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6. 19. 10:26

 

강원도 영월군에는 동강 뿐 아니라 서강도 흐른다. 1990년대 중순 전국을 들썩인 영월댐 반대운동으로 유명세를 치룬 동강이 영월 땅을 적신다는 뜻은 그에 대응하는 서강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건만 사람들은 황새여울, 된꼬까리, 어라연으로 이어지는 동강의 절경만 기억한다. 그렇다고 서강이 부러워하거나 동강에 질투를 느끼는 건 아니다. 정작 영월 사람들에게 래프팅 인파로 북적거리는 동강보다 단종애사의 현장을 장엄하게 간직하는 청룡포에 애착이 더한 까닭이다. 깊은 물속에 수달이 노니는 청룡포는 서강의 비경 중의 하나다.

 

해발 1261미터의 횡성군 태기산에서 발원해 영월군 수주면에서 법흥천을 받아들인 뒤 서면 옹정리에서 평창강으로 흘러드는 주천강은 서강의 지류다. 왜 주천(酒泉)인가. 영월군 주천면 망산의 한 기슭 바위에서 술이 술술 흘러나왔다 하니 그렇다. 주천강의 물은 술 빚기 그만일 만큼 맑았던 모양이다. 주천강은 다시 평창강과 이어진다. 평창군 용평면의 해발 1577미터 계방산에서 발원해 흥정천과 대화천과 계촌천을 받아들인 뒤 평창읍을 가로지르다 영월읍 서면에서 주천강과 만나 서강이 되어 굽이쳐 흐르는 것이다. 영월읍 남쪽의 동강과 합쳐져 남한강이 되는 서강의 물줄기는 양수리로 흘러 한강으로 모인 뒤 하구에서 임진강 물줄기과 섞이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갯벌이 드넓은 강화도 앞바다의 소금기를 씻어주었다. 덕분에 경기만 일원의 갯벌에 수많은 어패류들이 알을 낳고 봄가을이면 도요새와 물떼새. 겨울이면 오리들이 시베리아와 동남아시아 주변에서 날아올 수 있었다.

 

남한강부터 넓어진 강은 덩치가 큰 쏘가리가 우월적인 생태적 지위를 누린다면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 물살이 빠르게 굽이치는 서강과 동강에는 단연 꺽지가 포식자의 지위를 차지한다. 보통 40센티미터가 넘는 쏘가리와 생김새가 엇비슷하고 유전적으로도 가깝지만 자라봐야 20센티미터가 보통인 꺽지는 바닥이 편평하고 바위가 드문 중하류의 넓은 강을 사양한다. 물살이 맑고 차가운 중상류 하천의 깊은 소나 바위틈에 숨었다 멋모르고 다가오는 돌고기나 피라미와 같은 작은 물고기를 잽싸게 낚아채며 우리나라 하천의 골목대장 노릇을 톡톡히 구가해왔다. 지나치게 으스대다 수달의 밥이 되기 십상인 쏘가리와 달리 바위틈에 꼭꼭 숨어 있는 까닭에 방심하던 물고기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꺽지. 대한민국 하천의 오랜 토종이다.

 

우리 강과 빙하기 이전에 연결되었던 중국에 없으니 우리 땅에서 비교적 최근에 진화된 게 틀림없는 꺽지는 일본에도 분포하는 꺽정이에서 분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해안으로 빠져나가는 하천을 제외하고 전국을 무대로 자신의 지위를 지켜오는 꺽지는 남해안으로 빠지는 탐진강이나 낙동강 일부에서 모습을 간간이 드러내는 15센티미터 정도의 꺽정이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꺽지가 없는 일본에서 극진히 보호하는 꺽정이는 코에서 등지느러미 앞까지 흰색의 좁은 무늬가 도드라지지만 전문가가 아니라면 꺽지와 구별하기 어렵다. 사촌 사이답게 살아가는 행동과 사는 지역의 특징까지 거의 같은 걸 보아 꺽지가 터줏대감이던 꺽정이를 힘으로 몰아낸 게 아닐까.

