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8. 3. 31. 22:17

 

연수구 청학동 주민들은 수인선에 청학역 신설을 원한다. 다닥다닥 주차된 트럭과 소형차 사이를 뚫고 버스 정거장까지 걸자니 골목이 멀고 노선이 단순한 버스는 배차간격이 멀다. 대중교통 사정이 열악하기에 지하철역의 신설을 바라는 것이지 결코 서울을 쉽게 다녀오려는 의지가 아니다. 승용차가 없다면 동네 밖에서 친구 만나기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서구 청라국제도시의 주민들도 지하철역 신설을 원하지만 청학동과 그 이유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방자치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해석한다. 청라 고급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 이어지지 않은 서울지하철 7호선 역사의 예정지점을 번듯하게 표시해놓았다. 자신의 생활 본거지를 서울로 생각하기에 인천지하철 2호선의 연결이 무산되어도 섭섭해 하지 않았던 그들은 서울로 빨리 연결되는 도로의 신설을 지금도 원한다.


인천에 주민등록을 한 시민이 300만을 돌파했지만 자신이 인천시민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레 생각하는 이웃은 그만큼 늘어나지 않았다. 땅값과 집값이 감당할 수 없게 오르면서 서울을 떠난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는 개발에 몰두한 결과이기에 인구증가만큼 정주의식, 다시 말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지 못했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이라면 인구증가를 덮어놓고 환영하지 않는다. 삶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니 목소리가 크지 않다. 자신을 서울시민이라 생각하는 국제도시 주민은 다르다. 서울로 빠르게 이어지는 교통수단을 인천시에 요구하고,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은 움찔한다.


인천의 정취를 눈물겹게 간직하는 북성포구는 시방 시민의 삶과 무관한 개발을 위해 매립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천의 문화와 역사가 천박한 돈벌이를 위해 다시금 사라질 것인가? 마음이 답답한데, 아스라한 향취를 기억하고 찾는 시민들은 북성포구에서 청라국제도시가 가깝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북성포구에서 대중교통으로 청라로 가려면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다. 인천의 길이 지역 정서를 제대로 잇지 못하니 북성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드물어진다. 서울을 향해 도열하는 길이 누비는 인천에서,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은 북성포구의 매립을 안타까워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오로지 값싼 아파트 때문에 주민등록을 옮긴 주민에게 인천에 대한 관심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신의 생활권이라 여기는 서울로 빠르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랄 뿐, 인천의 문화와 역사 따위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다. 관심을 일이키지 않는 인천, 살가운 이웃을 만날 수 없는 지역에 세금을 내는 사실이 불쾌하겠지. 자신의 주거지역에 호화롭게 문을 연 대형 쇼핑몰이 벌어들인 돈을 서울로 모조리 이전해도 부당하다 생각할 리 없다. 청라국제도시의 많은 주민들이 그럴 것인데 송도신도시는 어떨까?


송도신도시는 송남과 송북으로 나뉜다고 냉소하는 친구와 연수구의 주점에서 만날 기회가 잦다. 송남과 송북은 강남과 강북과 같은 허위의식을 반영한다. 크고 화려한 아파트단지가 새로 솟구치면서 이사한 송도신도시의 남쪽 주민은 북쪽보다 지신의 신분이 근사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는 겐가? 주택의 크기와 화려함? 자동차의 배기량? 자식의 학력? 인천 정서에 뿌리가 없는 그저 신기루일 뿐인데, 그들은 자신이 인천시민으로 여길지 모르겠다. 연수구의 주점에서 친구를 만날 일이 드물 테니 강남 호화 음식점의 이름을 더 많이 기억하겠지.


중국산 석탄을 주로 취급하겠다던 수인선이 지상으로 갈라놓자 연수구 주민들은 왕래가 부자연스러워졌다. 이후 출마 후보마다 녹지를 조성한 콘크리트로 수인선 지상을 덮어 자연스레 이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구체적 계획은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수인선을 지하로 넣었다면 지역은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으로 가르는 철도나 커다란 도로가 없는 송도신도시에서 웬 송남 송북 타령일까? 인천시 정주 정책의 빈곤이다. 외부자본이 주도하는 휘황찬란한 외형이나 급하게 늘어나는 인구는 시민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에서 중요한 사항일 수 없다.


머지않아 시장과 구청장, 그리고 시의원과 구의원 후보가 결정되면 수많은 공약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드높일 텐데, 벌써부터 서울로 빨리 이어주겠다는 도로와 지하철 약속이 듣기 싫어진다. 송도신도시에서 서울 강남을 거쳐 청량리와 남양주 마석으로 빠르게 이어준다는 GTX는 인천에게 축복인가? 청라에서 북성포구로 편안하게 잇는 대중교통도 없는데? 송도신도시 주민들의 마음에 인천시 구도심은 들어 있지 못하는데?


