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3. 8. 27. 16:02


 

독일 시민들이 발전소와 함께 살아가는 법

 

우리가 뮌헨이라고 이야기하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주도를 독일인들은 뮌셴으로 발음한다. 그 뮌헨에 이자강이 흐른다.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발원해 뮌헨을 관통하는 이자강은 도나우강과 만나 흑해로 접어드는데, 최근, 100여 전 개발로 사라졌던 강변의 일부가 회복되었다. 덕분에 시민들의 즐겨 찾는 도심의 대표적 공원으로 면모를 일신했는데, 1800년대 이전, 1킬로미터 정도의 수변공간을 여유롭게 흐르는 강이었다.


수력발전과 운하를 위해 둑으로 막아 유구하던 강폭을 좁혔지만 도로가 잘 발달된 요즘, 운하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화력발전소가 거대화되었을 뿐 아니라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이 본격화되면서 강물의 흐름을 차단하는 수력발전도 퇴조하고 있다. 최근 뮌헨시에서 둑을 헐어 폭을 넓히고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강물을 흐르게 유도하면서 모래톱을 마련하자 주말이면 수영을 즐기는 시민들이 이자강에 가득하게 되었다. 뮌헨 이자강의 사례는 우리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1900년대 초, 이자강의 강폭을 안공 수로처럼 좁히자 거세진 물살이 바닥을 파내려가면서 수면이 낮아졌다. 이어 지하수면이 내려가자 숲이 말라죽으며 생태계가 황폐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우물이 낮아지면서 식수가 고갈되는 현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강폭을 줄일 때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많은 예산으로 하류에 쌓이는 모래와 자갈을 상류에 퍼붓는 땜질을 반복했지만 고질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를 더는 감당할 수 없던 뮌헨시는 10여 년 전부터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며 재자연화를 순차적으로 시도했다. 그렇다고 애초 넓었던 강폭을 완전히 회복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많은 예산을 동원해도 강 가장자리에 조성한 건물과 도로를 헐고 강으로 환원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와 물고기들과 더불어 사람들도 돌아온 이자강의 강폭은 본래의 10분의1, 대략 150미터에 불과하다.


참 희한한 일이 다 있다. 도심을 관통하는 구간의 강변 모래톱은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모여든 시민들의 시선에 화력발전소의 높은 굴뚝이 머문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뮌헨 130만 인구의 환경의식은 분명한데, 어떻게 화력발전소가 도시 한복판을 버젓이 차지할 수 있을까. 하수를 철저히 분리한 이자강에 막대한 온배수가 처리 없이 흘러들어오지 않더라도 찾는 시민들의 눈에 커다란 화력발전소가 거슬릴 법도 한데, 시민들은 대체로 무관심하다. 그 자리를 차지한지 오래 되었기에 정물처럼 익숙해진 걸까. 뮌헨만이 아니다. 슈투트가르트나 하노버를 흐르는 크고 작은 강가에 어김없이 화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시민들은 별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런 발전소에 신뢰를 보내는 편이다. 그들은 화력발전소가 갖는 고질적 환경 문제에 의외로 무신경한 걸까.


해마다 1천만의 관광객이 모이는 하이델베르크에 화력발전소는 없다. 물론 원자력발전소도 없다. 관광에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방식 대신 작은 강을 막아 전기를 생산하는데, 발전 시설의 작아 그런지 강물의 흐름이 정체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작은 전력량에 생활을 흔쾌히 맞추고, 하이델베르크대학과 같이 많은 전기가 필요한 곳은 외부에서 가져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슈투트가르트나 뮌헨시가 석탄을 주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환영하는 건 아니다. 외지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부담이 크므로 받아들이되 적정 수준을 넘지 않고, 관리와 운영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시민들은 최신 오염물질 저감장치의 부착을 요구한다고 관계자는 덧붙인다.


우리와 달리 산뜻한 그림으로 곁을 치장하지 않은 독일의 발전소들은 원하는 이에게 대부분의 자료를 공개한다. 사고 위험이 있는 곳이 아니라면 굳이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는다. 전력회사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가 구축되었기 때문인데, 처음부터 그리 된 것은 아니다. 날카롭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토론을 거듭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발전소가 없으면 환경은 깨끗하지만 전기요금 부담이 크다. 시민들은 기술적으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시설의 발전 설비를 받아들이는 대신, 전기 소비를 흔쾌히 줄였다. 유권자와 소비자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정부와 기업은 전기 효율을 높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더 필요해지는 수요를 위해 시민들은 발전소 증설보다 태양이나 바람에서 얻는 자연에너지를 선호하기 시작했고, 시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정부는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생산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서울화력발전소와 시민 사이의 갈등

