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05. 11. 8. 01:02
 

원전센터로 분칠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선정 주민투표의 결과가 나온 지난 11월 2일, 유력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비슷한 주장이 일제히 실렸다. 투고자는 대부분 전력관련자들로 ‘투표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자세’라는 요지도 한결같았다. 원전센터를 황색도 아니고 ‘녹색병원’이라고 전날까지 요란하게 시간을 도배했던 텔레비전 광고는 거의 최면술이었다. 찬성 투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관련이 없는 지역 주민들도 동사무소에 가서 찬성으로 투표할 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녹색병원 건설에 찬성한다면 발전기금 3천억 원을 준다고 말해보자.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들어서면 동네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방사능에 오염될지 모른다며, 3천억 원도 인구수로 나누면 일인 당 백만 원에 불과한데 몇 년에 걸쳐 당신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지불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찬성할까.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짓고 싶은 이는 어차피 한 군데는 확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번 주민투표의 결과를 승복하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을 억압할 수 없는 한 갈등은 남을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 다수결이라고 말하지만 그리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전제해야한다. 녹색병원으로 지독하게 분칠한 이번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선정에는 납득할만한 합의 절차가 없었다.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공급자가 주민들에게 찬성을 강권했을 뿐이다.


이해당사자가 많다면 다수결 실시를 위한 사전 합의과정은 길고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존중해야 한다. 시간을 줄이려면 심의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대리할 수 있는 시민패널을 관심 있는 주민들 가운데 불편부당하게 선발하고, 그들이 깊이 숙고하며 민주적으로 도출한 의견을 정책결정자들이 존중하도록 이끄는 제도를 말한다. 작년 시민과학센터는 원자력 위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합의회의’라는 심의민주주의로 물은 적 있다.


1998년 한국유네스코위원회에서 개최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합의회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했다. 과학 지식이 일천한 시민패널도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과 위험성을 주장하는 양측 전문가들의 토론과 주장, 그들에 제공하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시민패널은 이윤에 눈먼 공급자가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소비자이기 때문이었다.


작년 합의회의에서 도출된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정책결정자와 공급자의 눈부신 찬성투표 유도로 결국 역사의 고도인 경주에 방사성핵폐기물처분장을 들어서게 됐다. 가라앉지 못한 갈등은 앞으로 과정마다 속출할 것이다. 다수결에 앞선 민주적 합의가 배제된 까닭이다. 관권과 금권의 승리를 챙긴 공급자는 신뢰할만할까. 아이가 경주로 수학여행 간다면 나는 교장실로 전화해서라도 말릴 것이다. 숫한 경험을 미루어, 시민 무서워 않는 행정이 핵폐기물 운송을 철저하게 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이공대신문, 200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