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5. 9. 26. 01:01
 

생태도시에 대한 포럼을 위해 지방에 갔을 때였다. 그 지방의 명물이라고 주최 측에서 내놓은 메뉴는 씨암탉 백숙이었고, 나는 주방에 김치와 공깃밥을 별도 주문해야 했다. 앞자리에 앉은 독일인은 비빔밥을 부탁해 먹는다. 생태철학을 강의하는 그는 채식주의자라 한다. 그런데, 그이의 비빔밥에는 계란이 버젓이 얹혀있다. 그는 계란도 우유도 먹는단다. 이른바 ‘유란채식’인가.


미국의 채식인을 위한 샐러드바에는 깍두기처럼 잘라놓은 닭고기가 수북하다. 닭고기가 채식인가. 한 가정을 방문해 저녁을 먹을 때, “채식을 한다기에 특별히” 닭고기를 내놓는다. 이럴 땐 예의도 소중한 법. 아무소리 않고 한 점 맛나게 먹었다. 붉은 고기를 뜻하는 미트(meat)는 가금을 뜻하는 폴트리(poultry)와 다르기 때문일까. 채식주의자 중에 닭고기를 먹는 부류도 있다고 들었다. 영국의 한 아마추어 조류학자는 도요새 종류가 먹는 음식은 입에 대지 않는다. 그와 철새기행을 동행한 사람들은 해물탕을 피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쇠고기 돼지고기는 즐긴다. 독수리와 같은 대형 육식조류는 그의 관심대상에서 먼 모양인데, 그이의 방식은 채식주의 분류군에 없다.


생태도시 포럼에서 만난 독일인은 닭고기를 함께 피한 나와 몇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곤 내게 채식한다면서 물고기는 왜 먹는가 묻는다. 나는 살생을 피하려 채식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 환경 문제를 주목하고 육식을 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기적인 방식으로 사육한 고기는 먹을 수 있나. 결론은 그렇다. 하지만 현재 시중에서 파는 고기는 유기농업과 거리가 멀다. 생활협동조합에서 취급하는 고기도 내 기준에 불합격이다. 유전자조작 곡물사료는 피했을지 몰라도, 본성이 억제되며 사육되었을 것이다.


요즘 채식은 비교적 쉬워졌다. 채식하는 사람들을 별난 고집쟁이로 취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러워한다. 아직 채식인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지만 전에 비해 시선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회식 때 채식메뉴를 마련하지 못해 미안해한다. 그럴 때 채식 이후 바뀐 몸을 이야기한다. 귀 기울이는 동료들은 속으로 다짐하는 눈초리가 역력하다. 나이 들면서 혈압도 올라가고, 콜레스테롤 수치와 체지방도 늘고, 당뇨도 걱정인데, 해결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들은 환경을 위한 채식에는 관심이 없다.


제레미 리프킨은 소를 ‘발굽다린 메뚜기 떼’로 묘사한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남는 게 없는 메뚜기 떼처럼 소가 먹어치우는 곡식의 양은 실로 대단하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으려면 소는 16킬로그램 이상의 곡물을 사료로 먹어야 한다. 최첨단 목장은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사육한다. 그래야 빨리 살이 찐다. 성장호르몬도 주입한다. 뼈가 여무는 속도에 비해 체중이 지나치게 빨리 늘어나 발목이 으스러져 죽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과학축산은 냉정하다. 밀집된 관계로 병이 잦지만 미리 처방한 항생제로 해결한다. 소도 돼지도 닭도 마찬가지다. 양과 칠면조도 그렇게 사육할 것이다. 개고기도 합법화하면 무자비하게 사육할 것이 거의 분명할 것이다.


