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9. 11. 15. 23:55

  

1

 

2007년 12월 7일 오전, 충남 태안 앞바다는 순식간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현대오일뱅크에 납품하는 원유를 가득 실은 홍콩 선적 14만6800톤 급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 호를 인천대교 상판 공사를 마치고 귀환하는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이 들이받아 만 2천 톤의 원유를 바다에 흘린 대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원유의 피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경고였을까. 한 시사주간지는 ‘검은 시한폭탄’이라 말했다.

 

14년 전 여수 소리도 앞바다에서 좌초된 시프린스 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의 사고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원인을 제공했다. 거센 풍랑 속에 거대한 크레인을 왜 두 척의 예인선이 그것도 야간에 끌었어야 했을까. 원래 4척이어야 한다던데. 사고의 원인은 철선이 끊어진 데 따른 충돌이라지만 충돌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겨울이 덥고 여름이 추운 에너지 과소비 시대에 원유 유출은 이미 예고된 게 아니었을까.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는 가운데 이윤에 눈이 먼 기업의 책임 회피는 아직도 이어지는데, 100만이 넘는 자원봉사자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겉보기 깨끗해진 태안에서, 주민의 가슴앓이는 끝나지 않았고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해마다 10월이면 세계는 노벨상 수상자를 주목하는데, 그 중 평화상의 향방에 관심이 높다. 정치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구촌 현실 정치의 한 흐름을 반영하는 까닭일 텐데, 2007년 노벨 평화상은 미국인 엘 고어와 더불어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게 돌아갔다. 정치인을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의미를 평가 절하한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앨 고어처럼 기후변화를 비롯한 환경문제에 고민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IPCC는 기후변화에 관련된 과학적, 기술적 사실에 대한 평가를 제공하고 그 국제적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보고서를 1990년부터 펴내고 있다.

 

엘 고어의 수상은 어쩌면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프리카 사막에 나무를 심은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이래 노벨평화상이 환경과 기후변화를 평화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를 반영한 걸까.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팔 걷고 나섰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품에 표시해 지구온난화 억제에 역행하는 제품의 시장 퇴출을 유도하고 아울러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관세를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네덜란드도 최근 자동차 세금을 주행거리에 따라 차등하겠다고 발표하며 신뢰성 있는 대책을 세우는 국가 대열에 동참했는데, ‘4대강 사업’을 지구온난화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우기는 우리나라는 시방 초고층빌딩 붐이다.

 

2007년 초, 수천 건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4번째 보고서를 채택한 IPCC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으면 지구는 100년이 지나지 않아 대재앙을 맞을 수 있을 거라 주장했는데 이미 3년이 지났다. 그 보고서는 평균 기온이 섭씨 1.4도에서 6.4도 상승한 상황을 설명한다. 지금보다 1도가 높아지면 극지방을 비롯한 영구 동토층이 녹아 태평양의 군소국가연합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미국의 곡창 지대가 황폐화되어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을 거로 예측한다. 지구 평균 온도보다 0.7도 이상 뜨거워진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2.4도가 오르면 북극해에 빙상이 사라질 것으로 예견한다. 북극항로가 열리고 그 아래 원유가 퍼올려질 거로 기대하는 얼빠진 사람도 있지만 여기서는 따지지 않기로 하고, 빙하가 사라지면 대양으로 흡수되는 태양열이 증가해 지구 온도는 더욱 상승할 것으로 경고한 기후학자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물에 떠있으므로 북극 빙하가 녹는다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막대한 그린란드의 빙하다. 기후학자들은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해수면은 7미터 정도 상승하리라 추정한다. 그들은 획기적으로 노력해야 2.4도 상승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데, 7미터가 상승한다면 새만금 일원도 인천공항과 송도신도시와 더불어 바닷물에 잠길 것이다.

 

3.4도 이상 오르면 세계 곡창지대와 열대우림이 사막화되면서 기온 상승의 ‘양의 되물림 현상’(positive feedback)이 발생해 궁극적으로 6.4도 오르는 걸을 막을 수 없으며, 6.4도 상승하면 사람은 물론이고 일부 미생물을 제외한 대부분의 생물이 극지방 이외 지역에서 사라질 것으로 추측한다.

