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2. 15. 14:58

연말에 신세진 이와 저녁을 했다. 계속되는 혹한에도 흔쾌히 찾아와 고마왔는데, 그는 내복을 입었다. 마주 앉은 식당은 훈훈했지만 금방 뜨거워졌다. 난방용 필름이 바닥을 얼른 데웠던 거다. 내복을 입은 그이는 몇 겹의 옷을 부담스러워했다.


사실 도시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 북극의 냉기류가 아무리 차도 실내 공간은 대체로 따뜻한 까닭이다. 잠시 노출된 한기는 실내에서 이내 사라진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그만큼 많을 뿐 아니라 소비 방식이 편리하기 때문일 게다. 요즘 많은 실내는 전기로 난방을 한다. 바깥 날씨와 관계없이 여름철 실내가 추운 것처럼 겨울이 따뜻한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옛날 이야기하면 젊은이들은 하품하겠지만, 며칠 전 27년 만의 강추위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맞다. 한 세대 전 겨울은 요즘 이상 추웠다. 삼일 추우면 나흘 풀렸지만 아침이면 유리창에 성에가 피었고 햇살 받는 처마마다 고드름을 길게 늘어뜨렸다. 그렇다고 방구석에 틀어박힌 아이는 거의 없었다. 두툼한 이불로 밥주발 덮은 아랫목 외에 따끈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세상은 밖에 있었다. 그래서 간장독과 아이들은 밖에 내놓아도 얼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을까.


겨울 집안이 따뜻하고 여름철 건물 안이 추운 요즘, 컴퓨터 앞에 코 박는 아이들은 사시사철 감기를 달고 산다. 언제까지 이런 불합리가 양해될 수 있을까. 에너지는 변환할 때마다 효율이 떨어지는데 전기 과소비라니. 화석연료를 태워 얻는 전기로 난방을 하는 무모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전기가 석유보다 저렴한 모순은 어디에 원인이 있을까. 값싼 핵일까.

 

무모한 전기난방


정부나 언론은 거의 전기나 에너지 앞에 원자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1960년대는 이라 했다. 원자의 반응이 아니라 원자의 핵이 분열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내놓기 때문이다. 그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전기를 우리는 거저나 다름없는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교과서나 언론은 전했다. 정부와 관련 전문가들은 일방적 홍보였지만, 실제 상황은 반대로 드러났다. 집중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로 바람이나 태양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서 얻는 전기가 오히려 저렴해졌기 때문이 아니다. 핵발전 관련 시설을 세우고 폐기하는 과정, 핵연료를 채굴과 정제하야 분열시킨 뒤 폐기하는 모든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투명하게 계산해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비교하자 나온 결론이 그랬다.


핵발전소는 전기 소비가 뚝 떨어지는 밤에도 가동해야 한다. 핵발전소를 보유하는 국가들은 대개 기저부하다시 말해 일정 기간 동안 가장 낮게 소비하는 전력의 양을 충당하도록 발전 용량을 설정한다. 석유나 가스 화력발전소처럼 자주 끄고 켜면 고장이 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으로, 핵발전소가 기저부하 이상으로 많으면 밤에 전기가 남아돌 수 있다. 미국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든 전두환 정권 때 우리나라는 핵발전소를 집중 세웠고, 당시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못했다. 그 결과 밤에 전기가 남자 전력당국은 심야전기 사용을 부채질했다. 전기난방이 등장했다.


국가의 전력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기저부하의 양이 늘어나자 남는 심야전력이 줄었지만 전기난방 보급은 줄지 않았다. 편의 탓이다.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정은 요금이 무서워 자제하지만 누진세 대상에서 제외된 상가나 건물, 특히 생산단가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제공되는 산업현장은 난방 용도로 전기를 마음껏 사용하게 방조되었다. 그러자 손님을 끌어들이려고 여름 냉기와 겨울철 온기를 거리로 쏟아내는 가게가 거리를 점령하는 일이 발생했다. 기업은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에 기술투자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어 그 방면에 국제 경쟁력을 잃고 말았다.