부자나라가 기획한 녹색혁명은 가난하면서 아기를 많이 낳는 나라를 위한 배려로 분칠했지만 남아도는 곡물은 가난한 국가로 가지 못한다. 돈이 매개하기 때문이다. 남아도는 곡물은 사료로 전용됐고, 생일이나 추수감사절에 고기 먹던 국가들은 삼시세끼 고기를 찾을 수 있다. 이제 고기는 식량 불평등만 초래하지 않는다. 물도 부족해진다. 쇠고기 1킬로그램을 생산하려면 물 20만 톤 이상 소비해야 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래서 미국 대평원 아래 오갈랄라 대수층은 점차 고갈된다.  지표의 소 배설물이 지하수를 오염시키면 더욱 큰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섞인 쇠고기 과소비는 각종 성인병을 어린 나이에 유발시키고 광우병이라는 재앙을 부메랑처럼 안겨주었다.


이제 영악한 최첨단 농법은 생명공학을 앞세운다. 유전자조작 사료를 가축에게 줄 뿐 아니라 가축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복제한다. 젖소와 비육우를 연거푸 복제한 생명공학자는 인간의 배아도 복제했고 복제인간 출현도 시간문제로 만들었다. 구실은 하나같이 숭고하다. 가난한 농부를 위해, 불치병과 난치병을 위해. 하지만, 생명공학이 후손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을 그는 주목하지 않는다. 여성의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후손의 유전자가 오염되거나 획일화되어 건강한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여성과 종교학자와 생명윤리학자의 지적을 무시한다.


그런 소에서 뽑은 우유는 안전할까. 치즈와 버터와 마가린은 먹는 이에게 아무 문제를 주지 않을까. 수십만 마리를 켜켜이 사육하는 양계장의 몰골은 들을 때마다 끔찍한데, 계란은 문제없을까. 중국에서 만 3돌이 된 여아들이 월경을 한다고 얼마 전 뉴스는 전했다. 산란용 닭에게 과다 투여하는 여성호르몬과 무관할까. 비닐하우스 안에서 바글바글하게 사육하는 병아리는 닭이 되기도 전에 도살된다. 도가니 크기까지 사육하는 삼계탕용 병아리는 먹는 이에게 원망의 감정을 전달하지 않을까. 먹을거리는 사람의 성격을 바꾸기까지 한다는데. 육식은 공격성과 관련이 있을 법하다. 육식을 한 운동선수와 군인은 상대를 사납게 몰아붙일지 모른다. 버린 고기를 먹는 토끼가 공원에서 사람을 공격하고, 채식을 하는 태국 한 사찰의 호랑이는 순해 터졌다 하므로. 남을 배려하는 인간의 성격은 육식보다 채식으로 다듬어질 것 같다. 채식을 하면 개발보다 복원에 관심을 가질지 모른다.


채식도 경우에 따라 환경에 문제를 줄 수 있다. 농약에 오염되었거나 지나치게 가공된 식품, 특히 온갖 첨가물로 혼합된 음료수나 기호식품은 먹는 이의 건강을 해친다. 술도 채식이고 담배도 지나치면 해롭다. 유기농산물도 환경에 부정적일 수 있다. 모든 것이 다 연결되었다는 연기의 철학으로 농산물을 유기적으로 재배하려면 남의 나라에서 남의 땅을 살린 유기농산물을 수입하면 안 된다. 내 땅을 살리려는 우리 유기농부의 의욕을 꺾는다. 이윤을 위해 대량생산해서 대량운송하여 대량판매하는 유기농산물도 환경에 반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배려하는 제철 제고장의 유기농산물을 최우선으로 할 때 비로소 환경을 위한 채식이 실천되는 것이다.


환경을 위한 채식을 어렵게 고민하지 않아도 좋다. 백화점이나 거대기업이 운영하는 쇼핑몰이 아닌 동네의 작은 유기농산물 점포라면 대부분 안심해도 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믿음으로 연결해주는 판매상일 테니. 채식은 본디 환경 친화적이다. 따질 것 없이 그저 유기농산물을 고집하면 몸도 마음도 땅과 하늘도 깨끗해진다. 구별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환경채식을 추가할 필요는 없겠다. 채식 자체에 환경이라는 개성이 존재하므로. (채식잡지, 2005년 10월호)

환경과 먹을 것에 대한 관심이 많아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