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3. 20. 08:58

 

올해도 북극해가 완전히 얼지 않았는지 2월 하순의 냉기가 범상치 않다. 북극권 상층의 제트기류가 느슨해지면 냉기가 남쪽 위도로 내려간다던데, 한파가 엄습한 유럽에 사망자가 빈발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주로 가난한 계층일 텐데, 우리나라도 춥다. 그래서 그런가. 친지의 부고장이 하루가 멀다고 발송된다. 그래도 봄은 곧 시작된다. 둥근 지구는 무한하다는 우주에서 둥근 태양을 돌고 돈다. 언제나 그랬듯, 봄이 온다. 새 생명도 꽃피겠지.

 

봄은 언제 오는지 묻자 한 어린이가 눈이 녹으면이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 막바지 한파가 물러가면 응달의 잔설도 모두 녹을 것이다. 이제 산골의 비탈진 밭도 봄을 기다릴 텐데, 까치들이 짝을 짓고 작년에 사용한 둥지를 수선하는 계절이 다가오자, 근교의 밭마다 유기질 비료 부대들이 잔뜩 쌓였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머지않아 녹을 테니 봄비가 내리기 전에 밭고랑마다 거무튀튀한 비료를 뿌릴 것이다. 그때 근교의 개성 있는 식당을 찾은 식도락가는 유기질 비료 특유의 냄새에 잠시 코를 찡그릴지 모른다. 그래도 비료가 땅에 스며야 싱싱한 채소가 식탁에 오른다는 걸 잘 알기에 냄새를 크게 탓할 리 없다.

 

입춘이 지나 춘분이 다가오면서 대지는 봄을 기다린다. 태양의 입사각은 어느새 양지에 온기를 보내고, 근교 시멘트 포장길 옆의 흙에 파릇파릇 새순이 보인다. 호미를 든 아주머니들이 냉이와 쑥을 캘 날도 머지않았는데, 말리고 싶다. 비록 자동차가 빈번한 도심에서 떨어졌을지언정 먼지와 소음이 날아드는데, 냉이와 쑥인들 안전하겠나. 장일순 선생은 일찍이 좁쌀 한 알에 세상이 다 담겼다 일렀다. 근교의 길가를 파릇하게 장식하는 냉이와 쑥에 도시의 독이 스몄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만, 밭 가장자리에 쌓아놓거나 고랑 가까이 늘어놓은 유기질 비료는 괜찮을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판매하는 유기질 비료인 만큼 눈에 띄는 문제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비료의 출처는 양해할만할까.

 

대구에서 유기농산물 직거래운동을 개척한 천규석 선생은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배출돼 가공한 요즘의 유기질 비료를 불신한다. 미국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인 가축의 배설물이라면 자연의 순환을 방해한 축산의 부산물이라는 이유로. 비록 석유를 직접 가공한 화학비료는 아닐지라도 엄격한 기준으로 따지자면 유기질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엄격하다 힐난하는 이 없지 않지만, 수긍이 간다. 해마다 양을 늘리며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아예 경작이 불가능한 녹색혁명은 식량이 사람에게 전하는 자연의 순환을 저버리게 했다. 그런 농업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사람에게 피해를 안겼는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녹색혁명의 폐해를 훨씬 능가한다. 지역적 단작이 녹색혁명이라면 유전자 조작은 다국적 기업에 의한 세계적 단작을 강요한다. 석유는 훨씬 더 들어가야 한다.

 

유기적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라. 삼라만상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붙일 수 있는 용어를 석유 마구 퍼부어야 생산과 가공이 가능한 미국산 가축사료에 선사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런 사료는 국제 석유 가격이 오르는 한, 값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석유 정점’, 다시 말해 석유를 퍼올리는 양이 소비하는 양보다 줄어들면서 투기자본의 영향권에 놓인 석유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이제 젖소 송아지 수컷을 만원에 팔아넘기거나 굶겨 죽일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 우리 목장은 문을 닫거나 과거 꼴을 베거나 방죽의 풀로 끓인 쇠죽으로 한두 마리 유기적으로 키우던 시절로 돌아가야 할 텐데, 상경투쟁하는 모습을 보니, 그럴 의사는 없어 보인다. 대책을 세우겠다는 정부는 경쟁력 운운하며 규모를 더욱 키우려 드는데, 효과가 있든 없든, 그런 목장에서 발생하는 축산분뇨를 유기질 비료로 포장할 수 없다는 천규석 선생의 주장을 부정하기 어렵다.

