비해 채굴되는 석유가 부족하진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일자리는 필연적으로 줄어들 텐데, 대학은 터무니없이 늘었다. 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 수와 비슷한 현실에서 대학교수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학생 정원은 늘었지만, 졸업한 대학생들을 위한 일자리는 위축되기만 한다.


수도권의 일부 대학 졸업생에게 자리를 조금 허락하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연봉을 주며 신입사원 혹사시킨다. 무슨 까닭일까. 일자리를 확대하면서 임금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외면해야 잉여인간으로 길들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존심 포기를 감당하면서 대기업에 취직하려는 경쟁은 대학입사만큼 눈물겹다. 번듯한 대학에 들어가도록 아이 키우기에 벅찬 시대에 정부는 아이를 더 넣으라고 가임 여성들을 들들볶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짐짓 고령사회를 걱정하지만, 혹사시킬 잉여인간이 부족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건 아닐까.


23퍼센트를 밑도는 식량자급은 처참한데 그린벨트와 들판에 공업단지와 아파트단지의 허가를 남발하는 정부는 미국에 이어 중국과 FTA협정을 서두른다. 자급기반을 잃어 식량주권을 상실하면 수입식량은 가격이 오른다. 수입 농산물에 의존해야 하는 잉여인간의 삶은 멕시코에서 보듯 더욱 초라해진다. 잉여인간의 사슬을 스스로 풀어내지 않는 한, 기득권의 변덕에 운명을 걸어야 하는 부초가 될 텐데, 앞날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만이라도 부초 신세에서 헤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방법은 무엇일까. 애초 기득권의 꾐에 넘어가지 않아야 하지만, 넘어갔다는 걸 깨달았다면 저항할 수단을 찾아내 보자. 다소 힘겹더라도 길들어지지 않는 자신의 길을 능동적으로 찾는 거다.


멕시코 농민이 고향을 버리지 않았다면 한 조각의 또띨라를 위해 마킬라도라와 미국의 쇠고기 가공공장에서 혹사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이가 과감하게 농촌으로 돌아간다면 대기업의 횡포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의지에 맞는 중소기업에 도전할 수 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성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존재하지 못했다.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를 중소기업이 마음 모아 거부하면 푸대접 받는 잉여 업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입사 또는 입시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좌절할 게 아니라, 대기업이나 대학 이외의 분야애서 하고 싶었던 일과 공부를 적극 찾아 나선다면 기득권이 부려먹을 잉여인간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소수를 위해 다수의 실패자를 양산하는 체계에서 잉여인간은 필연이다. 고단한 입사와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자신의 개성을 찾아 나선다면 입사를 위한 대학은 줄어들고 개성 있는 중소기업은 기죽지 않을 것이다. 농촌으로 가는 젊은이가 늘어난다면 식량주권이 그만큼 회복되고 농촌도 소외되지 않을 것이다. 유기농산물을 자급하고 남는 물량만 시장에 내놓는다면 농민은 지금보다 존중되지 않을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석유위기로 경기가 후퇴해도 잉여인간으로 홀대되지 않을 것이다. 잉여인간은 기득권이 만들었으니 기득권의 유혹에 더는 넋을 잃지 않아야 한다. (지금여기, 2013.11.5)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5. 15. 15:32

    영리병원이 달갑지 않은 이유

 

아담을 기다리며라는 책은 병원에 누워 있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워낙 위중해 의사마저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라서 죽음을 의식하고 기진맥진해 있을 때였다. 병실 청소부로 보이는 아시아계의 작고 나이 든 여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다가오더니 동정심 가득한 얼굴로 얼굴과 몸을 정성스레 닦아주는 게 아닌가. 치료를 포기한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가족까지 찾지 않는 상황인데, 낯모르는 이에게 동정어린 마음으로 다가와 정성을 다해 씻겨주는 모습에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는 그 경험을 계기로 회복돼 병원을 나올 수 있었다고 썼다.


목포의 해운항만청에 근무하던 한 사내는 퇴근 후 늦은 시간까지 자주 마시는 술 때문인지 속이 늘 불편했다. 찾아간 병원마다 주사와 약을 처방해도 차도가 없었는데, 선배의 권유로 들어간 허름한 의원은 달랐다고 한다. 나이 지긋한 의사는 증세와 관련 없는 질문을 이것저것 던지더니 단식을 처방하는 게 아닌가. 진료비도 사양하며 진지하게 권해서 마음먹고 처방대로 단식과 복식을 마쳤는데, 희한하게 천형처럼 여겼던 속병이 이후 깨끗하게 사라졌다고 말했다. 전근했어도 자주 문안을 가던 그는 존경하는 의사의 주례를 받고자 굳이 목포로 가서 결혼식을 가졌다고 했다.


