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1. 24. 23:52

 

2012 임진년의 날이 밝았다. 2011 신묘년 토끼의 바통을 받은 용은 2012년을 어떻게 견인하려는지 짐작할 수 없지만, 진저리치게 만든 신묘년과 다르리라 기대하는데, 어떨지. 아무래도 하늘을 나는 용이므로 토끼와 많이 다르길 바라는 마음이다.

 

초원이나 산록을 깡충깡충 뛰는 토끼는 직선으로 내달리지 않는다. 그랬다간 순간속도가 훨씬 빠른 천적의 먹이로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토끼의 뒤를 이은 용도 마찬가지다. 생긴 모습처럼 하늘을 굽이굽이 날며 세상의 이치를 굽어 살피겠지. 경상북도 예천군을 스치는 낙동강의 큰 지류, 내성천의 회룡포는 물도리 마을을 크게 휘감아 흐른다. 그래서 회룡포다. 구부러진 용의 형상을 한 내성천. 우리 조상은 강을 용으로 보았고, 용은 강으로 굽이굽이 흘렀다.

 

굽이치는 강은 가장자리와 바닥에 두툼한 모래를 쌓았고 물살에 떠밀리는 모래는 강물을 머금으며 정화했다. 덕분에 경사 급한 산악지형이 65퍼센트인 우리나라는 금수강산일 수 있었다. 여름 한 철에 강우의 절반 이상이 집중돼도 사시사철 맑은 물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진 지구에서 빗물은 어디서나 구부러져 흐르지만 우리나라는 그 정도가 극적이다. 산간에서 거대한 바위를 이리저리 감돌다 바위가 얹힌 호박돌을 타고 넘는 강물은 자갈이 깔린 중상류를 휘감아 지나면서 금모래은모래를 남긴 뒤, 고운 갯벌을 몰고 바다로 흘러든다.

 

용은 농경문화의 상징이다. 용이 승천하면 이윽고 비가 내린다. 빙하가 뒤덮지 않아 고생대 지층을 간직하는 우리 산하는 마그마가 땅속에서 천천히 식은 결정체, 바로 화강암이 풍화돼 산록을 덮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에 생긴 틈에 들어간 수분은 오랜 세월 얼며 녹기를 반복했고, 풍화된 모래에 고생대 이후의 생물들이 헤아릴 수 없는 뿌리를 내리며 영양분을 남겼다. 모래는 그러면서 비옥한 흙으로 바꿨고, 흙은 강물을 타고 바다로 나가 서해안과 남해안에 너른 갯벌로 펼쳐졌다.

 

들쑥날쑥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에 드넓게 형성된 갯벌은 숱한 어패류의 산란장이요 터전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10미터에 가까운 만큼 갯벌은 살아있다. 갯벌 속의 스펀지처럼 무수한 작은 구멍과 통로는 플랑크톤에서 다채로운 어패류들까지 숨 쉬는 허파꽈리다. 덕분에 갯벌에 깃든 어패류는 우리의 식량이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1365, 나이나 성별이나 학력과 관계없이, 기술과 자본이 있든 없든, 누구나 썰물을 따라 나서면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만큼 어패류를 가져올 수 있었다. 빗물이 펼치는 굽이굽이의 다양한 생태계에 가장 늦게 동참한 사람도 자연의 흐름에 순응한 덕분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건강하게 이어갈 수 있었다.

 

영겁의 세월동안 굽이쳐 흐르던 강이 최근 일직선으로 바뀌고 말았다. 150년 전 운하를 위해 라인강을 직선으로 만들었던 독일이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건만, 타사지석을 백안시하는 정권은 막대한 모래를 강 밖으로 퍼올리더니 철근콘크리트로 구부러진 강을 직선으로 펴면서 물길을 차단했다. 크고 작은 폭포와 깊은 소, 여울과 잔잔한 모래톱으로 어우러졌던 우리의 4대 강은 6미터 깊이로 파헤쳐졌고, 10미터가 넘는 16개의 보에 막혔다. 이제 강은 거대한 계단처럼 16개의 호수로 흐름을 잃었다. 강물을 정화하던 모래는 강둑 너머에 쌓여 먼지를 풀풀 토하고, 생태계가 획일화된 강은 품고 살던 생물들을 잃었다.