 

한강을 바라보는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에 서울 유일의 화력발전소가 1930년 이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성전기주식회사로 출발해 19352호기를 추가하면서 당인리발전소라는 이름을 사용한 현 서울화력발전소는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이후 1호기에서 3호기는 낡아 철거했는데, 힘센 사람이 많은 서울이라 그랬을까, 19874호기와 5호기에 전기집진기를 설치해 국내 최초로 굴뚝에서 검은 연기를 사라지게 한 이력을 내세운다. 서울화력발전소는 1993년 바꾼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두 개의 보일러에서 387500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한편, 여의도와 반포, 그리고 마포 지역 5만 여 세대에 난방과 온수를 공급한다.


서울에서 소비하는 전기의 3퍼센트 정도 공급하는 서울화력발전소는 1980년 이후 고장이나 풍수해로 인한 재해가 한 차례도 없었다고 자랑한다. 그와 별도로 주변 초중등학교에 교육 기자재를 기증할 뿐 아니라 장학금을 수여하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마다하지 않지만 주위 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고와 보이지 않는다. 규정에 따라 발전소 주변 지역에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건 전력회사의 일상적인 일이다. 다른 발전소에 비해 당인동 화력발전소의 공헌이 질적이나 양적으로 부족하기에 주민들이 못마땅해 하는 건 아니다. 국내 최초로 먼지를 걸러내는 장치를 달고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보일러와 시설을 가동하더라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게 마포구 주민들의 표면적 이유지만, 어쩌면 발전소 때문에 발생할지 모르는 재산상 불이익을 더 걱정하는 걸지 모른다.


20079월 당시 대통령 출마를 준비 중이던 이명박 후보는 낡은 4호기와 5호기를 철거하고 발전소 위치를 서울 밖으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철거된 부지에 현대적 미술관을 갖춘 문화창작발전소를 만들겠다고 당선되자마자 재확인했으므로 마포구 주민들은 그 동안 겪은 상대적 불이익을 참고 넘기려했다. 한데 정권이 출범하자 당시 지식경제부에서 딴죽을 걸었다. 이전할 부지를 확보할 시간이 없다며 감히 대통령 공약을 뭉개고 만 것이다. 대통령의 재가가 없다면 불가능한 약속 파기였는데, 201612월까지 현 발전소 부지의 지하에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80만 킬로와트의 발전 설비를 도입하겠다는 게 아닌가. 다량의 천연가스를 고압으로 태우는 발전소가 지하에 있을 경우 폭발로 인한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운동에 나선 대책위원회는 해당 전력회사와 정부를 강력히 성토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서울화력발전소는 어떻게 되었나. 4호기와 5호기는 서울 소비량의 3퍼센트 전기를 여전히 생산하고, 갈등도 여전하다. 지난해 말 마포구와 문화창작발전소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전력회사는 마침내 갈등이 봉합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책위를 구성한 주민들은 구청장을 소환하겠다며 벼르며 반발한다. 정작 전력회사와 정부는 느긋한 듯한데, 협약을 체결한 만큼, 지하로 넣은 발전소의 부지 위에 런던 템스 강변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한 미술관과 공원을 조성해 주민에게 개방하겠다는 계획은 법적으로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될지 아직 확신하게 어렵다. 전력당국은 주민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충분한 설명과 신뢰 축적으로 풀 수 있었다고 홍보하지만 대책위원회는 행정법원에 2심을 제기해놓고 있다.


주로 우라늄의 핵을 분열시키며 에너지를 얻으므로 핵발전이라 이름 붙였지만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 요즘은 원자력발전으로 개칭한다. 서울시는 요즘 원자력발전소 하나 줄이기 운동을 벌인다. 원자력발전소 한 기의 발전 용량이 보통 100만 킬로와트이므로, 서울시의 의지가 시민의 호응으로 이어져 그 캠페인이 성공한다면 당인동의 서울화력발전소가 떠나도 서울시의 전력 공급에 차질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전력수급계획을 세우는 정부는 지하로 발전 설비를 집어넣어서라도 가동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대책위까지 꾸린 주민들은 지하일 경우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를 높이지만 전력회사의 의뢰에 화답하는 전문가들은 괜찮다고 추임새를 놓았다. 한데 주민들은 지상의 발전소도 반겨하지 않았다. 그들도 전기를 쓴다.