여름과 겨울에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자 전력당국은 핵발전소를 비롯한 발전소 증설을 계획하고 산업계 전기요금부터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현실화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전력당국이나 산업계나, 요금 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합리성은 찾기 어렵다. 기업에서 가정까지, 전기 사용의 효율화를 먼저 연구 논의하여 실행하거나 절약 방법을 공동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공급자는 손실을 만회하려 들고, 소비자는 비용 증가만 막으려 한다.

 

합리적 전기 소비


핵발전으로 전기의 4분의3을 충당하는 프랑스는 요즘 전력 사정이 원활치 않다.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자국 17기 핵발전소의 절반 이상을 즉각 끄고 오는 2022년까지 모도 폐쇄하기로 결정한 독일에서 전기를 수입해야 한다. 유럽의 대표적 산업국가인 독일이 핵발전소 가동을 즉각 절반 이상 중단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전기를 수입할 거로 추측했지만 오히려 반대 현상이 발생한 건데, 양국 시민들의 전기 소비 자세의 차이에 그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는 전기로 난방과 취사를 해결하는데, 핵발전소가 노후화되면서 공급이 불안하게 된 것이다.


독일인은 겨울철 따뜻한 집안에서 얇은 셔츠만으로 활동하는 한국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집에서 스웨터를 입거나 심지어 외투 자연스레 걸친다. 손님이 있어도 가게의 조명을 어둡게 하는 독일인은 가정 또는 지역 단위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의 발굴과 사용에 적극적이다. 개인이 생산한 전기가 전력회사 전기보다 단가가 높지만 정부에서 차액을 충분히 지원해준다.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는 전기는 요금이 비싸므로 지역에 발전소를 세우는 걸 반대하지 않지만 건설 계획 단계에서 소비자와 철저히 논의한다. 민주적 합의로 적정량의 전기를 생산할 뿐 아니라 발생하는 대기오염 요인을 철저하게 공개하며 소비자와 대책을 세운다. 그래서 우리와 같은 불신과 갈등은 없다.


소비자를 소외시키며 발전소 증설을 결정하는 우리나라는 소득이 증가하면 전기 소비도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하지만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이 몸에 밴 국가는 다르다. 일인당 전기 소비량은 우리가 독일보다 많다. 소득 수준을 고려해 비교해보자. 소득이 늘어도 전기 소비량은 늘어나지 않은 독일은 물론, 프랑스보다 우리가 두 배 이상 전기를 소비한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기요금은 전기를 받아쓰는 지역보다 저렴해야 당연하지만 우리는 똑같다. 비정상이다. 그 결과 소비량에 비해 발전량이 터무니없이 작은 서울과 경기도는 전기를 아끼지 않는다. 대신, 발전소 밀집 지역은 대기 환경이 악화되고 온배수 때문에 해양 생태계가 교란된다. 인천이 그렇다.


핵발전소 자체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지만 연료를 채굴, 정제, 운송, 저장,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화력발전소 못지않다. 무엇보다 큰 결함은 과학기술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없는 핵폐기물을 수 십 만 년 이상 내놓는다는 점이다. 차단하지 못하면 인체는 물론 환경에 치명적인 위해를 준다. 진정 후손을 생각한다면 30년 전기를 쓰고 자자손손 핵폐기물을 넘겨야하는 핵발전소는 폐쇄해야 옳다.

 

절박한 대책


농업용 석유와 전기도 저렴하다. 덕분에 계절과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한 세계 곳곳의 농작물을 재배 또는 수입해서 먹을 수 있지만 전기와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핵연료의 가격도 초기보다 100배 이상 상승했고 더 오를 것이다.


안전 요구가 거세지는 만큼 핵발전소 관련 비용은 증가할 텐데, 전기로 난방의 4분의1을 해결하려는 무모함은 중단해야 한다. 효율화와 절약을 전제로 소비자가 충분히 포함된 상태에서 민주적으로 논의하여 전력요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아닌 지역의 가격은 당연히 달라야 하고, 가정보다 기업과 상업 시설의 가격을 조절하면서 누진율 적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이 몸에 밴다.


