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7. 3. 23:09

 

씨앗을 갈무리해 두는 농부의 오랜 노고를 없앤 종자회사는 혹시나 모르는 종자 채종을 은근히 감시하고 발각되는 농가에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금을 청구한다. 녹색혁명 이후 농부는 그저 종자회사에서 어련히 주는 씨앗을 심어야 하고 소출은 몽땅 팔아치워야 착실하다고 칭찬받는 법인데, 요즘은 수고롭게 채종해보아도 소용없는 씨앗이 많다. 슬쩍 받아놓은 씨앗을 이듬해 심으면 아예 싹이 트지 않거나 가을에 쭉정이가 열리도록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다. 많은 수확을 보장한다고 광고하는 채소의 씨앗들이 대개 그렇다.

 

유전자조작 농작물의 씨앗은 처음에는 아주 저렴하게 판매한다. 완고한 시장에 파고들 틈을 만들어야 하는 기업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아니다. 성능이 빼어난 외국의 소프트웨어가 국산에 비해 저렴한 이유와 비슷하다.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서는 순간 가격을 올릴 속셈을 감췄다고 보아야 한다. 그와 같은 기업의 영업 전략이 성공한다면 머지않아 시장은 광고와 저가 공세로 소비자를 현혹하는 기업에 주도권을 넘길 텐데, 일단 시장을 장악한 제품은 새로운 제품의 도전이 거셀 때까지 가격이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자금력이 가장 단단한 다국적기업답게 GMO 씨앗을 독점적으로 세계에 판매하는 몬산토에서 이른바 ‘터미네이터’ 기술을 굳이 추가하려고 시도한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GMO 씨앗이 장밋빛 광고와 저가 공세로 드디어 시장을 점령했다면 회사는 씨앗의 가격을 슬그머니 올릴 텐데, 광고처럼 제초제가 전보다 덜 들어가므로 소득도 늘어났다고 여긴 농부들은 올라간 가격을 감당하려 하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가을에 종자를 채종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를 대비해 몬산토는 채종해둔 씨앗을 심으면 싹이 트지 않거나 쭉정이가 맺도록 유전자를 추가로 조작한 것이다. 그 의도는 금방 시민단체나 농부들의 저항을 받았다. 터미네이터 기술로 인한 피해는 미국과 같은 거대한 농장보다 제3세계의 가난한 농부에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몬산토는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공식 포기했지만 폐기한 건 아니다. 대신 몬산토에서 판매하는 제초제를 뿌려야 발아가 되는 씨앗을 개발했다. 이른바 ‘트레이터’ 기술이다.

 

몬산토의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농작물을 한번 심으면 농부는 이듬해에도 같은 계열의 농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생각에 젖는다. 땅 속에 제초제가 일부라도 남아 있을 텐데 어찌 다른 농작물을 심을 것인가. 그 제초제에 저항성 있는 씨앗 이외의 선택은 망설여질 수밖에 없건만 씨앗의 가격이 오르니 종자회사가 신이 나는 만큼 농부는 울며 겨자 먹는 꼴이 되고 만다. 한데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잡초로 옮겨가는 일이 발생했다. 처음에 멋모르고 제초제를 더 뿌렸지만 이내 소용없다는 걸 깨닫는 농부. 애초 GMO 씨앗을 심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종자회사는 배상은커녕 위로조차 없다.

 

전통 농작물을 고집하던 캐나다 농부는 황당한 소송에 휘말렸다. 몬산토에서 자기네 GMO 씨앗을 몰래 심었다며 고발한 것이다. 길 가의 밭 가장자리에서 자란 농작물이 몬산토의 GMO라는 게 아닌가. 그걸 미리 알았다면 유전자 오염을 막기 위해 뽑아냈거나 GMO 곡물을 운반하는 트럭회사에 항의라도 했을 텐데 어처구니없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므로 법정에서 자신이 오히려 피해를 입었다고 당당하게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막강한 변호사의 교묘한 주장에 판사들이 몬산토의 손을 들어주었던 거다. 감당하기 어려운 배상금 액수에 망연자실해 하는 농부에게 슬며시 다가오는 몬산토는 타협을 제안했다고 그 과정을 조사한 시민단체는 밝힌다. 앞으로 자기 회사의 씨앗으로 바꿔 심는다면 없던 일로 여기겠다고 유혹했다는 거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유전자조작의 비윤리적 문제는 농작물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유전자조작의 다른 이름 중의 하나인 ‘형질전환’. 엉뚱한 유전자가 들어와 변형된 형질전환 동물의 운명은 어떤 것일까. 지나치게 성장한 연어는 몸이 기형이고 수영도 제대로 칠 수 없다. 그런 개체는 죽지 못해 살 뿐인데, 나머지 형질전환 동물의 운명도 나을 게 없다. 형광물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물고기와 쥐와 돼지는 사람이 아니므로 본성이 파괴되어도 관계없는 것일까. 인간에게 장기를 내주어야 하는 용도로 유전자가 조작되는 이른바 ‘미니돼지’의 운명은 과연 윤리적일까. 돼지만이 아니라 돼지의 장기를 받을 사람에게 윤리적인 거부감은 생기지 않을 것인가.

