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11. 8. 14:38

    성조숙증 뿐이랴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신문을 척척 읽는다면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영재라고 생각하고 특별하다는 교육에 나서려 할지 모른다. 기저귀를 찬 아기가 신문을 떠듬떠듬 읽는 광고도 있는 이 땅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여러 가지 솔깃한 이유로 영재교육을 받았을 텐데, 사실, 어린 나이에 두각이 나타나는 영재는 우리 사회에서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영재교육에 어려서부터 지친 그는 어쩌면, 요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듯, 신동 소리를 듣던 예전의 모습에서 별 진전이 없는지 모른다. 주눅이 들어, 떠듬떠듬 신문을 읽는.


인간이 생태계의 다른 동물과 확연히 다른 특징이 여러 가지 있지만 커다란 뇌의 예리한 능력이 두드러질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개인의 두뇌가 아무리 빼어나도 사회에서 조화롭게 배려되지 않는다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영재는 물론이고 범재도 마찬가지이건만 많은 사람들을 제 아이의 독특함을 자랑할 뿐, 사회 속에서 이웃과 따뜻하게 어울리는 무던함을 대견해하지 않는다. 후손은 물론 생태계와 더불어 건강하게 살아가야 하는 사회이건만, 돌출하는 부조리에 저항하는 제 자식의 몸짓을 격려하는 이, 무척 드물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제 자식이 또래들보다 더 어른스럽다면 마냥 대견해 해야 할 일일까. 무릎에 앉은 아이가 남대문이 국보 1호라는 소리를 듣고, 엄마에게 국보 2호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엄마는 영재 낳았다고 좋아할 거로 광고는 지레짐작하지만, 끔찍하다. 말을 겨우 배웠을 아이라면 엄마에게 국보가 뭐냐고 물어야 정상이다. 제 아이를 또래보다 더 똑똑하게, 키도 몸집도 더 크기 키우기 위한 경쟁은 성조숙증을 낳았다. 더 많이 더 빨리 생산하려는 욕심이 빚은 농산물과 그 가공식품이 아이들에게 마구 제공된 맥락과 같기 때문이다.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호르몬과 시선을 자극하는 화면은 어떤가.


카리브의 열대우림 푸에르토리코는 관광산업으로 재정을 꾸려가며 식량의 대부분을 식민지 모국인 미국에서 조달한다. 어느 핸가, 그 곳의 3살 여자아이가 월경을 했다. 화들짝 놀란 부모가 데리고 간 병원은 또래보다 몸집이 커다란 아이가 계란 노른자를 입에 달고 지냈다는 데 주목했고, 그 계란에 여성호르몬이 높은 농도로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의 공장식 산란 농장에서 많은 계란을 빠른 시간 내에 받기 위해 닭의 모이에 여성호르몬을 적지 않게 주입했고, 그런 까닭에 가격이 저렴한 계란을 입에 달고 지낸 아이는 그만 생후 3년 만에 임신이 가능한 신체로 조숙하게 된 것이다.


