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7. 8. 22:22

 

우리나라는 편서풍 지대다. 인천은 편서풍을 가장 먼저 받는다.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서해안의 섬들을 지나 인천을 거쳐 수도권을 넘어 태평양을 향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기 오염물질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온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황사와 미세먼지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편에 미세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굴뚝이 있다면 그 역시 육지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영흥도가 그렇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32킬로미터 떨어진 영흥도에는 시방 80만 킬로와트가 훌쩍 넘는 화력발전소 2기가 완공을 얼마 남기지 않고 열심히 세워지고 있다. 5호기와 6호기다. 원래 1호기와 2호기만 석탄화력으로 짓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 인천시와 합의를 거쳐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지키지 않아도 아무 탈이 없는 제도를 진작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데, 영흥도에 화력발전소를 짓는 주체인 남동화력주식회사는 7호기와 8호기도 석탄 연료로 추진하는 중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면 인천시민의 저항 정도는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국가 권력이 뒷받침할 거라 믿는다. 실제 그리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세우는 이유는 있다. 연료가격이 해마다 1조원 이상의 차이가 있고 액화천연가스 하역 부두를 만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남동화력주식회사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인천이 희생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데 연료비 1조원 아낀 대신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대량 발생으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제아무리 우수한 저감시설을 고장 없이 가동해도 황과 질소산화물이 추가로 발생시켜 인천시를 비롯한 주변 지역에 확산된다는 건 부정하지 못한다. 그로 인한 건강피해는 원가에 당연히 포함시키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온실가스 절감은 지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에 전가된다는 것도 부정하지 못한다.


터빈을 돌린 고온 고압의 증류수를 식히는 온배수가 석탄화력 1기 당 1초에 1톤씩 쏟아져 나온다. 장차 현재 4기보다 두 배가 많이 배출되는 온배수로 인한 인천 앞바다의 해양 생태계는 얼마나 파괴될 것인가. 어획고는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어민들의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아무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강행하고 있다. 그 피해는 원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액화천연가스를 사용해도 온배수는 발생하지만 석탄의 절반에 그친다. 황산화물과 먼지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산화탄소 발생량도 절반에 그친다. 어떤 연료가 진정 경제적일까.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므로 지을 뿐이다. 영흥도에.


처음부터, 계획이 발표될 때부터, 아니 은근히 추진하려 할 때부터, 시민단체와 독립 전문가들이 타당성이 없다는 점을 누차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건만, 하고 싶은 대로 공사를 밀어붙인 사업은 영흥화력발전소에서 그치지 않는다. 권력을 등에 업고 사업을 뜻대로 진행한 듯 보이지만, 장차 파국을 맞을 게 분명한 사업으로 아라뱃길로 명칭을 마사지한 경인운하를 들 수 있다. 온실가스 규제가 수출입 상품에 적용될 때 국내 최대 규모를 고집하는 남동화력은 국내외 지탄을 면할 수 없을 텐데, 경인운하는 이미 파국이다. 애초 예측한 물동량의 1퍼센트도 실제 취급하지 못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당장 시민에게 피부로 다가오지 않지만, 결국 나타날 수밖에 없다.


수돗물 가격 인상은 결코 없을 거라도 장담 또 장담하며 4대강 사업 공사를 강행한 수자원공사는 슬며시 수돗물의 원수 가격을 올리려 든다. 아마 정부는 올려줄 것이다. 권력을 비호하는 정부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 어디 한두 번이었나. 처음부터 수돗물 원수 가격을 올릴 것을 예정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를 속인 건데, 4대강 사업 역시 머지않아 파국을 맞을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흉흉하게 드러나는 징후가 그런 내일을 예견한다. 수자원공사는 자신을 비호하는 권력이 있으므로 당분간 조직을 유지할 테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권력은 언제나 무상했다. 분노한 주권자들에 의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4대강 사업 역시 온갖 거짓말로 사업을 강행했다. 애초 시민사회에서 누차 제기한 문제가 결국 드러나지만 감언이설로 밀어붙였다.


