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10. 08:47

 

이 땅의 마지막 왕조가 가녀린 기운마저 거의 잃어갈 1890년대 중순,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조선을 4차례 방문했고 1897년 그 기록을 남겼다. 신복룡이 옮긴 글을 집문당에서 펴낸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 그것이다. 한양에 가기 위해 제물포에서 여객선을 내린 비숍은 조랑말에 올라 진창을 뒤뚱거리거나 강화에서 한강 하구를 지나 노량진으로 가는 작은 배에 몸을 실어야 했다. 한양에서 평창을 지나 원주로 갈 때에는 노를 저으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거룻배를 임대했다.

 

배가 한강 주변 마을의 포구에 닿으면 서양여성을 구경하려 먼 마을 아낙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는데, 어떤 이는 겹치마를 들춰보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쓴 비숍은 그러면서 계란을 계면쩍게 내어 주는 조선의 민중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관리에게 아주 비판적이었다. 가는 곳마다 일정을 방해하며 뇌물을 요구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민중의 땀방울까지 수탈하지 않던가. 북간도를 여행하며 관리의 수탈에서 벗어난 조선 민중이 풍족하게 사는 모습에 경탄한 비숍은 어차피 빼앗길 거라면 차라리 없이 살겠다는 민중의 수동적인 저항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당시 한강은 그냥 떠 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맑았고 자연 경관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때 한강과 낙동강, 금강과 영산강은 한반도의 물류 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와 철도가 지나치게 완벽한 요즘은 아니다. 수질이 전 같지 않지만 경관도 엉망이다. 강을 따라 개발된 도시와 공장지대에서 쏟아내는 오폐수와 농촌과 목장에서 스며드는 농약과 축산폐수로 오염되었을 뿐 아니라 직선화시킨 강바닥의 자갈과 모래를 수시로 퍼내 정화능력을 잃었다. 게다가 수돗물이 보급되면서 강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강은 대지의 혈관이다. 수돗물도 강에서 왔고 농촌도 강에 의존한다. 계곡의 맑은 물과 여울이 이는 중상류는 천렵이나 물놀이하려는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냄새가 심하지 않은 하류의 다리 아래에 많은 시민들이 더위를 피해 모인다. 우리의 강이 사람에게 완전히 외면당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오염된 육지 때문에 더러워진 건 사실이지만 아직 강이 살아 흘러가므로 육지도 숨을 들이쉴 수 있고 사람도 피로를 씻을 수 있다. 아파트와 공장에 유역을 빼앗기고, 오폐수 얼른 없애버리려는 육지를 위해 희생되었어도 강이 살아 있기에 사람도 육지의 생태계도 여태 견딜 수 있었다.

 

필요하다는 소신이 변하지 않았지만 국민이 원하지 않으므로 임기 중에 운하는 만들지 않겠다고? 소신이라. 대통령의 소신에 장차관이 화답하고 온갖 전문가들이 합리화하는 분위기에서 그런 소신은 독재다. 합리적인 논의를 배제하고 오로지 권력과 돈으로 밀어붙이는 소신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운하는 하지 않겠단다. 그러니 안심해야 할까. 운하라면 물 높이를 보존하기 위해 일정 깊이 이상 파내고 보로 가로막아야 한다. 지금 4대강정비사업의 요체가 바로 그거다. 그런데 운하가 아니라 강을 살리기 위한 정비라고?

 

강이 죽었으니 정비한다고? 황당한 논리다. 전문가에게 물을 필요도 없다. 강은 막히면 죽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한데 강을 살리려는 전문가들이 보를 막고 바닥까지 들어내겠단다. 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강의 오염원이 아니라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어려서부터 강에서 놀던 이 강산의 장삼이사가 모두 아는 사실을 어찌 아니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나. 그런데 전문가들이 부정한다. 그래서 생물의 산란장인 모래와 자갈을 모조리 퍼내겠단다. 오염된 물을 정화하느라 더러워진 모래와 자갈이 강을 죽이던가. 이런. 세상의 모든 강은 모래와 자갈이 게 있기에 살아 흐르는데, 토목회사 사장 출신의 장로가 대통령이 된 이후부터 이 땅의 강은 모래와 자갈 때문에 죽었다고 소신을 드높이니 장차관이 화답하고 토목학자가 “믿습니다!”를 외친다.

 

큰비가 쏟아져도 굽이쳐 흐르다 속도를 줄이는 강은 어귀에 모래와 자갈을 내려놓으며 일정한 깊이를 늘 유지하지만 흐름이 갑자기 가로막힌 깊은 강은 몰려드는 물살에 제방을 잃을 수 있다. 인근 마을이 한동안 물에 잠길 것이다. 따라서 무너지지 않도록 물 깊이 이상 깊고 보 높이 이상 제방을 쌓아야하는데 그러면 지하수위가 내려간다. 인근 마을은 농사짓는데 큰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문제는 본류가 아니라 지류다. 노도와 같이 빗물이 제방에 막힌 본류로 제때 흘러들지 못하면 인근 마을은 고스란히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규모의 홍수 피해는 대개 지류에서 발생했다.