 

세계 5대라고 자랑하던 리아스식 해안의 갯벌은 매립돼 막무가내로 사라졌다. 최근 제방이 무너질 위험에 있는 새만금 간척지를 비롯해 서산 간척지, 인천신공항, 송도신도시, 남동공단, 청라국제도시와 같이 요사이 매립된 갯벌만이 아니다. 김포평야와 만경평야도 일제가 매립한 갯벌이었다. 인천은 매립으로 면적을 거듭 키웠고 서해안에서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갯벌은 옛 모습을 거의 잃었다. 이제 서해안과 남해안은 리아스식이 아니다. 자 대고 줄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해안선은 단조로워졌다.

 

갯벌이 사라지면서 산란장과 터전을 잃은 바다의 생물들은 멀리 떠났지만 돌아오지 못한다. 갯벌을 둘러막은 거대한 제방, 그 안쪽을 바닷물 높이 이상 무언가로 높이기 위해 매립 면적 이상 넓은 제방 밖의 갯벌에서 모래와 개펄을 걷잡을 수 없게 퍼올렸기 때문이다. 모래와 개펄을 잃은 바다 생물들은 그만 모천을 잃었고, 우리는 어패류를 더는 건지지 못한다. 관촌수필에서 이문구는 하룻밤 사이 6가마니 잡을 수 있을 만큼 꽃게가 흔했던 충청도의 갯벌을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꽃게는 연평도의 깊은 바다에 가야 찾을 수 있다. 흔했던 조기와 갈치, 낙지와 백합도 드물어졌고, 시큰둥했던 주꾸미와 밴댕이까지 어느새 감지덕지한 존재가 되었다.

 

직선으로 변형된 자연은 곡선으로 돌아가려 한다. 10년도 못 돼 뜯겨져나갈 위험에 처한 새만금 간척지의 제방도 그 이유일 진데, 4대강은 어떨까. 빗물은 모래를 계속 하류로 흘려보낼 터인데 고작 10미터의 보가 견딜 수 있겠나. 완공되었다고 팡파르를 불어댔지만 공사비를 건네지 않으면 장비는 철수할 것이다. 빗물에 밀려드는 모래가 쌓이면서 호수로 변한 강은 바닥이 급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때 큰물이 들면 제방과 둑은 무너질 수 있고, 본류로 모래가 휩쓸리는 상류와 지천의 제방과 다리도 속속 붕괴될 것이다.

 

후쿠시마 현의 4개 핵발전소를 폭발하게 만든 지진에 이은 쓰나미는 해안을 함부로 개발했기에 위력이 커졌다. 지진이 잦은 리아스식 해안의 활성단층 위에 핵발전소를 세운 무모함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었다. 갯벌이 넓지 않은 일본은 쓰나미가 밀려드는 해안에 마을을 만들면 안 될 일이었다. 제방도 한시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파도를 완충하는 갯벌을 밑동까지 매립한 우리는 어떨 것인가. 쓰나미가 일본의 해안처럼 밀어닥치면 우리는 피할 도리가 있을까. 겉보기 찬란한 송도신도시와 인천공항, 그리고 꿈이 비현실적으로 창대한 새만금 일원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심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너울성 파고를 두세 배 키운 태풍이 엄습할 경우, 쓰나미 공격을 받은 작년 311일의 일본 동북부 이상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다.

 

자연의 곡선에 기대 살 때 가장 편안했던 사람은 욕심을 부려 자연을 조금씩 직선으로 개조하면서 재해를 자초했다. 이제 막강한 장비와 돈과 과학기술을 총동원해 자연을 무자비하게 직선으로 만들면서 자연의 지배자가 된 듯 오만해 하는데, 자연의 복원력은 사람의 탐욕을 가볍게 넘어선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진과 쓰나미, 태풍과 산사태는 곡선을 회복하려는 자연의 몸짓이다. 지구온난화와 사막화는 아니 그럴까.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 살피는 용은 자연의 자리를 함부로 짓밟는 사람의 탐욕을 벌했다. 2012 임진년을 맞아 우리는 자연을 획일화하려는 탐욕에서 벗어날 궁리에 나서야 한다. 늦기 전에 자연은 곡선일 때 가장 아름답고, 우리에게 안전과 평화를 선사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아야 한다. 하늘의 용이 진노하지 않도록. (작은책, 20121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1. 13. 07:41

 

시간에 매듭은 없지만, 2012년에 무언가 기대하고 싶다. 용띠의 해. 그것도 흑룡 띠의 해라서 그런 건 아니다. 2011년이 워낙 실망스러웠기에 그렇다. 안전 의식과 설비가 세계 최고라는 일본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는 엄청난 희생자와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일본에 안겼지만 이어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연속 폭발은 세계인에게 오만한 인간 기술의 한계와 내일에 대한 불안을 엄습하게 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2011년 말, 핵발전소를 추가하기로 했다. 핵산업체의 이권을 담보로 전 국민을 핵 도가니 속에 가두겠다고 선언했다.

