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8. 23. 02:35

 

참 고약했다. 방금까지 소쿠리 안에서 펄펄 뛰었는데, 뜨겁게 달군 왕소금 더미에 뉘어놓는 인간에 의해 몸이 분홍색으로 오그라들며 죽어야 했다. 그들은 어느새 가을철 별미가 된 왕새우다.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맛이 그만이라며 온갖 해물로 꽉 찬 냄비의 맨 위에 얹고 투명한 뚜껑을 닫아 불을 댕기는 인간들은 반투명 흑청색 몸이 분홍으로 바꿔가는 걸 군침을 흘리며 지켜본다.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 건 아닌데.

 

이상이 왕새우의 생각이라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걸 확인하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은 달리 생각할 게 틀림없다. 힘차게 펄떡거릴수록 속살이 탱글탱글한 법! 등껍질을 벗기며 다리 떼어내기 귀찮고 머리까지 떼어내면 양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따름. 다만 콜레스테롤이 많다는 게 좀 부담스럽지만 눈앞에서 뛰는 왕새우를 어찌 마다할 수 있으랴. 비록 수치가 높아도 아직 몸이 멀쩡하니 동맥경화나 뇌출혈 따위는 당장 고민할 게 아니다.

 

고급 일식집에 가면 상차림을 마무리할 즈음 튀김가루를 곱게 입힌 왕새우를 만나게 되는데, 튀김가루가 바스락 부서지며 입안에 들어와 부드러우면서 쫀득하게 씹히는 게 과연 일품이지만 체면상 젓가락을 자주 가져가기 민망하다.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인심 좋은 선창가 횟집에 둘러앉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다짜고짜 등딱지와 다리 떼어낸 뒤 초고추장에 푹 찍어먹는 왕새우가 제격이고, 그래야 야성미까지 챙길 수 있다. 공포에 질린 생물을 바로 먹으면 정신건강에 해롭다고? 뚝 튀어나온 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공포에 질린 것 같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자. 아무렴. 더 먹는 게 남는 일이지.

 

일본식 한자말로 대하(大蝦)라 하는 왕새우는 다리가 10개인 갑각류 십각목의 보리새우에 속한다. 암컷은 25센티미터 이상, 수컷도 20센티미터 가까이 자라는 왕새우는 황해 연안에 분포해 우리나라에서 ‘바다의 귀족’이라 칭송하지만, 다른 바다에도 덩치가 큰 새우가 없는 건 아니다. 맛? 맛이야 지역의 식습관에 따라 다를 뿐 우열이 있을 수 없는데, 큰맘 먹어야 알현했던 왕새우가 서민의 지갑까지 열게 만든 건 어획고 변화와 아무 상관이 없다. 20도가 넘는 수온을 좋아해 겨울이 아니라면 연근해의 그물에 쉬 걸려들지만, 황해가 점점 따뜻해지는 현상과 관계없이 잡히는 양은 그리 많지 않다. 왕새우가 가을철에 지천으로 늘어난 건, 양식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강화도 남단에도 넓은 양식장이 있지만 왕새우는 전국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맡는 충남 홍성군 남당항이 으뜸이고, 갯벌이 드리워진 곳이라면 양식장은 펼쳐진다. 김포 대명포구와 석모도, 전북 부안의 곰소와 안면도 백사장포구에도 가을이면 양식 왕새우를 일제히 출하한다. 수산전문시장은 물론이지만 때를 만난 선창가 횟집과 국도 변 식당도 주문하기 바쁠 테고 인터넷 주문량도 부쩍 늘었을 텐데, 도로에 붙인 허술한 간판을 보고 양식장까지 찾아오는 이도 많을 것이다.

 

축제도 한몫을 한다. 특별히 싸거나 친절하지 않고 더 싱싱한 것도 아닌데 가을이 왔다고, 갯벌이 드리워진 바다가 보인다고, 양식장을 둔 지방마다 떠들썩하다. 노래자랑, 장기자랑, 농악경연, 풍물패와 춤추는 엿장수 공연, 물고기 잡이 체험…. 어디나 똑같은 레퍼토리에 질리지도 않는지, 가을이 왔다고 갯벌이 게 있다고 몰려드는 관광객들은 왕새우를 날로 먹고, 찜으로 먹고, 왕소금에 구워 먹는다. 덕분에 소주 소비와 지역경제가 잠시 들썩이지만 양식장의 왕새우는 내일을 기약하지 못한다.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면역증강제를 거듭 투여해도 바이러스들이 번지기 때문이다.