 

 

2

 

2년 전 겨울, 이경해 열사의 자결 장소로 세계 농업운동가에게 알려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세계적 휴양도시 칸쿤을 다녀왔다. 다국적 자본이 추구하는 거대한 무역 자유화의 파고에서 생명의 농업을 지켜내려고 이역 땅을 찾은 이경해 열사는 열패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는지, 이준 열사처럼 2004년 9월 이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그 역사의 땅 칸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파도가 부서지는 카리브의 투명한 바닷물, 그 파란 바다와 어우러지는 코발트 빛 하늘에는 보트가 끌어올린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가 두둥실 떠있고, 한겨울을 피해 찾아온 세계 각 국의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하루 20만 이상의 관광객이 운집하는 칸쿤은 부서진 산호가 하얗게 빚은 해안과 세계 유명 호텔이 총집결한 구역을 자랑하지만 화려한 호텔의 상당수는 사실 얼마 전에 신축 또는 개축했다. 3년 전 10월에 강타한 시속 230킬로미터의 허리케인 윌마에 넘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그때의 상처가 남은 해변에는 완공을 서두르는 건물이 눈에 띄었고, 심은 지 얼마 안 되는 야자수도 키가 작았는데, 아무리 강해도 그렇지 허리케인이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넘어뜨릴 수 있을까.

 

지구온난화가 원인이었다. 3미터가 넘는 너울이 기반인 모래를 바닥에서 휩쓸자 호텔이 맥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건데, 너울이 키우고 높인 건 바로 지구온난화였다. 기후가 전에 없이 더워지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로 칸쿤을 찾기 시작했고, 관광객이 몰려들자 자본은 해변 가득 호텔을 올렸는데, 건축물이 바람을 가로막자 해변은 여기저기 깎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오랜 세월 크고 작은 바람이 가져온 산호 가루 위에 지은 호텔은 그때도 지금처럼 에어컨을 거세게 틀어댔을 텐데, 깎여나간 해변에서 완충되지 않은 허리케인의 너울성 파고는 호텔을 순식간에 덮치고 만 것이다.

 

더욱 크고 화려하게 모습을 바꾼 호텔들은 북미와 유럽과 일본, 최근에 한국과 중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호황을 누리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먼 바다에서 뜨거운 에너지 거듭 받으며 파고를 둥글게 키우는 너울은 해안에서 시끄럽게 부서지는 파도와 차원이 다르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 바닷가 시설물을 한순간에 휩쓸어버린다. 칸쿤만이 아니다. 이미 동해안을 덮치며 아스팔트를 뜯어낸 적 있는 너울. 천만 명 이상 관람한 영화 <해운대>가 웅변하듯, 파고를 완충해주던 갯벌을 매립하고 해변에 높은 건물을 경쟁하며 짓는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3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100층 이상의 초고층빌딩 신축 붐을 그것 참 재미있다는 듯 소개했다. 우리도 초고층빌딩을 세울 수 있다는 과시욕은 선진국 진입에 대한 열광을 반영한다고 해석을 덧붙이면서.

 

인천 송도신도시에 예정된 151층 쌍둥이빌딩은 서울시의 자존심을 자극했는지, 용산역 부지에 인천보다 10미터 높은 620미터의 초고층을 예고한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가안보를 기업 이익에 종속시킨 대기업 롯데는 서울 강남에만 112층의 빌딩을 세울 태세가 아니다. 부산에도 돛단배를 닮은 495미터에 달하는 롯데월드 107층 건물을 예정했다. 고양시를 비롯해 다른 지방도 잠자코 있지 않을 것인데, 서울 상암동에도 130층이 넘는 건물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흉물로 방치돼 있지만 북한에 이미 323미터에 이르는 105층 유경호텔이 있으니 현재까지 예정된 초고층빌딩이 모두 완공되면 대한민국은 100층 넘는 건물을 남부럽지 않게 보유하는 국가 대열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걸까.

 

249미터의 높이로 한동안 남한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영예를 차지했던 63빌딩이 서울의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목동의 하이페리온에 이어 3워를 달리지만, 얼마 못 가 3위마저 내주어야 한다. 고층이라 자랑하던 아파트를 헐고, 도심 하늘을 수놓으며 치솟을 아파트도 60층 이상의 초고층을 전국의 도시마다 지향하는 까닭이다. 천편일률적이었던 판상형 아파트 단지를 30년도 못돼 헐고 초고층 탑상형으로 돋아세우겠다며 자랑한다. 그것도 친환경으로 치장하면서.