최근 전국의 경제자유구역청에 외국인 투자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가능해졌다는 뉴스가 나왔다. 외국의 투자를 희망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필요성을 제기했고, 뚜렷한 사회적 결론 없이 설립을 가능하게 하는 법이 제정되었지만, 10년 전 일이었다. 이후 시행령이 없어 실효성이 없었는데, 지난 4월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전격 통과해 오는 6월 말이면 본격적인 설립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러자 한동안 잠자코 있던 시민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무상의료와 같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는 세계의 추세에 역행해 시민의 부담을 늘리는 의료 민영화의 신호탄이라면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영리병원 논의가 시작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무 말도 없더니 이제와 논란이 되는데 대해 다소 당황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 조성 차원에서 설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시민단체는 정권 말 특정 재벌을 위한 노골적 특혜라고 반박한다. 한 여당 국회의원의 목소리를 빌리며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영리병원이 우리 건강보험 체계를 허물 수 있다고 염려한다. 의료수가가 낮은 우리 공중의료보험을 거부해 미국처럼 맹장수술 같이 간단한 치료에도 수 백 만 원을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우리 의료보험 체제가 확고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당국자는 어이없어한다.


거대 보험회사를 소유하는 대기업에서 국제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현상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민단체는 영리병원이 생기면서 사설 보험을 요구하는 일이 잦아지면 공공의료보험이 병원에서 외면될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한다. 미국에서 보듯, 결국 의료비 상승으로 보통 이하의 수입을 가진 시민들 고통이 심화될 것을 염려하며, 4월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을 비판한다. 외국 자본 비율 100퍼센트를 50퍼센트로 낮추었다는 건, 국내 기업의 투자를 보장하는 속셈이 아닌가? 병원장을 외국인으로 두도록 규정한 시행령은 회의 결정 기구의 과반수를 해외 병원 소속 의사로 채우고 전체 의사의 10퍼센트 이상, 그리고 진료 과목 당 1인 이상을 반드시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로 배치하도록 정했다지만, 국내 의사면허 가진 자가 90퍼센트 가깝다면 사실상 내국인을 받겠다는 게 아닌가 묻는다.


전국 7개의 대도시와 20개 넘는 도시가 포함되는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올 수 있는 국제 영리병원은 아마 미국계 자본이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한미FTA가 체결된 이상 우리는 그 병원을 우리 제도로 통제하기 쉽지 않을 공산이 크다. 우리의 의료 수준이 낮지 않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지금도 거액을 마다하지 않으며 미국으로 떠나는 환자가 적지 않은 마당이 아닌가. 양질의 의료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광고를 앞세우는 사설 의료보험회사와 영리병원이 위화감을 일으키며 문을 활짝 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투자자가 국가를 직접 소송할 수 있는 제도를 미국과 FTA를 맺으며 도입한 이상, 우리 정부는 미국계 자본의 사업을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영리병원이 의료 관광객을 늘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데, 국제 영리병원의 수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국내 병원보다 유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지금도 병원을 찾아 입국하는 외국인은 다른 국가에 비해 비용이 적고 의료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한데 고액의 의료비를 지불해야 할 국제 영리병원에 해외의 의료 관광객이 국내병원보다 더 몰려들 것으로 짐작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입이 상대적으로 국내인보다 적지 않겠지만, 그들도 국제 영리병원의 의료 수준이 국내 병원보다 획기적으로 높지 않다면 거액을 요구하는 병원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절반 가까운 국내 자본이 참여하고 의사의 90퍼센트를 국내 의사면허를 가진 이로 채울 국제 영리병원이라면, 머지않아 내국인을 받으려 할 테고, 우리 당국은 통제하지 못할 것이다.