 

투명한 물이 감돌아 흐르는 계곡의 그늘진 바닥은 대체로 녹갈색이고 햇빛이 부서져 흐르는 강바닥은 노랗다. 맨발로 들어가도 미끄러지지 않는 건 바위에 앉은 돌이끼가 건강하기 때문이고, 돌이끼를 먹으며 계곡을 빠르게 이동하는 건 버들치와 갈겨니 무리다. 해오라기와 물총새가 갯버들 잎으로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등을 녹갈색으로 위장한 그들의 옆구리는 희다. 방향을 획 바꿀 때 수면에 반사되는 햇빛처럼 보인다. 덕분에 물 밖의 천적을 속일 수 있지만 물속 천적인 꺽지에게 별 소용이 없다. 노란 빛을 띤 녹갈색 몸통에 옅은 검은 무늬를 아가미 뒤에서 꼬리까지 옆구리를 따라 꼬리까지 예닐곱 개 두 세줄 이어지는 꺽지는 물속의 포식자다. 수면을 통과한 빛이 물속에서 아른거리는 듯, 청록색 띠를 눈 주위에 우산살처럼 펼쳐놓고 바위틈에 빠끔히 고개를 내미는 꺽지. 작은 물고기에게 무시무시한 존재임에 틀림없지만 제 자식에게는 더없이 따뜻하다.

 

4월에서 7월이면 바위나 큰 돌 아래 둥글게 알을 붙여 낳는 꺽지는 수컷이 알을 보호하고 나선다. 부화한 뒤에도 바위틈을 떠날 때까지 바위에 착 달라붙은 새끼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데, 자연에는 꺽지의 부성애를 한껏 이용하는 동물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목숨을 걸고 수컷이 지키는 바위틈에 들어가 꺽지 알 주변에 제 알을 붙여 낳는 감돌고기가 그들이다. 꺽지보다 빨리 부화하는 감돌고기 새끼들은 스프링으로 튀듯 얼른 바위틈을 빠져나가는데, 이후 뒤늦게 부화하는 어린 꺽지를 조심해야 한다. 저보다 작은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며 무럭무럭 자라는 꺽지의 식성은 유별나지 않던가.

 

다 자란 꺽지는 제 영역으로 여기는 바위틈을 철저히 지킨다. 기웃거리는 동료를 쫓아내기도 하지만 얼쩡거리는 물고기를 한입에 삼키는데, 그 점을 노려 루어 낚시꾼들이 여울이나 계곡의 깊은 소에 몰려든다. 1미터 가까운 수심의 바위틈 앞에 꺽지를 빼닮은 플라스틱을 바늘과 함께 내려놓고 좌우로 흔들면 화가 치밀어 공격하던 녀석을 들어올릴 수 있을 거고, 몸을 뒤트는 미꾸라지를 미끼로 삼아 낚싯줄을 내리면 거침없이 삼킨 꺽지를 물 밖에서 만나게 될 터. 하지만 엉겁결에 물 밖 세계로 몸이 드러난 꺽지는 10개가 넘는 등지느러미의 가시를 단단히 세우고 한참을 버둥거릴 것이다. 잡으려들면 확 찌를 태세로.

 

농어목 어류들이 그렇듯 몸에 기름기가 많은 꺽지는 단단한 육질도 그만이지만 고추장을 풀어 끓여낸 매운탕의 국물 맛도 끝내준다. 루어 낚시로 올라온 꺽지, 가슴만한 돌을 바위에 내리치면 멍하니 떠오르는 꺽지, 어쩌다 투망에 걸려드는 꺽지들은 그만 아가리 큰 솥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 사람처럼 맛 앞에 집요한 동물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꺽지를 언제까지 만나게 될지, 운하로 변경될 가능성이 농후한 4대강 정비로 꺽지가 깃들던 강바닥이 머지않아 뭉개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의해 한반도 하천의 오랜 지위를 잃을 꺽지. 꺽지가 떠나는 강은 사람에게 어떤 보답을 할지, 서강의 꺽지는 알까. (전원생활, 200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