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8. 12. 31. 22:59

 

빽빽하게 줄지어 놓였던 일본 도쿄의 벌통 중에 500여 개가 지난여름부터 텅 비어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언론은 농약에 몰살했거나 말벌의 습격 가능성을 점치지만 주변에 사체가 없는 점을 주목한 전문가는 환경 변화로 인한 집단 이주의 가능성을 거론했다고 한다. 이른바 꿀벌집단붕괴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농가 피해가 이어지는 건 물으나 마나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은 십여 년 전부터 그 심각성을 누차 보도해왔다. 넘치는 꿀과 꽃가루, 건강한 애벌레를 벌통에 두고 집단으로 사라지는 일이 양봉장에 드물지 않다 했다. 10년 사이 미국은 30% 가까운 꿀벌을 잃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쯤 멸종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유엔은 520일을 세계 벌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본도 이미 수년 전부터 집단붕괴현상이 발생했고 우리나라도 비슷한 사례를 겪었다고 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연구가 이어졌다. 연구자들은 벌통에 새로 투입한 네오니코티노이드라는 살충제를 의심했다. 애벌레 몸속에 알 낳는 응애를 제거하려는 의도였는데, 그 농약의 제조회사가 발끈했다고 한다. 멀쩡한 사례가 유럽에 많은데 왜 그리 호들갑인지 되물었다지만 멀쩡하지 않은 사례가 분석의 초점이어야 옳다, 무슨 이유로 사라진 걸까? ‘네오라면 새롭다는 뜻일 게고, 니코티노이드? 벌레를 쫓아내는데 효과가 있다는 담배성분이다. 네오니코티노이드는 새로운 담배성분인가? 그 성분은 왜 천적이 아니라 꿀벌을 단체로 가출하게 만들었을까?


캘리포니아 아몬드 재배단지에 물이 부족하다고 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농수로가 바싹 마르고 지하수 관정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은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겨우내 막대하게 내리던 미 북부 로키산맥의 눈이 비로 바뀌면서 심각해졌다는데 그 여파는 세계 견과류 시장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세계 소비량의 80%를 책임지는 아몬드 농민들의 고민은 사소하지 않다. 건과를 고집하는 맥주 마니아의 불만을 넘어 꿀벌집단붕괴현상에 놀란 양봉업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 따던 20102월을 상기해보자. 그해 캐나다 밴쿠버 근처 로키산맥은 비에 젖었고 노르딕 스키에 지장이 생겼다. 눈 제조기 덕분에 대회를 치렀지만 그해 북미 서북부의 가뭄은 혹독했을 것이다. 얼어붙은 로키산맥의 빙하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농사짓던 캘리포니아는 젖과 꿀이 흘렀지만 요즘은 아니다. 겨울마다 산불에 휩싸인다. 서울보다 넓은 면적의 주택이 만 채 이상 소실되고 100여 명의 사망 실종자를 낳은 2018년 산불은 세계적 포도주 생산단지인 나파벨리를 불태운 2017년보다 컸는데, 올해는 무사할까?


아몬드는 살구 씨와 비슷하다. 우리 살구를 잘 육종하면 아몬드 비슷한 견과로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인데, 아무래도 캘리포니아 아몬드의 경쟁력을 능가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전후좌우 2미터 간격으로 끝 간 데 없이 나무를 심을 농토를 찾기 어렵기 때문만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처럼 짧은 시기에 일제히 꽃잎을 편다면, 한꺼번에 꽃가루를 수정할 꿀벌은 우리나라에 없다.


북미 원주민들은 꿀벌을 백인의 파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유럽 꿀벌로 세계 최대 양봉산업을 일궜지만 미국 양봉업자들은 얼마 전부터 사업 방향을 바꿔야 했다. 중국에서 저렴하게 들어와 경쟁에서 밀리자 꽃가루 수정에 주력한 것인데, 아몬드 농장은 목돈을 벌어들이는 대상으로 등극했다. 이윽고 2월 중순마다 거대한 카라반처럼 아몬드 농장으로 미국 전역의 벌통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미국 양봉산업의 규모는 아카시 꽃을 따라 2.5톤 트럭을 빌리는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수만 벌통을 실은 화물열차와 비행기가 미국은 물론 캐나다와 중남미, 심지어 유럽에서 모인다. 2월 중순부터 2주 동안 활발한 꽃가루 수정을 위해 캐나다는 벌통 속의 꿀벌을 미리 따뜻하게, 멕시코는 시원하게 해주어야 했다. 문제는 2주일 이후에 커진다. 지역의 온갖 질병을 아몬드 농장에서 공유한 뒤 흩어지는 까닭이다.