푸에르토리코만의 사정일 리 없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고 부모가 쉬쉬해서 그렇지, 우리나라 역시 적지 않은 아이들에게 성조숙증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는 사례도 드물게 발생한다고 일선 교사는 귀띔하기도 한다. 우리의 대형 양계장이 여성호르몬 사용을 자제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 없지만, 여성호르몬은 우유에도 섞일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신체가 성적으로 성숙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가 없으면 별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지만, 화면 매체를 통해 관음증이 도를 넘는 우리 사회는 무책임한 결과를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우리 의료계에서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는 어린이가 부쩍 늘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닐 텐데, 여자 어린이의 경우 만 8, 남자 어린이는 9세 이전에 2차 성징이 나타나는 성조숙증으로 치료받는 어린이가 6년 사이 194명에서 3600명으로 늘었으며 여자 어린이가 많다는 것이다.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으로 체지방이 늘어나는 현상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한 전문 의사는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한 성적 자극이 증가한 것도 한 원인으로 분석하면서 성조숙증 어린이는 성장판이 일찍 닫혀 키가 덜 자랄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키가 작으면 사회의 부적응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에서 전문 의사의 경고는 부모와 아이에게 경각심으로 전달되기 충분한데, 의사들은 집에서 성조숙증을 스스로 진단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안내했다. 첫째, 가슴에 멍울이 잡히거나 초경을 시작하는 여학생이나 음모가 자라고 변성기가 나타나는 남학생에서 둘째, 머리 냄새와 땀 냄새가 진해진다면, 셋째, 성격이 급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지 의심해야 하고, 넷째, 얼굴에 피지가 보이고 여드름이 나는지 살펴보라고 한다. 다섯째, 키에 비해 체중이 많이 나가고 몸에 지방이 많은데, 여섯째, 성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면 일단 성조숙증의 가능성이 있다는 자가진단이다. 6가지 사춘기 증상 중 두 가지 이상이 아이에게 나타나면 성조숙증 가능성이 있고, 4가지 이상이라면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을 것을 의사들은 권하는데, 폭발적인 관음증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는 성조숙증에 어떤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


성조숙증의 자가 진단과 치료가 물론 요긴하지만 그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기 어렵다. 성조숙증의 원인을 짐작하고 있다면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책임 있는 사회라고 진단할 수 있다. 전문 의사는 성조숙증의 원인으로 서구적인 식습관과 운동 부족을 원인으로 지적했지만, 그런 생활습관이 최근에 붉어졌을 리 없다.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조류독감과 구제역이 발생하고 광우병이 쇠고기를 멀리하게 만들면서 많은 이는 육류 위주의 식습관의 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왔어도 우리 사회는 6년 전에 비해 성조숙증이 급격히 늘어난 결과를 가져왔다. 여성호르몬을 적지 않게 포함하는 계란과 우유의 문제, 몸 안에서 호르몬 분비를 교란하는 환경호르몬의 문제가 6년 이전에도 숱하게 제기했어도 정부와 기업은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자기진단을 거쳐 병원 찾으라는 권고는 자칫 환자 유인하려는 병원 측의 판촉으로 오해살 수 있다.


성조숙증만이 최근 늘어나는 어린이들 식품 문제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아토피나 당뇨와 같은 성인병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성조숙증처럼 발생 원인을 짐작하는 질병이건만, 알면서도 분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통이다. 일부 헌신적인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서구식 식습관을 고치려는 전문가 집단의 체계적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으며 여성호르몬을 첨가하는 공장식 축산 체제에 제재가 가해지거나 가공식품에 첨가물을 단속하는 정부와 관계기관의 움직임도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성조숙증을 만연시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이 넘치지만 개개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따름이다.


머지않아 대학입학의 풍랑이 우리사회에 몰아칠 것이다.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채워지다 지방의 전문대학을 위기에 몰고갈 입시제도는 중앙 집중적이고 획일적이다. 학생은 물론이고 학교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된다. 대학은 그저 빨리 키워 많은 돈을 벌어들이려 하는 공장식 축산과 그다지 다르지 않고 학생은 그런 축사에 갇힌 가축과 처지가 비슷하다. 대학을 지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획일적으로 사육되었다. 개성은 무시되었으니 전공이 입시에서 고려될 리 없고 취향이 거세되었으니 지방은 소외된다. 그저 취직 통계나 서푼어치 명성의 잣대로 줄을 세워 차례로 밀어넣을 뿐이다.


요사이 대학을 들어간 젊은이 중에 일찍이 선행학습을 강요받지 않은 이 몇이나 될까.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심지어 유치원 단계부터 강요받은 선행학습은 대학에서 전공을 택해 공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입시에 도움이 되었을까. 그렇게 치열했던 선행학습에 들어간 비용과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선행학습 덕분에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들어간 대학과 전공은 자신의 장래를 담보할 수 있을까. 공부하면서 신념과 긍지로 자신의 인생을 던지게 할까. 자신의 내일을 스스로 설계하며 세계관을 다지는 시절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피해자다.


