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3. 23:20

 

2000년 아시아와 유럽 정상들의 회의(아셈회의)가 서울 삼성동에서 본격 막을 올리기 직전에 관련 국가들의 시민단체(NGO)가 건국대학교에서 만났다. 여러 가지 논의 주제 중 역시 국제 관심사인 GMO도 예외가 아니어서 별도의 마당이 펼쳐졌는데, 유럽의 대표적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서 파견한 독일 출신의 식품공학 박사가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유럽 시장에 GMO는 발붙이지 못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유럽 그린피스는 회비를 내는 회원이 600만 명이라고 한다. 600만을 대표하는 그린피스의 측의 대변인이 세계 최대의 가공식품회사인 네슬레에 질문서를 보내면서 유럽에 GMO가 사라지게 되었다며 유럽 그린피스 대원은 그 경과를 소상히 발표했다.

 

옥수수가 주요 재료인 네슬레 신상품의 제조일자를 확인한 그린피스는 옥수수의 수입경로를 추적, 미국 어느 항구의 어떤 화물선에 실린 옥수수인지, 그 옥수수는 어느 고장의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그 농부는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철저하게 조사한 뒤 네슬레에 공개질의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우리의 조사 결과 이번에 출시된 당신네 회사의 이 가공식품은 원료 중 적어도 30퍼센트는 GMO가 섞인 거로 추정되는데 맞는지?” 확인을 공개 요청하자 네슬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아닌가. 결국 그 제품을 시장에서 퇴출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발표한 유럽의 그린피스 대원은 네슬레의 즉각적인 반응에 놀란 경쟁회사들도 자진해서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면서, 식품회사들이 GMO를 특별히 꺼리는 건 아니지만 제품표시에 민감한 소비자의 눈치를 살펴야하니 유럽 시장에서 GMO를 퇴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지었다.

 

비슷한 사례는 미국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아식으로 유명한 거버였다. 유아식의 재료에 들어간 옥수수의 원료를 추적한 미국 그린피스의 공개 질의에 당황한 거버는 즉각 사실을 왜곡하며 반박했지만 이내 실토하며 거액의 비용을 감당하면서 해당 제품을 전량 시장에서 회수했다. 100만 명의 회원을 가진 미국 그린피스가 즉각 성분 조사를 공언하자 거버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사실 유럽과 달리 미국 소비자들은 GMO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에 크게 분노한다. 만일 거버의 그 유아식이 애초 발표와 달리 GMO 옥수수가 포함된 것으로 드러난다면 소비자의 불같은 항의와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게 분명했고, 문제의 유아식 뿐 아니라 나머지 제품마저 외면당할 것을 예상해야 했다. 회사의 이미지가 추락하면 매출이 감소하고, 주식 가격이 추락하며 노동자의 해고와 더불어 최고경영자는 자리를 잃을 텐데, 어찌 두렵지 않을 수 있으랴.

 

우리 시민단체도 흉내낸 적 있었다. 외국의 사례에 따라 재료를 추적하고 싶지만 인력과 비용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질의내용이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답변은 간단했다. “법을 지킬 따름”이라는 회신이었다. 우리의 소비자운동이 약하다는 걸 이미 간파한 반응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시민단체의 노력이 전혀 효과 없었던 건 아니었다. GMO를 두둔하는 수상관저 앞에 유전자조작 콩을 트럭으로 쏟아붓고 항의하는 영국과 유럽의 그린피스처럼 철도를 봉쇄하거나 선박에 쇠사슬을 묶는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었던 우리 시민단체는 거리에 소박하게 나와 시민에게 직접 호소하며 나섰고, 생소한 시민운동에 언론이 관심을 보이자 언론을 본 정치권의 요구로 우리나라에도 시판하는 농산물과 식품에 GMO 여부를 알리는 이른바 ‘GMO 표시제’가 시행하게 것이다. 하지만 수출국의 눈치를 살피려는 것인지, 우리 정부가 시행한 “소비자의 ‘알권리’ 차원의 표시제”는 시민단체가 요구한 “안 먹을 권리”와 거리가 멀었다. 유럽처럼 GMO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주요 GMO 생산국인 미국은 GMO 표시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건만 유명 유기농마켓에는 버젓이 표시된 채 진열돼 있었다. ‘NON GMO’, 다시 말해 GMO가 아니라는 걸 명쾌하게 표시하고 있기에 책임자에게 질문하자 대답이 또한 명쾌했다. “우리는 정부의 제도가 아니라 생산자를 믿고 소비자는 우리를 믿는다!”는 게 아닌가. 소비자가 원하므로 표시를 할 뿐 정부의 제도와 관계없다면서, 그로 인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라고 답하는 그 유기농마켓은 요즘도 소비자들의 호응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처럼 애매하게 “GMO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을 알리는 수준이 아니라 ‘안 먹을 권리’가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이라고 미국의 관련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답한다.

 

흔히 GMO가 아닌 농산물을 따로 모으려면 비용이 증가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GMO와 그렇지 않은 농산물을 섞어 취급해온 수출업자의 주장에 근거한다. 미국의 수출업자도 소비자가 원하면 분리해 수출할 수밖에 없다. 그들도 경쟁자에 고객을 넘기기 싫어할 것이므로. GMO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에 많아 그렇지 않은 농산물을 구하기 어렵다면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복될 것이다. 어차피 시장은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움직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GMO를 경계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GMO의 규모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몬산토와 같이 GMO 씨앗을 독점 판매하는 기업은 “자신도 주부”임을 강조하는 여성을 앞세우며 안전을 홍보하고, 우호적인 과학자를 동원하며 식량증산과 환경보호를 운운하지만, 소비자가 깨어있다면 공급자의 광고에 쉽게 길들지 않는다. 몇 안 되는 다국적기업의 이익에 충성하는 GMO보다 땅과 농부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다양한 음식문화를 존중하는 전통 농산물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므로 농산물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수입국 소비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GMO에 긍정적인 전문가나 기업은 GMO나 그렇지 않은 농작물을 비교할 때, 모양이나 색깔, 맛이나 영양분이 실질적으로 같다면서 안전을 주장하지만 이미 몇 차례 연구와 실제 농업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경험적으로 증명한다. 내일을 걱정하는 소비자는 사전에 안전하다는 게 납득할 정도로 밝혀지지 않는 한 먹지 않겠다고 버틴다. 소비자의 요구를 경청하는 국가의 수입당국은 수출국에 관리를 파견해서 파종에서 수확과 선적에 이르기까지 수입할 농작물의 상황을 파악하는 이른바 ‘사회적 검증’을 투명하게 시행한다.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농작물이나 식품의 상태를 사후에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보다 안심을 원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행정이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GMO를 먹어왔다. 그렇더라도 가능하다면 최대한 조심하는 게 바람직하다. 먹는 이의 몸도 물론이지만 후손의 건강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무엇보다 내일의 생태계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산물과 농토를 살리는 길이 거기에 있지 않던가. 우선 GMO 표시제를 소비자의 요구대로 정비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농산물의 안전과 유전적 다양성 회복, 그리고 우리 기후와 풍토에 맞는 전통 음식의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내 땅에서 다양한 유기농산물을 자급자족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 될 것이다. 그를 위해 생산자보다 소비자들이 각성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생산자를 끌어가야 확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스러움을 향하는 소비자운동, 내일을 위한 시민의 참여가 가장 확실한 대안이 아닐 수 없다. (사이언스올, 2009년 7월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