시민단체는 1인 시위와 대규모 집해, 그리고 각종 토론회를 개최해 경제자유구역의 국제 영리병원의 허용을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이 지연되거나 제지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데, 시민단체의 반대운동을 느닷없다고 보는 추진세력은 제 밥그릇을 놓치지 않으려는 극히 일부의 선동으로 몰아세운다. 하지만 국제 영리병원의 반대를 넘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그 시민단체의 논리에서 밥그릇 싸움의 의도는 보이지 않는다. 충분한 논의 없이 추진하기에 논리보다 감성적 접근에 나서지만, 선동과 거리가 멀다. 제시하는 논거가 부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서는 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국제 영리병원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송도 신도시에 처음으로 문을 열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국제 영리병원에 대해 약간이라도 상식을 가진 시민은 인천에도 거의 없다. 대부부의 시민들은 영리병원이 현재의 병원과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한다. 10년 전부터 논의되었지만, 국제 영리병원이 문을 열 경우 우리 의료 체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지, 그 문제가 시민의 건강권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내용을 거의 모른다. 그런 마당에 국제 영리병원의 타당성을 늘어나는 의료보험료에 부담을 느끼는 일반 시민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반 시민은 물론, 전문가들도 쉽게 토론해 합의를 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제 영리병원의 설립을 서두를 이유가 없어야 한다. 정부와 자본의 논리에 매몰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를 밥그릇 빼앗기지 않으려는 극소수의 선동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합리적이지 않으며, 민주적이지 않다. 일부 자본의 이익을 은근히 배려하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국제 영리병원은 당장 밀어붙여야 할 사안이 아니다. 국제 영리병원이 무엇이고 왜 문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충분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타당할 것이다.


     어려서 배가 아프면 할머니나 어머니의 약손이 해결해주었다. 지금은 아니다. 환경이 오염되고 사고의 원인이 많고 무서운 세상이다 보니, 엄마의 약손보다 병원의 장비나 약이 훨씬 급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나 이웃이 병을 않으면 누구나 마음이 편치 않다. 남의 고통 덕분에 돈을 벌어들이는 일을 반가워하는 이는 드물다. 장비나 약을 개발하고 구입하는데 비용이 들어가므로, 병원에 관계하는 이도 수입이 필요하므로, 병원을 이용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병원이 전문화되면서 전에 없이 늘어난 비용에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세금을 받는 국가는 의료보험으로 보호하거나 아예 국가 재정으로 지원한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전혀 아니다. 국제든 국내든, 환자의 고통을 대가로 돈을 벌어들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나선 병원이다. 그런 병원이 왜 인천에 먼저 들어와야 하는가. 영 달갑지 않다. (인천in, 2012,5,15)

지금의 대형병원도 거의 영리병원 수준이지요.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3. 22. 17:21

 

지난 315일 한미자유무역협정(이후 한미FTA)이 발효되었다.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를 타고,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기회가 활짝 열린 셈이다. 미국 기업의 투자는 한미FTA 이전에도 가능했지만 이제 그 여건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른바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가 딸려왔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업을 할 때, 우리 정부의 간섭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판단하면 그 기업은 우리 정부를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도 같은 요구를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그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미국 국내법에 지배를 받는 한미FTA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초헌법적 법률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요구에 쉽사리 굴복하는 관성을 우리 정부는 여전히 고수하지 않던가.

 

우리나라에 미국 물기업이 들어온다면, 그들은 지방정부의 수도사업소를 영업 이익을 침해 협의로 제소할 수 있다. 미국 물기업이 만든 기준을 우리가 준수해야 한다고 미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압력을 가하면 언제나처럼 들어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물기업이 만든 기준을 따르지 않아 가격이 싼 지방정부의 수도사업소 때문에 손실을 보았다면서 세계무역기구에 미국 물기업이 우리 정부를 제소한다면, 우리 정부는 대처할 재간이 있을까. 미국과 FTA를 맺은 다른 국가의 예를 보건데, 세금으로 미국 물기업의 손해를 터무니없게 배상해야 할지 모른다. 다행히 아직 미국의 물기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영업을 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기업보다 훨씬 무서운 유전자 조작’(이후 GMO) 농산물 생산 회사가 머지않아 우리나라에 영업망을 펼칠지 모른다. 그 징후가 벌써 흉흉하다.