사실 마포구 주민들만 지역 가까이에 화력발전소 들어오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다. 서울이든 뮌헨이든, 인천이든, 어디나 다 마찬가지다. 오염물질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발전소가 지역에 있으면 크든 작든 불이익이 생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 총량제가 실시되면 아파트와 같은 주택은 물론, 상가와 사무실이 집중된 건물, 그리고 크고 작은 공장들은 냉난방에 비용이 추가될 수밖에 없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 총량제가 실시된다면 건물과 공장들은 시설 증설에 제한이 생길 것이다. 화력발전소 때문에 일자리도 줄어들 수 있다.

 

 

발전소의 투명한 운영과 시민 감시가 이루어져야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지자 인천시민은 고달픈 반대운동에 다시 나서야 했다. 현 남동화력주식회사, 당시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영흥도에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소를 밀집하려 나서기 때문이었다. 십여 명의 구속자가 생기는 어려움을 겪은 후 인천시와 남동화력주식회사는 협정을 맺었다. 80만 킬로와트 규모의 최초 2기는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지만, 이후 더 필요할 경우 LNG로 충당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정부와 전력회사에 의해 속절없이, 발전 설비를 증설할 때마다 무시되었다. 87만 킬로와트 2기가 증설돼 현재 4기가 가동되는데, 201087만 킬로와트 규모의 화력발전 설비 2기가 다시 추가되었다. 5호기와 6호기는 현재 2014년 완공을 목표로 맹렬하게 공사하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2기를 더 짓겠다고 전력회사는 인천시민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물론 연료는 석탄이다.


이산화탄소를 막대하게 내뿜을 뿐 아니라 상당한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그리고 폐를 위협하는 초미세 석탄재가 나올 것이라며 시민들이 극렬 반대했지만 소용없었다. 2기 씩 계속 석탄을 태우는 화력발전으로 추가되어도 정부나 전력회사 누구도 애초 맺은 약속의 위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사과도 없었다. 오염물질 저감장치를 최첨단으로 달아도 80만 킬로와트가 넘는 4기의 설비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은 막대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인천에 허용된 배출총량의 절반 가까이 집어삼킬 정도다. 앞으로 4기가 다시 추가된다면 어찌될 것인가. 인천에 터 잡은 산업체들은 사업 규모를 확대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건만, 정부와 전력회사는 국가를 위해 시종일관 참으라 한다. 반대하면 지역이기주의자라고 몰아붙일 기세다.


우리보다 앞서 간 국가는 어떤가. 협정에 의거, 발전소 관리와 운영에서 비롯되는 환경문제를 모니터링하는 영흥화력발전소 공동조사단은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발전소를 몇 군데 방문했는데, 우리나라의 대기오염 저감장치는 아주 훌륭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발생은 어느 발전소나 줄일 방법을 찾지 못하지만, 우리의 대기오염물질 처리 능력은 독일과 일본, 스페인과 미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아니, 배출기준은 우리 발전소가 오히려 엄격했다. 공동조사단이 이해하기 어렵게, 화력발전소들을 도시 한복판에 세운 독일은 건설할 때 시민의 강력한 반대가 없었느냐는 우리의 질문을 언뜻 알아듣지 못했다. 질문의 의도를 설명하자, 모든 자료를 공개하며 합의하므로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그럴지 모르는데, 처음부터 그랬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게, 전기를 생산해 판매하기까지 모든 분야를 하나의 기업이 독점한다. 그렇게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한국전력주식회사가 2001년 발전 부문을 6개의 자회사로 나누었지만 자회사들의 의사결정권은 미미하기만 하다. 한국전력주식회사도 무소불위는 아니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정부의 지배를 받는다. 발전 시설의 증설과 폐쇄는 물론이고 전력요금도 자율적으로 책정하지 못한다. 전력회사끼리 경쟁도 담합도 불가능하다는 건데, 그 점이 소비자에게 유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서비스나 가격 인하 경쟁은 물론 없다. 각 전력회사들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 지배하는 상층부의 눈치를 살필 따름이다. 발전소 증설이나 핵폐기장 건설과 같은 사안에 공청회라는 요식행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비자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아도, 민원을 듣고 딴청을 피워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책임질 일도 없다.