북극해 얼음을 녹이는 지구온난화가 겨울철 냉기를 아래 위도로 내려 보내면서 혹한이 계속된다. 지구온난화는 대나무와 감의 북방 한계선을 밀어 올렸지만 열대과일까지 허락하지 않는다. 한계가 드러난 국제 석유의 가격은 치솟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 식량 수입도 벅찰 수밖에 없다. 이럴수록 내 땅 맞는 농작물로 자급할 수 있어야 안심할 수 있는데,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증설, 그리고 식량 수입원 확대로 해결하려는 우리는 지나치게 무책임하다.


     좁은 땅덩이에 밀집된 많은 인구가 제철 제고장 음식으로 자급할 수 없다. 추울수록 덥게, 더울수록 춥게 살아가는 호강은 그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서 아직은 식량이나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그 부담을 한시바삐 줄여야 한다. 늦기 전에 낭비적 삶을 돌이켜야 한다. 대안적 삶을 절박하게 모색해야 한다. 싫든 좋든,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지내야 한다. 남은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푸른두레생협, 20132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12. 3. 11. 11:30

 

은폐된 원자력 핵의 진실,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김원식 외 옮김, 녹색평론사, 2011.

원자력의 거짓말, 고이데 히로아키 지음, 고토 다이스케 옮김, 녹색평론사, 2012.

 

은퇴 뒤 오키나와로 가기 전, 도쿄대학교 우이 준이라는 존경받는 노교수는 평생 조교수의 지위를 결코 넘지 못했다. 유기수은으로 인한 미나마타 만 중독 사건에 뛰어든 대학원생 이래 그는 출세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보수적인 학계가 그렇다고 한다. 학교나 학계를 지배하는 사상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사회적 존망을 받더라도 결코 승진할 수 없다고 한다. 대학도 인간이 사는 세상이므로 유럽이나 미국도 어느 정도는 그럴 테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하겠는데, 우리는 어떤가. 주류 사상과 다른 생각을 하는 이를 받아주는 대학이 있긴 있나.

 

고이데 히로아키는 핵발전의 안전성을 부정하는 학자다. 그도 학창시절 에너지 자원을 찾는 일본과 인류에게 핵이 큰 희망으로 다가올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학계에 들어가 연구를 시작하면서 곧 부정적으로 바뀌었고, 연구를 거듭할수록 핵발전의 치명적 위험성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해왔다. 학교나 사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펼쳐냈다. 그래서 그는 승진할 수 없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 여전히 학교에 교원이자 연구원으로 근무하지만, 아직도 조교다. 우리나라와 같은 직급은 아니지만 최하위 교원의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날 생각도 한 적 없다. 그는 사상의 자유를 구가할 따름이다.

 

작년 311일 후쿠시마에서 도쿄전력의 핵발전 단지에서 4기의 반응로에 폭발이 일어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고이데 히로아키는 사고 전에도 실험실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연구하며 여기저기 기고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을 요청하는 이 없어 그 전에는 마냥 한가로웠을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핵발전소를 가동한다고 대내외적으로 자랑하던 일본에서 사고가 없으니, 아니 드러나지 않았으니, 답답하지만 발언할 기회가 없었던 그. 사고 후 그를 우리나라에 초청해 실감나는 이야기 듣고 싶은 단체가 많기에 미안해 어쩌지 못해 했다던데, 그의 책이 드디어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고이데 히로아키가 작년 311일 이전에 쓴 책과 이후에 엮은 책을 최근 녹색평론사에서 출간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반핵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운동가인 김원식 선생이 노구에도 번역에 나섰고, 우리나라에 정착해 힘겨운 시민운동에 전념하는 고노 다이스케가 마음을 다해 번역한 두 권의 책은 짐작하듯, 거짓말 없이 한시도 지탱할 수 없는 핵발전소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다. 옹진군의 굴업도와 부안의 위도에 핵폐기장을 만들겠다 하여 사회가 들끓었을 때 반짝 출간했던 핵발전 관련 책들이 한동안 서점가에 부재해 핵의 위험성을 잊고 살았는데, 긴장해야 한다는 걸 고이데 히로아키는 다시금 강조한다.