 

근교 농촌에 쌓인 유기질 비료의 냄새로 보아 가축분뇨를 발효시켰을 것으로 능히 짐작하게 하는데, 가끔 음식물 쓰레기를 가공한 비료도 유기질로 포장된다. 그 비료는 천규석 선생이 인정할 만큼 유기적인가. 우리가 시방 먹는 음식의 정체를 알면 쉽게 판단이 갈 테지만, 역시 회의적이다. 한 사람이 평생 320킬로그램 먹는다는 첨가물과 색소는 과자를 먹는 아이에게 아토피를 안기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연의 순환을 방해한다. 석유를 과소비해야 생산이 가능한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들이 대형매장에 산더미처럼 쌓인 현실은 무엇을 반영하나. 게다가 요즘 농작물은 먼 거리를 달려 식탁에 오른다. 그 점에서 유기농산물 전문매장도 고심해야 한다. 수입하는 과일과 채소만이 아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따진다면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지 모른다.

 

어떤 엄격한 이는 손수레로 옮기지 못할 거리에서 운송해온 농작물은 재배 방식과 관계없이 유기농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화려한 조명 아래 전시된 열대과일은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에서 날아온 농작물과 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유기농산물은 수출하는 순간 그 자격을 잃는다는 건데, 미국과 유럽하고 FTA를 체결했으니 우리는 유기농산물의 기준을 자본에 맡겨야 한단다. 이미 광고로 국내시장 진입을 선언한 외국의 유기농산물, 화학물질을 뿌리지 않았을 뿐 무거운 농기계를 사용하는 재배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석유를 소비했을 그 농산물이 도시의 식품매장에서 생활협동조합의 생존을 위협하더라도 저항하기 어렵다. 유권자의 지지로 선출된 대표든 의원이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투자자 정부 제소가 보장되지 않았던가.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는 셈이다.

 

간혹 낙엽을 발효시킨 유기질 비료가 텃밭이나 화원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건 유기질인가. 모르긴 해도, 천규석 선생은 고개를 흔들 것 같다. 걸핏하면 벌레 낀다며 가로수와 공원에 살충제를 퍼붓지 않았나. 그런 곳에서 모은 낙엽을 가을 내내 발효시키려 해도 예전 같지 않다는 양묘장 관리원의 하소연, 들은 적 있다. 나무는 애벌레에게 뜯겨도 생장에 지장이 없을 만큼 잎사귀를 펼친다. 새들이 날아와 조절할 것이라는 걸 오랜 세월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텐데, 살충제는 새들을 쫓아냈다. 새들이 풀과 나무의 씨앗을 떨어뜨려주지 않는 숲은 수명이 짧다. 가로수와 공원처럼 사람이 나무를 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인가. 살충제에 금세 내성을 갖는 애벌레는 순식간에 공원과 가로수의 잎을 갉아낸다. 그래서 더욱 흥건한 농약 세례를 받은 낙엽이 자연 속에서 순환되기 쉽겠나.

 

참 어렵다. 순수성을 따지자면 유기질이라 판단할 비료는 드물거나 거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일. 노력하면 유기질의 순수성 간격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천규석 선생에게 양해를 구하자. 사람은 제 탐욕을 한순간에 버리지 못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품종의 농작물을 거대하게 심어 큰돈을 벌어들이려는 탐욕은 자연의 순환을 거부해왔다. 순환을 잃자 땅은 황폐화되고 사람은 아토피로 고통스러우며 기후는 변화했다. 이대로 지속가능한 내일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면, 이제 복원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하는데, 발은 머리보다 느리다. 의지 있는 자의 솔선수범과 설득이 농촌은 물론 도시까지 번져야 한다.

 

인천의 한 근교에서 본 유기질 비료에서 파생된 상념이 여기까지 왔다. 어떤 특별한 묘책이 있으랴. 자연의 순환에 순응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겠지. 서서히 공감대를 늘리면서. 농약과 화학비료에 찌들어 황폐화된 농토에 더는 화학농업을 지속할 수 없으니, 우선 유기농업을 고민하는 농부를 위해 대규모 축산단지에서 나온 분뇨를 가공한 비료라도 뿌려, 땅을 회복시킬 필요는 있겠다. 그만큼 땅에서 생산된 농작물은 유기적인 관계가 전보다 나아질 게 아닌가. 근교의 밭이 그렇다. 그 땅에서 재배한 농작물의 찌꺼기나 그 농산물을 조리한 음식의 쓰레기를 가공한 비료를 뿌린다면 이후의 유기적인 순수성은 더 좋아지겠지. 그 농작물을 먹은 시민도 건강해지겠지. 나아가 공원과 가로수에 곤충 애벌레가 생겨도 그냥 둔다면 새들이 날아와 처리할 테니, 농약이 묻지 않은 낙엽으로 만든 비료는 유기질이겠지.

