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3. 24. 12:50

 

열대가 마약을? 시민단체에서 파견한 모니터링 요원들의 방향으로 제 이름이 보이지 않도록 명패를 교묘하게 돌려놓은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 현장에서 메모하는 모니터링 요원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명절도 아닌데 한복을 곱게 입은 여직원들이 연실 내놓는 과일을 축내며 죄인 다루듯 수감기관장 닦달하다 자리를 뜨느라 바빴는데, 그 정도가 유난스러웠던 한 국회의원이 제 질문 차례가 오자 떠듬떠듬 열대가 마약을 해서 큰일이므로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열대? 나중에 기자에게 얻은 질문지는 한자로 십대라 했건만, 그 국회의원은 보좌관이 작성했을 자신의 질문을 미리 읽지 않은 모양이었다.

 

방송 카메라 앞에서 진지한 표정을 잘도 연기하는 국회의원들의 무성의와 고압적 자세는 대체로 공부 정도와 반비례했는데, 저들이 법을 만든다. 실제 많은 법안을 정부가 만들고 국회는 그저 통과시키는 의례에 그칠지라도, 국가의 기틀을 좌지우지할 법안을 최종 검토해 힘을 실어주는 일은 국회에 있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고유 임무에 충실하지 않는다면 공공선은 훼손될 여지가 크다. 동서고금의 숱한 사례가 그러하건만, 현실은 과거를 답습하기에 급급하다. 키 높이로 쌓이는 자료들을 면밀히 살피며 공부하는 국회의원은 과연 몇이나 될까. 법안 검토에 앞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할 국회의원이 건달처럼 이권에 기웃거린다면, 그 국가의 내일은 건강하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국회의원들은 사실 무척 바쁘다. 국정감사나 법안 심의에 앞서 열띤 토론에 임하느라 바쁘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권자들이 납득할 만큼 진지한 토론을 거치지 않은 당론에 얽매이는 국회의원들은 자신과 계파의 이익에 민감할 따름이다. 많아 보이는 보좌관들은 자신을 고용한 국회의원의 관심사에 몰입할 뿐, 법안의 핵심과 맥락을 파악해 정리하는데 쏟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래서 본회의에 부의하기 전에 법안을 검토하는 여러 상임위원회는 제각각 소위원회를 둔다. 시간과 성의를 분산하려는 건데, 상임위원회는 소위원회의 결정에 따를 게 틀림없다. 같은 맥락으로 상임위원회를 거친 법안은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다.

 

18개 상임위원회에 분산되는 300명의 국회의원은 소위원회로 인원을 다시 배분할 텐데, 소위원회도 정족수를 만족해야 효력을 가진다. 소위원장과 간사와 위원들의 총수에서 과반수 참석해야 안건이 상정되는데, 회의 내내 자리를 지키는 국회의원은 그리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회의를 시작한다는 소위원장의 의사봉 소리를 듣자마자 자리를 떠서 정족수가 모자라도 휴회하지 않는 한, 논의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밟아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므로,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법안은 얼마든지 허술하게 논의될 수 있다. 유권자 초미의 관심사인 법안도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다.

 

거대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들은 발언권이 큰 어떤 국회의원이 끌어가는 계파에 줄을 서 보신을 꾀한다. 그래야 다음 공천에 소외되지 않을 수 있지 않은가. 따라서 거대정당 소속의 국회의원은 계파의 생각, 다시 말해 특정 국회의원의 의지에 자신의 소신을 맡길 가능성이 높고, 계파의 생각을 절충해 마련하는 당론에 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를 반영하는 법을 만들려는 집단, 다시 말해 정부와 이익집단은 계파의 수장에게 온갖 성의를 다하려 할 것이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법이 발효되면서, 우리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막무가내 진행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 폭발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발전소를 추가하겠다고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미국이 그렇듯, 양당제에서 정권이 바꿔도 민의가 반영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역발상도 가능하다. 서너 명이 법안을 좌우할 수 있는 소위원회에 자리를 끝까지 지키며 논의에 충실히 임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그가 당론과 계파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정당의 소속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그런가. 민주적 논의가 활발한 국가의 국회에는 소수정당의 참여가 활발하다. 소수정당 후보가 국회에 진입할 기회를 제도적으로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핵발전소를 끄기로 결정한 독일이 그렇다. 독일은 과거 독재시대에 직선으로 만든 강을 다시 구불구불한 자연형으로 복원하려 애쓴다. 충분히 공부한 국회의원이 치열하게 논의한 뒤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했다. 흐름을 왜곡하는 콘크리트를 강에서 뜯어내야 지속 가능한 내일이 보장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드골 대통령의 독선으로 핵발전소를 잔뜩 지은 프랑스에서 새바람이 분다. 자국 전력량의 4분의3을 담당하는 핵발전소를 점차 줄여나가자는 목소리가 국회에 퍼진다는 게 아닌가. 독일에 이어 녹색당이 약진한 결과다. 비록 수가 적어도, 그들이 국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자 민의의 흐름을 읽지 않을 수 없는 거대정당까지 움직이게 한 것이리라. 연합정부를 꾸린 녹색당의 요구에 응한 슈뢰더 정권의 독일은 핵발전소를 빠른 시간 안에 폐쇄하기로 했건만 정권을 넘겨받은 메르켈 총리에 의해 번복된 적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자 독일의 유권자들은 녹색당에 표를 몰아주었고 결국 메르켈 정권도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번복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의 이야기다. 그 사례를 주목한 프랑스도 탈핵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유권자들의 각성이 빚은 긍정적인 결과다.

 

정부의 일방적인 홍보와 강압으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민주적인 논의는 물론, 법이 정한 절차까지 무시하며 강행했고, 그 결과 애초 예견했던 부실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가장 안전하게 관리한다던 일본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한 근원적 이유는 지진에 이은 쓰나미가 아니다. 거대한 관료주의와 막대한 자본이 지배하는 핵발전은 발전 시설이 많을수록 사고 확률은 높아진다. 두드러진 사고만 기억하고 있어서 그렇지, 이제까지 발생한 핵발전소의 사고는 부주의나 천재지변이 아니었다. 보유 핵발전소가 많은 국가의 순서와 대체로 일치했다. 그렇다면 핵발전소 밀도가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내내 안전할거라 확신할 수 없다. 일본도 거의 대부분의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했다. 폐쇄를 향한 고육지책인데, 우리 전력당국이 호들갑떨 듯, 산업이 마비되었나. 전력대란이 벌어졌던가.

 

여전히 양당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이가 있지만, 그 방향을 추구하는 우리의 거대 정당은 내일의 민의를 진정 반영하는가. 생산 정점을 지나간 석유는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을 텐데, 최첨단을 아무리 되뇌어도 핵발전소의 위험성은 줄어들지 않는데, 양당제를 지향하는 정당들은 건강하게 지속되어야 할 내일을 생각하는 후보를 공천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계파와 당론의 지배를 받지 않았나. 눈앞의 이권을 따르려는 유권자는 사탕발림에 약하다. 여태 치룬 선거 결과에서 예외 없이 쓴맛을 본 유권자는 이제 사탕발림을 경계해야 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그렇듯, 녹색당과 같은 작은 정당이 활발하면 내일의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4월이 왔다. (작은책, 2012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