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12. 21. 22:28

 

2010125일은 현대사의 질곡을 헤치며 어둠 속의 우리에게 빛을 선사해준 리영희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전환시대의 논리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로 권력에 길들어진 우리의 뇌리에 죽비를 내리치던 리영희 선생을 사상의 스승으로 많은 분은 기렸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게 암울했던 시절, 리영희 선생처럼 마음 추스르기 어려운 분도 드물었을 텐데, 답답할 때면 원주를 방문했다고 선생은 소회하곤 했습니다. 그저 마주 앉기만 해도 응어리를 스스로 풀어내도록 이끄는 장일순 선생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리영희 선생보다 한살 많았던 장일순 선생은 1994522일 위암으로 먼저 타개하셨지요.

 

잘 알다시피 장일순 선생은 우리 한살림 운동의 모태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화학농업으로 땅이 죽어가면서 농촌의 생산자도 도시의 소비자도 피폐해간다는 걸 일찍이 절감했고, 그 악순환을 끊기 위한 유기농운동을 제창했습니다. 그리고 실천했습니다. 또한 유기농운동에 앞장서는 후배와 제자에게 좋은 농작물을 나눠야지 먼저 차지하려 욕심내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우리 땅에 유기농운동이 지금처럼 뿌리내리기 전에 세상을 떠난 장일순 선생은 어쩌면 순교하신 건지 모릅니다. 땅도 농촌도 우리의 내일도 유기적으로 살리자며 우리를 토닥거리면서 당신이 먹을 수 있었던 좋은 음식을 이웃에게 양보했기 때문입니다. 한살림을 비롯해 여러 생활협동조합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전국 곳곳의 도시와 농촌에서 소비자와 생산자 조합원을 나날이 늘려가는 지금, 우리는 장일순 선생의 절박했던 마음을 얼마나 이해하며 행동하고 있을까요. 조직이 방만해지기도 전에 나태해진 건 아닌지요.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말. 그런 말은 생산자나 소비자 모두 조합원으로 엮인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소비자 조합원은 생산자 조합원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며 농작물을 구입하고, 활동가들은 직접 대면하기 어려운 소비자과 생산자 조합원을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하는 본분이 요즈음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상품을 진열하려는 백화점에 어울릴 법한 정기 바겐세일이라는 말이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에서 들리면 서글퍼집니다. 물론 유통기간이 다가오는 가공식품을 버려야하는 고충을 그때그때의 세일로 피하고 싶은 조직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진정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비자 조합원들이 유통기간이 다가오는 식품이라도 흔쾌히 구입해야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활동가들은 소비자 조합원들을 그렇게 이끌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오래 생활협동조합에서 활동가로 있던 이가 그만둔 일이 있습니다. 먹어보니 맛이 없다며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소비자 조합원을 설득하다 지쳤기 때문이라기보다 귀찮은 듯 군말 없이 바꿔주는 조직의 풍토 때문이었습니다. 끊임없는 교육은커녕 가입하려는 소비자 조합원에게 출자금만 받으려할 뿐 초기 교육마저 생략하고, 심지어 세파에 찌든 장사치처럼 좋은 음식이라며 가입을 유혹해야하는 상황이 부끄러웠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생산자에게 가격을 낮추라는 요구가 유기농산물 운동조직에서 나오는데 당혹해야 했고 가까운 곳에 다른 생활협동조합의 매장이 열리려 하자 부지불식간에 경쟁심을 가지게 되는 자신이 미워졌다고 했습니다. 기존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을 끌어들이려 사은품을 제공하는 생활협동조합이 인근에 문을 여는 풍토에 절망해 유기농산물 운동의 활동가라는 보람을 접기로 했다지요.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신뢰를 연결해주는 활동가의 일. 참 어렵지만 쉬지 않아야 합니다. 절박한 마음과 신념이 흔들리면 장일순 선생이 유명을 달리하면서 독려하던 유기농운동은 그만 힘을 잃고 맙니다. 생각해볼까요. 싫든 좋든, 곧 한미FTA가 체결될 모양입니다. 우리는 자동차만 양보한 게 아닙니다. 농작물을 내주고 말았으니 노예처럼 생사여탈권을 바친 셈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견뎌내는 하는 분야는 농업인데 농업은 반드시 유기농이어야 합니다. 땅과 농촌과 내일을 살릴 수단이 유기농 밖에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런 사명을 가진 우리 땅의 유기농업을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장차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 텐데, 한살림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새삼스러우니 반복할 필요가 없더라도 다시 살펴봅시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초심을 붙잡는 조직이 시방 한살림과 생활협동조합이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활동가가 실망해서 지친다면 어떻게 풍전등화인 이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한살림이나 생활협동조합이 양판점의 지하식품매장처럼 서로 경쟁하고 생산자에게 낮은 가격을 요구하며 소비자를 유혹하면 조직의 생명은 단축됩니다.