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8. 1. 28. 14:28
 

이번 겨울,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올 행운을 건질 수 있었다. 멕시코와 쿠바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유기농업의 현황을 둘러보는 길에 유카탄 반도의 세계적 휴양도시 칸쿤을 찾는 여행이었다. 마야문명의 흔적을 살펴보기에 앞서 칸쿤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고 산호가 만든 흰 모래 해변을 밟는 호사도 잠시 누렸다.

 

2004년 9월, 세계무역기구의 다자간 무역자유화를 위한 각료회담이 열린 칸쿤은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곳으로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국적 자본이 추구하는 거대한 무역자유화의 파고에서 농업도 예외가 없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막는 데까지 막아보자고 이역 땅을 찾은 이경해 열사였다. 그는 우리 농업을 지켜내지 못할 거라는 열패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는지, 이준 열사처럼 이국에서 목숨을 내놓았는데, 바로 그 역사의 땅, 칸쿤을 방문한 것이다.

 

세계 굴지의 호텔 수십 동이 해변을 바라보는 칸쿤은 하루 20만 이상의 관광객이 운집하는 명소답게 사시사철 바다가 아름답고 따뜻하다. 하얀 모래가 완만한 해변은 방문객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화려한 호텔의 상당수는 사실 얼마 전에 신축 또는 개축했다. 3년 전 10월에 강타한 허리케인에 휩쓸려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기저기 그때의 상처가 남은 해변에는 완공을 서두르는 건물이 눈에 띄었고,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야자수도 키가 작았다.

 

시속 230㎞의 강풍을 동반한 2005년의 허리케인 윌마는 3미터가 넘는 파고로 칸쿤의 호텔 지역을 덮쳤고 당국의 긴급 안내로 인명피해는 막았어도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작년 8월에 다시 몰아친 허리케인 딘으로 칸쿤은 홍역을 앓았다는데, 2년에 두 번 몰아친 거대한 폭풍은 칸쿤을 다시 할퀴지 않을지. 더욱 거대해진 호텔들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과 한국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연일 북적이는데,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해변을 가로막은 호텔은 높아지기만 한다.

 

칸쿤의 해변은 자연이 만들었다. 부셔진 산호가 빚은 해변에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자본은 해변 가득 호텔을 올렸는데, 높은 건축물이 허리케인을 가로막자 해변은 여기저기 깎여 나갔다. 호텔이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그 일대를 휩쓸던 허리케인에 의해 모래가 쌓이고 쌓여 형성되었을 해변이 사람 때문에 위기를 맞은 것이다. 호텔이 바람을 막자 해변이 깎였고, 해변이 깎이자 허리케인의 파고는 완충되지 않고 호텔을 덮치고 말았다.

 

최근 거듭되는 지구온난화는 허리케인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고 전문가는 말한다. 더위에 지친 잘 사는 사람들은 멀리 해변을 찾고, 해변 호텔의 에어컨도 덩달아 거세어진다. 칸쿤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지구온난화에 기여해왔다. 온실가스로 지구를 덥게 만든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해변으로 간 것인데, 정작 칸쿤에 살던 사람들은 예전에 볼 수 없이 강력해진 허리케인으로 고통을 받는다. 지붕이 무너지고 농경지가 바닷물로 침수될 뿐 아니라 호텔이 무너져 직장을 잃는다. 무너진 호텔은 보험금을 받고 더욱 화려하고 더 높게 세워질 테지만 주민의 고통은 커지기만 한다. 너른 해변을 잘 사는 국가의 시민에 맞게 개발한 칸쿤은 겉보기 화려한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칸쿤만이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해변도 안전하지 않다. 태풍의 파고를 완충해주던 해변에 높은 호텔을 짓는 건 칸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다. 갯벌을 매립한 자리에 건축물을 올리는 행위도 그와 다르지 않다. 실제 지구온난화 이후 높아진 파고는 감당할 수 없는 너울이 되어 동해안의 모래사장과 인근 도로를 휩쓸고, 갯벌이 사라진 서해안은 바닷물에 의한 침수가 전에 없이 드세어지지 않던가. 사정이 그런데 갯벌 매립은 오늘도 계속되고 해안의 건축물은 높아만 간다. 갯벌을 막는 조력발전은 어떤가.

 

거세지는 허리케인과 태풍은 내일을 어서 대비하라고 이르건만 개발에 눈이 먼 우리는 온난화로 더욱 높아진 파고를 아직도 바라보지 못한다. (기호일보, 2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