황금들판의 벼와 과수원의 과일이 거의 갈무리되었다. 풍요롭게 보이던 논밭의 농작물은 우리 식량 자급 정도에 비참할 정도로 모자라는데 그나마 자급해왔던 쌀마저 부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굶주리지 않으려면 막대한 식량을 수입해야 할 텐데, 멀리서 재배한 까닭에 경작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볼 수 없던 외국의 농산물이 얼마나 건강할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문제는 게으른 식탁에 올려놓기 쉽게 가공한 음식이다. 곡물이나 채소든, 육류나 낙농제품이든, 빠르게 많이 재배한 공장식 농축산물에 첨가물을 넣은 가공식품은 성조숙증과 무관하지 않은데, 해마다 수십 조 원 어치 음식 쓰레기를 버리는 우리는 내 땅에서 더욱 빈약해진 가을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성조숙증은 어린 나이에 사춘기에 접어들게 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신체 생장을 방해한다. 성조숙증을 부추기는 공장식 축산은 식량위기를 자초하는데, 획일적인 선행학습은 젊은이의 건강하고 다채로운 사고를 방해한다. 하지만 돌이켜보자. 누군가 부추기는 선행학습을 거부하는 젊은이, 공장식 축산을 외면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세상을 바꾼다. 성조숙증을 부추기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깨어 있는 자는 속된 사회가 부추기는 성조숙증을 슬기롭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었다. (푸른두레생협, 201211월호 소식지)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2. 4. 02:01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 PET. 테레프탈산과 에틸렌글리콜을 축합중합해 얻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halate)는 내열성이 우수하고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덜 받으며 전기적 특성이 좋지만 사출성형이 어려워 비디오나 엑스레이필름 들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었는데 1970년대에 기술이 개발되면서 음료수 병으로 각광받게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PET를 재료로 만든 병을 그저 페트병이라 말하는 우리는 깨끗할 뿐 아니라 가벼워 자주 이용한다고 쉽게 생각한다.

 

페트병을 자주 이용하는 우리는 페트병에 무엇이든 최초로 담는 주체가 아니다. 물이나 음료수, 간장이나 식용유 들을 팔아 돈을 버는 기업이 담았다. 우리는 페트병의 실용성이나 안전성과 관계없이 당장 갈증을 느끼거나 잠시 후 느낄 갈증에 대비해 페트병을 구입한다. 주부는 식구와 둘러앉을 식탁의 풍미를 위해 구입할 테고. 물과 음료수와 간장과 식용유에 대한 주권을 기업에 내준 이후 우리에게 대안이 없어졌다. 집에서 물병을 들고 나오거나 예전처럼 집집마다 간장을 담고 들깨를 심어 이웃과 기름을 짜서 나눈다면 페트병은 요즘과 같이 도처에 넘칠 리 만무하다.

 

세계적으로 페트병에 가장 많이 담길 물을 생각해보자. 가벼울 뿐 아니라 여간해서 깨지지 않는 페트병이 다른 어떤 용기보다 물을 깨끗하게 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겠지만 그 믿음이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이유의 전부는 아닐 성 싶다. 파는 물이 전부 페트병에 담겨 있는 것과 관계없이 은연중 내가 마시는 건 장삼이사의 물보다 지체가 높다는 걸 과시하고 싶기 때문일지 모른다. 아파트 재활용 코너에 넘치는 게 페트병인데 좀 지나친 상상일까. 어느 정도는 그렇겠지만 페트병에는 수돗물보다 값이 훨씬 높은 ‘생수’가 담긴다. 물 건너온 훨씬 비싼 생수나 해양심층수도 담긴다. 그런 프리미엄 물이 담긴 페트병을 보란 듯 들고 다니는 이는 좀 그럴 걸.

