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10. 22. 12:22


     파란 하늘이 깊어지더니 추석이 지나갔다. 추석의 차례는 조상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후손의 마땅한 의례인데, 농경사회가 아닌 요즘은 진정성이 예전 같지 않다. 수확한 햇과일과 쌀로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바치고 예를 올리는 행사. 하지만 요즘 차례에 수입 농산물이 지천이다. 그뿐인가. 식량자급률이 23퍼센트에 지나지 않건만 해마다 30조 원 어치가 넘는 음식쓰레기를 버린다. 언젠가부터 추석 상 받는 조상님, 마음 편치 않을 듯하다.


중국 남부의 기후조건에 맞춰 그런가, 들판의 황금물결이 완연하지 않을 때 오는 우리 추석은 이른 편이다. 우리 추석과 대응할 수 있는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11월 중순이 지나서 온다. 좀 서늘하긴 해도 수확한 농산물이 창고에 가득할 때다. 추수감사절이나 추석이나, 식구가 모두 모여 낳아준 조상에게 감사하는 날인데, 거슬러 오르고 또 오르면 조상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창조신화의 의미를 새기는 신자라면 아무래도 하느님을 모셔야 할 텐데, 서양의 추수감사절이든, 우리의 추석이든, 요사이 하느님은 심란하시지 않을까.


기계로 다량 생산하는 농산물은 석유를 들이킬 뿐, 농부의 땀방울을 거의 담아내지 않는다. 창조세계에 오랜 세월 어우러지던 이웃들을 몰아낸 자리에 사람만 먹을 농작물의 씨앗을 뿌려 땅을 독차지하면서부터 하느님의 표정은 밝지 않으셨을 것 같다. 지금은 그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농토에 슬그머니 조심스레 다가와 같이 먹자는 이웃을 여지없이 쫓아내던 사람은 독약을 뿌려 아예 목숨을 빼앗으니 하느님은 화가 단단히 나셨을지 모른다.


농약과 화학비료는 석유를 가공해 만든다. 소품종을 다량 심는 첨단 농업은 석유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무거운 농기계가 아니면 땅을 갈 수도, 수확할 수도, 운반해 저장할 수도 없다. 그렇게 생산한 농작물을 거대한 배에 싣고 오대양육대주를 오고가려면 막대한 석유가 없으면 안 되고, 그런 농작물을 가공하는데 또한 적지 않은 석유가 필요하다. 그렇게 만든 음식이 마구 버려진다. 우리나라만 30조 원에 해당된다고 하니, 세계적으로 얼마나 되려나. 하느님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포함해 잘 사는 나라에서 먹고도 남을 만큼 생산해 마구 버리는 게 요즘 음식이지만 어떤 지역은 정작 3초에 한 명이 굶주려 죽는다. 그들의 땅에 자신이 먹는 농작물을 심는 게 아니라 더욱 그렇다. 잘 사는 나라의 기호식품을 위해 기름진 땅을 내주면서 굶주린다. 사람이 굶주리는 만큼 터전을 공유했던 동식물은 헐벗다 못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잘 사는 나라의 농토가 건강한 건 아니다. 농약에 찌들어 더 많은 화학비료와 농약이 없으면 안 된다. 석유는 더욱 많이 필요한데, 2005년 전후부터 석유는 모자란다는 신호를 국제적으로 보내고 있다.


농토만이 아니다. 바다는 남획돼 생물종의 수와 양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욱 걱정인 것은 어려 알도 낳지 않은 바다 생물을 마구 포획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 두 척 이상의 커다란 배가 무지막지한 그물로 바닥을 긁어 잡아들이는 까닭에 바다의 생태계가 무너진다. 그렇게 황폐해진 바다가 다시 살아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건만 잘 사는 나라의 어선들은 거침이 없다. 바다는 사람이 버리는 온갖 쓰레기가 모여들어 썩어가는 공간이 되었다. 썩지 않는 쓰레기는 더 많다. 풍요롭던 세계적 어장이 물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게 변한 곳이 꽤 많고, 면적은 점점 늘어나기만 한다.


갯벌과 같이 넓은 조간대는 바다 생물의 오랜 터전이자 산란장이지만 많은 조간대는 매립되어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갯벌은 물론이고 남아시아의 드넓은 맹그로브 해안도 새우 양식을 위해 벌채돼 사라졌다. 그 양식장에 뿌리는 항생제는 해양 생태계를 한동안 마비시킨다. 그렇게 창조세계는 오그라든다. 다채로운 생물이 어우러지던 창조세계의 청지기를 자처하는 사람에 의해 본래의 모습은 망가지고 말았다. 망극할 따름인데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젠 그 바다와 땅에 방사능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은 창조세계를 비참하게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우리는 명태나 방어와 같은 일본산 수산물을 먹지말자고 다짐하지만, 사람이 먹을 수산물만 줄어든 게 아니다. 수산물도 창조세계의 생명이다. 유전자를 가진 그들도 먹어야 산다. 생겨났을 때 많았던 방사능이 지구의 표면에서 거의 줄어들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수많은 생물종은 살아갈 터전을 그만큼 잃었다. 터전만 줄어든 게 아니다. 방사능이 유전자를 파괴하면서 자손을 낳아 기를 기회가 줄어들었다. 살아갈 시간마저 오그라들고 말았다.


해외에서 수입한 농작물이 아직 많아서 그랬는지, 우리의 올 추석상도 여전히 풍성했다. 우리처럼 잘 사는 다른 나라의 추수감사절 사정도 비슷했을 텐데, 언제까지 이런 풍요로움이 지속될 수 있을까. 자연의 이웃을 몰아내고 얻는 풍요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제 자신의 터전까지 오염시키다 파괴하고 독극물에 방사능까지 내뿜는 사람은 이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연의 절박한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반성하고 창조세계 보전을 위해 탐욕을 걷어야 한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야곱의우물, 201311월호)

일본 원전사태로 국내 원전사고가 조명되니 우리가 화약고를 끌어안고 살고있었음을 알게되네요. 미래를 생각할 때 원전은 위험 부담이 너무나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