발전은 물론, 송배전 회사가 지역마다 다르게 자리잡아 서로 서비스를 놓고 경쟁하는 외국에서 발전소가 있는 지역의 전기요금은 그렇지 않은 지역에 비해 당연히 저렴하다. 최첨단 저감장치를 설치해도 석탄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대기오염물질 배출은 비례해 늘어나고,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그만큼 막대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 불이익을 충분히 해소할 장치 없다면 시민들이 발전소를 기피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그러므로 전력회사는 예상되는 모든 문제와 관련 자료를 공개하며 발전 방식과 용량을 소비자와 의논하고,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시민들의 감시를 허용해 안전은 물론 오염물질 배출 최소화하는 노력을 다한다. 그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온 전력회사는 지역에 일자리 제공으로 그치지 않고 가격을 낮게 책정한다.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최근 한 에너지 전문가는 독일 베를린시에서 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의 청원에 따라 시의 출자로 발전소와 배전회사를 설립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청원이 성사되려면 주민투표가 필요한데, 주민투표에서 다수 찬성을 얻으면 청원 법안은 의회에서 의결한 법안과 동일한 효과를 갖는다고 한다. 청원을 이끄는 단체는 주민투표 실시를 요구하는 서명을 받았는데 일찌감치 필요한 수를 훌쩍 넘게 확보했다고 그 전문가는 전했다. 베를린의 340만 시민도 머지않아 가격이 내려간 전기를 공급받게 될 것인데, 베를린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인천은 참 초라하다. 필요한 전기의 근 3배를 생산하지만 요금은 전기 자급이 3퍼센트에 불과한 서울과 똑같다. 청원운동을 벌이는 베를린 시민들은 불이익에 대응하려 하지 않는 인천시와 인천시민을 이해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잘못된 전기요금 체계를 바로잡아야

 

독점은 독선을 낳는다. 최근 불거지는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의 비리와 그 때문에 발전 설비가 불시에 멈추게 되는 현상은 사실 예견되고 남음이 있다. 감시 통제할 조직이 따로 없거나 부실할 경우, 부정은 어떤 분야든 예외 없이 싹트지 않던가. 원자력발전소를 추진하는 사람에게 감시와 통제를 맡기면 웬만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불시에 멈추는 원자력발전소의 속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텐데, 원자력발전소는 용량이 거대하다. 그 정도 용량의 전기가 한꺼번에 끊어지면 예비전력이 갑자기 큰 폭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화력발전소는 소비지와 거리가 먼 곳에 밀집돼 있다. 고온 고압의 수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는 우리나라 3면의 바닷가를 차지했고,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초고압 송전선과 송전탑은 부챗살을 닮았다.


대용량의 원자력발전 설비들이 수요가 한참 늘어나는 계절에 작동을 잇달아 멈추자 당황한 정부는 시민들을 향해 전기 소비 절약을 주문하지만, 시민들이 절약한다고 아슬아슬하다며 엄설 떠는 예비전력이 성큼 늘어나는 건 아니다. 온도계 살피며 에어컨을 잠깐잠깐 켜는 소비자들은 구비해 놓은 가전제품에 비해 전기 소비를 진작 최소화해왔다. 누진세가 무십기 때문이다. 지난 110일 오전 10, 민방위훈련도 아닌데 느닷없이 사이렌이 울렸다. 10분 전 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전기를 절약하자어쩌고 하는 문서를 더듬거리며 읽었다. 전기가 부족해지면 산업이 마비되고, 가장은 직장을 잃어 자식들 굶주리게 된다고 낡은 스피커는 지직거렸다. 그런가?


정전을 대비해 필요하거든, 미리 만든 지침에 따라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이나 기업, 그리고 대형 건물과 관공서들이 진정성 있게 훈련하면 될 일이다. 왜 애꿎게 주택에 방송하고 아파트 단지에 사이렌을 틀어대는 겐가. 씁쓸한데, 누구의 의도였을까. 시국이 하수상하니 넘어가기로 하는데, 전력당국의 입맛에 길든 우리 주류 언론의 기자들이 현장, 또는 보도 자료가 깔린 관련 기관의 안락한 기자실에서 겨울철 정전 대비 위기 대응 절전훈련이 차분하게 진행되었다는 기사를 쓸 무렵, 인터넷 공간은 부글부글 끓었다. 산업 마비 운운하며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더 지으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그도 그럴 게,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장 건설 반대운동이 거세질 때마다 반복한 절차가 아니었던가. 역시나, 이후 열흘도 못돼, 정부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부지 지정 절차에 들어갔고, 화력발전소를 넉넉하게 짖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이때, 전기 소비 절약을 위한 절전운동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주류를 자칭하는 언론이 꺼낸 통계는 우리가 전기를 무척 낭비하는 시민이라고 질책한다. 우리보다 소득이 거의 두 배인 유럽의 많은 국가보다 일인 당 전기 소비량이 더 많다고 다그치지 않던가. 한데 이상스럽게 가정 소비량은 우리가 훨씬 적다고 한다. 무슨 뜻일까. 누진세가 무서운 가정보다 터무니없게 싼 전기를 무한히 공급받는 영역이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2007OECD는 우리 가정의 전력 소비량은 일본과 유럽의 절반, 미국의 4분의1에 불과하다고 자료를 제시한다. 반면 전기 소비량이 가장 많은 기업은 유럽 국가의 절반의 가격을 적용받는단다. 헐값이다 보니, 기업은 신바람이 났다. 전기 수요자의 1.2퍼센트에 불과한 대기업이 전체 전력의 64퍼센트를 소비하는 기현상을 촉발하게 했다.


