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3. 16. 07:19

 

3월 꽃샘추위가 심술을 멈출 때 인적이 드문 근린공원에서 오전 햇살을 즐기려는데,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관목 숲에서 딱새 수컷 한 마리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 고개를 돌리니 딱새뿐이 아니다. 노랑턱멧새, 곤줄박이도 햇살을 만끽하고 있다. 잔설마저 녹아내린 양지바른 산록에서 한해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나 보다. 머지않아 관목 맨 꼭대기에서 다른 수컷의 접근을 온몸으로 막으며 교교하게 울어대겠지. 바야흐로 봄이 왔다. 내일을 기약하는 삼라만상의 생명들이 기지개를 펴리라.

 

올 겨울은 참으로 유난했다. 지구온난화의 역설이 삼한사온을 몰아내더니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맹추위가 근 한 달이나 지속되지 않았나. 겨울이면 하얀 얼음으로 뒤덮여야 할 북극해가 얼지 않으니 햇볕에 증발량이 늘었고, 북극의 한파를 가두던 제트기류가 헐거워지자 그 아래 위도인 시베리아에 눈이 쌓이게 했다. 그 여파로 우리나라에 맹추위가 왔다고 주장한 기상 전문가는 지난 2월의 눈폭탄을 설명했다. 엘니뇨에 이은 라니냐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을 우리나라에 밀어내자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과 백두대간 동쪽에서 부딪혔다는 건데,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이 원인이라는 분석이었다.

 

1미터 이상 내린 눈이 먹이를 찾지 못하는 백두대간의 동물들을 빈사상태로 몰아넣을 즈음, 해외 언론은 북극곰이 수백 킬로미터나 헤엄치는 게 목격되었다고 전했다. 북극해 빙원의 틈새에 가끔 머리를 내밀고 숨 쉬러 올라오는 물개를 잡아먹는 북극곰에게 얼지 않는 북극해는 멸종을 예고한다. 동면할 때 태어난 두 마리의 새끼들을 도저히 먹여살릴 수 없지 않은가. 지구온난화가 변하게 만든 자신의 오랜 터전에서 많은 생물종들이 시방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터전을 떠날 수 없는 생물에게 바뀐 환경은 치명적인데, 우리 산하의 동물들은 요즘 잘 버티고 있을까.

 

19983월 중순, 경상북도의 한 저수지에서 두꺼비들이 죽은 황소개구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관찰되어 언론에 회자된 적 있다. 당시는 고유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 퇴치에 골머리 않던 시절인 만큼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이라며 환호했지만, 기대와 달리 지구온난화가 일으킨 일회성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목련이 한꺼번에 꽃잎을 편 그해, 짧은 겨울이 지나자마자 스치듯 다가온 봄은 이내 이른 여름처럼 무더웠다. 살얼음이 남았을 때 알을 낳는 두꺼비도 꽤 혼란스러웠을 날씨였다.

 

황소개구리는 3월 초순에 낳은 두꺼비 알이 올챙이에서 작은 성체로 모두 변태하고 떠난 5월 중순 이후 연못에 나타나는데 그해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봄부터 유난스레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자 때 이르게 연못으로 나온 황소개구리는 그만 번식을 위해 나온 두꺼비를 만난 것이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암컷의 등에 올라 앞발의 엄지로 배를 꾹 누르며 끌어안는 번식 행동을 가진 두꺼비 수컷은 황소개구리의 등에서 엉뚱한 배를 눌렀던 건데, 황소개구리는 익숙하지 않은 두꺼비 피부 독이 몸에 퍼지자 그만 죽어버렸고, 그 장면을 본 낚시꾼의 제보로 두꺼비가 황소개구리의 천적으로 잠시 등극한 것인데, 천적이라. 자신의 유전자를 낭비한 두꺼비도 원치 않은 오해일 뿐이었다.

 

지구온난화를 부른 인간의 탐욕스런 개발은 동물들의 번식지를 크게 위축시켰다. 4월 초에 알을 낳는 참개구리는 주로 물이 고인 논 가장자리를 찾고 5월 말에 알을 낳는 금개구리는 연못을 고집하건만 집요한 아파트단지 개발로 논과 논 가장자리의 웅덩이가 거듭 메워지면서 1980년대 중순 광주 변두리의 논에서 참개구리와 금개구리 사이에 잡종이 발생했다. 그 때에도 봄이 무더웠다. 번식시기가 달라 알을 낳을 때 만날 기회가 없을 뿐 아니라 번식행동에 차이가 커서 만난다 해도 짝짓기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간해서 없건만, 잡종이 나타난 건 번식지의 위축 때문이었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기만 하는데, 올봄은 어떨지.

