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5. 9. 1. 14:44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지음, 류시화 옮김, 보리 2000년.



이 시잔, 미국보다 우리나라에 더 잘 알려진 스콧 니어링은 사회주의자다. 자본주의 종주국의 대도시에서 소신을 펼치려 몸부림치다 실패한 사회주의자가 갈 곳은 어디였을까. 다른 나라로 도피하지 않았다. 사회 구성원으로써 맺은 약속이 있다고 믿기에 혹독히 경원되어도 남아야했다. 도시에서 행복한 공동체를 펼칠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대안은 시골이었다.

 

경제 불황이 한창인 1932년, 화폐경제에 의존하는 도시를 탈출한 초로의 스콧 니어링은 20세 연하인 동료 헬렌과 버몬트의 버려진 숲으로 들어간다. 검약한 생활과 농사 그리고 약간의 돈으로 독립된 경제를 꾀했다. 노동시간을 반으로 줄이고 남은 시간은 느긋하게 책 읽고 글 쓰며, 여행과 강연하고 대화하는 단순한 삶을 느리게 영위했다. 스키장 개설로 관광객이 몰리자 메인주 시골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20년 동안 펼쳤던 그들의 삶을 니어링 부부는 《조화로운 삶》으로 알렸고, 지금 이 시간,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난 스콧 니어링은 사회주의보다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퍼뜨리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다.

 

사람은 물론 짐승 착취도 반대하는 만큼, 집도 직접 짓고 가축을 키우지도 먹지도 않는 채식주의를 고집하는 한편, 먹을거리를 화학비료는 물론 짐승들의 똥오줌까지 피하는 유기농법으로 재배했다.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과 진지하게 대화하고서, 경험 없는 초보자라도 “건강을 지키고, 해롭지 않으며, 자기를 잃지 않는 경제를 일궈나가”는 《조화로운 삶》을 안내했다.

 

조화롭다는 뜻은 도대체 무엇일까. “불황과 실업의 늪에 빠져서 파시즘의 먹이가 되어 버린 사회”를 떠나 시골로 가니 희망이 있었다고 니어링 부부는 밝히고 있지만, 사람의 의지로 선별 재배하는 유기농업은 자연에 대한 착취가 아니고, 극히 일부 사람만이 자급자족한다고 사회와 생태계는 조화로울 수 있을까. 결국 《조화로운 삶》은 상대적인 개념일 수밖에 없다. 도시에 비해 시골이, 다른 사람에 비해 니어링 부부가 그렇다는 의미일 것이다.

 

니어링 부부가 실천한 《조화로운 삶》이 출판된 지 반세기,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었겠지만 생산력주의라는 파시즘은 기승을 더한다. 50년 전, 미국에 비해 훨씬 조화로웠던 우리도 생산력주의에 찌들고 말았다. 남의 돈을 빌려 ‘총․균․쇠’를 거듭 장만한지 30년, 급기야 아이엠에프라는 환난을 자초하기까지 했던 우리는 돈을 더 빌려 환란을 해결했는데 우리가 선택한 생산력주의는 조화로운 내일을 약속할까.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요약되는 생산력주의가 ‘어두운 승리’를 외칠 때, 생태주의자들은 외친다. 생산력주의가 패배자를 양산할수록 자급자족 가치는 빛나는 법. 생산력주의에 낙오되고야 얻은 깨달음으로 조화로운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도 요즘 부쩍 늘었다. 다행이다. 니어링 부부는 원칙을 만족시키며 이웃과 더불어 조화로울 수 있었던 삶보다 문명의 달콤함을 외면할 수 없어 결박당한 채 살아가는 이들을 ‘조화로운 삶’으로 안내하지 못한 한계를 안타까워한다.

 

생산력주의에 오염된 농촌조차 조화로움을 찾기 어려운 현실에서 《조화로운 삶》은 독자에게 호소한다. ‘조화로운 삶’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발간 예정 서평집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