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8. 8. 17. 17:03


장마철을 끼고 한 달 동안 이어진 21회 월드컵이 프랑스의 우승으로 마감되었다. 커다란 잔치를 준비해 성황리에 마친 러시아는 뒤처리에 마지막 수고를 다할 텐데, 자국 팀이 8강에 오른 만큼 성공이라 자평할까? 러시아 체육계는 그럴지 모른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러시아는 자국 축구 리그의 열기를 유럽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을 것이다. 근사하게 신축하거나 개축한 축구 전용경기장에 관중이 늘 들어찬다면 순조롭겠지. 한데 카타르가 준비할 다음 월드컵이 은근히 걱정이다.


16년 전 일본과 경기를 나눠 개최한 한일 월드컵으로 우리도 축구전용경기장을 여기저기에 신축했고 국내 리그의 활성화를 기대했다. 물론 국내 축구리그는 활발하다. 하지만 어떤가? 유럽의 리그에 견주기 어렵더라도 구단의 운영이 역동적이라 자신할 수 없다. 관중이 가득 들어차는 경우가 드무니 축구경기장이나 구단 모두 적자 운영을 감당해야 한다. 유럽 리그와 비교해 수준 차이가 눈에 띄기 때문만이 아니다. 구단에서 모집한 서포터스가 아니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경기장을 찾을 의지와 경제적 여유가 크게 부족하다.


202211월 중순 이후에 개막할 22회 카타르 월드컵은 성공할 수 있을까?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열기가 사막의 더위를 압도한다면 성공한 대회로 국제축구연맹(FIFA, 피파)은 평가할지 모르지만 좀 냉정해보자. 월드컵을 계기로 카타르 내의 축구 열기가 폭발할까? 현재 카타르 축구 리그가 얼마나 활발한지 모르지만, 심판을 매수하거나 걸출한 해외 선수들을 대폭 귀화시키더라도 기량 폭증과 관심 폭발은 어렵다. 월드컵을 비롯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국제경기의 평가는 객관적이어야 한다.


언론에서 띄우는 열기와 관계없이 이번 러시아 월드컵은 관심 갖지 않으려 했다. 해외 유명 선수의 활약상을 두루 꿰지만 국내 선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주변 축구팬과 달리 국내외 어떤 축구 리그도 알지 못하므로 개막이 다가와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16강 진출 실패와 관계없이 세계 최강 독일을 크게 이긴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경탄했고, 그보다 앞서 아이슬란드 선수의 선전에 경의를 표했다. 30만 인구에서 모집한 선수단은 진정한 아마추어 정신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키지 않았나.


한여름 섭씨 50도를 오르내릴 중동의 살인적 폭염을 피해 1121일 개막할 예정이라는 카타르 월드컵은 시작 전부터 순탄치 않을 모양이다. 리그가 한창인 유럽이 피파에 빗발치게 항의할 것으로 언론은 예측하는데, 사실 인구 200만 안팎인 카타르가 월드컵을 유치했다는 사실은 좀 기괴했다. “피파는 마피아라는 오명이 있어도, 카타르의 오일머니가 아무리 넘쳐도, 이성적으로 수긍하기 어렵다. 카타르 정부는 40도에 달할 관중석을 에어컨으로 식히겠다고 호언하지만, 90분 이상 달릴 선수들은 어떡하나?