 

그렇다면 페트병은 깨끗한가. 전문가들은 병뚜껑을 따기 전까지 그렇다고 말한다. 일단 병뚜껑을 따면 공기가 들어간다. 마신 물의 부피만큼 공기 중의 미생물도 숱하게 따라 들어간다. 그러므로 뚜껑을 딴 페트병의 물은 보관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그러고 보면 페트병의 물은 일회용인 셈이다. 비운지 오래 되었어도 겉보기 깨끗하니 아깝다고 다시 담는 물은 두고 마시기 부적합하다는 거다. 당분이 많은 음료수가 먼저 담겼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따뜻하면 20분마다 분열하는 미생물은 1시간에 8배, 2시간이면 64배, 5시간이면 3만 배가 넘고, 10시간이면 무려 5억 배 이상 늘어날 테니까.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말하는 내분비교란물질은 플라스틱에서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트병은 안전한 걸까. 가볍고 튼튼한 까닭에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드는 젖병에 분유를 담아 전자레인지로 데울 경우, 발육과 뇌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환경호르몬 비스페놀A가 나와 아기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 플라스틱 밀폐용기에 담은 밥을 전자레인지로 데울 경우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HP)가 검출된다고 한 텔레비전 특집방송이 경고한 적 있다. 이 암호와 같은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전문가의 주장을 빌리면, 플라스틱을 유연하게 하는 까닭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첨가제로 아주 적은 양으로도 피부염과 생식기능 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며 민감 체질일 경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특집방송은 올리브기름이 담긴 페트병에서도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다량 검출되었다고 주장한다. 생수 담긴 페트병은 상관없을까.

 

젖병에 담기는 분유의 온도는 대략 체온과 비슷하다. 그 정도 온도라면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제법 까다로운 국가도 플라스틱 젖병을 규제하지 않는다. 유리 젖병으로 생기는 사고와 비교할 때, 양해할 만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물론 모유를 먹인다면 괜한 걱정일 테지만, 대개의 자본주의 국가는 기업의 이익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 플라스틱 젖병 뿐 아니라 분유에 관련된 산업과 자본과 노동자를 생각해보라. 먹다 남은 밥을 담는 플라스틱 밀폐용기는 보통 냉장실에 넣는다. 차가울 테니 별 문제가 없나본데, 대부분 냉장된 상태에서 파는 만큼 페트병은 안전한 걸까.

 

매장에 진열되기 전, 그러니까 공장에서 차가운 상태로 페트병에 담았다면 특집방송의 담당 프로듀서가 주목할 정도의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올리브기름에서 검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압착이 아니라 화학적 방법으로 더 많이 더 빨리 추출한 올리브기름은 뜨거울 터. 뜨거운 올리브기름을 담은 페트병에서 문제의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가 배어나올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은 추론이다. 암반에서 용출되는 생수가 위생적으로 안전하다면 모를까,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생수는 ‘처리’한 것이다. 아무래도 끓였을 가능성이 높다. 음료수는 그 정도가 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페트병에 담기는 생수나 음료수는 공장에서 차갑게 식힌 다음 담았을까. 일부러 돈과 시간을 더 들이며?

 

누가 지켜본 것도 아닌데, 페트병이 썩기 시작하는데 700년이 걸린다고 예상한다. 세상에 페트병이 나온 지 이제 40년. 재사용은 마다되어도 재활용이 권장되는 페트병의 90퍼센트가 그냥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상황에서 해마다 수십 억 개의 페트병이 사출성형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페트병이 자연에 쌓여야 비로소 썩는 신호를 보내려는지. 외국의 한 환경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 버린 페트병 다섯 개 중 하나에서 신경 독성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로 알려진 톨루엔 이외의 여러 유기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는데, 우리나라 서해안의 아름다운 섬의 모퉁이마다 더럽히는 페트병들은 한국 상표만 부착하는 게 아니다. 일본 해안과 호주 해안까지도. 그래서 일본 해안을 걸으며 한국 상표를 단 페트병을 수거하는 우리나라의 스님이 있었다.