 

일본도 주춤하고 독일은 폐쇄를 선언했건만 이번 기회를 도약의 계기로 삼자고 나서는 핵동맹이 여전히 설치는 우리나라에서 두 권의 책은 우리 독자들에게 핵발전의 추악한 협잡과 거짓과 위험성을 제발 귀담아 들으라고 설득력 있는 쉬운 말로 이야기한다. 일본의 사정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일본만의 상황일 리 없다. 고이데 히로아키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위험성을 강도 높게 지적하며 핵안전을 연구하는 이가 대학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일본은 그나마 우리보다 낫다. 일본도 핵동맹이 독점하는 핵발전에 관한 정보를 속속 깊게 알기 어려워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리무중이 아닌가.

 

핵발전은 평화적 이용이고 핵폭탄은 무기인가. 그 둘은 차원이 다른 문제인가. 거듭 이야기하지만 핵발전은 핵폭탄을 전제로 가동하는 파멸적 에너지에 불과하다. 핵은 무한한 에너지인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발전소를 유지한다면 석유나 석탄보다 한계가 빨리 올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처럼 더욱 늘린다면 금방 고갈될 것이다. 핵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플루토늄을 가공한다면 훨씬 오래 쓸 수 있다는 가정은 그 비용과 위험성을 고려할 때 즉각 기각되고 만다는 사실을 고이데 히로아키는 일본의 사례를 들며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왜 세계의 여러 정부와 자본은 핵발전을 고집하는가. 물론 핵발전을 원하지 않는 시민이 집약된 힘을 정치권에 보여주지 못한 데에 그 이유가 크겠지만, 핵발전에 관련한 범 세계의 막대한 투자를 한 자본은 국내외적으로 운영되는 기간 동안 막강한 이권을 독점적으로 누리려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막대한 자본도 감당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 때 벌어질 수 있다. 그때 발생한 피해와 그 보상은 어떤 자본도 감당할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정부는 어느 이상의 피해보상을 면제해주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보상을 떠맡을 것인가. 겉으로 일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겠지만 결국 외면하고 말 공산이 크다. 온갖 거짓과 협잡과 위협으로 유야무야시킬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 사례를 미국의 드리마일과 구소련의 체르노빌에서 보았다. 일본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작년 11월 일본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무려 4300명에 달하는 복구 노동자가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도쿄전력에서 3억 엔의 돈을 쥐어주며 발설하면 몰수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까지 후쿠시마 현의 한 의원이 밝혔는데, 고이데 히로아키는 핵발전은 처음부터 아직 누구도 끝을 알 수 없는 그 끝까지 거짓으로 점철되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실증을 들어 이야기한다. 지구온난화를 완화한다는 주장 따위는 약과다. 위험성을 감추지 않으면 노동자가 찾아올 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감언이설로 찾아온 노동자의 건강은 어떻게 참담해질 것인가. 그 가족은 어찌 될 것인가.

 

핵이 없으면 산업이 마비된다면서 안전을 강조하는 핵발전소는 수도권에 절대 들어서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의 사고는 반경 30킬로미터의 생명과 재산권을 즉시 없애버린다. 우리나라는 그 도가니 속에 있다. 빠져나갈 수 있는가. 고이데 히로아키의 책을 읽고 각성한 시민들이 나서서 행동하면 가능하다. (우리와다음, 2012년 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1. 4. 09:00

 

지긋지긋했던 2011년이 가고 2011년 흑룡의 해를 맞았다. 1999년에서 2000년이 될 때, 세계는 날짜 변경선을 따라 축포를 올리며 열광을 했지만, 사실 그때 별 감흥이 없었다. 시간이 매듭이 없는데, 사람이 정한 시간 단위가 바뀐다고 세상이 뭐 달라지겠나 생각했을 뿐이었지만 이번엔 뭔가 다른 기분이다. 2012년은 2011년의 과오를 분명히 씻어낼 것이라는 어떤 희망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혹독했던 지난겨울 서두른 ‘4대강 사업만이 아니다. 작년 3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는 세계 여러 국가에 경각심을 불어넣어 핵발전소 폐쇄로 이어졌건만 우리는 아니었다. 지하수가 줄줄 세는 암반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강행하는 만행은 중단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일본이 주춤할 때가 곧 기회라는 듯, 핵발전소 추가 도입을 결정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열릴 올해, 유권자는 2011년의 과오를 충분히 응징할 수 있다.

