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5. 29. 00:50

     여진구. 이 조용한 아침에, 당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듣고 있겠지요? 그렇게 많은 비전을 이야기한 당신이 행동하려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목사 안수를 받고 선배 목사의 강론을 들었을 때, 가난한 신도에게 교회의 건축헌금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여진구는 미친 듯 넝마주의를 했고, 이어 환경운동판으로 투신했다고 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파주의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생태계를 해치는 골프장의 문제를 조사하는 자리였습니다.


     당신이 한 일, 참 많군요. 인제군과 지리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군사훈련장과 양수 발전소의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에 늘 있었습니다. 놀이터가 되는 국립공원을 살리려 동분서주했고 도시에 자연의 숨결을 불어넣는 일에 몰두했지요. 이후 생태보전시민모임을 만들어 열악한 생태계 보전운동에 투신했고 아파트로 사라질 서울의 녹지와 습지 여럿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은 지금 뿌리를 단단히 내렸습니다.


     이윽고 부평으로 오셨군요. 삭막해보이는 부평을 자연의 숨결이 깃든 생태도시로 가꾸는데 정열을 쏟기 시작했어요. 행동이 서툰 시민을 격려하고 갈피 잡지 못하는 공직자들을 다독이며 많은 아이디어와 실천 사례를 가슴 벅차게 보여주었지요. 의사의 경고를 거듭 무시하며 솔선수범하는 행동을 즐겁게 보여주었습니다.


     비전기획단장의 확신에 찬 방향 제시와 행동으로 이제 몇 걸음을 떼었는데, 우리는 그만 비보를 들었습니다. 펼쳐놓은 희망을 하나하나 실천하려던 사람들은 홀연히, 너무도 빨리 떠난 당신을 잃고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만든 비전을 기억하기에, 어디로 한발 한발 내딛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를 기쁜 마음으로 받습니다. 당신은 방금 이쪽 항구를 떠났지만 저쪽 항구에서 환영합니다. 부디 그 항구에서 편안하기를, 여기에 남은 우리를 격려하기를 부탁합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한겨레, 2014.5.28.)

 
 
 

서평·추억

디딤돌 2008. 3. 12. 01:19
 

주어진 시간과 장소. 생태조사자는 대체로 그 조건을 따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굴지의 법인이 추진하는 골프장 예정 지역이었다. 주민들의 반대가 첨예한 현장에서 실시된 생태조사에서 나는 놀랬다. 1990년대 초, 그때에도 보기 드물었던 꼬리치레도롱뇽이 작은 돌을 들출 때마다 실개천에서 무리지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골프장 예정지를 안내한 주민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조사 결과를 넘겼으므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

 

반대운동을 위한 생태조사는 어색했다. 운동판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허둥거리는 경찰 사이에서 괭가리를 치며 거리행진을 벌이는 주민을 감당해 하기 어려웠다. 꼬리치레도롱뇽의 출현으로 보아 보전가치가 충분하다는 결론을 제공하고 당연히 돌아서려는데, 식물생태를 담당한 교수는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함께 조사하자고 제안했던 식물생태 전공의 교수는 고교 선배였다. 생태계 보전을 위해 애쓰던 그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권했고, 나는 엉거주춤 주저앉았다.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었다. 아무리 비싼 값을 쳐준다 해도 지켜온 땅인데, 밭뙈기로 쓰던 국유지를 차지하는 것도 모자라 조상이 물려준 농토마저 내놓으라니. 그러지 않으면 내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니, 부아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농사짓는다고 무시하는 건가. 민주화되었다 해도 소용없는 일인가. 어디 하소연도 못 하고 빼앗기나 싶었는데 빨갱이라던 환경단체의 젊은이들이 찾아와 도와주었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는데, 학자들까지 찾아와 보호해야 할 생태계라고 말해주니, 주민들은 고맙기 그지없다며 막걸리를 한상 차렸다.

 

과학자는 객관적인 사실만 도출할 뿐, 가치를 판단할 필요가 없다고 믿어왔던 나는 그 자리에서 주민들 분노의 실체를 보았다. 평생 순박하게 살아왔던 마을에 군수를 대동한 승용차가 지나가더니 이장이 갑자기 바빠졌다. 이후 이장은 마을이 크게 발전할 거라며 수선떨며 다녔고. 그런데 웬걸. 안 팔면 매국노라도 되는 양, 땅을 팔고 떠나라는 게 아닌가. 죽은 이의 것까지, 맡겨둔 도장을 찬성자 명단에 알뜰하게 찍은 이장은 급기야 마을을 이간질시키고, 서울 산다는 부자는 관권을 동원하는 협박과 매수를 서슴지 않았다. 막걸리를 연실 권하는 주민들은 돈과 권력의 오만에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자리는 내게 분수령이 되었다.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던 왜곡된 현실을 보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래서 썼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므로 피시통신을 활용했다. 그러자 반응이 나왔다. 원고청탁과 강연요청이 왔고, 우리 현장을 와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그래서 찾아갔고, 또 쓰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강압적이며 불합리한 결정의 뒤에 돈과 권력에 충성하는 과학기술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간파했다. 그래서 과학은 가치중립이라고 믿었던 이공계는 인문학을 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읽은 《녹색평론》은 천박했던 생태의식을 깊어지게 만들었다.

 

자신 때문에 학자가 아닌 운동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지금도 미안해하는 선배는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제자를 키울 수 있는 길을 포기한 건 결코 아니지만, 연구실로 돌아가라고 더는 당부하지 않는 선배에게 감사한다. 그때 그의 권유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의식 수준이 낮은 이공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한동안 환경운동가라는 말이 어색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환경 운동하는 생태학자라는 소개에 고마워하고, ‘생태주의자’라는 지적을 칭찬으로 오해하는 화상이 되었다. 모두 그 어색했던 막걸리 자리 덕분이다. (시민사회신문, 2008.3.17)

환경사랑하는 마음이야 크고 작음의 차이가 없다 하겠지만 박병상님과 같은 환경운동가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환경사랑하는 이들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얼굴 뵌지는 몇년이 흘렀지만 주변 생과 삶에 대한 애정을 많이 배웁니다. 진솔함과 더불어.. 마음 가까이 함께 할수 있도록 부족한 저도 배우고 배우겠습니다. 근래 공부해보려고 농과대를 들락날락 하면서 삶의 가치를 다시금 고민고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