 

산을 넘지 않는 강은 들을 가르지만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이 흐르기에 들이 유지된다. 강이 산과 들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강은 양안에 넓은 추이대를 펼치며 다양한 생태계를 연출하고, 그 안에 숱한 생물들의 터를 마련해준다. 강이 좌우를 연결하는 것이다. 상류에서 품는 유기물을 들판에 내려주고 지하수를 보전해주는 강은 상류와 하류, 땅 위와 아래를 연결하고, 강을 따라 결을 이루는 길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주었다. 세월도 연결하는 셈이다. 그런 연결을 보와 제방으로 끊고, 허파꽈리와 같은 모래와 자갈을 긁어낸단다. 그건 강이 아니라 토목회사의 회계장부를 살려내려는 거다.

 

흘러간 물은 돌아오지 않지만 강물은 항상 제자리에서 흐른다. 아깝다고 모아두면 강물은 썩고 썩은 물을 마시려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정화 처리해야 한다. 왜 그냥 마실 수 있는 물을 썩힌 뒤 마시려 드는가. 삼척동자도 이해하지 못할 몰상식인 4대강정비를 서두르려는 자들은 환경영향평가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하려 든다. 강에 깃들어 사는 생물과 강이 연결하는 생태계에 터전을 두는 생물은 계절에 따라 다른 습성을 보이는데 생태 조사를 몇 개월 만에 마치겠단다. 4대강정비라는 막강한 권력을 이양받았다고 여기는 어떤 전문가는 무한책임을 지겠단다. 무한책임이라. 피해는 후손에게 영속될 텐데 무한히 살지 못할 그는 무슨 배짱으로 그따위 말을 지껄이는가. 이 땅에 자손을 낳지 않겠다는 다짐인가.

 

워낙에 통이 작아 그런지 22조 원의 활용도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지만 아무리 작은 정부 예산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용되어야 한다는 정도는 안다. 거액의 예산을 퍼부으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이의 목소리를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정부는 대통령 임기 내에 한강, 낙동강, 금강, 그리고 영산강의 숨통을 조일 태세다. 이후 기왕 보와 둑으로 망가졌으니 운하를 만들자고 후임 대통령 취임식 자리에서 조언할 셈인가. 대의제에서 대통령은 주권자에게 통치를 위임받았을 뿐, 섣부른 소신을 멋대로 밀어붙여도 되는 제왕은 아니다. 시방 꽉 막힌 소통, 신음하는 민심, 죽어가는 민주주의는 콘크리트 둑에 막힌 강의 운명이 될 것인가. 강이나 사회나 사람의 생각이나 고이면 썩을 수밖에 없는 법이거늘. 비숍이 다시 찾아오면 얼마나 탄식할지, 그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작은책, 2009년 9월호)

수중보와 둑으로 강의 흐름을 막고 콘크리트로 강변을 막는 것은 강살리기가 아니라 강 죽이기가 되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할 지 걱정 또 걱정입니다.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6. 7. 16:49

 

지난 100년 동안 섭씨 0.74도 상승한 지구 평균보다 2배가 넘어 1.7도나 오른 우리나라는 요사이 전에 없던 집중호우로 시달리고 있다. 지구온난화 시대를 맞아 기상예보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기고문에서 기상청장은 “기온이 1도 올라가면 공기 중에 수증기를 포함할 수 있는 능력은 7퍼센트 많아진다.”고 관련 이론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늘었지만 비 내리는 날은 오히려 줄었다고 밝혔다. 국지성호우의 피해가 가중하는 상황에서 쏟아지는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부는 4대강 정비로 홍수와 가뭄의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호언하지만 회의적이다. 대부분의 수해는 지류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강 본류의 바닥을 긁어내고 제방을 쌓으며 거대한 보로 물길을 계단처럼 정체시키는 토목공사로 홍수와 가뭄의 피해를 줄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기상 관련 전문가들은 단언한다. 수많은 생물의 터전인 바닥을 긁어내면 강은 정화능력을 잃는다. 거대한 호수로 멈칫거리는 강은 생기만이 아니라 유구했던 문화와 역사도 질식시킬 것이다. 앞으로도 강에 의존해야 하는 후손이 걱정이건만 시민의 의견을 듣지 않는 정부는 생태와 문화에 대한 고려 없이 건설 자본의 이익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우리는 강에서 마실 물의 대부분을 구한다. 수도권 2000만 인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모인 팔당호에 목숨을 대놓고 있다. 그 팔당호에 하수구를 연결한 음식점과 숙박시설이 수만 군데가 되는 우리의 실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데, 이제 강이 재앙에 직면하고 있다. 바위와 자갈과 모래와 진흙으로 구성된 본류의 바닥이 사라진 상황에서 지류에 쏟아지는 국지성호우가 한꺼번에 밀고 들어온다면 완충능력이 없는 본류의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에 걷잡을 수 없는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게 무서워 제방을 깊게 묻고 높이 쌓는다면 강과 연결된 지하수가 말라 주변의 농촌에 심각한 어려움이 초래할 수 있다.

