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1. 4. 20. 08:56

 

때는 4월 중순. 수도권의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만개할 때, 여의도 윤중로는 200만 인파가 밤낮으로 흐른다. 하얀 벚꽃 사이를 오고가는 형형색색의 사람들 사이로 온갖 좌판이 길을 막고 쓰레기가 넘치지만 작년과 마찬가지로 꿀벌은 보이지 않는다. 내년 이맘때에도 윤중로는 꽉 찰 텐데, 꿀벌은 다시 찾을 것인가. 윤중로에 인파가 흐를 때, 동해안으로 흐르는 강원도의 하천들은 붉은 꽃을 피워낸다. 겨우내 켜켜이 쌓였던 백두대간의 눈이 녹으면 동해안의 황어들이 일제히 올라오기 때문이다. 완연한 봄. 백두대간도 황어도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양양 남대천, 강릉 연곡천, 속초 오십천과 같은 작은 하천만이 아니다. 울주군 두서면에서 발원해 포항 영일만으로 흘러드는 형산강과 울산 서쪽의 산에서 발원해 울산만을 지나 동해로 이어지는 태화강에 벚꽃이 흐드러지면 나타나는 황어는 섬진강 하구를 지나 하동의 화개천에 벚꽃이 만개할 때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해안에서 남해안을 감돌아 영산강까지 벚꽃이 필 때 하천에 붉은 꽃을 물들이는 황어는 여태 찾아주지만 오염이 심한 영산강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하구언으로 막한 낙동강 600리에 자취를 감췄어도 강이 열리고 숨 쉴만한 물이 흐른다면 다시 찾을 게다.

 

조선 정조 1820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서유구가 잉어와 비슷한데 비늘이 순황색이라고 한 황어는 서해에 머물다 비가 내리려 하면 물 위로 여러 길을 뛰어올랐다가 떨어지므로 물장구치는 소리와 같다고 썼다. 그렇다면 황어는 서해안의 강에도 많았던 모양이다. 1994년 출간된 고 최기철 선생의 우리 민물고기 백 가지는 낙동강 지도 전역에 검은 점을 잔뜩 찍었다. 그리 많았다는 건데, 봄이면 안동까지 올라오는 황어를 바라보며 퇴계는 시 한 수를 읊었다. “봄바람에 눈이 녹아 낙동강 물이 넘치니 황어는 펄펄 뛰고, 어부들은 그물치기 바쁘구나. 황어가 많으면 가물다는 속설을 그대로 믿자니, 하나가 배부르면 만백성이 굶주릴 텐데 어이할까.”

 

황어가 많으면 가물다는 속설이 왜 생겼을까. 눈이 녹아 낙동강이 불어나면 농사철에 물이 모자란다는 겐가. 모를 일인데, 대부분의 시기를 바다에 머무는 황어는 벚꽃 필 무렵, 제 치어가 자랄 때까지 맑은 물이 마르지 않을 중상류의 자갈 바닥으로 알을 낳으러 물 반, 황어 반으로 진력을 다해 오른다. 45센티미터에 이르는 황어는 4월에서 5월 산란기를 맞아 눈 위에서 어깨를 지나 꼬리까지, 턱에서 배를 지나 꼬리까지 분홍색 띠를 날씬한 몸에 눈부시게 치장하고 지느러미도 붉게 갈아입는다. 혼인색이다.

 

잉어목에서 유일하게 바다에 살다 알 낳으러 회유하는 황어는 가을에 올라와 알을 낳고 기진맥진 숨을 거두는 연어와 달리 호박돌 틈과 자갈 사이에 수만 개의 알을 낳고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풍화된 고생대 지층과 수천 년 동안 쌓인 부식층에 물기를 머금으며 조금씩 흘려보내는 우리 하천은 폭이 넓은 중류에 자갈을 흩어놓았고 구비마다 맑은 모래를 쌓았다. 덕분에 하천은 맑고 산소가 충만하니 봄이면 황어와 뱀장어가 오르고 가을이면 연어와 은어가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콘크리트에 곡선을 빼앗긴 강은 모래와 자갈을 거푸 잃었고 흐름을 방해하는 수많은 보는 회유성 어류에 적잖은 시름을 안긴다.

