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6. 3. 23. 10:48
 

  오늘 신문을 보니까 돼지 한 마리가 3억 원이라고 합니다. 그 돼지의 오줌과 젖으로 의약품을 만들어내면 3억 5천 달러 부가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1998년에 흑염소 '메디'가 탄생하여 18마리만 있으면 전 세계 조혈소 수요량을 충족시킨다고 했는데, 그 흑염소는 아직 살아있을까요? 이미 죽었습니다. 1998년에 보람이라는 젖소를 개발하면서, 모유 성분을 가진 우유를 만들어낸다면 200억 달러를 보상해 준다고 했는데...

 

비뇨기과 의사한테 들은 애긴데, 70먹은 노인이 발기가 안 된다고 찾아온대요. 이제 10년만 지나면 20대 부럽지 않은 발기 유전자가 개발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이 사회는 행복할까요? 누가 발기 안 되는 70대 노인을 발기부전환자라고 규정할까요? 내 몸을 의사가 알아서 어떻게 해 줄 거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의사가 "모르겠다."면 더 불안해지지요. 우리 중 누구라도 병원에 가면 당장 환자가 돼요. 아기는 산부인과에 가서 낳자마자 환자 취급을 받습니다. 이빨 바꾸는 아이도 환자로 규정됩니다.

 

영등포역 대합실에서 모니터 광고를 보니 우리나라 전력생산량의 50%는 원자력이라고 합니다. '전기가 모자라다'는 강박관념을 한국전력이 하도 깊게 박아놓아서 그렇지 우리가 전기 부족 국가일까요. 모자라다면 다 모자란 줄 알아야 할까요.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케빈은 온 집안의 불을 다 밝히죠. 미국사회가 전기 쓰는 것 보면 대단합니다. 그런 기준으로 우린 전기가 분명히 모자랍니다. 하지만 모자란다는 규정을 누가해야 할까요. 공급자일까요. 그들은 모자라므로 발전소를 또 짓는다는 계획을 그들 멋대로 작성합니다. 그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 인물 취급을 받습니다.

 

'지역이기주의'는 나쁘다고 배웠는데 여러분은 그런 상식을 깨세요. 지역이기주의자라고 상대에게 못 박으며 반사이익 챙기려는 세력이 내세우는 논리에 불과합니다. 지역이기주의는 내 지역에 대한 애정이 발판이 되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게 하고 지역의 개성과 자존심이 살아있게 됩니다. 개성, 즉 '나는 나'라고 생각하면 그들은 장사가 안 돼요. 문화가 다양하면 장사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연예인 만들고 그들을 통해 유행 만들어 자신들의 상품이 획일적으로 팔려야 장사가 됩니다.

 

생명공학이 특히 그렇습니다. 황금쌀, 소한테 딸기유전자를 넣어 딸기우유를 생산 판매하려는 마음, 닭다리가 인기가 있으니까 닭에다 개 유전자를 넣어 닭이 개처럼 뛰어다니게 하려는 생각, 어깨살이 부풀게 만들려고 돼지에 닭유전자를 넣는 일들은 과학자들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봉사하는 생명공학이란 얘기지요. 털 없는 닭을 만들어 자동으로 처리하면 치킨 값이 싸야하는데 전혀 아니죠. 자본만 배불릴 따름입니다.

 

'세계가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는 당연히 하는 것, 예를 들어, 컴퓨터와 전화는 물론, 심지어 세끼 밥도 못 먹는 사람이 8억 명이나 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퓰리처상에서 1등을 받은 사진인데요. 깡마른 흑인 아이가 밥풀 몇 개 붙이고 죽을 듯 쪼그리고 앉아있고, 그 뒤에서 독수리 한마리가 쓰러지길 기다리는 사진인데요. 그 사진을 찍은 기자는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었겠지만, 자살 했어요. 그 사진이 많은 사람들 심금을 울려 아프리카 난민 돕는 자금이 많이 생겼지만 아프리카가 이후 행복해졌을까요?

 