밥이 쌀보다 가격이 낮은 현상은 누가 보아도 정상이 아니다. 기업과 산업에 공급하는 전기의 요금이 석유나 가스보다 저렴하게 책정되는 현상이 그렇다. 그런 요금 체계에서 낭비는 부추겨질 수밖에 없다. 영업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은 에너지 효율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에너지 효율화 기술을 개발할 이유도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제 경쟁력에 치명적 요인이 될 수 있다.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심화된다면 머지않아 수출상품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재하자는 국제사회의 논의가 구체화될 텐데, 그때 녹색경영을 외면한 우리 기업의 제품은 세계시장에서 외면될 것이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과 독일에 비교할 때, 동일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데 우리는 일본의 3.1, 독일의 1.9배의 전기를 소비한다고 한국전력주식회사 산하 경영연구소에서 20124월 분석한 바 있다. 과소비는 기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름철 손님을 유인하려고 냉방기를 거리로 가동하는 고급 상가에서 낭비하는 전기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역시 가격이 저렴한 탓인데, 정부는 엉뚱하게 개개의 가정에 엄포를 놓는다. 발전 설비 증설을 위한 꾐수일까.


지난 11020분 동안의 절전 훈련으로 원자력발전소 8기를 끈 효과가 있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그렇다면 가정의 소비자 겁박하지 않고 산업 설비의 가동 시간만 조절해 전기 소비량을 분산해도 전력 위기는 너끈히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기업의 전기요금을 고작 4퍼센트 인상했다. 그러면서 가정용까지 덩달아 2퍼센트로 올리는 정책을 휘둘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자국의 원자력발전소 52기 중 50기를 끈 일본에서 전기 공급 중단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전력 예비율이 떨어진다고 자국민을 겁박한 적도 없다. 지난해와 지지난해, 전기의 거의 4분의3을 원자력발전에 의존하는 프랑스가 독일의 전기를 긴급 수입할 때가 많았다. 독일은 자국 원자력발전소를 절반 이상 껐는데, 이유는 무엇일까.

 

 

발전차액지원제도의 효율적 운용 필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 이후 독일 정부는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다음세대를 생각하는 성직자, 원로 정치인, 재계 인사, 그리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인문사회 전공의 대학교수 17명이 참여한 그 위원회는 8주 동안 활동한 뒤, 2022년까지 독일에 존재하는 원자력발전소 17기 모두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당장 8기를 중단했는데, 그러자 국제 에너지 전문가들은 전력 부족을 이유로 프랑스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수입하게 될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전망했지만 실상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았다. 59기의 원자력발전소에서 어김없이 생산하는 전기를 거리낌 없이 소비하는데 익숙해진 프랑스의 낭비구조 탓이었다. 많은 프랑스인들은 취사와 난방까지 전기로 사용하는 생활에 젖었는데, 오래된 원자력발전소에서 고장이 자주 발생하면서 공급이 그때마다 뭉텅뭉텅 중단되자 황급히 독일에서 수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럽 최대의 산업국가인 독일이 무슨 배짱으로 자국의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작심한 걸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2011, 이미 태양과 바람에서 얻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비율이 전체 전기 에너지의 20퍼센트를 넘은 국가가 독일이었다. 독일은 자신감이 넘친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한 술 더 뜬다. 2050년까지 사용하는 전기를 모두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에서 확보하려고 철저히 준비하고 있단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그렇듯, 독일의 태양빛이 그리 강하지 않고 북해 연안을 제외하고 바람이 특별히 거세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관련 전문가들은 독일의 야심찬 계획이 달성 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 독일은 물론, 독일 이외의 국가, 우리나라의 많은 학자도 독일의 재생 가능한 에너지 정책의 성공 요인으로 발전차액지원제도’(FIT)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제도가 햇빛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개발에 시민 개개인이 선뜻 투자하도록 이끌었다는데 적극 동의한다. 햇빛발전만이 아니다. 설비의 규모가 큰 풍력발전에 자본을 투자하는 중소기업도 많다. 농촌 지역은 가축 분뇨나 음식물 쓰레기를 전기 생산의 재료로 활용하고, 부산물로 나오는 양질의 유기질 비료를 들판에 뿌린다.