 

농사나 인근 도시의 상수원을 위해 보를 막는 거,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보가 높으면 계절에 따라 하천을 오르내려야 하는 담수어류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 한 쪽에 어도를 만들지만 담수어류의 종류는 많고 사는 방식도 다양하므로 어도 역시 다양해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황어나 연어는 돌고기와 갈겨니처럼 어도를 오르지 않건만 천편일률의 어도는 길을 막는다. 게다가 낡아 어도에 철근이 드러나 있으니 덩치 큰 어류에게 치명상을 안긴다. 황어가 그렇다. 힘찬 도움닫기로도 넘을 수 없는 보의 낡은 어도는 차라리 흉기다. 뛰어 넘다 콘크리트 바닥에 나뒹굴거나 철근에 찔러 알도 낳기 전에 죽어간다.

 

그 뿐인가. 골재채취를 피한 중상류 하천에 이때다 싶어 뜰채와 돌멩이를 쥐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애교다. 너덧 개의 바늘이 달린 훌치기낚시로 황어의 길목을 훑거나 아예 투망을 펼쳐 쓸어담으려는 욕심이 생존을 막무가내 위협하는데, 말리는 이가 없다. 한데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황어 무리를 위협하는 건 따로 있다. 하필 벚꽃이 만개할 때 자갈을 채취를 허가하는 공무원도 문제지만 10미터가 넘는 보로 흐름을 차단하며 바닥의 모래를 퍼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샛강까지 평탄하게 다지며 직선으로 만드는 작업이 전국 곳곳에서 마구잡이로 벌어지지 않나. 모천을 잃은 황어는 결국 우리 강산의 하천을 외면하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공단의 폐수가 흐르다 보에 막혀 오니를 내려놓자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었던 울산 태화강에 3년 전부터 황어가 다시 찾는 게 아닌가. 해마다 무리의 규모를 늘리며 내왕해주기 시작한 건, 보를 헐어내고 강바닥에 찌든 오니를 걷어낸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황어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한다. 태화강과 형산강의 상류에도, 오십천과 양양 남대천에도 보는 많고, 해마다 힘겹게 올라와 고맙기 짝이 없건만 떠들썩한 황어축제는 고통을 안길 따름이다. “축제가 없는 이른 봄에 관광객들이 양양을 찾아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연계 생산되는 알뜰축제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해 회와 매운탕을 파는 천편일률의 축제는 기진맥진한 황어를 맨손으로 움켜쥐라 관광객에게 권한다.

 

갯벌이 거듭 매립되는 서해안을 외면한 황어가 개발의 소용돌이에서 빗겨난 작은 하천에 올해도 경이로운 모습을 드러내 반갑기 그지없는데, 내일은 어떨까. 경상북도민물고기연구센터에서 해마다 치어를 방류하고 울산시는 황어 보전을 위해 태화강의 어로행위를 금지했지만 후쿠시마의 반감기가 긴 방사성 물질은 바다로 흘러들고 비록 극미량이라지만 조금씩 농축된다. 플랑크톤에서 먹이사슬을 타는 방사성 물질은 넓은 바다로 확산되는 실정인데, 일본 황어보다 사정이 나은 우리 황어는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까.

 

벚꽃이 만개한 윤중로에 꿀벌은 보이지 않는데 황어가 찾는 하천은 모래와 자갈을 잃어간다. 하늘과 바다에 방사성 물질이 늘어나도 벚꽃은 어김없이 흐드러졌고 황어는 올라왔다. 이 경이로운 모습이 추억으로 남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사이언스타임즈, 201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