 

2012년이 상서로운 건, 법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국회의원을 뽑고, 뒤틀어진 산하를 바로잡을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가 온다는 데 크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를 상징하는 용의 해, 그 중에서 흑룡의 해라고 하니 기대가 더 크다. 흑룡답게 많은 비를 뿌려 이 땅의 악습을 씻어내고, 꽉 막히거나 뒤틀어진 자연을 원상복원 하리라는 데 있다. 물론 상징적인 동물인 용에 무얼 기대한다는 건 과학적이지 않다. 합리적도 아니다. 하지만 요사이 내리는 비는 예년과 달라도 한참 다르다. 작년도 대단했으니 올해에 기대가 된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강제로 뒤로 역행하게 한 악습도 선거 뒤 새로 올라간 흑룡이 정리하지 않겠나.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 북쪽을 뜻하는 은 검은색을 의미한다고 한다는데, 검은 건 깊은 물의 색도 그렇다. 머물던 깊은 물이 뜨거워지면 흑룡은 하늘로 오르고, 장대비가 이내 퍼붓듯 내릴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물이 뜨거워지면 수증기의 발생은 늘어난다. 늦은 여름까지 제주도 연안에 남아 극성을 부리는 북태평양고기압과 더불어, 늦여름부터 강수량이 막대해지는 남중국은 연실 물풍선들을 대기에 올린다. 그 물풍선들은 때마침 부는 편서풍을 따라 한반도로 향하다 시베리아 인근의 대륙에서 확장하는 고기압을 만나 터진다. 국지성호우가 빈발하는 거다. 작년 서울 우면산에 산사태가 일어나게 만든 원인이기도 하다.

 

도시든 농촌이든, 산촌이든 어촌이든, 가리지 않는 물풍선은 대형 보 관리자들이 근무하는 ‘4대강 사업구간이라고 피할 수 없다. 10미터가 넘는 16개의 대형 보들은 대략 1억 톤의 강물을 가로막을 예정이란다. 그래서 수면이 오른 인근 농촌은 지하수가 벌써부터 올라와 농사를 포기할 정도다. 흐르지 않는 강물은 쌓인 모래와 더불어 썩어갈 테니 농업용수의 가치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상류 지역에 국지성호우가 퍼붓듯 내린다면? 느닷없이 강력하게 몰리는 수압을 견디지 못한 대형 보는 그만 무너질 수 있다. 단위 시간에 내리는 강우량의 양에 따라 다를 테지만, 작년 이상으로 퍼붓는다면, 관리자들도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다. 상류의 대형 보가 무너지면? 고인 강물을 미처 빼내지 못한 하류의 대형 보는 당연히 무너질 것이다. 도미노처럼.

 

농경사회를 지배하는 용은 낙타의 머리, 사슴 뿔, 쇠귀와 뱀 목, 잉어 비늘과 매 발톱, 그리고 호랑이 주먹을 가졌다. 신령한 동물의 조합이다. 신령한 동물은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4대강 주변의 농민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당장은 위험천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처해야 한다. 삽으로 대비할 수 없으므로 농민은 지방정부에 요구하면서 4대강 사업의 문제를 호의적인 언론과 ‘SNS’라는 매체에 익숙한 시민단체에 위험성을 부단히 알려야 한다. 그렇게 출마하려는 선량 후보들을 4월 안에 압박해야 한다. 홍수는 보통 4월 이후에 발생하므로 4대강 주변의 농민들은 예비후보들이 난립하는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작년의 위세 이상이라면 흑룡이 퍼붓는 강우량은 현 정부가 저지른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할 텐데, 대통령 선거가 있는 12, 유권자들은 어떤 지도자에 용포를 입히려 할까. 굳이 힌트를 주지 않아도 상식에 준하는 유권자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행동할 터. 문제는 4대강 사업에서 그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핵발전소의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현 정부의 의지대로 핵발전소가 추가된다면 어찌될지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후손에게 죄짓지 않는다.

 

지금까지 핵발전소가 폭발한 국가는 안전상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 구조와 속성상 안전을 확신하며 운영할 수 없는 핵발전소의 특성처럼,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 순서대로 사고가 발생했고, 그 지역은 버림받았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핵발전을 차차 상쇄할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발굴은 우리보다 햇빛과 바람의 세기가 낮은 독일만의 대안일 수 없지 않은가. (지금여기, 20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