2017년 현재 외국 노동자까지 합한 카타르의 인구가 260만을 돌파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22회 월드컵 이후의 카타르 축구경기장은 관중으로 넘칠까? 5000만 인구를 가진 우리나라는 실패했다. 500억 달러를 동원해 2014년 동계올림픽 경기장을 아열대 지역인 소치에서 집중 배치한 러시아는 대부분의 경기장을 철거했다는데, 카타르도 많은 경기장을 철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도 강릉의 경기장 일부를 철거해야 한다. 모두 존치하면 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다. 2014년 아시안게임 이후 신축 경기장 대부분을 존치한 인천시는 비워두는 경기장의 유지를 위해 과다한 예산을 해마다 허비한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폐막하고 6개월이 흘렀을 즈음, 미국 ABC방송은 모든 것이 멈췄고, 누구도 남아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이곳은 버려졌다.”는 제목의 뉴스를 내보냈다. 열광이 식은 올림픽공원에 발길이 끊어지자 온갖 쓰레기들이 들끓고 폐수로 변한 수영장 물에서 악취가 진동한다고 보도했다. 개폐회식이 열렸던 마라카낭 경기장은 도적 떼에 쓸 만한 전자제품과 의자들을 잃고 6개월 만에 을씨년스럽게 버림받는다던데, 방치되는 인천의 아시안게임 주경기장도 을씨년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하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은 경제적 이유로 반납한 베트남 하노이를 대신했는데, 내내 괜찮을까?


돈 많은 국가의 독재자가 과시욕으로 유치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에서 빠지지 않는 건 상업주의다. 텔레비전 중계권료는 물론이고 대회를 상징하는 마스코트나 상징 동물의 상품권 액수는 상상을 초월하는데, 참가한 유명 선수는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그들은 계약에 따라 특정 상표의 옷이나 신발을 신어야만 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코트디브아르 대표로 참가한 디디에 드록바는 팔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경기에 뛰어야 했다. 특정 축구화의 로고를 텔레비전 화면에 띄워야했기 때문이었다.


2020724일부터 89일까지 예정된 도쿄올림픽은 참가 선수에 영광만 선사할까? 후쿠시마 핵발전소 4기가 폭발했어도 9년이 경과했으므로 안전할까?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은 자료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피해 없을 거라 장담했지만 방사능은 고위층의 명령에 복종하며 느닷없이 안전해지는 물질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은 방사능 허용기준치가 안전한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시민단체는 “10층 빌딩에서 뛰어내린 사람이 땅바닥에 닿기 전이므로 살아 있다 외치는 꼴이라고 비꼬았다. 자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참가자의 건강에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도쿄와 후쿠시마는 안전한 도시로 개과천선하는 걸까?


일본 정부는 노골적이다. 야구와 소프트볼 경기를 후쿠시마 지역에서 개최할 것이라더니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에서 시작하겠다고 선포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의 부흥 올림픽이란 기치를 내걸었다는데, 누구를 향한 선전포고일까? 올림픽 관계자는 선수들이 이용할 식당의 음식을 자국민도 한사코 외면하는 후쿠시마 농산물로 요리할 예정임을 천명한 바 있다. 방사능 허용기준치 이내라는 수치를 강조하겠지만, 일본 정부가 앞세우는 수치는 관리자의 편의를 고려한 양해사항일 뿐이다. 방사능 허용기준치가 먹는 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철저히 숨길 것이다.



사진: 방사능과 동행할 2020 도쿄올림픽을 비판하는 그림들.


23회 동계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했다 자화자찬했지만, 스키할강 경기를 고작 일주일 치룬 정선군 가리왕산은 언제 아물지 모를 상처를 안고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유전자원보호수림을 해발 800미터 넘게 파헤친 기슭은 이번 장마로 돌이키기 어렵게 황폐해졌다. 애초 대회 마치자마자 복원할 예정이라고 다짐했지만 강원도는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기왕 개발한 스키장이니 활용하자는 목소리를 핑계 삼지만, 산림을 잃은 기슭은 재활용도 복원도 엄두내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가 깊다.


이목이 집중되는 국제경기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경쟁은 아마추어 정신을 내버리게 한다. 거액의 포상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상황에서 선의의 경쟁은 구호에 불과하다. 상업주의가 주도하고 과시욕이 부추기는 국제경기는 그들만의 잔치에 그치고 피해는 주최국의 자연과 시민에게 전가된다. 이제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국제경기에 무조건 열광하지 말자.


아마추어 정신을 버린 국제경기에 국토를 제공하고 참가 선수들에게 세금을 지원하는 관행은 재검토되어야 옳다. 굳이 참가하려면 납세자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마땅하다. 그런 이유로 이번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관심을 쏟기 싫었다. (야곱의우물, 2018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