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7. 23. 07:24

    바다로 나간 쓰레기들

 

사람은 아가미가 없다. 따라서 물속에서 살 수 없다. 물속에 들어가려면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장비가 고장나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래서 여간하면 물속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사람은 날개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키 이상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위험하다. 2층 이상 높은 집은 바닥으로 식구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지어야 한다.


장비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동물들은 자신의 집을 위험한 곳에 짓지 않는다. 날개가 있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아가미가 있는 물고기들은 물속에서 자유롭지만 물 밖으로 나가려하지 않는다. 물속과 물 밖을 자유자제로 돌아다닐 수 있는 양서류는 피부가 축축해야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멕시코 원주민은 개구리를 신격화했다. 개구리가 보이는 곳에 물이 있을 테니 옥수수 재배가 가능하다. 멕시코에서 개구리는 사람의 생존을 보장하는 동물이었다. 양수기가 도입되기 전까지.


과학기술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곳에 집을 짓고 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주택의 등장으로 인구를 늘렸지만 새들은 그 때문에 하늘을 빼앗겼다. 유리로 만든 건물에 부딪혀 죽는 새들은 자신의 경험에 없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자신의 속도를 몹시 추월하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생활권을 늘린 사람들은 동물들의 생활권을 크게 줄었다. 결을 무시하고 산을 뜯고 강을 막는 아스팔트 도로는 건너려다 치어 죽는 동물을 크게 늘렸다.


미꾸라지는 모기의 유충인 장구벌레를 잘 잡아먹는다. 그렇다고 장구벌레를 제 목숨을 내놓고 먹어치우려 들 것 같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가 높은 농도로 가라앉은 지하의 밀폐된 장소에 들어갔다 목숨을 어이없게 잃기도 하는 사람은 희한하다. 묻지도 않고 미꾸라지들을 정화조에 털어 넣는다. 뚜껑까지 닫는다. 사람의 배설물이 썩어가는 정화조에 고인 물에 장구벌레가 많지만 미꾸라지에게 쾌적할 정도의 산소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화조에 들어간 미꾸라지들, 과연 장구벌레를 먹어치우며 잘 살까. 그 동네의 모기는 좀 줄었을까. 사람들은 미꾸라지에 애도 표한 적이 전혀 없다.


탄광에 산소가 충분한지 먼저 들어갔다 희생되던 카나리아의 대안을 비행기를 띄우는 사람이 찾지 못할 리 없다. 지금은 탄광은 카나리아를 쓰지 않을 것이다. 물이 오염되었는지 금붕어에게 물을 필요 없다. 간단하지만 정확하고 가격 저렴한 장비가 많지 않은가. 한데 새로 개발한 화장품이나 유기화학제품, 그리고 의약품이 사람에게 안전한지 여부는 아직도 생쥐가 1차 책임을 진다. 사람의 질병에 걸려 물려받은 수명보다 훨씬 일찍 죽는 생쥐의 수는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사람들이 쥐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아는 것과 무관하게 사람의 질병은 늘어나기만 한다.


<노 임팩트 맨>에서 저자는 해마다 세계적으로 버리는 비닐봉지가 5조 개에 이른다고 했다. 70억의 인구가 대략 700, 하루에 두 개 정도 버리는 셈이다. 대부분 잘 사는 나라에서 버릴 것이다. 영국의 언론 BBC는 세탁기로 옷 한 벌 빨면 1900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떨어져나가 바다로 들어간다고 보도했다. 많은 옷은 인조견, 다시 말해 석유를 가공한 섬유로 만들었다. 거의 분해되지 않는 섬유의 아주 작은 조각들이 세탁기에서 바다 생물의 소화기관이나 호흡기관에 끼었다 사람의 몸으로 들어갈 것이다. 소각되는 비닐봉투는 사람의 호흡기를 공격한다. 물론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은 동물의 호흡기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혼획되는 밍크고래는 우리보다 해안선이 서너 배 긴 일본보다 그 수가 많다. 혼획은 용도가 다른 그물에 우연히 걸리는 경우를 말한다. 꽁치 그물에 걸린 밍크고래는 꽁치를 먹으려다 걸려들었는지 모르는데, 그 불행한 밍크고래는 바다의 로또. 마리 당 수천 만 원에 달한다는데, 다른 나라는 밍크고래가 실수로 걸렸어도 빠져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 꽁치도 마찬가지일 테지만, 그물에 걸려든 밍크고래는 얼마나 황당할까. 사람처럼 손이 있다면 간단히 제쳐서 빠져나갈 텐데, 자신의 경험 세계에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버둥거리다 죽어갔을 것이다.