원래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으로 자급하는 일은 돈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서구 합리주의 사고방식으로 그들이 던져놓은 아프리카의 고통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당장 카메라를 집어던지고 굶주리는 아이를 구호소로 데려 갔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그 사진작가는 괴로워하다 자살했다고 합니다. 병든 사람을 더 병들게 내버려두고, 내가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 더 불행해지도록 방관하는 행태를 서구는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미국에는 어마어마한 식량이 남아도는데도 굶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식량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누가 하는 말일까요? 농약과 화학비료 개발한 자본의 논리입니다. 녹색혁명이라며 돈벌이 궁리에 혈안이 된 사람들의 가증스런 논리라는 말입니다. 식량이 남아돌아도 그들이 부족하다고 규정하면 식량이 부족하게 되는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생명공학으로 불치병과 난치병, 그리고 각종 암을 모조리 치료해준다고 합니다. 생명공학 없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억울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어떨까요. 그런 미래가 보통 사람들에게 과연 다가올까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무하마드 알리 있죠? 파킨슨씨병이라는 치명적 질환, 뇌 충격을 받아 세표가 죽어가는 병인데, 우리나라 언론 역사에서 존경받아야 할 송건호 선생님도 군사독재 정권의 고문 후유증으로 그 병에 걸렸지만 돌아가셨고 프로권투선수 출신 알리는 치료를 받다 어느 정도 회복되었습니다. 부작용 없는 아이 셋을 동시에 낙태시켜 두개골을 연 후 알리의 머리에 낙태된 아이들의 뇌 신경세포를 넣는 방식으로 치료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법은 계속 추천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끔찍합니다.

 

배아를 복제하여 희생시키는 생명공학이 치료를 대신하겠다고 나섭니다. 하지만 어떨까요. 교통사고나 환경파괴로 인해 양산되는 불치병 난치병과 같이 환자와 그 가족을 불행하게 만드는 많은 병은 상당수 예방 가능하거나 생명공학으로도 현재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생명공학이 치료해줄 것처럼 광고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와 그 가족들은 기대에 부풉니다. 하지만 생명공학이 여성과 후손의 생명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합니다. 배아복제를 위한 난자 채취는 여성의 몸에 약물을 과다주입하고 특별한 장치로 뽑아내야 하는 위험하고 무책임한 기술입니다. 여성을 난자 생산 기계로 보는 거죠. 나를 치료하자고 후손의 생명을 해치는 일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사회적인 질병은 사실상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속의 질병입니다. 우리 질병이 마음속에 있는 한 앞을 생명공학은 치료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심화시킬 것입니다. 예측하기 어려울 위험사회를 심각하게 드러내게 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의 극복 사례를 봅시다. 유럽에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 없습니다. 그네들도 자본은 식품과 사람과 동물들을 대상으로 연구는 하지만 시장에는 절대 상품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강력한 소비자들, 즉 시민운동 때문입니다. 네스레 식품을 비롯한 다국적 기업들도 처음에는 유전자 조작 식품을 버젓이 팔고 있었습니다. 시민운동 단체에서 문제제기를 하니까 오리발 내밀려던 생각을 고친 다국적기업은 자신들의 (의도적인)실수를 시인하고 유전자 조작 콩, 옥수수 들어간 제품을 회수해서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아시아로 팔았죠. 프링글즈라는 감자스낵 기억하시죠? 그들은 광고를 통해 기호를 만듭니다. 덕분에 이 당의 젊은이들이 기호를 좇아 굴복했습니다. 유통기한 넘긴 과자를 수입해 그 상품을 빨리 소비하기 위한 광고전략을 쓴 것인데 그 프링글즈, 유전자 조작입니다. 지하철에서, 여고생들이 그걸 먹기에, 그거 미국산 유전자 조작이라고 말해줬더니 "아저씨나 먹지마세요."그럽디다. 사실 아이들 다 낳은 나는 먹어도 돼요. 그렇지만 젊디젊은 여러분들이나 그 아이들은 먹으면 안 돼요.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시민운동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할 수 있을 겁니다. 시민운동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며 바꿔가야 합니다. 불치병과 난치병은 역설적으로 병원에 가지 않으면 다 나아요. 불안감을 조성해서 병원에 의존하면서 병이 생기게 되었다는 거, 이반 일리치라는 분은 일찌감치 눈치 챘습니다. 그는 고통이 심한 암을 가지고 있었는데 수술은커녕 진료조차 거부했습니다. 76세이던 재작년 말, 다음날 발표할 논문을 검토하다 주무시듯 돌아가셨습니다. 병원에 안 간 그는 암과 친구처럼 지냈데요. 생명연장이 치료는 아니지요. 돌아가신 후 그분 주변에 그분을 기리던 사람들이 3천명이나 모였답니다. 비록 병든 사회지만 적어도 3천명 이상은 살아있다는 애기겠지요.

 

여러분은 살아있는 사람이 되세요. 남들이 뭐라 해도 개성 있게 풀무의 독특한 일원으로 산다는 생각으로 자신만만하게 사세요. 돈,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죠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한다는 뜻이겠지요. 집에 텔레비전을 없애면 식구들은 서로 얼굴을 보게 돼요. 자동차와 방마다 들여놓은 텔레비전 때문에 하루 3시간 이상 일을 더해야 하는 생활보다 가족과 얼굴 마주보며 서로 이해하는 삶에 마을을 더 썼으면 좋겠어요. 그게 가난이라면, 스스로 당당하게, 기쁘게 가난해지면 부자가 행복하다는 공급자가 만든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힘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04년,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