마을 단위, 또는 시민 개개인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자신이 사용하더라도 남는 전기가 있게 마련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남는 전기의 전량을 전력회사가 일정액으로 사들이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다고 전력회사가 앉아서 손해보는 건 아니다. 정부는 전력회사에 상응하는 보조금을 지원한다. 남는 전기를 전력회사에 팔면 이윤이 발생한다. 그 이윤은 더 많은 개인 또는 마을의 에너지 자급을 유도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확보를 위한 민간의 노력은 관련 기술을 나날이 개선하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졌다. 발전차액지원제도의 중요한 성과 중의 하나다.


발전차액지원제도는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이제까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외면했던 일본이 작년 7월부터 시행했더니 결과는 놀라웠다. 경제산업성은 2012년까지 250만 킬로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시민들의 호응으로 목표의 78퍼센트인 178만 킬로와트를 3개월 만에 달성했다는 게 아닌가. 원자력발전소 2기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한 것이다. 10킬로와트 수준의 태양광발전 설비 10만 건이 주택을 중심으로 빠르게 설치되었지만, 비 주거용으로 기업이 추진하는 햇빛발전과 풍력발전도 목표를 초과하고 있다고 일본의 언론은 자랑스레 전했다. 현재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개발 속도는 일본이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아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를 모두 대체할 수 있기를 일본의 탈핵 시민단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독일보다 햇빛의 양이나 질이 떨어지지 않은 국가 중의 한 곳이다. 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 비율은 2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니, 우리의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0110월에 제정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 이용 보급 촉진법에 따라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운용해왔지만 유명무실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 열기가 뜨겁지 않았다. 제도가 알려지지 않은 탓이 컸는데, 유럽에서 재생 가능한 에너지 활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시민사회의 관심이 서서히 커져갈 무렵인 20103, 지난 정권은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중단하고 말았다. 대신 전력회사가 신재생에너지를 일정 비율 확보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를 시행했다. 제도가 바뀌면서 자신의 지붕, 교회나 학교 지붕에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려던 사람들은 의지를 꺾어야 했다.


200912,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참여한 가운데 열린 덴마크 코펜하겐의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우리 정부는 한국의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배출 전망치대비 30%를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10위 이내이자 무역 10위 권 국가답지 않게 소극적이라고 빈축된 약속마저 물거품이 될 모양이다.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부는 2027년까지 화력발전소 18개소를 비롯해 총 2,857만 킬로와트의 발전 설비를 증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의 화력발전소 증설 발표는 국제사회에 호언한 약속을 저버리겠다는 선언과 같다. 코펜하겐 약속을 이행하면서 신재생에너지 업체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를 도입했다고 지난 정권은 주장했지만 지금까지 그 실정은 물론 일정도 순조롭지 않다. 전력회사는 의무적으로 2012년까지 생산하는 전기의 3퍼센트를, 2020년까지 10퍼센트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도록 전력회사에 대한 의무규정을 두었지만 작년 말 실정은 목표의 절반에 그쳤다.


정부가 거론하는 신재생에너지는 발전차액지원제도의 부활을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생각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와 내용이 다르다. 신재생에너지의 범주에 수소에너지와 연료전지, 그리고 조력과 수력발전에 망라되지만 재생 가능한 에너지에 그 목록은 없다. 전환하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커서 전환된 에너지의 효용이 크지 않다면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할 수 없는 노릇인데, 수소 에너지와 연료전지, 그리고 해양 생태계를 교란하는 조력발전과 곡물을 가공하는 바이오 연료들이 그렇다. 시민단체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그런 비효율적 에너지는 제외한다. 문제는 더 있다. 발전 설비가 막대한 기업들이 2020년까지 생산하는 전기의 10퍼센트를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려면 그 시설 규모를 무리하게 키워야 하고, 그 과정은 무리를 넘어 무모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마음 급한 전력회사들이 실제로 문화재 보호지역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세우려하거니 해양생태계의 풍요로운 요람인 강화도 일원의 갯벌을 조력발전으로 위협하려 한다.

 

 

시민이 참여하는 재생가능한 에너지 정책이 활성화되어야

 

1975, 시민 동의 없이 주정부에서 유치한 원자력발전소를 강력한 반대로 무산시킨 독일 남부 도시 프라이부르크의 시민들은 그 사건을 계기로 에너지 자급에 대한 자각을 되새겼다. 11년이 지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되면서 후손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욱 강해진 시민들은 태양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행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가 오늘날 대표적 환경도시로 국제사회에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독일 다른 도시의 의지가 프라이부르크보다 부족한 건 아니다. 독일 정부가 일찌감치 도입한 발전차액지원제도가 기여한바 크다는 사실, 부정하는 독일인은 거의 없다.


