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7. 9. 15. 13:36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 킴 바센티 지음, 윤정숙 옮김, 알마, 2007.


요즘은 덜 하지만, 10여 년 전에는 외국인 보기 참 부끄러웠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활주로에 닿기만 해도 좌석 사방에서 딸깍딸깍 안전벨트 푸는 소리가 들렸고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은 비행기는 속도가 여전히 맹렬한데 누가 선반을 열기만 하면 덩달아 일어난 대한민국 승객들로 좁은 복도가 메워졌던 거다. 앉아달라는 승무원의 거듭된 당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착륙한 비행기가 속도를 줄이는 도중에 바퀴가 동체 속으로 슬쩍 들어간다면 복도의 승객은 어떻게 될까.


여객기는 아니었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와중에 개발해 실전에 투입한 전투기의 바퀴가 착륙해 속도를 줄이던 동체로 빨려 들어가는 사고가 연거푸 발생한 것이다. 바퀴를 들어올리는 장치와 속도 줄이는 날개를 조정하는 장치의 생김새가 똑 같았을 뿐 아니라 나란히 배열되어 조종사의 실수를 유발했기 때문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군 당국은 임시로 바퀴를 내리는 장치에 고무를 붙이고 날개를 조정하는 장치에 쐐기를 다는 기지를 발휘했고, 이후 같은 사고는 재발하지 않았다고 “기술 분야의 인류학자”로 일컬어지는 킴 바센티는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에서 이야기한다.


사소한 일로 병원에서 환자가 사망한다면 죽은 자는 얼마나 억울하고 보호자는 얼마나 원통할까.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고 킴 바센티는 이야기를 잇는다. 높은 책임감과 윤리의식을 가진 의사도 일에 치이면 피곤하기 마련이다. 정맥주사와 척추주사가 겉보기 똑같다면 피곤한 의사는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다. 질이나 양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의 병원에서 해마다 5만에서 10만 가까운 환자가 의료사고로 사망하는데, 이는 대형 점보여객기가 하루걸러 추락하는 확률에 가깝고, 8번 째 사망원인이라고 한다. 되풀이되는 의료사고의 원인을 의사의 부주의로 돌릴 수 있을까. 의사의 과로를 유발하는 병원, 쓰임새에 따라 의료기기의 생김새를 달리하지 않은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


킴 바센티는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야한다고 역설한다. 1986년 4월 26일 새벽을 찢은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도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기술의 인간적 사회적 측면이 무시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계기판이 복잡해 사고 징후를 사전에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거다. 일상은 어떤가. 공작기계의 부품을 깎는 선반은 자체로 훌륭하지만 정작 사용하는 사람에게 불편하다. 선반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사람의 이상적인 키는 127.5센티미터에 어깨 폭 60센티미터, 팔을 편 길이가 240센티미터라야 한다고 킴 바센티는 꼬집는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 비행기의 조종실과 병원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사람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생각하는 인간’을 의미하는데,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걸 인간의 본성으로 보고, 호모 바베르(Homo faver)라고 지칭하는 철학자도 있다. 킴 바센티는 기술의 ‘휴먼 팩터’를 주장한다. 기술의 완벽성만 따지지 않고 사용자의 편의와 사회적 맥락까지 반영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다시 말해 ‘휴먼 테크’(Human Tech.)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킴 바센티의 책 원제목은 《Human Factor》다. 출판사는 철학적 의미를 중시해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로 정한 모양이다.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헤비메탈 로커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들으며 설계에 반영한 기타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밖에 없다. 짧은 시간에 어금니 안쪽까지 닦을 수 있는 리치칫솔은 작은 머리가 비스듬하다. 사용자의 처지에서 만든 결과다. 오줌 궤적을 고려한 남성용 소변기는 깨끗한 바지를 더럽히지 않는다. 어떤 소변기에는 포인트에 파리를 그려 넣었다. ‘휴먼 테크’다. 부엌에서 사용하는 지퍼락이 닫혔는지 언뜻 확인되지 않는다. 한쪽은 노란색, 다른 쪽은 파란색을 넣었더니 닫힌 부분은 초록색으로 보인다. ‘휴먼 팩터’다.


협조와 의사소통을 부족하게 만드는 환경은 대형 사고를 부른다. 여객기와 수술실에서 특히 그렇다. 문제를 제기하려는 부기장의 입을 막는 기장의 권위주의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연결되곤 했다. 주도권을 둘러싼 마취 전문의와 수술 전문의 사이의 갈등은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원인으로 비롯되는 사고를 미연에 막으려면 평소 조종실이나 수술실의 분위기를 인간적으로 바꿔야한다. 발생했거나 발생할 수 있는 사례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실수와 갈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과거의 실수를 걸어 처벌하기보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유도해야 한다. 실수를 자임하는 순간 처벌을 감당해야 한다면 제 경험을 고백하겠는가.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과 물리적 세계에 대한 지식을 개별적으로 보거나 불균형적으로 보는 대신 하나로 화해시키”는 휴먼 테크를 주문하면서 킴 바센티는 기계론적 사고는 남성에서, 휴먼 테크의 사고는 여성에서 압도적으로 표출된다는 점을 굳이 지적한다. 전문가 영역에서 멈추는 차갑고 견고한 기술이 사용자에게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기술 분야 인류학자의 제언일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에 갇힌 사람은 사람과 기술 사이의 불화를 보지 못한다면서 대학은 기술교육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킴 바센티는 제안하는데, 우리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공학윤리’도 그 좋은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최근 서울대학교는 공학윤리 과목을 채택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과학센터’가 10년 전부터 요구한 사항이 비로소 빛을 발한 것인가. 선택필수에 불과하더라도 이제 시작이다. 다른 대학교의 움직임도 기대하게 된다. 공학만이 아니다. 의과대학 학생에게 필수인 의료윤리처럼 생명공학 전공 학생들도 생명윤리를 공부해야 하고 환경공학 전공 학생들은 환경윤리를 반드시 이수해야 할 것이다. 경직된 기계론적 사고에서 벗어나 휴먼 팩터를 학생 시절부터 인식해야 하므로.


환경에 부정적인 기술의 문제도 간단히 예시하면서도 기술의 생태학적 측면을 다루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다양한 예를 제공하며 기술의 인문학적 의미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는 자칫 기술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운 독자들을 깨어나게 한다. 난방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석유난로는 옮길 때 곤란할 때가 많다. 손잡이에 찔리곤 한다. 아직도 낯선 도시에 들어서면 도로안내판이 헷갈린다. 길을 모르는 이의 처지에서 안내판을 배려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아직 휴먼 팩터에 약하다. 그래서 《호모파베르의 불행한 진화》는 읽을 가치가 더욱 충분하다. (출판저널, 2007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