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4. 20. 19:25


62세 이후, 한 달을 30만원 약간 넘는 돈으로 버틸 수 있을까? 국민연금공단에서 보낸 안내서는 62살에 연금을 신청하면 그 정도 받을 것이라 예고한다. 지금부터 월 30만으로 살 방법을 궁리하라는 듯한데, 몇 년 남지 않았다. 그 사이 아이들 학자금은 마침표 찍을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취업난에 기대하기 어려워도, 아이들이 알아서 취직해 결혼까지 스스로 해결한다면 큰돈 들어갈 일 없겠지만 걱정은 남는다. 매달 70만원의 할부금과 이자를 내지 못하면 집을 은행이 빼앗을지 모르니, 아무리 생각하도 62세에 돈벌이 전선을 이탈하면 안 되겠다.


정부는 돈벌이를 위해 노동을 제공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연령층을 생산인구라 칭하는 모양이다. 14세부터 65세 미만의 인구가 그들이라고 하니, 65세 이상이면 부양 대상 인구가 되는 건가?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65세 넘긴 이에게 정부는 ‘어르신카드를 제공한다. 그 카드를 받아 명실상부한 노인이 되더라도 그들은 대개 65세 훨씬 이전에 직장을 잃었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어도 직장에서 나가야 했다. 이후 돈벌이 전선에서 좌충우돌하며 식구들 건사해왔지만 여전히 일자리를 찾는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에 노인이 점점 늘어난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노인이 7%를 넘으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를 넘기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고령사회에 가깝다. 농촌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정부는 생산인구의 부족을 걱정한다. 현재 생산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데, 2036년이면 2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한단다. 그러므로 아이 더 낳으라고 가임여성들 닦달하는데, 65세를 넘긴 노인들 듣기에 무척 민망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65세 이상을 부양 대상자로 여기는 모양이지만, 농촌을 보라. 65세 이상의 노인이 농사짓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입농작물만 먹어야한다. 현재 우리 식량자급률은 쌀을 포함해도 23%에 미치지 못하지만, 나이든 농부들 덕분에 최소한의 생산이 유지된다. 그 사실을 무시하는 정부에 생산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주고 싶다. 반도체가 집적된 휴대전화와 가전제품, 수만 개의 부품이 조립돼 화석연료를 태우는 자동차와 같은 상품은 엄격한 의미에서 생산이 아니다. 제조로 보아야한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와 같은 제품은 차라리 변형이다. 광산과 유정에서 원자재를 발굴해 재료로 가공하는 과정에 온실가스를 내뿜는 화석연료를 거침없이 태울 뿐 아니라 상당한 폐기물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핵폐기물까지 포함해야한다. 그런 변형 과정을 여러 차례 거친 뒤 세상에 나오는 제품이지만 오래 사용할 수 없다. 도중에 수리를 반복해도 수명을 다하면 쓰레기가 된다. 재활용하더라도 에너지 소비와 오염물질 배출은 피할 수 없는데, 요즘 제품들은 분명히 더 사용할 수 있어도 버린다. ‘의도적 진부화때문이다. 많이 팔아 이윤을 늘리려는 기업의 의도인데, 그런 제조를 생산이라 칭하기 민망하다.


진정한 생산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폐기물 발생이 없는 생산이다. 한 알의 씨앗이 농부의 땀과 깨끗한 물과 바람을 봄부터 받으며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 가을에 수확을 남기는 농사가 그렇다.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일련의 과정도 생산이다. 낳은 생명을 보듬어 기르는 일, 다음세대에 자리를 양보하고 떠난 생명을 거두는 일도 생산인데, 식물이든 동물이든 대부분 생산은 땅에서 이루어진다. 그런 생산은 농부와 여성이 주관한다. 그러므로 농촌에서 묵묵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65세 이상의 농부를 생산인구에서 소외하려는 태도는 결례가 아닐 수 없다. 농민만이 아니다.


영어의 ‘product’를 생산으로 번역했어도 마찬가지다. 65세를 넘긴 노동자의 경륜이 제조과정에서 소외되어야 마땅한가? 일할 능력과 의욕이 있어도 일할 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기업과 정부가 먼저 반성해야 옳지 않을까? 나이 들어 근력이 떨어져도 일할 분야는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기업은 사무와 공장 자동화로 멀쩡한 일자리를 없앤다. 참기 어려운 이율배반이다. 컴퓨터와 로봇은 한창 일하는 장년뿐 아니라 청년이 찾을 일자리까지 빼앗는다.


현재 남한 인구는 2077만 세대에 5136만 명이고 한 세대에 평균 2.47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통계청은 실시간 자료를 내놓는다. 작년 우리나라 부부의 평균 출산율은 1.21명으로 추산하는데 15년 째 1.5명에 미치지 못했다고 언론은 걱정한다. 장차 인구가 늘거나 줄지 않는 출산율이 2,08명인데 1.5명이면 초저출산이라면서 그런 출산율이 계속된다면 70년 이후 남한 인구는 절반으로 줄고 120년 지나면 5분의1로 위축된단다. 2750년이면 대한민국의 인구는 사라진다던데, 과연 그럴까?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는 2005년에 ‘1·2·3 캠페인을 펼쳤다. 결혼 1년 안에 임신하여 2명의 아이를 30세 이전에 낳자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젊은 연령층의 반발을 불렀다. 캠페인처럼 아이를 낳으면 40세 되기 전에 파산한다는 ‘1·2·3·4 캠페인으로 대응했는데, 그때보다 청년 실업자가 늘어난 요즘, 결혼은 더욱 늦춰졌다. 서울시 여성의 평균 결혼연령은 30세가 넘었다. 연령과 관계없이 요즘 부부들은 한 아이 이상을 엄두내지 못한다. 제 아기를 남 못지않게 키워야할 텐데, 안정된 직장이 보장되는 환경이 아니지 않은가!


경제성장 없다면 일자리는 늘지 않는다. 자원과 석유위기 상황이 세계적으로 호전되지 않으니 경제성장은 지속될 수 없다. 그뿐인가. 자동화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 격차는 심각해진다. 성장기 자녀가 있는 가장의 실업이 만연되는 추세가 진정되지 않는다.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모른다면 용서하기 어려운 직무유기일 테지. 출산율 저하에 긴장하는 곳은 기업인데, 정부는 기업 친화적이다. 지금도 착취되는 노동자가 앞으로도 원활하게 공급돼야 기업의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면 지나친 걸까?


성장이 한계에 왔다. 지금은 덮어놓고 인구를 늘릴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65세 이상을 생산인구에서 소외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자동화보다 노동자의 근무시간을 줄여 청년층은 물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노인을 경제활동인구의 일원으로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생산자인 농촌의 노인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농촌에서 도시의 인구를 실질적으로 부양하지 않던가. 도시에서 할 일을 찾지 못하는 노인에게 생산의 기회를 농촌 또는 도시의 텃밭에서 제공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겠다.


평균수명이 아무리 늘어도, 노인은 때가 되면 떠난다. 떠나기 전까지 생산인구로 남는다면 출산율이 떨어져도 부양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후 줄어든 인구는 다시 균형을 잡을 것이다. 경제가 둔화되어도 견딜 여력이 생길 것이다. 노인은 경륜을 가진 선배다. 국민연금공단이 62세부터 30만원으로 살아가라고 아무리 속삭여도 노인은 부양 대상자가 아니다. (야곱의우물, 2015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