 

1월의 추위가 2월에 누그러들다 꽃샘추위가 봄을 재촉하는 우리나라의 3월은 서해안의 갯벌마다 주꾸미 잡이로 어민들을 바쁘게 만든다. 가는 밧줄에 100개의 빈 소라를 묶어 바닥에 내려놓으면 알을 낳으려 낮은 바다로 다가오던 주꾸미들은 한 마리 씩 빈 소라로 들어가게 되고, 어부들은 밧줄을 끌어올려 주꾸미를 빼낸다. 그래서 주꾸미는 소라방으로 잡는다고 하는데, 바다가 차가운 올해는 영 신통치 않다고 한다. 겨울바다가 유난히 추웠기 때문이라는데, 지구온난화로 육지보다 먼저 아열대화된 우리 바다가 올봄에 변고를 맞은 것인가. 알 낳고 깊은 바다로 되돌아가는 5월이면 주꾸미는 질겨진다는데, 올 우리 서해안의 주꾸미는 알을 낳지 않을 셈인가.

 

도요새가 날아와야 봄을 느끼는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우리나라 정부에 제발 갯벌을 보전해달라고 호소한다고 한다. 노고지리가 울어야 쟁기를 매고 논밭에 나갔던 우리 조상처럼, 그들은 도요새를 만나야 비로소 화가는 화구를 챙기고 시인을 시상에 잠기며 농부는 농구를 들고 들로 나간다는 건데, 근래부터 도요새가 통 보이지 않아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아닌가. 최근 상승한 기온이 지구 평균보다 배나 높은 우리나라에 혹한이 지나가자 면역이 약해진 많은 노인들이 생을 접었다. 노곤해진 자신의 생명을 잉태된 후손에게 건강하게 물려주는 건데,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는 인간은 어떤 내일을 준비하는 것일까.

 

자전축이 23.5도 기운 지구가 하루에 한 차례 자전하고 1년에 한 번 태양을 공전하는 한, 봄철에 쏟아지는 태양빛은 겨울보다 따사로울 수밖에 없다. 시베리아 기단이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양지바른 곳에 나가면 따사로움을 느낀다. 이럴 때 삼라만상의 동물들은 번식을 준비한다. 먹이가 충분할 때 새끼들을 낳으려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작년에 쓴 둥지를 고치는 까치는 벌써부터 짝을 찾아 나섰고 선명해진 깃털로 갈아입은 딱새와 노랑턱멧새도 곧 봄을 만끽할 것이다.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봉오리를 펼치지 않았으니 생명의 축제는 잠시 후 펼쳐질 텐데, 허둥대며 찾아오는 요사이 계절이 걱정이다. 이른 봄부터 에어컨 광고가 과열인 인간의 봄은 무탈한 한해를 약속해줄 것인가. (사이언스타임즈, 2011.3.16)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11. 17. 17:58

 

요즘 도시는 물론 시골에도 보기 어려워졌지만 어릴 적 도심에서 떨어진 마을에 참중나무가 많았다. 안방과 건넛방 사이에 마루가 있고 마루 뒤에 부엌이 있는 낮은 기와지붕 집은 동네에서 흔하디흔했는데, 기억에 그런 우리집 뒤에 참중나무가 담벼락을 따라 여러 그루 심겨 있었다. 집장사에게 샀으니 아버지가 심었을 리 없는데, 해 질 무렵 어디선가 수백 마리의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들고 아침이면 모두 종알대니 도저히 일찍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집이었다. 꽃밭에 서리 내릴 즈음, 담 높이로 배추를 절여놓고 김장하던 그 집은 참중나무와 더불어 사라진 지 오래다.

 

참중나무와 아주 비슷한 나무가 가중나무다. 도시든 시골이든 요즘 보이지 않는 곳이 없는 가중나무는 중국이 원산이지만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에도 많은데, 번식력이 보통이 아니다. 일단 뿌리를 내리면 줄기가 금방 두툼해지며 20미터 이상 자라올라 회색도시를 얼른 녹화하는데 초기 유용했지만, 그것 참! 잘 가꾸어 놓은 공원의 조경수마저 집어삼킬 태세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담당 공무원들을 여간 골치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는데, 전문가들은 가중나무와 같이 우리 땅에 완전히 적응한 식물을 ‘귀화식물’이라고 말한다. 같은 개념으로 귀화동물도 있다.

 

봄철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먹고 새순을 죽순처럼 먹을 수 있어 ‘죽나무’ 또는 스님들이 즐겨 ‘중나무’ 했다는 참중나무는 우리 땅에 오래 살아오며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참새들에게 잠자리를 펼쳐주었으며 수많은 애벌레들이 잎을 먹으며 내일을 기약하게 베풀었을 텐데, 중국에서 넘어온 가중나무는 우리 땅에 들어온 초창기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사람에게 나물은커녕 이 땅의 어떤 곤충에게 이파리 하나도 배려하지 않았던 거다. 민원에 민감한 담당 공무원은 애초 그 점이 마음에 든 것일까. 벌레가 없다고 가로수로 심기까지 했으니.