 

감염률이 높아가는 간췌장바이러스에 대한 대책도 막연한데 급격히 확산되는 흰반점바이러스가 요사이 더욱 극성이다. 수온이 낮을 때 잠복하다 20도 이상 오르면 빠르게 증식해 발병 일주일 이내 90퍼센트의 왕새우를 죽게 만드는 흰반점바이러스는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겠으나 전문가는 양식장 환경을 먼저 탓한다. 오래된 양식장은 한동안 폐쇄해야 하건만 지켜지지 않고, 소독이 철저하지 못한 양식장에 감염된 어미에서 태어난 어린 새우들을 풀어놓는다는 게 아닌가. 게다가 생산량을 늘리려고 정상보다 배 이상 높게 양식하면서 사료를 과다 살포하니 물이 썩고, 그러니 용존산소가 부족해진다. 수분 증발과 강우량에 맞춰 그때그때 염분도를 조절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왕새우의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소독약과 항생제에 따른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한 대학에서 시름 깊은 양식어민의 소득증대를 위해 면역증강물질과 성장촉진 물질을 새로 개발했다던데, 이제 우리의 왕새우는 건강해질 수 있을까. 제주도는 세계 3대 양식 새우 중의 하나라는 중남미 원산 흰다리새우를 “선진국 수산물 소비 패턴에 맞춰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집중 공급하겠다던데, 양식어민들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우리 왕새우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들에 강한 흰다리새우는 덩치도 더 크고 바다가 따뜻해져 그런지 4모작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이다. 지금과 같은 양식을 고집한다면 기대는 금세 무너지겠지만 그보다 생태계 교란이 더 걱정이다. 온난화된 황해에 황소개구리처럼 퍼져나갈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을까.

 

세계 10대 새우 수출국인 방글라데시는 지독한 새우 양식으로 경작지에 염분이 침투하지만 양식장으로 인한 그네들의 고통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른바 ‘청색혁명’이라 칭하는 양식의 실상은 어떠한가. 살충제와 화학비료 없이 운영할 수 없는 새우 양식장을 위해 맹그로브 숲을 거침없이 베어내면서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진 태풍과 해일과 너울 피해가 해안에 빈발하지 않던가. 새우 껍질을 벗겨내는 아동 노예의 희생이 가장 클 텐데, 지역 주민에 닥치는 재앙도 치명적일 것이다. 그 근본 원인은 말할 것도 없이 탐욕이다. 식탐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10여 년 전, 고깃배에서 맛본 왕새우는 참 컸고 맛도 기막혔다.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던 녀석을 잡았기 때문일 텐데, 그 후 먹은 양식 왕새우의 맛은 그게 그거라 그런지 벌써 잊었다. 이제 우리라도 좀 자제하자. 먹는 것도 키우는 것도. 황해의 우리 왕새우가 바다의 귀족 반열에 다시 오를 때까지 만이라도. (물푸레골에서, 2009년 10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6. 11. 23:43

 

서울시 종로에는 ‘피맛골’이라 말하는 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아니, 길게 이어졌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는 아주 오랜 골목으로, 양반네들이 말을 타고 지날 때마다 고개를 조아리기 싫거나 귀찮은 백성들이 말을 피해 다녔다는 의미를 담은 피맛골에는 부담 없는 비용으로 밥 먹고 술잔 기울이려는 시민들이 즐겨 찾곤 했다. 이제 피맛골은 일대를 차지하려는 거대한 건물에 밀려 역사 너머로 사라지려고 한다. 어떤 건물은 1층 홀에 ‘피맛골’로 이름붙인 식당가를 단장하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보다 피맛골의 단골손님을 대신 보전하고 싶었으리라.

 

피맛골엔 구운 고등어와 조기와 생선과 꽁치가 손님상에 올라가는 식당이 서너 군데 있었다. 그 중 도톰한 몸통의 한가운데를 잘라 1인분으로 머리나 꼬리 부위를 내놓는 삼치가 별미였는데 언젠가부터 삼치구이 주문하기가 민망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알조차 낳은 적 없는 어린 생선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어린 만큼 고기가 부드럽다지만 좀 지나쳤다. 참치처럼 냉동과 해동을 잘 하면 덩치가 큰 삼치도 얼마든지 부드럽게 요리할 수 있을 테니 지금보다 훨씬 성긴 그물코로 잡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설을 갖추려면 비용이 다소 늘어날 거고, 벌이가 줄겠지만 식당마다 내놓는 생선의 양을 줄이면 밥값은 올리지 않아도 될 텐데.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주머니가 허약한 대학생이 즐겨 찾던 삼치집이 동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있었다. 가끔 들리는 운동권 학생을 잡으려 형사들도 기웃거렸던 그 집은 석쇠에 삼치를 한 뼘 가깝게 펼쳐 구웠는데, 장정 서넛이 거뜬히 먹을 만했다. 단단한 뼈를 골라내야하는 번거로움은 술기운을 조절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형사가 기웃거릴 때마다 운동권 학생들을 숨겨주었다는 그 삼치집 아주머니는 1인당 소주는 한 병, 막걸리는 한 되 이상을 팔지 않는 신조를 지켰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손님은 절대 받지 않았던 그 집,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다시 찾고 싶지만 어린 삼치를 보게 될까 두려워 선뜻 발이 가지 않는다.