 

3월은 영어로 마치(march). 시작한다는 의미다. 동창이 밝아 노고지리가 우지지는 봄이면 농부는 농구를 챙겨 들에 나가 한 해를 시작한다. 씨 뿌려 새싹이 돋으면 벌레가 끼겠지만, 마당에 닭과 개구리가 있다면 자연에서 모두 공존 가능할 정도로 처리할 것이다. 쥐불놀이로 벌레를 쫓아내던 우리 조상은 벌레의 씨는 남겨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벌레가 있어야 새도 개구리도 가까이 온다는 걸 잘 아는 까닭일 텐데, 순환이 보장되는 농토에 가을이 오면 사람도, 닭과 개구리도, 그리고 곤충도, 내년을 기약할 식량을 받을 것이다. 자연은 오랜 세월 그렇게 너그러웠다. 덕분에 도시에 사는 소비자도 건강했다.

 

자연의 순환을 독점하려고 농약을 퍼부으니 부메랑이 되었지만, 자연은 아직 순환한다. 너른 품을 가진 자연은 탕아에게 기댈 언덕을 여전히 제공한다. 유기질 비료를 쌓아둔 인천 근교의 농부와 그 농토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시민도 파릇파릇 새순을 무던히도 올리는 자연처럼 유기적 관계를 회복했으면 좋겠다. 곧 봄이다. (푸른생협, 20123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7. 11. 15:08

 

최근 농촌진흥청을 방문한 농식품부 장관이 패배감에 젖어있지 말고 농업을 2~3차 가공마케팅서비스산업이 결합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발전시키자 강조했다고 한 언론이 전했다. 올봄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바이오 농업 시대가 다가오면서 농업은 유망한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방송한 대통령 뒤를 이은 장관의 이번 발언은 진정성이 없는 원칙에 불과하다고 참석자의 혹평을 받은 모양이다.

 

62차 라디오 연설에서 “21세기 농업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관광과 체험, 레저, 예술이 결합된 복합문화산업이자 지식기반산업이므로 농민과 협력해 도시보다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활기찬 농촌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약속한 대통령은 중국 농산물이 대량 수입돼 우리 농업이 위협 받고 있다고들 하는 현 시점이 새로운 기회라고 운을 떼고, “고소득층이 날로 늘어나는 중국이 고부가가치인 우리나라 유기농 농수산식품을 수입할 것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한데, 과연 그럴까. 또 그리 되는 게, 이 땅의 농촌과 농민에게 보람으로 이어질까.

 

대통령의 인식이 그 수준이니 장관도 그 모양일 텐데, 생각해보자. 거의 성사 단계에 있는 미국과 EU에 이어 중국과 FTA를 구상하는 현실에서 우리 농촌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게다가 정부의 무관심 속에 우리 식량자급률은 26퍼센트를 밑돌 정도로 열악한데, 수출이라니.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고부가가치를 운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렵사리 생산한 유기농산물을 중국의 부자들에 팔아 돈벌이에 나서라니. 정부가 판로를 이미 개척이라도 한 걸까. 세계적 식량위기 시대를 목전에 두고 투기를 일삼으라는 건가. 대통령은 유전자조작도 농약만 배제하면 유기농산물이라고 인식하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데, 제 땅에서 소비되어야 한다는 유기농 원칙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형용모순인 녹색성장을 주억거리는 청와대와 정부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는 산업을 도입하고 생활습관도 그에 걸맞게 바꾸기 위해 한여름 관공서와 공공시설의 냉방온도를 섭씨26도에 맞출 것을 요구한다. 근본과 거리가 있는 조치에 불과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농산물 수출을 언급하며 신성장동력을 운운하는데 기가차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논밭을 돈벌이를 위한 시설농업단지로 바꾸는 것도 걱정스런 일인데 아예 도시와 도로로 없애버리면서 뭐? 수출하라고? 내 나라 내 땅에서 재배하는 우수 농작물을 우리가 먹으면 큰 손실이라도 생긴다는 겐가.