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늘어난다면 잠시 공존할 수 있을 테지만 마지않아 포화된다면 살아남고자하는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테지요. 결국 신뢰는 무너지고, 거대한 자금력을 가진 조직에 우리나라의 유기농업 구조가 통합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때 미국의 유기농마켓이 들어온다면 어찌될까요. 지금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자본은 대량생산, 대량운송, 대량소비의 힘으로 매우 빠르게 미국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있을까요. 초심을 잃은 우리 유기농시장과 경쟁할 때 누가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 땅과 농촌과 내일의 건강은 또 어떻게 될까요. 저는 내일이 걱정입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포함합니다. 따라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맞을 필요가 있습니다. 초심을 살려 유기농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겁니다. 이때 한살림에서 발간한 한살림을 흐르게 하는 사람들은 절박한 마음을 다시 추스르게 합니다. 시의적절하게 초심을 다시 생각나게 합니다. 엇나가는 유기농산물 운동조직의 모습에 마음 상했던 소비자나 생산자 조합원들이 다시 구두끈을 질끈 동여맬 동기를 마련해줄 것 같아 기쁜 마음입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고민하고 마음을 새로 다짐하는 분들의 속마음을 들으며 다시 몸과 마음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활동가와 조합원들은 여전히 한살림다움"에 목이 마릅니다. 듣던 중 반가운 고민이었습니다. 조합원을 더 가입시키야 한다는 활동가 생각의 기저에 땅과 내일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비록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지만 조합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보람을 찾는 소비자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이 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걱정하는 활동가의 아쉬움은 앞으로 한살림에 더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흙과 인간을 살리는 유기농산물 운동이 되길 희망하는 이, 유기농운동의 동기를 부여한 깊은 고민을 생산 현장에서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생산자 조합원의 목소리도 아름다웠습니다. 벌레 먹은 농작물을 보고 생산자의 고충을 이해하려는 소비자가 한살림을 바탕을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장 뿐 아니라,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다음세대에게 땅과 내일의 건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공부방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소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기농운동이 끊임없는 공부, 현장 참여, 행동에서 증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오늘과 내일을 건강하게 연결하는 운동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걱정은 미국과 유럽하고 맺은 FTA만이 아닙니다. 해마다 그 규모를 모르게 확산되는 지구온난화가 엄습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단순히 생산자와 소비자를 신뢰로 이어주는 역할에서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은 소비자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생산자의 신념을 지금 이상 북돋아야 하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내 땅을 우리 후손에게 건강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화학농업에 찌든 농부와 땅을 회복시키는데 한살림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어쩌면 유일한 희망일지 모릅니다. 그를 위한 끊임없는 공부와 행동이 물론 수반되어야 하겠지요.

 

이번 인터뷰에서 희망을 봅니다.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살림이 유기농 계의 SSM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갑게 만나게 하는 유기농운동의 메카로 자리잡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운동은 어디까지나 재미와 감동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장일순 선생의 마음처럼, 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는 유기농운동이 지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여러분의 수다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살림 활동가 인터뷰, 한류스타의 발문, 2011)

 

좋은글 감사합니다. 담아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