 

구름을 뚫을 듯 솟는 초고층 아파트는 수려한 외관만큼이나 살기 편할까. 드넓은 지하 주차장 위에 조성한 녹지 사이로 드문드문 배열된 탑상형 아파트는 창문을 도무지 열 수 없는데, 실내가 쾌적할까. 그런 아파트에 살다 종합부동산 세금이 두려워 팔고 나왔다는 어떤 이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남다른 체질을 탓하는 이가 없지 않겠으나 바깥바람이 들어오지 않아 답답하다는 거다. 탑상형 아파트에 사는 친구를 둔 한 주부는 고액의 전기로 강제 순환시켜도 공기가 부엌에서 정체돼 가정주부의 건강이 특히 좋지 않다고 귀띔한다. 전기 누진세와 종합부동산세 같은 금전적 부담 뿐 아니라 건강 부담도 크다는 건데, 정작 돌이킬 수 없는 문제는 에너지 낭비다. 초고층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도 만만치 않지만 짓는 과정과 장차 폐기할 때 들어가는 에너지도 막대할 게 틀림없다.

 

걸핏하면 우리의 모델이라 떠받들었던 두바이가 흔들린다고 외신이 누차 보도했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바이의 국가채무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있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부도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취재했다. 두바이의 상징으로 과시된 야자수 모양 인공 섬의 부동산 가격이 세계 경제 위기 이후 40퍼센트 가까이 곤두박질친 마당에 주택담보로 부동산을 구입한 계약자까지 중도금을 제 때 상환하지 못한다는 거다. 이럴 경우 애초 100만 명 이상을 기대했던 두바이는 주택 30퍼센트가 텅 빈 유령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 언론들은 경고한다.

 

두바이에 사무실을 둔 기업의 잇단 해고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경제 한파는 결과적으로 공급 과잉 현상으로 이어졌다고 부동산 전문가는 분석하지만, 그동안 두바이가 호화스럽게 유지된 것은 멕시코 원주민이 헐값으로 혹사당하는 칸쿤처럼 아시아에서 파견된 저임금의 노동력 덕분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경제가 다시 호전돼도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두바이는 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우리가 두바이를 흉내내야 할까.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번듯함을 과시할 수 없는 두바이를 송도신도시를 비롯한 전국이 뒤따라야 할까.

 

 

4

 

18층 아파트에서 남동산업단지를 내려다보며 살기 시작할 때 선물로 받은 난은 무성했던 잎을 잃으며 시들어갔는데, 3층으로 내려오자 다시 잎을 달며 생기가 돈다. 나무 높이보다 훨씬 올라온 콘크리트 위의 화초는 그렇다 치고, 허공을 딛는 사람은 괜찮을까. 바람이 몹시 부는 날, 18층의 베란다 새시가 떨어질 듯 흔들려 불안했던 적 말고 큰 문제는 없다고 느낄 테지만, 까마득히 높은 아파트에서 지구온난화로 더욱 거세지는 태풍을 맞아야 한다면 주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석유와 에너지 위기 시대는 다가올 텐데, 생각해보자. 앞으로 석유와 전기 공급 가격이 치솟는다면, 에어컨과 공기정화기에 의존하는 초고층 건물들은 거주 공간으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은 건물의 높이를 결코 자랑하지 않는다. 5분 걸어 반가운 이웃을 만날 수 있는 녹지가 넓다는데 자부심을 가지므로 녹지를 가리는 건물을 혐오한다. 독일 하노버는 2000년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생태’를 표방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주택을 재개발하면서 건설업자의 이익을 위해 고층으로 올리는 법이 없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재를 활용해 지붕과 옥상을 녹화하고 틈이 보이면 나무를 심는다. 그 결과 그들은 여간해서 손 떼 묻은 집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거듭 개선된 기술은 거세질 태풍과 지진에도 견딜 초고층빌딩을 척척 짓겠지만, 전기와 물의 과소비 없이 유지하지 못하는 폐쇄 공간은 건물 내 이웃 간의 소통을 차단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웃과 생태계에 위화감과 부담을 선사하지만, 결국 그 피해는 후손에 고스란히 안겨줄 것이다. 아직 조사가 충분하지 않다니, 주민들의 건강 문제는 여기에서 다루지 않기로 하고, 지구온난화에 역행하다 수명 마친 초고층 건물의 뒤처리도 후손에게 떠넘길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민망하게 지적했지만, 초고층빌딩은 우리의 허위의식을 반영한다. 지구온난화를 촉발하고 심화시킨 석유의 신기루에 불과한 두바이는 경제 위기를 맞자 그 본질인 사상누각이 드러나고 말았다. 경제가 다시 호황을 찾으면 잠시 번쩍일 수 있어도 석유 위기가 가속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 이내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두바이는 극복의 대상이지 맹목적으로 좇아야 할 신기루가 아니다.

