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4. 10. 30. 23:53


 증권가의 상식.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분산투자로 위험성을 줄이라는 조언이라는데, 투전판과 닮은 투자환경의 변수는 복잡하니 한 종목에 올인하면 낭패를 볼 수 있으리라. 농사도 비슷하다. 다양한 농산물을 농토의 조건과 계절에 맞게 심으면 예기치 않은 가뭄이나 홍수가 닥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바싹 마르거나 휩쓸리는 작물도 있지만 멀쩡하게 잘 자라 실한 열매를 맺는 작물이 더 많으니 농부는 부담 없이 이듬해 농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바나나가 멸종위기라고? 선망의 대상이던 바나나가 길거리 좌판에 널린 건 수입 양이 늘고 싸졌다는 반증이지만 그만큼 넓은 지역에서 많이 재배한 결과일 텐데, 왜 멸종위기라는 걸까? 바나나는 튤립처럼 뿌리를 분리해 포기 수를 늘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전문가는 세계 곳곳의 바나나 포기가 아무리 많더라도 사실상 한 뿌리라고 주장한다. 많은 열매를 매달고 맛이 괜찮은 현재의 바나나 품종은 치명적 곰팡이에 노출돼 있다. 곰팡이가 발생한 농장은 물론 그 주변의 광범위한 농토까지 모조리 불태워 확산을 막으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라고 한다.


해마다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겨울철새가 많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조류독감 때문에 떼로 죽는 사고는 전혀 없다. 하지만 대형 양계장은 다르다. 조류독감이 돌면 떼로 죽으니 축산당국은 곰팡이에 감염된 바나나처럼 예방적 살처분에 나선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본성대로 마당을 돌아다니며 짝짓기하던 닭은 시방 없다. 삼계탕과 치킨용으로 엄격히 품종이 구분돼 근친교배된다. 구제역이 돌자 맥없이 쓰러지는 돼지처럼 질병이 돌면 한꺼번에 몰살될 수 있다. 살코기용 돼지도 근친교배로 유지된다.


지난 929일부터 1017일까지 강원도 평창군에서 생물다양성 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가 열렸다.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담에서 생물다양성 보전, 자연 자산의 지속가능한 이용, 그리고 생물다양성과 유전다양성으로 발생한 이익을 공평하게 공유하자며 194개국이 가입한 협약이다. 생물다양성 협약에 가입한 국가의 관료들이 12번 째 회의를 위해 올해 모였는데, 하필 평창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생물종이 다양한 만큼 유전자원도 풍부한 평창이므로 할 이야기가 많았을까? 1992년 협약이 최초 발의되었을 때 가졌던 절박한 마음은 2014년 당사국들은 여전히 공유하고 있을까?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는 정부 대표의 협상 회의가 있고 고위급이 총회 주제와 주요 결정문에 관련된 회의에 나서게 되지만 시민단체도 모인다. 시민단체는 당사국 협약 자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국제 현안을 공유하며 함께 노력할 부분을 합의하고 경우에 따라 국제 행동에 나설 것에 동의하기도 한다. 올해는 생물다양성 관련해 두드러진 국제 현안이 눈에 띄지 않지만 4대강 사업의 여파로 생물상이 줄어드는 국내는 달랐다. 게다가 평창은 2018년 동계올림픽 알파인 활강 경기장 공사로 환경단체의 열기가 높은 곳이 아닌가.


국내 시민단체 참여 희망자 대부분의 출입을 통제한 상태에서 평창에서 개최된 생물다양성 협약 제12차 당사국 총회는 평화로웠다. 그렇다고 평창 주변의 생물다양성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가 보물이라 했던 가리왕산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국가 최고 수준으로 보호되었지만 2만 여 명이 운집하는 생물다양성 총회를 앞두고 너비 30미터 길이 3000미터를 뜯어내고 있지 않은가. 주로 유럽 선수들의 3일 경기를 위해 5000년 보전된 숲을 파괴하는 현장에서 어찌 감히 생물다양성을 거론할 수 있을까? 그 사실을 알리려는 시민단체의 참여가 차단된 회의 현장에 우리 언론 기자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스키점프대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당사국 총회장은 인천공항에서 셔틀버스로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셔틀버스 이용자은 회의 참가 전부터 바가지를 경험해야 했다. 2배 가까이 높은 요금을 요구한 낡은 관광버스는 좌석이 좁고 시끄러웠으며 기사는 불친절했다. 총회장의 음식은 부실하기 짝이 없고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았지만 국내외 시민단체의 열기는 뜨거웠는데, 당사국의 어느 정부 대표도 그 논의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개발로 사라지는 세계 자연 생태계의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주권자의 의견에 무관심한 각국 정부의 분위기는 생태계가 파괴되는 평창 알펜시아 현장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스키활강을 위한 길이가 모자라면 경기를 두 차례로 나눠 실시해 성적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는 분명히 알았지만 막무가내였다. 대안을 외면하고 3000미터의 산록을 모조리 파헤친 정부는 2018환경올림픽을 들먹일지 모르지만, 평창은 지난 정권의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우리 강처럼 현 정부가 저지른 생물다양성의 대표적 훼손지로 기록될 것이다. 정부는 강원도에 원시 생태계의 복원을 주문했다지만, 그따위 주문을 외운다고 훼손된 생태계가 복원되고 사라진 생물이 돌아올 리 없다.


조상이 물려준 다양한 유전자가 보전돼 있다면 혹독한 환경변화가 닥치더라도 그 생물종은 이겨낼 것이다. 맹렬히 매립되는 갯벌에 여전히 운집하는 철새들이 그렇다. 조류독감을 이겨낼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견딜 유전자도 축적돼 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유전다양성이 지독하게 결여돼 있다. 그런 농작물은 엄밀한 재배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흉작을 피할 수 없다.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후변화는 유전다양성을 잃은 농작물과 가축의 생존을 크게 위협할 것이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의존할수록 내일은 걱정스러워진다.


생물다양성을 잃은 생태계는 환경변화에 쉽게 허물어진다. 유구한 강이 품던 생물들을 일거에 내쫓은 4대강 사업은 금수강산의 안정성을 해쳤다. 생물이 단순해진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갯벌이 사라지고 남획이 심각해지자 해파리가 늘었다. 해파리가 늘면서 물고기 양식에 지장이 생길 뿐 아니라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의 터빈을 식힐 바닷물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해 사고위험을 키운다. 생물다양성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생태계의 능력이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지금, 생물과 유전다양성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작은책, 2014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