핵발전소, 핵폐기장, 송전탑 모두 마찬가지다. 대형 다목적댐도 그렇다. 대규모 매립사업인 새만금은 아니 그런가. 한 줌 세력의 탐욕을 위해 권력과 손발을 맞춰 제도를 제 멋대로 만들고 사업을 강행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거짓말로 응대하면서 때때로 공권력을 동원해 반대 목소리를 억압했다. 그러다 파국을 만날 때면 새로운 변명과 거짓으로 모면하려 발버둥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국전력공사, 수자원공사, 토지주택공사가 그랬다. 그 상층부 권력기관이 그랬다. 탐욕을 위해 민중에 폭력을 일삼고 권력층에 아부하는 그들에게 신뢰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자식 몸과 맘 건강하게 키우려는 시민들은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데, 그들은 주권자인 시민사회의 신뢰 잃었다는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


정보와 통계를 독점하며 왜곡해 편집하고, 공권력과 언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므로 자신의 권력이 무한하리라 믿는다면 큰 오산이다. 그런 예는 동서고금 어떤 역사에도 없다. 신뢰를 잃은 권력은 뿌리를 잃은 것이다. 뿌리를 잃은 권력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압제를 일삼던 공권력이 외면하자마자 힘을 잃는다. 밝은 햇살을 받으면 순식간 사라질 신기루거나 한 차례의 바람으로 날아갈 먼지일 뿐이다. 회전문처럼 돌아가는 자신들의 리그에 갇혀 안하무인격으로 시민사회의 신뢰를 마냥 저버린다면 그들의 내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가 뚜렷하게 웅변하는 사실이 그렇다.


아직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은 정권에 아부하는 권력의 문제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지만, 결국 눈코와 귀와 피부를 가졌다. 고개를 돌리고 말 것이다. 신뢰를 잃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남은 건 파국이다. 아직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다고, 돌이킬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신뢰를 잃었는지 어서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사죄하고 서둘러 돌이켜야 한다. 비참한 파국을 면하려면 그 길 뿐인데, 아직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으니 안타깝다. 대통령도 지난 624, “공공기관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정도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지금여기, 2013.7.8., “신뢰 잃은 권력, 반드시 망한다로 변경)

 
 
 

자원·에너지

디딤돌 2005. 11. 8. 01:02
 

원전센터로 분칠한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선정 주민투표의 결과가 나온 지난 11월 2일, 유력한 신문의 독자투고란에는 비슷한 주장이 일제히 실렸다. 투고자는 대부분 전력관련자들로 ‘투표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기본자세’라는 요지도 한결같았다. 원전센터를 황색도 아니고 ‘녹색병원’이라고 전날까지 요란하게 시간을 도배했던 텔레비전 광고는 거의 최면술이었다. 찬성 투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방사성폐기물처분장과 관련이 없는 지역 주민들도 동사무소에 가서 찬성으로 투표할 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녹색병원 건설에 찬성한다면 발전기금 3천억 원을 준다고 말해보자.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 들어서면 동네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방사능에 오염될지 모른다며, 3천억 원도 인구수로 나누면 일인 당 백만 원에 불과한데 몇 년에 걸쳐 당신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지불한다고 이야기한다면,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찬성할까.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을 짓고 싶은 이는 어차피 한 군데는 확정될 수밖에 없었던 이번 주민투표의 결과를 승복하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을 억압할 수 없는 한 갈등은 남을 것이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 다수결이라고 말하지만 그리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수결로 결정하자는 합의를 전제해야한다. 녹색병원으로 지독하게 분칠한 이번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선정에는 납득할만한 합의 절차가 없었다.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공급자가 주민들에게 찬성을 강권했을 뿐이다.


이해당사자가 많다면 다수결 실시를 위한 사전 합의과정은 길고 지루할 것이다. 하지만 존중해야 한다. 시간을 줄이려면 심의민주주의를 선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대리할 수 있는 시민패널을 관심 있는 주민들 가운데 불편부당하게 선발하고, 그들이 깊이 숙고하며 민주적으로 도출한 의견을 정책결정자들이 존중하도록 이끄는 제도를 말한다. 작년 시민과학센터는 원자력 위주로 구성된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합의회의’라는 심의민주주의로 물은 적 있다.


1998년 한국유네스코위원회에서 개최한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합의회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했다. 과학 지식이 일천한 시민패널도 충분히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전자조작식품의 안전성과 위험성을 주장하는 양측 전문가들의 토론과 주장, 그들에 제공하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시민패널은 이윤에 눈먼 공급자가 아니라 자식을 키우는 소비자이기 때문이었다.


작년 합의회의에서 도출된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정책결정자와 공급자의 눈부신 찬성투표 유도로 결국 역사의 고도인 경주에 방사성핵폐기물처분장을 들어서게 됐다. 가라앉지 못한 갈등은 앞으로 과정마다 속출할 것이다. 다수결에 앞선 민주적 합의가 배제된 까닭이다. 관권과 금권의 승리를 챙긴 공급자는 신뢰할만할까. 아이가 경주로 수학여행 간다면 나는 교장실로 전화해서라도 말릴 것이다. 숫한 경험을 미루어, 시민 무서워 않는 행정이 핵폐기물 운송을 철저하게 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이공대신문, 200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