 

100년 전보다 이미 평균 기온이 0.7도 상승한 지구촌에서 태풍과 허리케인이 두세 배 이상 거세어지고, 파도와 해일도 전에 없이 강해졌다. 인구가 밀집되는 공업단지와 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하는 갯벌을 무작정 매립하는 우리는 이제 가녀리게 남은 강화 일원의 갯벌마저 녹색이라 치장한 조력발전으로 파괴하려 든다. 세계 평균 기온이 섭씨 4도 이상 상승하면 한반도는 사막이 될 것으로 IPCC는 예측하는데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조롱한다. 하지만 초고층 빌딩은 죽은 갯벌 위의 송도신도시와 아파트 재개발의 현장에서 화려하게 치솟아 올라가기만 한다. 지구온난화를 앞둔 지금, 신기루에 불과한 것들이.

 

 

5

 

낙엽이 진 가로수 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시리도록 차가운 아침, 여기저기 흩어진 낙엽이 환경미화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거리를 걸으며 애국가 3절을 읊조린다.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높고 구름 없는 하늘은 가을에 나타나야 하지만 지금은 절기상 겨울이다. 언젠가부터 코스모스가 하늘거릴 때부터 파랬던 하늘이 지각하기 시작했다. 국지성호우가 장마철을 잇더니 얼토당토아니하게 ‘가을장마’가 빗발치면서 나타난 일이다. 이참에 애국가 3절을 바꿀까. “겨울 하늘 공활한데…”

 

하늘이 파란 날이면 하늘 가장자리를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청명한 가운데와 달리 가장자리는 붉으죽죽한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난방 연료 사용이 늘어나는 겨울은 물론이지만 억수 같은 비가 한바탕 퍼부은 뒤 드러난 여름의 파란 하늘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이내 붉으죽죽해진다. 대기오염 물질이 금방 농축되기 때문일 텐데, 이 땅의 대기오염 물질은 그만큼 집요하고 드세다. 시베리아와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무리 세력을 확장하더라도 오염물질을 쉽사리 밀어내지 못한다.

 

어느 날 파란 하늘을 반기며 시화방조제를 지날 때였다. 문득 차창 너머 하늘을 살펴보니 왼편인 화성의 하늘은 쪽빛 그대로인데 오른편 인천의 연수구는 거무튀튀하다. 거기 내 집이 있는데. 갑자기 목이 칼칼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누군가 도시의 낙엽은 통 썩지 않는다 말한다. 대기오염 때문이라기보다 살충제를 하도 뒤집어써서 그렇다지만 그뿐일까. 나뭇잎에 눌어붙은 끈적끈적한 살충제는 가로수 낙엽이 썩는 걸 방해할 게 틀림없지만 빗물에 결국 씻길 텐데 왜 썩지 못하는 걸까. 대기오염, 산성비와 동반하는 지구온난화로 미생물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그래도 마대자루에 담겨 도로 한 구석에 수북이 쌓인 저 낙엽들은 내년에도 볼 수 있겠지.

 

한 해가 저물어가는 계절,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는데, 파란 하늘 아래 청설모 한 마리 아파트단지의 잣나무 가지에서 부지런을 떤다. 어디에서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여기까지 찾아왔을까. 아직 초고층이 아니기 때문일 테지만 청량산이나 문학산이겠지. 낙엽 떨어진 가로수 가지를 타고 넘어왔을 텐데, 기특하기도 하다. 검은 시한폭탄이 지구촌의 바다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만큼 지구는 점점 더워지고 이 땅의 하늘은 더욱 오염되는데, 언제까지 하늘이 파랄지 확신할 수 없지만 저 청설모, 내년 이후에도 계속 만나고 싶다. (인천문화비평, 2009년 하반기, 잡지에 맞게 짧은 몇 꼭지를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