 

유전자 농산물로 종자를 세계적으로 독점하는 미국계 다국적기업 몬산토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손잡고 새만금 간척지역에 대규모 농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몬산토는 자사가 특허를 가진 GMO 농산물을 파종할지 모른다. 우리 정부는 연구 중에 있을 뿐, 아직 GMO 농산물을 본격적으로 심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는데, 앞으로는 어떨까. 미국에서 GMO 농산물의 파종을 허용하라는 압력이 들어와도 버틸 용의가 충분할까. GMO 농산물을 심지 못하게 한다면 몬산토와 같은 미국계 기업이 투자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면, 우리 정부는 제풀에 못 이겨 양보할 가능성은 높다. 오랜 경험이 뒷받침하지 않던가. 광우병 요인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을 수 없는 미국산 쇠고기, 다시 말해 30개월이 지난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라는 요구에 화답할 날이 멀지 않은 것처럼.

 

GMO 농작물은 그 농작물이 지닌 유전적 다양성을 거의 잃었다. 그만큼 환경변화에 매우 약한 까닭에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기까지 그 농작물이 요구하는 방식을 고수해야 한다. 다시 말해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GMO 농작물에 특허를 가진 기업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 그 지시에 응하지 않아 손해가 발생했다면 농부는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이 재배하는 GMO 농작물은 미국이 그러하는 것처럼, 광범위한 지역에 단일 품종의 종자만 획일적으로 파종할 게 틀림없다. 그런 경작은 무거운 농기계가 필수이며, 그런 농기계는 석유를 과다하게 소비한다. 그뿐인가. 경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는 석유로 가공해야 한다. 그리고 수확한 농작물의 운반과 저장에 많은 석유가 소비된다. 그러므로 GMO 농작물을 광범위하게 심는 기업은 우리 정부에 거액의 석유 보조금을 요구할 것이고, 농가에 면세유를 보급하는 정부는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GMO 농작물은 수출보다 국내 소비로 돌릴 가능성이 높은데, GMO 옥수수와 콩은 사료로 제한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료로 가공해도 문제다. 옥수수와 콩을 섞은 사료를 일방적으로 먹는 가축은 오래 살지 못한다. 따라서 얼른 몸집을 키워 어린 나이에 도축해서 가공하는 공장식 축산업이 늘어날 텐데, 그런 가축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에 맥없이 희생될 수밖에 없다. GMO 농작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면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농작물의 돌연변이 유전자가 인체에 들어가 미처 예상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미국과 유럽의 연구자들에 의해 지금까지 드러난 몇 가지 사례에서 그 위해 가능성을 보았다. 현재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안심했건만, 광범위하게 소비된 이후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피해자의 범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어쩌면 피해가 다음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 유전자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종자 산업법을 개정했다.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종자를 개발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취지인데, 종자산업의 육성이 그 핵심이다. 결국 농민이나 소비자가 아니라 종자 특허를 가진 기업의 이익에 충성하는 법이다. 대개 특허를 가진 종자는 씨앗을 갈무리하지 못한다. 수확한 농작물은 모두 시장에 팔아넘기고 이듬해 다시 구입해야 하는데, 그런 종자는 유전자가 다양하지 못해 환경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대규모로 심은 그런 종자가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세상은 식량부족 현상으로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개정된 종사 산업법은 한미FTA 시대에 우리 기업에 한정해 적용될 수 없다. 미국계 다국적기업이 독점하는 GMO 농작물에 종자 산업법이 적용된다면, 우리의 식량주권은 어떻게 될까. 지금도 세계 식량의 생산량이 하향곡선을 그리는데, 4분의3의 식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는 앞으로 GMO라도 감지덕지해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GMO 농작물에 포함된 조작된 유전자는 그 농작물에 국한해 머물러 있지 않는 특성이 있다. 특정 제초제에 끄떡없도록 조작한 유전자가 농작물에서 잡초로 이동해 잡초까지 제초제에 끄떡없게 된 사례가 GMO를 파종한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 몬산토의 특허를 가진 농작물에서 지금도 발생하는 일이다. 한미FTA를 기회로 미국계 다국적기업이 특허를 소유하는 GMO 농작물을 새만금에 조성할 광활한 농토에 획일적으로 심는다면, 그 조작된 유전자가 바람을 타고 우리 고유의 농작물, 어쩌면 유기농업단지에 심는 농작물의 종자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것인데, 이후 우리네 삶은 어떻게 될까. 우리 후손의 건강은 내내 온전할 수 있을까. ! 한미FTA 발효가 불러올 이 땅의 GMO 확산이 몹시 두렵다. (지금여기, 2012.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