여름이다. 섬으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뱃전에 삼삼오오 앉아 시원한 캔맥주 하나 씩 들고 이야기 나누는 그림, 생각만 해도 즐겁다. 여객선에 맥주가 빠지면 섭섭할 텐데, 여섯 개 씩 비닐 고리에 묶인 캔맥주를 마시고 남는 캔과 비닐 고리는 쓰레기통에 분리해서 넣으면 되는데, 비닐 고리를 호기 있게 바다로 던진다. 한데 바다에 떠다니는 비닐 과자봉투와 캔맥주 고리는 경험이 부족한 해양생물의 눈에 자칫 해파리나 먹잇감으로 보인다. 손이 없으니 제거하지 못하는 거북의 등은 자라면서 오그라들고 물개는 주둥이를 크게 벌리지 못해 굶주리게 된다. 비닐이 가득해 헛배가 부른 바다 생명들은 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파라솔이 아름다운 해변의 쓰레기도 조수를 따라 바다로 흘러든다. 바다로 나간 쓰레기는 세탁기의 미세 플라스틱처럼 결국 사람에게 되돌아갈 테지만, 바다는 당장 괴롭다. (야곱의우물, 20128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6. 11. 23:43

 

서울시 종로에는 ‘피맛골’이라 말하는 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아니, 길게 이어졌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는 아주 오랜 골목으로, 양반네들이 말을 타고 지날 때마다 고개를 조아리기 싫거나 귀찮은 백성들이 말을 피해 다녔다는 의미를 담은 피맛골에는 부담 없는 비용으로 밥 먹고 술잔 기울이려는 시민들이 즐겨 찾곤 했다. 이제 피맛골은 일대를 차지하려는 거대한 건물에 밀려 역사 너머로 사라지려고 한다. 어떤 건물은 1층 홀에 ‘피맛골’로 이름붙인 식당가를 단장하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보다 피맛골의 단골손님을 대신 보전하고 싶었으리라.

 

피맛골엔 구운 고등어와 조기와 생선과 꽁치가 손님상에 올라가는 식당이 서너 군데 있었다. 그 중 도톰한 몸통의 한가운데를 잘라 1인분으로 머리나 꼬리 부위를 내놓는 삼치가 별미였는데 언젠가부터 삼치구이 주문하기가 민망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알조차 낳은 적 없는 어린 생선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어린 만큼 고기가 부드럽다지만 좀 지나쳤다. 참치처럼 냉동과 해동을 잘 하면 덩치가 큰 삼치도 얼마든지 부드럽게 요리할 수 있을 테니 지금보다 훨씬 성긴 그물코로 잡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설을 갖추려면 비용이 다소 늘어날 거고, 벌이가 줄겠지만 식당마다 내놓는 생선의 양을 줄이면 밥값은 올리지 않아도 될 텐데.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주머니가 허약한 대학생이 즐겨 찾던 삼치집이 동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있었다. 가끔 들리는 운동권 학생을 잡으려 형사들도 기웃거렸던 그 집은 석쇠에 삼치를 한 뼘 가깝게 펼쳐 구웠는데, 장정 서넛이 거뜬히 먹을 만했다. 단단한 뼈를 골라내야하는 번거로움은 술기운을 조절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형사가 기웃거릴 때마다 운동권 학생들을 숨겨주었다는 그 삼치집 아주머니는 1인당 소주는 한 병, 막걸리는 한 되 이상을 팔지 않는 신조를 지켰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손님은 절대 받지 않았던 그 집,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다시 찾고 싶지만 어린 삼치를 보게 될까 두려워 선뜻 발이 가지 않는다.

