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4. 1. 3. 10:11


  갑오년 첫 주말을 맞았다. 달력이 새로워졌지만 그렇다고 일주일 전과 세상살이가 달라진 건 아니다. 지친 연말모임은 신년회로 이어져 여전히 노곤하다. 시간에 매듭은 분명히 없지만 달력은 바꿨다. 이때 사회의 근간인 제도가 더러 바뀌고 제도에 묶여 사는 사람은 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곤 한다. 120년 우리 사회는 당시의 모순을 극복하려 민중의 커다란 행동이 있었는데, 올해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


이번 겨울은 많지 않아도 눈이 잦은 듯하고 겨울도 제법 차갑다. 전문가들의 지구온난화 걱정은 작년에 이어 올 겨울에도 피부에 와닿지 않지만,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덜 추운 듯하다. 앞으로 한 세대 뒤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데, 30년 후를 미리 걱정해 현재의 생활습관을 바꾸려는 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흔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우린 한가롭다. 산업화 속도가 두드러지지 않았던 30년 전과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중국의 맹렬한 산업화를 생각한다면, 30년 뒤 환경은 지금과 사뭇 다를 텐데, 우리는 위기의식조차 없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으리라 믿기 때문인데, 그럴까.


환경이든 일상사이든, 세월이 흐르며 변하고 지역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어떤 변화든, 균형을 꼭 이룬다. 어떤 충격으로 균형이 흐트러진다면 회복하는 방향으로 환경도 사회도 변화한다. 새로운 제도가 출범해도 마찬가지다. 익숙하지 않아 초기 혼란스럽다 안정을 찾을 텐데, 만일 그 제도가 사회 균형을 흩트린다면, 다시 말해 정의롭지 않다면 사회 구성원은 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쓸 것이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가 그를 잘 증명한다. 120년 전 갑오농민혁명이 그랬다. 군사독재를 물리친 숱한 민주화운동이 그랬다. 자본 독점에 항의하던 세계인의 금융가 점거운동이 그랬다.


갑자기 흩으려진 4대강의 지형이나 생태계도 균형을 유지하려도 부단히 변할 텐데, 대형 댐과 보, 흐름이 차단된 4대강의 변형된 모습을 그대로 두고 균형을 잡은 4대강이 수천 년 이상 기대며 살던 우리의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니다. 수억 세월을 흐른 자연이 변형된 4대강을 그대로 둘 까닭이 없다. 철근콘크리트를 걷어내며 자연스럽던 모습으로 균형을 잡을 텐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가 인근 주민과 엉망 속에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던 생태계에 충격 다시 안길 것이다. 그 피해는 국가의 경제에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게 틀림없는데, 올해도 작년처럼 큰 탈 없이 지날지 확신할 수 없다.


변형된 자연은 4대강에서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세월동안 파도와 해일을 완충해주던 갯벌이 거의 사라졌다. 끊임없이 매립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풍경을 잊었지만, 자연은 그만큼 균형을 잃었다. 우리와 일본의 산업화 속도를 초월하며 막대하게 내뿜는 중국의 온실가스는 태풍의 위력을 최근 부쩍 키웠고 기상이변을 속출하게 만들었다. 갯벌을 매립한 송도신도시, 인천공항, 개발 단꿈에 젖은 새만금은 언제까지 안전을 장담할 수 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안전을 관리해도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해진다. 나태해지고 안일해진다. 사고는 그때 발생한다. 세계 추세와 반대로 확장하기만 하는 우리의 핵발전소는 내내 안전할까.


우리는 균형 잡혔던 자연의 모습을 거의 잃었다. 과학기술이 동원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퍼부으며 그럭저럭 견디지만, 석유는 고갈을 눈앞에 두었다. 위험천만한 핵은 더 큰 문제를 후손에 떠넘길 것이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 믿고 싶지만 풍경은 이미 바꿨다. 자연의 균형은 무너졌다. 회복하려는 자연의 반작용인 기상이변은 머지않아 우리의 방어능력을 훨씬 압도할 것이다.


사회모순을 극복하려 애를 쓰는 우리는 무너진 자연의 균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극복해야 할 사회의 모순과 자연의 불균형은 원인이 같은 경우가 많다. “가보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하다다 병신되어 못 가리” 120년 조상은 절박하게 노래했다. 조상과 선배 덕분에 미완이나마 독립과 민주화 성과를 얻은 우리, 새로운 갑오년을 맞아 다시 심기일전할 필요가 있겠다. (기호일보, 20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