 

생수라. 살아 있는 물인가. 그렇다면 수돗물은 죽었나. 한데 외국에서 파는 페트병 중에 수돗물을 정화처리한 물도 꽤 담겨 있다. 우리가 흔히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물은 광천수일 텐데, 광천수라고 마냥 믿을 수 없는 일. 만일 끓였다면 살아 있다 여길 수 없겠다. 물리화학적 정수 과정을 거친 수돗물은 살아 있지 않아도 안전한 물이다. 수도관이나 아파트의 물탱크에 이상이 없다면 누구나 가장 안심하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몸에 들어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몸에 큰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가장 잘 살아 있는 물은 나무가 울울창창한 숲이 보존된 계곡을 차갑게 흐를 것이다. 그 물이 페트병의 어떤 물보다 훨씬 맛있는 건 온갖 유기물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괴나리봇짐을 맨 과객이 청할 때 부끄러워하던 아낙이 바가지에 버들 한 잎 띄우며 권했다던 예전의 우물물은 안전했을 것이다. 계곡과 이어진 강에서 오염물질이 없는 땅속을 지나며 충분히 정화되었을 터이므로. 불과 100년도 안 된 시간 만에 우린 그런 샘을 다 없앴다. 대신 물량 공세가 가능한 수돗물을 들여왔는데, 이제 생수를 마셔야한단다. 그런데 페트병에 든 생수는 수돗물보다 500에서 1000배나 비싸다. 페트병 물 값의 90퍼센트는 바로 페트병 자체에 있다. 페트병을 만드는 플라스틱, 다시 말해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1킬로그램 생산하려면 물 17.5킬로그램이 필요하다 하고, 그 과정에서 질소와 황산화물,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될 게 틀림없다. 그러므로 페트병을 재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를 더 생각한다면 페트병보다 유리병, 생수보다 보리 넣고 끓인 수돗물을 넣은 유리병이 더 낫지 않을까.

 

프랑스의 대표 생수인 에비앙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린다는 ‘피지 생수.’ 할리우드의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마시면서 명성을 드높인 그 물은 가격이 우리나라 생수의 3배다. 명성을 잘 아는 우리의 늘씬한 여성들이 피지 생수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강남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던데, 정작 피지 인들은 피지 생수를 마시지 못한다. 남태평양의 작은 영연방 국가 피지는 100만이 안 되는 인구가 한 해 평균 5천 달러 미만으로 살아가지만 관광에 투자하고 종사하는 일부 유럽 출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주민은 가난할 따름이다. 그래도 기름진 땅에서 농사가 잘 돼 예로부터 부족함이 없었고 깨끗한 물이 넘쳤는데, 외국의 생수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물을 뽑아대자 우물이 바싹 말라버린 것이다. 수출용 생수를 거액을 내고 마실 수 없으니 예전에 없던 수인성 질병이 만연한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세계적 물 수출국을 꿈꾼다. 어떤 기업은 낙차를 이용 설악산의 물을 서울까지 옮겨올 구상을 한 적이 있다. 그 물은 모두 페트병에 담겠지. 그런 일이 앞으로 누구를 목마르게 할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그 따위 구상에 빠지는 이의 단견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아니 분노가 인다. 환경과 에너지 낭비의 문제, 일으키는 위화감 문제도 심각하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은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편견을 사람들의 뇌리에 터무니없게 심기에 페트병이 싫다.

 

‘살리기’를 참칭하는 ‘4대강 사업’ 낙동강 구간인 어성천을 추위를 날마다 갱신할 때 다녀왔다. 넓고 넓은 낙동강의 모래에서 정화된 물이 살얼음 아래 투명하게 흘렀고, 일순 어린애가 된 일행은 얼음에 엎드려 흡수했다. 다신 그런 기회를 맞지 못할 수 있기에. 마시는 물을 플라스틱에 담는 걸 넘어, 조상이 물려준 ‘생명의 물’을 콘크리트에 담으려는 토목공사가 시방 밤을 새며 우리의 4대강에서 목하 진행되고 있다. 콘크리트 페트병은 장차 어떤 이웃을 목마르게 할까. (귀농통문, 2010년 봄호)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 29. 17:23

