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7. 2. 21. 14:12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에서 트럭에 가득 실린 명태가 용대리 덕장에 풀려 영하의 날씨에 얼다 녹기를 거듭하며 누렇게 변신하더니, 내설악 백담사를 오가는 관광객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유명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눈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흰 눈을 뒤집어 쓴 드넓은 덕장의 명태는 이제 우리 바다에서 거의 잡히지 않는다. 나중에 태어난 화천 산천어 축제가 부러운 듯, 해마다 2월 초순이면 거진항에서 벅적지근하게 펼치는 고성군의 명태축제는 ‘명태와 함께하는 겨울바다 축제’이라는 주제가 무색하게 허전할 수밖에 없다.

 

한겨울 동해의 북쪽, 검푸른 바다에서 올라오던 ‘명태’는 함경도 명천군의 태가 성을 가진 어부가 잡았다 하여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명태는 상태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다. 꽁꽁 얼렸다 얇게 떠 전으로 부쳐먹는 ‘동태’와 소비자 손에 넘어갈 때까지 얼리지 않아 살이 부들부들한 ‘생태’, 햇빛이 강한 영하의 덕장에서 40일간 얼다 녹기를 반복하다 부드럽게 황색으로 마른 ‘황태’와 고성 해안에서 다짜고짜 두 달 동안 바싹 말려 단단해진 ‘북어’만이 아니다. 어린 녀석을 비쩍 말린 ‘노가리’와 노가리보다 조금 큰 ‘코다리’도 무시하면 안 된다. 주머니가 얇은 취객의 안주로 그만이 아닌가. 그토록 우리 삶에 밀착된 명태, 어떤 민속학자는 조기와 함께 제사상에 올라간다는 걸 상기한다. 인간에게 절 받는 지체 높은 생선이라는 거다.

 

한데 요즘 명태는 ‘금태’다. 금처럼 귀하다는 뜻일 게다. 요즘 제사상에 올라오는 북어는 원양선단이 오호츠크 해나 베링해와 같이 동해보다 더 추운 해역에서 잡아 가져온 명태를 가공했을 것이다. 금태는 ‘진태’다. 진태는 원양이 아닌 우리 동해안에서 잡은 진짜라는 벼슬이다. 진태라고 다 최고급은 아니다. 진태 중의 진태는 ‘낚시태’다. 그물로 잡은 진태는 아무래도 몸통에 흠결이 남을 터, 모름지기 값이 제일 나가는 최상의 자태는 낚시태 중에서 찾게 될 것이다. 한데, 강원도 고성 주변 해역에서 나오는 ‘지방태’는 도무지 알현하기 어렵다. 요즘 뜨는 벨리댄스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명태축제 한마당’에도 금태 두룬 진짜 지방태는 쉽게 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축제 한마당에 나들이 온 관광객은 ‘원양태’가 희미하게 풍기는 먼 겨울바다의 내음에 만족해야 속 편할지 모른다.

 

양명문의 시를 변훈이 1951년에 작곡한 가곡을 성악가 오현명이 불러 우리 귀에 익숙해진 ‘명태’를 들어보자. 명태는 아무래도 저음인 바리톤이 어울린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하며 넘어가는 가사는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던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캬-.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쫙 쫙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허허, 명태라고 헛허허허.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하며 마무리 한다.

 

당시 종군기자였던 양명문은 명태의 생태와 명태에 얽힌 우리네 정서를 재치 있게 묘사했다. 검푸를 정도로 깊고 차가운 바다에 떼로 이동하는 명태가 미라처럼 바싹 마르면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시로 승화한다고 노래하지 않던가. 한데 가곡의 가사에서 ‘대구리’는 뭘까. 대구리는 대가리의 사투리는 아닐까. 큰 대가리 앞의 명태 입은 얼마나 크던가. 쫙 벌리면 무엇이든 먹어치울 것 같은데, 입이 큰 생선의 대명사는 단연 ‘대구’다. 길이가 9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구와 40센티미터 내외에 불과한 명태는 같은 과에 속하는 사촌간이다. 대구도 찬 물에 떼지어 이동하는데, 대구는 자원 독점을 노린 제국주의자의 분쟁을 유발했지만 명태는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시로 환생한다.

 

명태, 아직도 시를 끌어낼 수 있을까.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사먹지 못할 정도로 비싸기 때문만이 아니다. 내 땅의 정서를 반영하지 못하는데 문화에 뿌리내리는 시어가 시인의 뇌리에 번득일 리 만무하지 않겠나. 대신, 전에 없던 생선이 동해안의 그물에 걸린다. 300킬로그램이 넘는 가오리나 보라문어가 대형 해파리와 함께 어민들의 골칫거리가 되는 것이다. 짐작하듯, 바다가 따뜻해졌기 때문이다. 오징어나 고등어의 어획고가 늘어나는 현상에 반비례해 급격히 감소하는 명태와 정어리들은 우리의 식문화를 바꾸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예년에 비해 1℃ 이상 높아진 동해에서 이런 추세로 50년이 지나면 학자들은 어떤 생선도 구경할 수 없을 것으로 경고한다. 말린 원양태가 올라가는 제사상을 ‘고등태’를 빙자하는 양식 고등어가 항생제 범벅된 채 명태의 자리를 꿰차는 건 아닐까.

 

기상 관측 이래 처음으로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철 모스크바를 다녀온 이는 눈이 내리지 않는 알프스가 남의 사정이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어떤 이는 개최지로 어렵게 선정된다 해도 2014년 동계올림픽을 강원도 평창에서 성공리에 진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는 평균 0.7℃, 한반도는 다른 지역의 두 배 이상 기온이 상승했다는데, 더욱 폭증하는 중국의 온실가스를 반영해 그런지 최근 10년 동안 평균 0.6℃나 급상승했다는데, 이런 추세가 조금도 주춤하지 않는다는데, 앞으로 7년 후, 지금도 인공 눈이 아니면 스키장을 운영할 수 없는 평창에서 과연 동계올림픽이 가능할지 회의적인 까닭이다. 그는 겨우내 눈이 푹신하게 쌓이는 북한과 공동개최를 제안한다. 그 편이 모처럼 기회 얻은 동계올림픽의 경기를 순탄하게 할 거고, 또한 올림픽 이후의 관광인파 증가로 장차 발생할 통일비용을 줄이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할지 모른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면 1000만 파운드를 주겠다는 영국의 부호의 이야기가 외신을 장식한다. 철도회사를 5개나 소유한 그 부호의 생각처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세상을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려면 에너지를 소비해야 활용 가능한 기술을 추가하기보다 온실가스의 발생 자체를 줄여야 확실하다. 그러자면 우리의 삶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

 

북어는 3일에 한번 패야 한다고? 딱딱한 북어를 연실 패대기쳐야 국물 뽀얀 북어국을 ‘쇠주’ 뒤에 맛볼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면 머지않아 언감생심이다. 동해안의 어진 어부에게 걸린 명태는 파란 하늘 아래 하얀 자작나무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용대리 덕장을 언제까지 기억할지. 그게 걱정이다. (물푸레골에서, 2007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