 

자신의 몸에 적합한 장기를 기다리다 목숨을 잃는 환자를 위해 유전자조작으로 면역거부반응을 없앤 미니돼지를 개발하겠다는 포부를 어떤 생명공학자는 자랑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식한 장기도 심각한 거부반응이 생기는데 유전자조작으로 면역에 관련하는 돼지 유전자 몇 개를 파괴한다고 거부반응이 해소될 수 있을까. 우리는 돼지는 물론이고 사람 사이의 면역에 대해서도 시방 아는 게 부족한데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도 면역 거부반응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 장기를 과연 유전자조작 돼지의 몸으로 생산해낼 수 있을까. 돼지의 장기를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몸에 맞는 사람의 장기가 확보될 때까지 생명을 연장시키길 바라는 마음의 발로라고 주장하는 생명공학자도 있다. 뜻이야 가상하지만 무모하다. 불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환자는 물론이고 환경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비를 투여한 결과 돼지의 면역 거부반응 없는 장기를 넣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고 치자. 과연 성공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비용은 따지지 말고, 질병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았는데 환자는 줄어들까.

 

정작 주목해야 할 문제는 돼지 염색체 안에 오래 전에 깃들어 있는 ‘내인성 바이러스’의 창궐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언제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그 바이러스는 무균사육으로 제거될 수 있는 성격의 유전자가 아니다. 세계 유수의 연구소 과학자들이 사람의 염색체를 분석한 결과 사람의 유전자 사이에도 언제인지 알 수 없는 먼 조상부터 안착되어 유전되고 있는 바이러스가 많다는 걸 이미 밝혀냈다. 저명한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자신의 명저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 1999)에서 생물들이 서로 먹고 먹히거나, 미생물에 감염되는 과정에서 유전자를 공유하며 진화하게 되었다는 걸 밝혔다. 사람처럼 염색체 사이에 그런 과정으로 들어온 돼지의 내인성 바이러스가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진화 과정에서 끼어든 돼지의 염색체 속의 내인성 바이러스는 오랜 면역 반응의 시행착오 끝에 돼지에게 거의 해를 주지 않게 적응되었지만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돼지고기로 들어올 경우 강력한 소화효소로 분해되거나 배설돼 문제될 게 없지만 살아 있는 장기로 몸에 들어올 경우 치명적인 질병으로 돌변할 수 있다. 원숭이 몸에서 별 문제가 없던 바이러스가 원인이 된 에이즈 이상의 질병이 인간 사회에 창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돼지 장기를 잠시라도 넣었던 환자는 엄격히 격리해야 할 텐데, 그를 돌보아야 하는 가족과 이웃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동물장기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그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양의 유전자가 들어간 소, 그리고 개의 유전자가 들어간 돼지의 모습은 흉측했지만 실패로 끝났기에 더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발현된 겉모습에 성공이라 판단, 섣불리 개체수를 늘었다 자연으로 퍼져나간다면 그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과연 막을 수 있을까. 모기를 통해 다른 생물의 유전자를 교란할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을까. 성공을 장담하는 과학자를 믿고 젊어서부터 자신의 건강을 지키지 않는 환자가 늘어난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떠맡을 수 있나. 지나친 상상일까. 형질전환 기술로 개발한 효능이 빼어나고 가격이 저렴한 인슐린이 대량생산되자 당뇨병 환자들은 오히려 늘었다. 같은 기술로 성호르몬이 공급되면서 갱년기 현상이 질병으로 둔갑하고 성호르몬 처방과 비례해 부작용도 늘어났다. 엉뚱한 환자가 늘어난 것이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 그 기술로 발생할 수 있는 생태적, 사회적인 문제를 반드시 사전에 성찰해야 한다. 살아 있는 유전자는 회수할 수 없고 언제 어떻게 발현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 않은가. 들어가는 연구비의 액수와 관계없이 돼지 장기 이식 연구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여기에서 접어두자. 아직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으니 안전한 것이라고 생명공학자와 생명공학 기업이 주장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이끄는 내일이 큰 걱정이다. 언제까지 우리를 안심하게 할 수 있을지. (사이언스올, 2009년 7월 첫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