 

개정된 농협법의 핵심은 금융 분야와 농업 분야를 분리해 유통을 비롯한 농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본 대통령은 농협이 유통과 판매를 책임져 중간 단계를 줄이게 되면 농민은 제값을 받을 수가 있고, 소비자는 보다 저렴한 값에 구입할 수 있다면서 농산물 수급을 안정시켜 물가 불안을 줄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는데, 그 말에 수긍할 농민과 소비자, 심지어 농협 관련자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조합원으로 가입해 상호 이익을 모색하는 협동조합이 농협인데, 생산과 판매를 분리하다니. 유기농업으로 땅과 내일을 살리려는 농민들이 관료화된 농협을 외면하고 왜 생활협동조합의 일원이 되는지, 유기농산물 수출로 부가가치를 챙기라 다그치는 대통령은 아마 모를 것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줄어도 평균수명 연장만큼 늘어나는 이 땅의 인구는 먹는 농작물의 양과 질이 성큼 달라졌다. 초고령화된 농촌은 적막강산이 된지 오래고, 주로 공공기반의 개발로 경작지가 급격히 위축되는 현실이다. 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상승하는 마당에 농업이 신성장동력이라니. 경작지의 거듭된 상실로 생존기반이 무력해지는 이때 투기를 부추기는 정책은 무책임하다. 농민의 원성을 무시하고 FTA를 맺은 미국과 유럽, 그리고 곧 맺을 중국에서 수입할 농작물이 남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국제추이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우리처럼 개발로 식량기지가 위축된 데 이어 소비량이 급증한 중국이 농산물 순수입국이 된 마당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과 유럽도 자국의 식량이 부족해지면 러시아처럼 수출을 지체 없이 금지할 가능성이 높다.

 

땅과 내일을 유기적으로 살리는 유기농산물은 가격이 높다. 농약으로 환경과 건강을 해치는 비용을 외부화한 기존 농작물과 달리 가격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내 땅에서 재배한 유기농산물로 가족의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우리는 저급한 수입농작물,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 농촌과 농민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정부는 농민을 돈벌이로 현혹하는 천박한 정책을 버려야 한다. 이 땅에 생명을 둔 이의 내일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는 농촌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으로 나서야 옳다. 농업은 더도 덜도 없는 생존기반이다. 투기가 된 농업에서 건강한 내일은 비롯될 수 없지 않은가. (푸른생협 소식지, 20119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9. 14. 11:02

 

“그 많던 쌀과 옥수수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니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량의 국제 거래 가격이 치솟았던 2006년에서 2008년 사이에 불거진 지구촌의 위기를 필리핀의 사회학자 월든 벨로가 그렇게 빗댔다. 식량전쟁을 둘러싼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꾸준히 고발하는 그는 위의 제목으로 책을 펴내 각국은 늦기 전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년 전 국제 곡물 가격의 폭등은 최빈국들을 고통에 몰아넣었고 농토를 빼앗긴 민중은 무작정 굶주릴 수 없었는데, 대책에 미온적이던 정부는 거리에 나와 식량과 농지의 확보를 요구하는 자국민을 폭도로 몰며 무차별적으로 진압, 수십 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이 발생했다. 국제미작연구소가 있을 만큼 쌀 재배환경이 우수했던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고 옥수수 원산지인 멕시코도 마찬가지였는데, 굶주림은 사회적 약자에 편중됐다. 남성보다 여성, 어른보다 어린이나 노인에게 집중돼 여아와 할머니들이 주로 희생되었다.

 

2년이 지난 올 여름, 거대한 산불로 더 뜨거웠던 러시아가 밀 수출금지 조치를 올해 말에서 내년 수확 이후로 연장했다. 러시아뿐이 아니다. 작황이 줄어든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도 러시아의 조치를 뒤따를 태세다. 그 여파는 당장 2년 전의 폭동이 재현될 조짐으로 이어졌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값을 30퍼센트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마음 급해진 시민들이 식료품점을 탈취하는 소동을 일으켰고,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수백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대책 마련을 위해 부산을 떨지만, 러시아는 금수조치를 풀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회복되자마자 흉작이 온 이유를 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서둘러 분석하는데, 거기에 다른 요인을 더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남부와 파키스탄 펀자브의 곡창지대, 그리고 북한 압록강 연변의 농토처럼 지구온난화를 원인으로 이해해야 하는 수해가 참혹했지만, 그 전에 농토는 물론이고 농토로 활용할 수 있는 땅마저 크게 줄었다. 개발 때문이지만 보전된 농토도 자급과 거리가 멀었다. 부자 나라의 기호식품을 위해 헌납해야 했거나 심지어 제 농토에서 충분히 수확하고 굶주려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던 장 지글러가 진저리치듯, 그 이유는 가혹한 외채에 있다. 세계은행이나 아이엠에프와 같은 국제 투기자본이 빌려준 돈으로 댐이나 고속도로를 개발하면 이익은 일부 특권층이 독점하지만 농토가 수몰 또는 잠식된 농부는 굶주려야 한다. 그뿐인가. 외채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을 위해 정부는 수출작물을 강요한다.