서구에서 부천을 지나 서울 홍익대로 연결하는 지하철을 추진하자고 관련 단체장들이 업무추진협약을 맺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16천억이 넘는 예산이 들어간다는데, 그 지하철이 인천시민 300만 명의 교통 편의와 지역발전을위해 얼마나 기여할까? 서울로 빠르게 접근하려는 인천시민은 인천에서 만나도 그저 서먹하기만 하다. 인천을 빠르게 벗어나는 길은 이미 지나치게 많다. 인천에서 급한 건 서울로 잇는 길이 아니다. 토박이든, 주민등록 옮긴 지 오래되지 않은 시민이든,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정책의 살가움이다. (인천in, 2018.3.29.)

 
 
 

도시·인천

디딤돌 2016. 5. 6. 15:24

 

인천에 사는 관계로 회의를 하러 서울에 자주 가게 된다. 기왕 가는 길이니 눈여겨두었던 책을 구할 겸 대형서점을 들리고 이따금 독특한 수입상품을 파는 상가도 찾는다. 인천에 대형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 책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수입상가도 있지만 물건의 종류가 부족하고 가격도 다소 높은 편이다.


회의는 꼭 서울에서 해야 하나? 구성원 중에 인천 사람이 차지하는 비율로 인천에서 열자고 제안하면 일순 동의한다. 하지만 웬걸. 정작 회의 시간이 되면 사정 때문에 못 간다는 연락이 이어진다, 인천 사람들은 늘 감당해왔건만 멀어서 그렇다고 핑계를 댄다. 인천 생활도 바쁘다. 하지만 가끔 서울로 왕복하면서 즐거움을 누린다. 핸드폰에 시간을 다소 빼앗기지만 지하철에서 읽는 독서량이 많다. 눈을 붙이며 노곤한 몸을 달랠 수 있다. 서울 시민들은 그 기쁨을 모를 것이다.


서울로 빠르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은 걸까? 서울로 잇는 고속도로의 수와 폭을 지금처럼 확대하기 전, 인천의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니 “3시간 주차요금이 참 싸다.”고 빈정거린 적 있는데, 그는 서울에서 출퇴근했다. 집이 인천이라면 많은 시간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늘릴 수 있었겠지. 지역에 기여할 기회가 많았을 텐데.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중앙 의존성이 클수록, 접근성이 빨라지면 서울에 대한 지방의 종속성은 높아진다. 인천에 시민은 점점 늘어 어느새 300만을 눈앞에 두었지만 스스로 인천시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는 늘지 않았다. 서울로 출퇴근하며 불만 늘어놓는 시민은 인천에서 발행하는 언론에 별 관심이 없다. 인천 소식은 물론, 역사와 문화가 궁금하지 않다. 기회가 생기면 서울로 주거지를 옮기고 싶을 뿐이다.


서울과 거리가 떨어져 그나마 채산을 유지했던 대구와 광주의 작지 않던 병원들이 속속 문 닫았다는 소식은 이제 새롭지 않다. 전통을 이어왔던 종합대학교들이 신입생 모집에 애를 먹는다는 하소연이 커진다. 작은 대학은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대책을 호소하는데, 듣자니 남감하다. KTX노선이 생긴 이후의 일이다.


인천에 KTX가 연결될 것이지만 그 노선은 서울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 인천 기점으로 예정된 지역의 투기열풍이 걱정인데, 다른 지방을 직접 연결하기에 의미가 있다. 시간 단축보다 서울 의존도를 그만큼 낮추지 않은가. 그렇다고 반길 점만 있는 건 아니다. 3경인고속도로가 있기에 서울을 거치지 않고 인천공항으로 오는 지방의 시민들이 있지만 그들은 인천을 둘러보지 않는다. 그저 공항만 다녀갈 뿐, 둘러볼 시간도 의지도 없다. 인천의 KTX는 어떤 지방 시민들을 불러들일까?


인천의 전통과 문화,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하고 시민들이 자랑스레 지키며 능동적으로 알리지 못한다면, 찾는 이에게 인천다움을 재미와 감동으로 전할 수 없다면, 업무 이외의 목적으로 인천을 찾는 이 드물 것이다. 선박을 이용한 중국 관광객이 인천의 저렴한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서울로 달려가듯, 추가될 KTX도 손님을 수북하게 풀지 않을 게 뻔하다.


인천시는 인천의 가치를 재창조하겠다고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응당 예산과 제도를 정비하며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정체성과 정주성을 생각하는 시민들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한 마당을 깔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불거지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 다시 말해 GTX는 생뚱맞다. 천문학적 비용과 공사의 어려움, 그리고 관리운영의 고비용이 아니다. 덮어놓고 접근성만 따지는 GTX는 서울 종속성만 높일 뿐이지 않은가. GTX 때문에 주민등록을 옮긴 시민은 인천다움을 위한 정책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관성처럼 지속한 중앙 지향의 교통정책과 생활습관은 에너지 효율과 절약을 기반으로 펼칠 지방자치 시대에 가당치 않다. 천문학적 비용은 문제의 일부다. 경제적 편익만 고려대상일 수 없다. 자립과 정체성, 그리고 도시 백년대계를 약속하는 정주성까지 고려한다면, GTX는 인천시가 고민해야 할 대안일 수 없다. GTX는 인천의 가치를 결코 재창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복하겠지. (기호일보, 2016.5.6.)