전기는 지역에서 자급할 때 가장 안정적이다. 태양광 패널과 같은 작은 발전 설비가 지붕마다 분산 설치돼 있다면 여기저기에서 작은 고장이 발생해도 전력을 그때마다 보완할 수 있다. 전기를 지역에서 자급하면 마을과 국가의 경제도 안정된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 관련 업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는 광범위하다. 기존의 대형 화력발전이나 원자력보다 10배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경제학들은 평가한다. 우리의 발전산업 노동조합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전기를 자급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마을이나 개인이라고 해도 가끔 부득이하게 대형 전력회사의 전기를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시민들은 불필요한 전기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다. 그러므로 전력도 경제생활도 위기를 맞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민들의 노력은 정부와 기업으로 이어져 가전제품이든 주택이든 에너지 효율화에 부응하게 된다. 독일을 비롯해 풍력발전이 활발한 북유럽의 경제가 단단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6개 전력회사에 발전 사업이 분할되었더라도 송전과 배전을 독점하며 지위를 유지하는 한국전력주식회사의 태도는 어떤가. 사전에 지역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논의하며 대안을 찾아 발전 설비를 장치하거나 교체, 또는 철수해왔던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사전환경성검토 초안에 대한 주민설명회에 앞서 유치를 찬성하는 주민들이 반대하는 이웃에게 소화기를 분무한 영덕군의 사건은 무엇을 웅변하나. 정부와 전력회사는 주민들과 치우치지 않은 논의를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관련 정보를 주민들이 납득할 정도로 공개해왔던가. 영덕과 삼척에 추가할 원자력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한 765천 볼트의 초고압 송전탑이 밀양과 청도의 산간과 농촌마을을 관통한다. 그 시설을 반대하는 주민을 국익을 해치는 지역이기주의자로 몰며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국전력주식회사는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를 파행으로 몰았다. 과연 정의로운가.


2004, 과학기술의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하는 시민단체 시민과학센터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전력 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를 개최했다. 원자력 중심의 전력 정책을 고수하는 전문가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적극적 이용을 지지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공평하게 묻는 각계각층 17명의 독립적 시민이 합의를 전제로 긴 토론을 수행한 것이다. 3일 동안 심도 있는 논의를 여러 차례 민주적으로 실시했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치우치지 않게 의견을 들으며 심층 논의한 17명의 시민들은 고심 끝에 결론을 냈다. 원자력발전소를 증설하지 않는 상태에서 기존 원자력발전소의 수명을 다하면 바로 폐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합의회의에 참석한 한국전력주식회사와 정부는 시민들의 결론을 정책에 일체 반영하지 않았다.


2010년 현재, 우리는 원자력에서 30퍼센트, 석탄 40퍼센트, 액화천연가스 20퍼센트의 전기를 생산하는 반면, 석유 5퍼센트, 수력이 포함된 신재생에너지에서 2퍼센트에 불과한 전기를 생산하는 실정이다. 발전차액지원제도가 실종된 상태에서 신재생에너지 의무 할당제가 얼마나 유효할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5월 원자력발전소 하나 줄이기 차원으로 서울시는 서울시 햇빛발전 지원계획을 수립해 50킬로와트 이하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의 장착부터 판매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원받은 햇빛발전 시설로 1킬로와트 생산할 때마다 5년 동안 50원 보조하겠다고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체계화했다. 그런 정책이 서울시에서 입안되도록 이끈 시민단체의 역할이 지대했다. 발전차액지원제도에 이은 햇빛발전의 긍정적 효과를 시민에게 알리고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6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행동에서 발표한 성명서처럼, 수 십 년의 독점구조가 계속되는 우리나라의 현 전력체제에서 부정부패가 만연되었다는 사실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부패로 인해 원자력발전소가 불시에 정지하고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현상은 이미 예고된 바와 다르지 않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많은 국가,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 실천적으로 증명되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도입하든, 대형 전력회사들이 전기 생산과 공급을 과점하는 미국이 선호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를 활성화하든, 우리 정부와 전력회사는 고루한 기존 생각을 이제 일신해야 한다. 1987대체에너지 기술개발 촉진법이 제정되면서 보급해야 할 태양이나 바람처럼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의 이용을 활성화하려면 지금과 같은 독점구조 하에서 실천력은 확보할 수 없다. 앞서 경험한 국가들의 숱한 사례에서 보듯, 에너지 정책에 시민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보장되어야 하고, 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어야 한다.