 

녹색혁명은 기대 이상의 식량 증산을 한동안 가져왔지만 세계 인구를 급증하게 했다. 정부 보조금을 휩쓸어가는 다국적기업의 수완으로 헐값의 잉여식량을 먼 지역까지 대량으로 수송하자 비만 인구만 늘어난 게 아니었다. 구호식량은 역설적으로 배고픈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기아로 죽는 인구보다 굶주린 상태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의 수가 많은 건 기초 의약품 덕분인데, 빈국들은 자급자족 기반을 확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얼마 안 되는 농토에서 수확량을 보전하려 애쓰지만 현혹되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녹색혁명이 일러준 화학농법, 다시 말해 자본과 석유 없이 도전할 수 없는 산업적 화학농업이므로 댐이 필요할 뿐 아니라 농기계를 써야 한다. 석유를 가공해 얻는 화학비료와 농약은 토양 생태계를 괴멸시켜 땅을 딱딱하게 만들지 않던가.

 

요즘 화학농업은 소출을 늘리지 못한다. 미생물과 지렁이를 잃은 땅은 기름진 표토와 자생력을 잃었으니 화학비료와 농약을 더 많이 뿌려야 유지할 수 있는데, 경작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농부는 ‘환금작물’, 다시 말해 돈벌이를 위한 다수확품종을 심으려 한다. 하지만 한두 품종의 작물은 해충과 잡초를 끊임없이 끌어들이니 농약의 양은 날로 늘어나게 되고, 해충과 잡초의 내성이 강화되니 농약의 독성은 독해지기만 한다. 이제 흉작을 피하려면 더욱 혹독한 화학농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다국적 종자기업에서 구입하는 그런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무척 좁아 환경변화에 무기력한 게 보통이다.

 

일본의 경제평론가 우치하시 가츠토는 ‘FEC 자급권’을 설파한다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은 귀띔한다. “식량(Food)과 에너지(Energy)와 돌봄(Care)은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제외시켜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라는 것이다. 그 세 가지를 모두 자급하는 국가는 요사이 극히 드문데, 인류의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 사장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심각해진 밀과 마찬가지로 옥수수와 콩도 몇 국가에서 생산을 독점한다. 돈이 많든 적든, 주곡은 그나마 자국에서 어느 정도 확보하려 노력하지만 불가항력이고, 견과류와 육류는 언감생심이다. 먹지 않아도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는 과일이나 기호식품은 물론, 채소까지 해외에 의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입 식량을 황제 부럽지 않게 먹든, 구호식량으로 입에 풀칠만 하든, 소비자는 식량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국제곡물 가격은 점점 불안해진다. 지구온난화가 야기한 엘니뇨와 라니냐는 차라리 애교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비웃는 투기세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1996년 세계의 생산량이 3퍼센트 줄어들자 곡물 가격이 갑자기 두 배 앙등한 이유는 투기자본이 제공했다. 수확량 10퍼센트 변동이 30퍼센트 가격 변동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전문가들이 ‘가격 탄력성’이라 말하는데, 탄력성이 유난히 큰 식량은 대개 시카고에서 선물로 거래한다. 돈을 직접 교환하는 외환거래나 물건을 놓고 벌이는 미술품 경매와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수확량을 근거로 거래하니 가격은 소문에 따라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다.

투기자본의 돈벌이와 관계없이 사료값 인상으로 고기값이 오를 테고, 가공식품도 덩달아 값을 올릴 것이다.