 

핵만이 아니다. 4대강을 가로막은 대형보가 16군데에서 2011년 거의 완공되었다. 모습은 갖췄지만 계속 치명적인 하자가 발생해 완공을 공식으로 선언하지 않고 있는 그 대형 보들은 가당치도 않게, 강물을 막대하게 담을 것이다. ‘경인아라뱃길로 치장한 경인운하가 완공된 인천도 그렇다. 겨울 혹한기에 한강에서 들어온 강물이 얼어붙고, 인근 수도권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오폐수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합류되는 경인운하는 승객이 거의 없는 유람선이 하릴없이 왕복한다. 그로 인한 적자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물류비를 절약하고 온실가스를 줄인다는 애초의 효과가 실종된 데에 문제가 그치는 것도 아니다. 운하에 물이 고여 있는 한, 인천 앞바다가 만조일 때 퍼부을 폭우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거다.

 

농경사회에서 용은 소중한 상징물이다. 용이 왕을 상징한다지만, 농경사회에서 왕은 치수에 통치의 생명을 걸어야 했다. 호수 안에 도사리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않으면 가뭄이 든다. 왕은 용의 승천을 빌어야 했다. 올해는 용 중에서 흑룡이다. 저수지 깊은 물의 색은 검다. 깊은 저수지에 머물던 흑룡이 승천하면 많은 비를 내려줄 거라 조상들은 기대했고, 그 해에 아기를 낳으면 잘 살려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흑룡을 상서로워했다. 논이 드넓은 농경사회에서 내리는 비는 백성은 물론이고 왕의 생사까지 담보했으니, 기우제는 천수답에 물을 허락해줄 물을 저수지 가득 채워주기를 빈 농경사회의 행사였을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쌀을 거의 자급하지만 그건 논이 충분하기 때문이 전혀 아니다. 소비가 현저히 줄어든 까닭이다. 인천만 해도 주안과 도화동, 만수동과 장수동 일원의 논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중동과 상동, 삼산동과 계양동 일원의 김포평야는 어디로 갔는가. 하지만 우린 쌀이 부족하지 않다. 쌀을 제외한 식량의 자급률이 5퍼센트에 지나지 않듯, 대부분의 식량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그런 식량을 생산해 가공한 뒤 수출하는 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상당하므로 우리는 식량을 수입하면서 물까지 수입하는 셈이다. 이른바 가상수. 그렇듯 빗물의 가치가 상실된 우리나라에서 이제 용도 상징의 가치를 잃었다. 흑룡도 더는 상서롭지 않다.

 

철근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이 된 도시에서 용이 천덕꾸러기가 된 건 빗물이 귀찮아졌기 때문일 텐데, 생각해보자. 인천을 포함한 우리 도시는 빗물을 그저 흘려보내고 만다. 화려하게 치장한 청계천도 이름만 근사한 경인운하도 마찬가지다. 4대강이 대형 보에 가로막힌 올해 농촌도 걱정이다. 농업용수를 제때 공급하지 못할 게 아닌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물 풍선을 동반하는 국지성호우를 해마다 우리 상공에 매섭게 퍼붓는데, 흑룡의 해인 올해는 어떨까. 그리 많지 않은 비에도 광화문 일원이 넘친 서울을 포함해, 배수가 희생된 경인운하를 떠맡을 인천은 어떨까. 대형 보에 썩어갈 강물이 모인 4대강 인근의 농촌은 어떨까.

 

흑룡은 분명 상서로워야 하는데 농경사회를 팽겨 친 오늘, 벌써부터 불안하다. 기상이변으로 세계 곡창지대에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식량의 자급을 포기한 무모함도 걱정이지만 도시든 농촌이든 심화되는 집중호우에 충분한 대비가 없다. 4대강의 대형 보를 헐어내거나 도시에 빗물을 완충하는 습지를 곳곳에 마련해야 엉뚱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데, 2012, 우리사회는 2011년의 과오를 과연 반성할까. 천덕꾸러기가 된 흑룡은 올해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내릴까. 경고에서 그칠까. (기호일보, 201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