 

우주센터로 갑자기 유명해진 나로도는 예전에 나라의 말을 키웠던 섬이다. 그래서 ‘나라의 섬’으로 불렀다던 나로도는 얼마 전까지 삼치로 유명했다. 잡힌 삼치를 모두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 개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너스레떠는 주민들은 1년생보다 2년이 지나 몸이 50에서 70센티미터로 자란 삼치가 가장 맛이 좋고 잡자마자 얼음에 재운 회가 특히 일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 삼치는 나로도에 가야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삼치란 생선은 그물은 물론이고 낚시로 끌어올려도 올라오자마자 죽으니 육지로 살려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일본에 수출하던 삼치가 1980년 이후 동인천역과 피맛골의 생선구이 식당에 선보인 건 아무래도 냉동기술 덕분일 테지.

 

그런데 아닌가. 요즘 웬만한 횟집 출입구 양편의 수족관에는 삼치가 느긋하게 살아 숨 쉰다. 바닷물 째 떠서 잡아왔을 리 없는데, 어떻게 살려온 걸까. 물속에 부지런히 공기를 불어넣는 걸로 부족할 테고 적지 않은 항생제를 투입했을 텐데 그 수족관에 삼치만 살아있는 건 아니다. 농어와 광어, 우럭과 숭어도 섞여 아가미를 맥없이 여닫는데 하나 같이 동작이 둔하고 눈매에 생기가 없다. 수족관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먹이는 구경할 수 없었을 게다. 사람과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고스란히 노출돼 겁에 질린 채 굶주리며 항생제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물고기들. 과연 신선할까.

 

억지로 살려 도시의 수족관으로 옮겨지는 생선은 삼치뿐이 아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도 가을이 되면 도시의 수족관마다 북적이는데 반은 뒤집혀 있다. 차고 깨끗한 물을 재아무리 빨리 순환시켜도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던 물고기에게 좁디좁은 수족관은 지옥일 게 뻔한데, 굳이 ‘활어회’를 위한 수족관을 고집해야 할까. 억지로 살린 생선보다 잘 얼린 생선이 더 신선하지 않을까. 생선회의 상태에 매우 민감해 하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잘 얼렸다 녹인 생선의 ‘선어회’가 압도적으로 많다. 높아지는 항생제 내성을 걱정하는 우리도 선어회로 취향을 바꾸면 어떨까.

 

활어회냐 선어회냐에 대한 논의는 오로지 사람의 취향이 기준이다. 입맛이나 안전성이 잣대가 되겠지만 해양 생태 자원의 보전을 생각하자면 지나치게 어린 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조기처럼, 우리 앞바다에서 삼치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1960년대에 만해도 인천시민들이 지겨워했던 갈치는 요즘 제주도 바다에서 잡아오는데, 머지않아 차례상에 올라가는 조기처럼 원양에서 잡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도 큼직한 갈치는 대개 원양에서 잡는다. 삼치는 아직 나로도에서 잡지만 예전 같지 않다. 우주센터로 사람들의 관심이 바뀐 나로도를 언제까지 지켜줄지, 삼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절대 씨앗을 먹지 않던 농부들이 기업에서 씨앗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어부까지 어린 생선을 싹 쓸어 잡는데, 문제는 위성으로 어군을 탐지하는 대형 선단이다. 그들의 남획은 내일의 바다를 텅 비게 만들지 모른다.

 

우리나라 문어통발은 얼마나 크기에 밍크고래가 걸려드는 들까. 새우통발과 까나리 그물도 심심치 않게 밍크고래와 향고래를 걸려들게 한다니 고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고래잡이는 분명한 불법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물에 걸려든, 이른바 혼획된 고래에 한해 판매가 허용된다. 그래서 혼획된 고래는 로또나 다름없다고 말하는데, 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혼획 고래가 많은 걸까. 그물이나 통발을 일부러 촘촘하게 설치하는 건 아닐까. 어부들은 고래가 꽁치그물을 터뜨린다고 하소연하지만 고래가 사라진다고 잡히는 꽁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바다의 풍요로움은 고래와 꽁치와 문어와 까나리가 공존할 때 유지된다. 사람은 그 덕분에 그물을 내릴 수 있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기농산물 식품매장에 진열된 생선은 유기사료를 먹여 양식한 물고기가 아니다. 유기농산물 시장에는 남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거나 지나치게 어린 생선은 제외시킨다. 내일을 생각한 어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되고 농번기가 필요 없었던 바다의 풍요로움은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근해는 물론이고 연해의 어족자원이 전에 없이 드물어진 요즘, 원양어업마저 시들어들까 걱정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6월 ?일)

느티나무집이었던가요? 매일 정해진 양의 삼치만 팔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