 

독일을 비롯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강우량이 우리의 3분의2에 불과하지만 물은 부족하지 않다. 우리보다 인구에 비한 국토가 넓을 뿐 아니라 비가 분산돼 내리는 까닭이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강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고 강변에 여과된 물을 사용한다. 장마철 전후에 비의 절반 이상이 몰리고 경사가 급해 상당한 빗물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우리와 달리 일년 내내 강에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는 독일이지만 운하의 동력선에서 빠져나온 오염물질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4대강 정비사업과 성격이 비슷한 이른바 ‘한반도 대운하’를 밀어붙일 때 정부는 우리도 강변에서 물을 채취하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곧 철회했다. 강변에 모래가 많은 유럽과 토양이 달라 채취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작았지만 멀쩡한 강물을 둔 채 굳이 강변의 여과수를 마실 이유가 없었던 거였다. 이제 운하를 접었다고 약속했으니 정비 이후의 강에서 물을 받을 모양인데, 안전할 것인가. 정부의 약속 준수와 관계없이 비관적이다. 생태계가 파괴된 강은 자정능력을 잃기 때문이다. 물론 막대한 비용과 장비를 들인다면 정화시킬 수 있겠지만 에너지 사용을 크게 줄여야 할 지구온난화 시대에 역행한다.

 

강바닥을 긁어내고 제방을 높이 올리며 보를 만드는 행위는 후손의 처지에서 범죄에 가깝다. 강의 정비는 수질이나 수량에서 그칠 수 없다. 흐름과 연결을 생태와 문화적으로 배려해야 옳다. 다시 말해 강과 지하수, 강과 좌우의 생태계, 상류와 하류,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문화와 역사가 원활하게 이어져야 한다는 거다. 사람은 물론 강에 생명을 기대는 온갖 동식물의 안위까지 살펴야 하는 건 물론이다. 따라서 전문가와 관료 중심이 아니라 강 유역에 터를 잡은 주민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한 이후에 정비를 실시해야 하는 건 당연한데 현실은 어떤가. 이러다 4대강을 돌이킬 수 없게 망쳐놓은 뒤, ‘생태적 복원’ 운운하며 건설 자본의 주머니에 거액을 챙겨주려는 건 아닐까.

 

국지성 집중호우가 빈발하는 지구온난화 시대에 본류를 파헤치는 토목도 문제지만, 홍수와 가뭄 대비와 수자원 확보를 명분으로 상류 여기저기를 마구 가로막을 대형 댐도 걱정이다. 유역 생태계가 복원되지 않은 상황에서 댐마저 오염되거나 토사가 쌓여 댐의 기능이 약화된다면 우리는 대안을 영원히 잃고 말 것이다. 해마다 정도를 경신하는 국지성호우로 댐이 붕괴된다면 그 피해는 주변과 지류를 넘어 본류까지 걷잡을 수 없게 이어질 것이다.

 

몇 차례 다녀온 독일은 빗물의 지하화에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새로 짓는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 건물도 빗물이 지하로 이어지도록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 지하의 주차장을 자갈과 흙으로 메웠고, 넘치는 빗물은 유수지를 겸하는 호수에 고인 뒤 강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배려했으며, 도심의 곳곳의 유수지와 습지에 동식물을 충분히 도입해 시민들의 휴식처와 생태학습장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리는 빗물이 수해를 일으키거나 비가 없어 가뭄에 허덕이는 일이 없고, 마실 물이 부족해 걱정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빗물 이용 시설을 갖춘 대형 건물이 많은 도시는 사용한 수돗물을 재활용하려 노력할 뿐 아니라 시민들은 물 소비를 줄일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교외의 녹지를 시민들을 위한 주말농장으로 제공한다. 평소에 녹지가 되고 유사시에 식량공급기지로 활용한다는 복안으로 분양되는 주말농장은 도시의 온도를 낮출 뿐 아니라 빗물을 완충하는 기능을 한다. 교외의 비닐하우스를 철거해 아파트를 짓자고 제안하는 우리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변두리의 묘지에 크고 작은 나무를 심어 녹지공원으로 활용하는 그들은 산의 나무들을 모조리 잘라 계단처럼 묘지를 배열하는 우리와 달랐다. 자연을 훼손하고 모여든 사람들이 사는 도시라 할지라도 재해로 인한 충격을 최대로 완화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었다.

 

최근 환경부는 빗물과 오폐수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발표했다. ‘물의 재이용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기존의 한정된 수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버리는 물을 현지에서 재이용하는 저 에너지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녹색성장을 선도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거다. 시대에 아부하는 ‘녹색성장’이란 형용모순에 가까운 수식이 눈에 거슬리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은데, 4대강 정비 계획이 전혀 수정되지 않은 마당에 성찰이 얼마나 전제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국지성호우는 기록을 경신하는데.

 

자연의 포용력 이상 개발한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국지성호우는 자연을 폭력적으로 정복하는 개발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자연의 흐름 안에서 대안을 미련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작은책, 200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