 
 
 

도시·인천

디딤돌 2014. 6. 13. 10:52


 독일 바이에른 주를 대표하는 뮌헨은 1972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다. 독일 도시들이 대개 그렇듯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뮌헨은 오랜 역사를 지녔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아 이민가고 싶은 도시의 윗자리로 선정되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은 지역이기도 하다. 올림픽 기간에 이스라엘 올림픽 선수단을 인질로 팔레스타인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던 검은 9월단이 인질 전원을 사살했던 기억 때문이다.


지금 뮌헨에서 이방인을 만나는 시민의 표정은 밝다. 거리와 마을은 환하다. 1972년 악몽은 여전하지만 진저리치던 시민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남도록, 아니 떠날 이유를 찾지 않도록 시 당국은 정주의식을 높이는 행정을 최우선으로 펼친 데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세계 최고를 되뇌는 개발은 해결책이 결코 아니었다. 개벌업자와 자본이 솔깃해하는 정책과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시민들이 행복을 느끼는 행정이었다.


150년 전 운하를 위해 직선으로 깊게 파고 강변을 좁혀 개발했던 이자강을 홍수가 없던 예전의 모습으로 최대한 구불구불 복원하자 모래와 자갈이 넓은 수변공간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알프스가 녹을 때 일상이었던 수해도 사라지거나 미미해졌다. 태양과 지열로 전기를 자급하도록 개발한 신도시에 승용차의 진출입을 억제했다. 그러자 뒤에 자동차가 없다는 확신을 가진 주민들은 안심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외지인을 환하게 맞는다.


올림픽 주경기장 주변의 넓은 주차장에 나무를 가득 심었다. 나무 그늘 아래 주차하므로 주차 면 수가 크게 줄었지만 대중교통이 충분하기에 불만이 없다. 도시가 깨끗해지고 더 조용해지지 않았나. 그 뿐이 아니다. 고풍스런 아파트단지가 오래돼 낡아지자 첨단 시설을 두루 갖춘 고층 아파트로 개축한 게 아니었다. 뮌헨에서 모자란 건 텃밭이라는 시민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텃밭을 분양받은 시민들은 뮌헨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선거를 앞두고 인천 시내의 큰 사거리에 시민의 숙원이라며 송도신도시와 청량리를 잇는GTX를 착공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선거 열기가 오르며 유력한 시장후보도 GTX 또는 KTX 개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교통수단이 인천에 사는 시민에게 어떤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일체 설명하지 않았다. 빠른 교통시설이 들어오면 당연히 발전할 것이니 좋지 않겠느냐는 식이지만 막대한 건설비의 인천시 부담과 별도로, 외부의 큰 도시와 쉽게 연결되면 왜 지역이 기뻐해야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은 생략되었다.


대구와 대전의 시민들이 KTX 개설 이후 행복해졌을까? 대형 병원과 대학은 소외되더니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 KTX 이용하는 시민은 대구와 대전에 남으려 할까? 이용료가 부담스러워 자주 KTX를 타지 못해 지역에 남는 시민들에게 행복은 증진되었을까? 분명한 건 GTX를 위해 자하 50미터 이상을 파내는 토목건설업체보다 그 공사비만큼 복지가 줄어드는 지역이 쪼들린다는 경험일 것이다.


살기 좋던 그렇지 않던, 인천을 떠나지 않으려는 시민이 듣기 싫은 소리는 돈 벌면 떠나겠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이제까지 인천시를 끌어가던 행정은 인천의 정주의식과 거리가 멀었다.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인천의 오랜 추억과 정서가 남은 배다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생업을 내던지고 산업도로 관통을 막으려 나서야 했던가. 정주의식을 생각했다면 산업도로 관통 따위는 인천시에서 거론할 수 없어야 옳은 게 아닌가.


새벽까지 지지자 가슴을 떨리게 한 선거는 끝났다. 인천에 유난히 많은 대형트럭마다 내놓는 미세먼지로 가슴이 답답한 인천시민은 지역정서와 무관한 KTXGTX가 반가울 리 없다는 점을 당선자는 이해하길 바란다. 반대 주민을 억압하며 운하를 파고, 발전소를 집중시키는 도시에서 어떤 행정이 절실한지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추억 어린 갯벌을 잃어 지구온난화에 이은 풍수해가 심화될 인천의 정주의식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주길 바란다. (기호일보, 201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