 

금수조치를 단행한 러시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정부는 자국이 생산한 식량을 국내에 우선 공급하려 애쓰지만 다국적기업과 계약을 맺은 농장주의 생각은 다르다. 수출 이익이 크다면 다국적기업에 곡물을 넘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2008년 카자흐스탄은 자국의 밀에 수출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해야 했고, 같은 해 중국과 우크라이나도 수출세를 대폭 올렸다. 국제 곡물상이나 거대 농장주는 최빈국에 대한 분배보다 이윤에 관심이 큰데, 돈이 충분한 국가라면 국제 선물시장을 노크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그렇듯 수출관세는 식량의 무기화와 무관하지 않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련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곡물수출 금지를 단행하자 비롯된 ‘식량무기’라는 말은 소련 해체 후 쿠바 경제봉쇄 때 재현되었다. 그렇다면 썩을 정도로 남아도는 쌀을 굶주리는 북한에 한사코 제공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태도는 식량무기와 관계없는지 생각해볼 문젠데, 특정 국가 사이에 배타적 무역 특혜를 베푼다는 자유무역협정, 다시 말해 FTA는 식량 무기화를 더욱 무섭게 만들 수 있다. 망하지 않을 만큼 받는 보조금으로 생산한 막대한 잉여 농산물을 특정 국가에 헐값으로 수출하면 그 나라 농업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자본이 국가를 고발할 수 있는 이른바 ‘투자자 직접 소송제’를 반드시 요구하는 미국과 맺는 FTA는 무너진 농업기반을 돌이키기 어렵게 한다. 정부의 규제나 지원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며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경우, 개별 정부가 승소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북중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된 이후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마구 들어가자 옥수수로 자급하던 멕시코의 농업기반은 초토화되었다. 뼈 빠지게 농사짓느니 미국계 공장에 취직해 달러를 벌어 가족과 밥 사먹는 게 경제적이라 믿게 만들었는데, 착각이라는 게 금세 드러난 것이다. ‘노동 유연성’라는 아리송한 언어로 치장했지만 해고가 자유로워진 자본은 임금을 거듭 낮추는데, 바이오디젤이나 에탄올로 가공하는 게 이익이 크다고 계산하는 곡물상이 수출량을 대폭 줄이자 옥수수 가격이 치솟은 게 아닌가. 농토가 사라진 상황에서 저임금에 허덕이거나 해고된 멕시코인은 자국에서 난민이 되었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세계무역기구는 식량을 상품목록에서 예외로 인정하지 않는다. 2003년 세계적 휴양도시인 멕시코 칸쿤에 모인 세계무역기구의 각료들은 농민들의 진입을 막은 철망 위에서 이경해 열사가 자결한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경해 열사는 식량 무기화를 막으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타국에서 마지막 남은 목소리를 외친 것이었다.

 

세계 식량 무역을 틀어쥔 몇 안 되는 곡물상의 대표 격인 카길은 제재 기능을 가진 세계무역기구의 규정을 입안했다. 다국적기업인 카길은 국적이 없지만 미국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미국의 이익에 우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잉여식량을 독과점하며 수출하는 국제 곡물상 간부는 미 정부의 고위 공직자 자리를 돌고 돈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 따라서 수출관세를 매겨 곡물가격이 올라도 다국적기업의 이윤은 줄어들지 않고 가난한 국가는 굶주릴 수밖에 없으며 돈이 있어도 곡물상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수입국은 수출국에 복종을 맹세해야 할지 모른다. 잉여 농산물의 언제까지나 안정될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는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미국에도 예외가 아닌데.

 

윌리엄 엥달은 1970년대 미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발언, “석유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국가들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식량을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 인민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를 돌이키며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거의 없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파괴의 씨앗이라고 경계했다. 다국적기업이 독점 공급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피하지 못한다면 인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전 조지는 부자나라의 호의호식을 연장하려면 세계 인구를 3분의1 이상 줄여야하는데, 그때 식량 무기화가 주효할 것으로 섬뜩하게 예고했다. 그러므로 식량의 4분의3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국적기업에 고개 숙이고 수출국에 충성을 맹세해야 할까.

 

돈이 아무리 많아도 먹을 게 없으면 굶어야 한다. 스페인 지배 하의 남미 포토시에서 부자들도 한 때 쥐를 잡아먹어야 했다.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식량 자급부터 독립이 시작된다고 했다. 식량은 안보 차원에서 수입하는 상품일 수 없다. 주권 차원에서 생산기반을 확보해야 하고, 소비자는 무던한 생산자에게 고맙고 미안해해야 옳다. 쿠바는 미국의 철두철미한 경제봉쇄를 도시농업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니 식량 수출국과 다국적기업에 굴종할 수 없는 국가의 시민들은 식량주권 회복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기상이변을 속출하게 하는 지구온난화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거듭 경고하는 이때. (시조, 2010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