많은 꿀을 빠르게 채취하는 꿀벌을 남보다 더 보유해야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양봉산업은 꿀벌의 유전자를 극도로 획일화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벌통 늘리는 효율이 낮다며 분봉을 외면한다. 벌꿀 채취 능력을 높인 여왕벌과 일벌을 사업체에서 일괄 구입해 벌통을 늘리는데, 그와 같은 벌은 유전자가 거의 동일하다. 유전자가 동일한 만큼 기생하는 곤충이나 곰팡이, 세균과 바이러스에 취약한 것도 같다. 비슷한 살충제와 항생제에 찌들어 있는 상태라는 것도 같다.


수많은 농약에 일찌감치 기진맥진한 꿀벌에 추가한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집단붕괴현상을 일으킬 줄이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네오니코티노이드가 아니라 유전자 조작 농산물과 스마트폰 기지국의 전자파를 의심하는 눈길도 있지만 의심에서 그친다. 막대한 다국적기업의 위세를 감내하고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연구자에게 연구비를 제공하는 국가와 자본은 없다. 누가 감히 밝힐 수 있으랴.


경쟁력을 독점하려는 획일화는 꿀벌의 타고난 유전자를 극도로 단순화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아몬드도 마찬가지다. 많은 수확을 위해 뿌리는 농약과 제초제는 따지지 말자. 유전자가 단순해진 농작물은 환경변화에 아주 약하다.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야 경쟁력을 잃지 않으므로 환경이 바뀔 때마다 농장주는 투자비를 늘려야 한다. 아몬드뿐이랴. 콩과 옥수수 같은 곡식, 사과와 파인애플 같은 과일, 바나나와 토마토 같은 과일채소, 시금치와 고추 같은 채소도 마찬가지다.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감염 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살처분하는 가축도 산업화된 반려동물도 예외가 아니다.


토착 농부의 오랜 노력으로 지역에 최적화된 농작물과 가축은 여간해서 질병에 스러지지 않는다. 다양한 유전자가 축적된 결과다. 그래서 그런가. 산업농은 질병으로 사라진 농작물의 대안을 재래농업에서 찾는다. 반면 생명공학으로 유전다양성을 제거한 농작물은 극히 위험하다. 지구온난화 이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 극단적인 육종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미국 꿀벌의 집단붕괴현상을 아시아 토종벌과 육종해 극복하려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고 전문가는 걱정한다.


다양성을 잃으면 환경변화 이후 위험에 빠지는 분야는 농축산만이 아니다. 획일적 사상에 이해심이 부족하고 고착된 문화에 유연성이 약하듯, 정치와 경제도 사정은 비슷하다. 군사정권에 입맛에 길든 우리 정치는 시방 다양성을 받아들이는가? 유권자 대다수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의 권리를 반영하지 않는 국회는 대의제민주주의를 실현할 자세를 갖지 못했다. 사고뭉치일 뿐 아니라 경제성마저 상실한 핵발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우리 경제는 지구온난화 시대에 생존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약한 태양광으로 전기를 자급하며 일자리를 늘리려는 독일은 유권자의 뜻에 따라 연동형비례제로 대의제민주주의를 펼친다.


18세 이하 청소년이 살아갈 시간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긴데, 그들에게 투표권이 없다. 따라서 청소년의 권리가 우리 입법부에서 진정성 있게 논의하기 어렵다. 태어나지 않은 생명의 권리는 누가 챙기려나? 자연은 어떤가? 갯벌이 매립되고 산은 허리를 잃었으며 강은 흐름을 잃었다. 사람의 마지막 비빌언덕인 생태계는 동식물의 다채로운 터전인데, 그들의 권리는 무너졌다. 다양성을 잃은 생명에게 내일은 보장되지 않는데. (작은책, 2019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