 

한데 웬걸! 가중나무에 천적이 달라붙기 시작했다. 수액을 빨아먹는 녀석들. 흔히 ‘중국매미’라 하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 일대에 주로 분포하는 주홍날개꽃매미가 그들이다. 삼사년 전, 남쪽 지방에 한두 마리 보여 희한하게 만들더니 작년에 중부지방에도 드물지 않게 퍼졌고 올해는 도시나 시골 가리지 않고 전국 어디에나 눈에 띌 정도로 흔해진 주홍날개꽃매미는 가중나무가 많아 그런지 이제 귀화동물로 분류해야 할 정도다. 가중나무 뿐이 아니다. 가중나무보다 당분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밀집돼 심겨 있는 복숭아, 사과, 자두와 포도를 비롯해 감귤과 탱자나무도 얼씨구나 줄기와 가지를 뒤덮을 듯 앉더니 버드나무조차 가리지 않는다.

 

3센티미터 남짓 도톰한 몸을 가진 주홍날개꽃매미는 등딱지의 투명한 날개로 넓적한 몸을 위에서 덮는 우리의 매미와 아주 다르다. 온몸을 연갈색 날개로 감싸 언뜻 나방처럼 보이지만 더듬이가 돌출되지 않은 꽃매미다. 밝은 나무껍질과 엇비슷하게 보이는 두 장의 연갈색 겉날개는 수십 개의 검은 점무늬가 산재하는 윗부분과 미꾸라지 뒷지느러미처럼 촘촘한 세로 잔 점들이 옆으로 펼쳐지는 아랫부분이 뚜렷이 구별되는데, 사람 눈에 두드러지는 건 주홍색 속날개다. 나무껍질에 침을 꽂고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사람이 다가오면 마지못해 팔랑팔랑 낮게 달아나는 주홍날개꽃매미는 분홍 속날개를 섬뜩하게 드러낸다. 경계색이라 그런가, 흔해빠진 주홍날개꽃매미를 축내는 천적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경 짝짓기를 해 포도나 가중나무 껍질에 500개 가까운 알을 2에서 3센티미터 정도 뭉쳐 낳는데, 이듬해 5월 부화하는 유생은 나무껍질을 휘감듯 뒤덮고 수액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나무를 말라죽이며 일찍이 없었던 민원을 발생시키는 까닭에 충청북도 보은군은 희망근로 프로젝트 참가자와 산불진화대원 170명을 동원, 포도 줄기의 알을 대대적으로 수거해 불사르는 방제작업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데, 알을 제거하는 만큼 효과가 있을 테지만 일부 지역에서 손으로 일일이 방제하는 일은 살충제 살포 이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970년대 말 목격된 이래 2006년 경 가죽나무 주변에서 조금씩 보이던 주홍날개꽃매미가 이처럼 늘어난 건,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지역에 자생하다 태풍이나 선박을 타고 드문드문 들어와도 제대로 번식하기 어려웠을 테지만 따뜻해졌을 뿐 아니라 가중나무까지 도처에 흔하니 늘어날 조건은 완비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천적까지 없으니 낳은 알이 대부분 성체로 성장하는 건, 식은 죽 먹기! 개체가 늘자 가중나무가 모자라졌고 조심스레 과일나무를 건드려보니 그 또한 별식이라, 주홍날개꽃매미는 마음껏 퍼질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살충제를 뿌려도 소용없자 팔 걷어붙이고 손으로 주홍날개꽃매미를 떼어내던 농부는 그만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고.

 

주홍날개꽃매미의 자생지에는 천적이 없을까. 그럴 리 없다. 우리나라에 그 천적을 당장 들여오자는 뜻이 아니다. 그 지역 주홍날개꽃매미의 천적과 유사한 동물이 우리나라에도 틀림없이 있을 테니 그 동물이 주홍날개꽃매미가 들끓는 과수원과 도심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길을 내주자는 제안이다. 살충제를 뿌리면 주홍날개꽃매미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다른 곤충도 자리를 뜰 테니 주홍날개꽃매미를 먹을 만한 새와 도마뱀 종류가 접근할 리 없다. 도시에도 농약을 치지 않는 가로수와 자투리녹지가 녹지축으로 이어진다면 주홍날개꽃매미를 신이 나서 먹어치울 천적이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요사이 황소개구리가 조용하다. 사라진 건 아니다. 커다란 덩치에 섬뜩해 건드리지 않았던 동물들이 덩치가 큰 황소개구리와 그 올챙이를 푸짐하게 먹으며 개체수를 조절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달과 너구리는 황소개구리를 얼마나 반기는지 모른다. 물가를 성큼성큼 걷는 백로와 왜가리는 숟가락만큼 커다란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잡아 새끼들을 든든하게 먹인다. 한때 흐름이 막힌 강을 석권했던 배스나 블루길이 더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니만큼, 주홍날개꽃매미도 머지않아 새롭게 나타난 천적이 적절하게 조절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사마귀와 커다란 잠자리가 주홍날개꽃매미를 잡아먹기 시작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데 어떤가. 지구 평균보다 온난화 속도가 빠른 우리 땅에 느닷없이 나타나 늘어나는 귀화동식물의 명단은 이미 길고 계속 길어질 텐데, 섬뜩한 동물이 주홍날개꽃매미에서 그칠까. 생태계 보전 못지않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에 더욱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 (물푸레골에서, 200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