 

“거울 같은 강물에 숭어가 뛰노네. 화살보다 더 빨리 헤엄쳐 뛰노네.” 이렇게 시작하는 슈베르트의 가곡 <숭어>는 어부가 흙탕물을 일으키며 낚아올리자 나그네가 숭어를 가엾게 바라본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슈베르트가 스무 살이던 1817년에 작곡한 <숭어>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사실 송어다. 원제목이 Forelle(영어로 trout)인 것으로 보아 번역보다 최초 조판공의 실수가 아니었을까.

 

강을 거스르는 숭어가 거울 같이 맑은 오스트리아의 계곡까지 오르면 알프스의 터줏대감인 송어가 가만 두지 않을 테지만 작은 물고기를 낚아채듯 잡아먹는 송어와 달리 숭어는 플랑크톤을 즐긴다. 그래서 몸매가 늘씬한 송어는 사납고 통통한 숭어는 느긋한 편인데, 우리나라 연근해에 두루 분포하는 숭어가 한강과 낙동강에 모습을 드러내어도 거울 같이 맑고 차가운 중상류까지 오르는 건 아니다. 거긴 송어가 없어도 플랑크톤이 몹시 드물다. 연안과 하구 언저리를 배회하는 숭어는 갯벌이 넓은 서해안과 남해안에 흔한데, 거기에 먹을 게 많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런가. 우리나라 숭어는 바닷가 가난한 어부의 소박한 그물에 잘 들어간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 오후 볕이 따사로워질 때 맨발로 갯벌을 들어가보자. 꼭 맨발일 필요는 없지만 발을 옮길 때마다 개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맨발이어야 진솔해진다. 지구를 어머니, 대지를 어머니의 피부라 할 때, 갯벌이야말로 지구에서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맨살이 아닌가. 어머니 피부에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을 하고, 원시림에 불을 질러 농약을 뿌리는 우리를 포근하게 받아들이는 갯벌에서, 탕자는 신도 양말도 벗어야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한발 한발, 어머니의 감촉을 느끼며 물기 머금은 갯벌을 경건하게 걸으면 문득, 햇살 받는 갯벌의 표면이 연초록으로 물들어 있다는 게 눈에 띌 것이다. 과학자들이 조류(藻類)라 말하는 식물성플랑크톤 군집으로, 차가운 바닷물이 썰어 나간 뒤 따사로운 볕을 받는 갯벌에서 짧은 시간에 번성한 거다. 그만큼 갯벌에는 영양분이 풍성하다.

 

하루에 두 번 갯벌을 막대하게 들고나는 조수는 거세고 빠르다. 역광을 받은 먼 바닷물이 번쩍인다 싶으면 서둘러 뭍으로 올라야 한다. 갯벌에서 움직이는 건 쉽지 않지만 순식간에 밀어드는 조수에 자칫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그때 바닷가 갯벌을 진작 가로지른 그물이 솜씨를 발휘한다. 밀물에 떠밀려오다 그물에 걸린 망둥이와 꽃게, 그리고 온갖 어패류를 바닷물이 썬 뒤 걷어올릴 수 있다. 갯가의 어부는 숭어도 소쿠리 가득 담을 수 있으리라. 잎을 쫙 벌리며 슬라이딩하여 갯벌에 활짝 핀 플랑크톤과 유기물을 긁어 삼키던 숭어는 그만 그물에 걸릴 것이다.