 

우주센터로 갑자기 유명해진 나로도는 예전에 나라의 말을 키웠던 섬이다. 그래서 ‘나라의 섬’으로 불렀다던 나로도는 얼마 전까지 삼치로 유명했다. 잡힌 삼치를 모두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 개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너스레떠는 주민들은 1년생보다 2년이 지나 몸이 50에서 70센티미터로 자란 삼치가 가장 맛이 좋고 잡자마자 얼음에 재운 회가 특히 일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 삼치는 나로도에 가야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삼치란 생선은 그물은 물론이고 낚시로 끌어올려도 올라오자마자 죽으니 육지로 살려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일본에 수출하던 삼치가 1980년 이후 동인천역과 피맛골의 생선구이 식당에 선보인 건 아무래도 냉동기술 덕분일 테지.

 

그런데 아닌가. 요즘 웬만한 횟집 출입구 양편의 수족관에는 삼치가 느긋하게 살아 숨 쉰다. 바닷물 째 떠서 잡아왔을 리 없는데, 어떻게 살려온 걸까. 물속에 부지런히 공기를 불어넣는 걸로 부족할 테고 적지 않은 항생제를 투입했을 텐데 그 수족관에 삼치만 살아있는 건 아니다. 농어와 광어, 우럭과 숭어도 섞여 아가미를 맥없이 여닫는데 하나 같이 동작이 둔하고 눈매에 생기가 없다. 수족관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먹이는 구경할 수 없었을 게다. 사람과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고스란히 노출돼 겁에 질린 채 굶주리며 항생제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물고기들. 과연 신선할까.

 

억지로 살려 도시의 수족관으로 옮겨지는 생선은 삼치뿐이 아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도 가을이 되면 도시의 수족관마다 북적이는데 반은 뒤집혀 있다. 차고 깨끗한 물을 재아무리 빨리 순환시켜도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던 물고기에게 좁디좁은 수족관은 지옥일 게 뻔한데, 굳이 ‘활어회’를 위한 수족관을 고집해야 할까. 억지로 살린 생선보다 잘 얼린 생선이 더 신선하지 않을까. 생선회의 상태에 매우 민감해 하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잘 얼렸다 녹인 생선의 ‘선어회’가 압도적으로 많다. 높아지는 항생제 내성을 걱정하는 우리도 선어회로 취향을 바꾸면 어떨까.

 

활어회냐 선어회냐에 대한 논의는 오로지 사람의 취향이 기준이다. 입맛이나 안전성이 잣대가 되겠지만 해양 생태 자원의 보전을 생각하자면 지나치게 어린 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조기처럼, 우리 앞바다에서 삼치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1960년대에 만해도 인천시민들이 지겨워했던 갈치는 요즘 제주도 바다에서 잡아오는데, 머지않아 차례상에 올라가는 조기처럼 원양에서 잡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도 큼직한 갈치는 대개 원양에서 잡는다. 삼치는 아직 나로도에서 잡지만 예전 같지 않다. 우주센터로 사람들의 관심이 바뀐 나로도를 언제까지 지켜줄지, 삼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절대 씨앗을 먹지 않던 농부들이 기업에서 씨앗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어부까지 어린 생선을 싹 쓸어 잡는데, 문제는 위성으로 어군을 탐지하는 대형 선단이다. 그들의 남획은 내일의 바다를 텅 비게 만들지 모른다.

 

우리나라 문어통발은 얼마나 크기에 밍크고래가 걸려드는 들까. 새우통발과 까나리 그물도 심심치 않게 밍크고래와 향고래를 걸려들게 한다니 고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고래잡이는 분명한 불법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물에 걸려든, 이른바 혼획된 고래에 한해 판매가 허용된다. 그래서 혼획된 고래는 로또나 다름없다고 말하는데, 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혼획 고래가 많은 걸까. 그물이나 통발을 일부러 촘촘하게 설치하는 건 아닐까. 어부들은 고래가 꽁치그물을 터뜨린다고 하소연하지만 고래가 사라진다고 잡히는 꽁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바다의 풍요로움은 고래와 꽁치와 문어와 까나리가 공존할 때 유지된다. 사람은 그 덕분에 그물을 내릴 수 있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기농산물 식품매장에 진열된 생선은 유기사료를 먹여 양식한 물고기가 아니다. 유기농산물 시장에는 남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거나 지나치게 어린 생선은 제외시킨다. 내일을 생각한 어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되고 농번기가 필요 없었던 바다의 풍요로움은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근해는 물론이고 연해의 어족자원이 전에 없이 드물어진 요즘, 원양어업마저 시들어들까 걱정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6월 ?일)

느티나무집이었던가요? 매일 정해진 양의 삼치만 팔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