 

 

재생가능한 에너지 활용은 시대의 명령

 

도심 복판에 버젓이 화력발전소가 서 있는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은 발전 터빈을 돌리고 나오는 고온 고압의 수증기를 활용해 지역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며 발전소의 에너지 효율을 80퍼센트 가까이 끌어올린다. 우리도 그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자본과 인력이 있다. 실제 지하로 이전하려고 하는 서울화력발전소에서 전기 생산과 더불어 열을 활용할 예정이다. 슈투트가르트와 뮌헨을 관통하는 넥타강과 이자강은 한강에 비해 수량이 훨씬 작고 폭도 좁다. 한강 정도의 규모의 하천이라면 1000만 서울시민들이 사용할 전기를 너끈히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난방과 온수도 충분히 공급 가능한 발전소를 허용할 게 틀림없다. 그리 될 경우, 먼 거리 송전으로 인한 전력 낭비 뿐 아니라 발전소 증설과 송전탑이 일으키는 지역 민원을 능히 잠재울 것이다. 물론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진 서울시민들의 거센 반대를 극복해야 가능할 테지만, 서울시민들은 발전소가 위치한 지역과 그 주민들의 불이익과 고통을 이해하고, 상응하는 보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배려해야 옳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발전소가 없어 먼 곳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하는 곳(서울과 수도권)의 전기요금이 발전소가 있는 지역과 다르지 않은 희한한 국가가 우리나라다. 정의롭지 않다. 화력발전소에서 배출하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물질로 불이익을 받는 지역임에도 희생만 강요하는 국가는 문명사회의 하늘 아래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정의로우려면 비용과 편익의 균형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 발전소를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는 보상이 제공되어야 옳다. 균형은 지역에서 그칠 수 없다. 세대의 균형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드리마일과 구소련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가 드러낸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은 재론이 불필요하다. 우리는 원자력발전소가 가동되는 한, 피할 수 없는 핵폐기물의 치명적 문제도 주목해야 한다. 수 십 만년의 세월이 지나도 수 억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의 치명성이 줄어들지 않는 핵폐기물은 현재의 과학기술로 처리할 방법이 없다. 앞으로도 처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데, 우리 정부는 아직도 원자력발전소 중설과 수명연장을 여전히 서슴지 않는다. 시대착오다. 미증유의 사고를 예견하는 한, 원자력발전은 후손에 대한 범죄에 가깝다. 화력발전이 나을 것도 없다.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대기에 농축되어 전에 없는 기상이변이 속출하는 마당이 아닌가. 바닥이 드러난 화석연료를 걷잡을 수 없게 태우는 화력발전은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의 활용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요, 시대의 명령이다.


지구촌의 석유는 이미 고갈을 앞두고 있다. 시추해 끌어 올리는 석유의 양에 비해 소비가 더 많아진지 오래 되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도 한계가 분명하고 바닥이 그리 깊지 않다. 원자력발전은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면, 우리는 전기를 어떻게 확보해야 후손의 삶이 지속가능할까. 시설을 갖추는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수력이나 지열, 그리고 조력에 한계가 분명하다면,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 자연의 에너지, 다시 말해 바람과 햇빛이 유용할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이 증명하는 사실인데, 그런 재생 가능한 에너지라고 해도 전기로 바꾸는데 어느 정도의 석유는 필요하다. 석유가 없다면 재생 가능한 전기도 구할 수 없는데, 석유는 고갈을 앞두고 있다. 다음세대까지 펑펑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멀지 않은 조상이 살아왔듯,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석유 없이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아야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먼 이야기로 들린다, 자식의 건강한 내일을 걱정하는 아비로서, 우리는 햇빛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자원의 활용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다행이, 반갑게도,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햇빛발전협동조합이 태동하고 있다. 조합원이 되어 출자를 하고 때로 햇빛발전을 위한 행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면 좀 뿌듯해질 것 같다. 전기도 아끼며 효율을 생각할 것 같다.


한데 많은 햇빛발전협동조합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지붕을 찾지 못한다고 수익이나 배당을 원치 않는 조합원들에게 하소연한다. 전 정권이 폐기한 발전차액지원제도의 부활에 앞서, 지방자치단체와 종교기관의 협조와 참여가 절실해 보인다. 이참에, 인천에 막대한 대기오염물질과 미세먼지를 배출하면서 이산화탄소를 거침없이 내뿜으면서 뒷짐지는 남동화력주식회사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흥화력발전소에서 막대한 온실가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 초미세먼지, 그리고 온배수를 배출하는 걸 잘 아는 정부와 전력회사는 정의를 생각하는 행동을 인천시민에게 보여야 마땅하다. 그를 위한 범시민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 (황해문화, 80, 2013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