 

가을이 완연해지는 10월 이후 물이 따뜻한 바다에서 부화한 어린 숭어는 이른 봄 연안에서 강으로 오르며 자라다 첫 가을을 만날 무렵이면 20센티미터 정도로 성장해 다시 바다로 나간다. 이때 갯사람들은 동어(童魚)라 한다. 가을이 깊어져도 연안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숭어는 한겨울이면 동면에 들어가는데, 더러 바닷가를 뒤덮은 커다란 얼음덩어리 아래 웅크린다. 설이 다가올 무렵, 청년 서넛이 푸석푸석한 얼음덩어리를 번쩍 들어올리면 팔뚝만큼 씨알이 굵은 숭어와 꽁치만큼 가는 동어를 “허리가 아플 정도”로 주을 수 있다. 아니 있었다. 갯가 어민들은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지만,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바다가 더워진 이후 바닷가는 전혀 얼지 않지만 갯벌도 비참해졌다. 매립으로 오그라든 갯벌이 개발로 오염되더니 영양분이 전에 없이 빈약해진 것이다.

 

머리 부분이 메기처럼 넓적하다 가슴부터 둥그레지면서 허리 이하는 보통 물고기처럼 옆으로 편평한 숭어는 다 자리면 1미터가 넘고 무게가 8킬로그램에 달한다. 비늘 가운데 검은 점이 있어 언뜻 예닐곱 세로줄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몸통은 어두운 은백색이지만 피부 쪽이 붉고 나머지가 은은한 미색인 살코기는 쫀득하기 이를 데 없다. 《지봉유설》에서 조선의 실학자 이수광은 옛 이름이 수어(水魚)였던 숭어에 얽힌 이야기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 맛에 탄복한 중국 사신이 이름을 물어 ‘수어’라 일렀더니, 수어 아닌 물고기가 있느냐며 웃었고, 즉시 빼어날 수(秀)를 넣은 수어(秀魚)로 고치니 수긍하더라는 내용이란다.

 

“위를 편하게 하고 오장을 다스리며, 오래 먹으면 몸에 살이 붙고 튼튼해진다.”고 한 《동의보감》은 숭어는 진흙을 먹으므로 백약(百藥)에 어울린다고 주장한다.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하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순환계질환을 예방한다고 전하는 숭어는 누가 뭐라해도 겨우내 단백질이 부실했던 백성에게 효과만점이리라. 보리가 싹트는 봄에 잡는 ‘보리숭어’가 제 맛이고, 영산강 하구의 보리숭어가 일품이었다는데, 하구언으로 막힌 영산강의 숭어는 오늘날 명맥을 잃었다. 숭어알을 말린 진상품 ‘영암 어란’도 이제 다른 곳에서 잡아 만들어야할 형편이 되었다.

 

최근 우리 서해안과 남해안의 숭어 수컷이 암컷으로 바뀌는 기현상이 발생한다고 한 언론이 보도했다. 2003년부터 2년 동안 집중 연구한 제주대학교 해양환경연구소에서 “조사대상 수컷의 10퍼센트가 내분비계를 교란하는 화학물질에 의해 암컷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발표했다는 거다. 공장지대가 없는 동해안에서 관찰되지 않는 성전환이 서남해안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뻔한데, 최근 엎친 데 덮칠 계획이 인천에서 발표되었다. 가녀리게 남은 강화 일원의 갯벌을 가차없이 위협할 조력발전이 예고된 것이다.

 

숭어는 아직 우리 해안을 외면하지 않았다. 10월 중순이면 자연형으로 단장해 깨끗해진 안성천에 바글거리며 올라오는 숭어는 비슷한 시기 포항 형산강 상류에 물수리를 불러들일 정도로 몰려와 장관을 이룬다. 봄이면 해남과 진도 사이의 울돌목에도, 부산 강서구 대항선착장 일원에도, 뜰채 한번에 20마리가 잡힐 만큼 몰려와 천지사방에서 뛰어오른다.《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맛이 달고 깊어서 물고기 중에서 최고”라고 극찬한 숭어를 아직 만날 수 있지만, 인간에게 오직 맛으로 평가되는 숭어는 언제까지 온난화되어 오염되고, 오그라들더니 조력발전으로 위협받는 제 터전을 지킬 수 있을까. 숭어까지 사라진다면 더없이 쓸쓸해진 해안은 우리마저 서럽게 하지 않을까. (전원생활,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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