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11. 14. 01:24

 

요즘 한미FTA를 두고 새삼스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ISD’라는 외래어 조합으로 얼른 이해하기 어렵게 말하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가 그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사업하려고 돈을 들인 자가 그 국가의 정책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면 해당 국가를 고발해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의 예를 들어 보자. 미국의 도시에 찜질방을 낸 우리나라의 어떤 자본이 에너지 과소비 규제로 손해를 보았다면, 찜질방 사업자는 그 제도에 의거해 미국 정부를 고발할 수 있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는 지난 정권에도 진작 문제가 되었건만 묵살됐는데, 이제 새삼 논란된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는 오로지 투자한 자본을 보호한다. 타국에 투자한 돈을 절대 뜯기지 않겠다는 각오로 마련한 ‘ISD’ 조항은 상대 국가의 부당한 정책 때문에 손해를 입지 않으려는 부자들의 심산이다. 문제는 부당 여부를 투자한 자본이 결정한다는 데 있다. 그 지역의 오랜 환경과 생활습관, 그리고 전통을 무시하며 사업을 벌일 경우 저항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지역의 정부는 마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조치를 부당하며 소송한다면 소송에서 진 국가는 손해는 물론 주권까지 상실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정권부터 시민단체는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간혹 독재정권은 외국 투자자의 돈을 가로채기도 했다. 투자자가 해당 국가의 제도를 오해하거나 그 국가가 제도를 미숙하게 운영해 외국의 투자자가 손실을 입는 적도 많았다. 하지만 요즘 논의하는 ‘FTA’라고 하는 양자 간 투자협정은 경우가 다르다. 투자금을 부당하게 빼앗길 국가와 FTA는 논의될 리 없다. 협상에 임하는 두 국가는 상대의 경제와 정치 사정을 서로 잘 할 테니,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는 얼마든지 유연할 수 있다. 실제로 호주는 미국과 협상을 벌이면서 그 제도를 제외시켰다. 한데 우리는 한미FTA에서 ISD 조항을 굳이 넣었다. 누구를 위한 노심초사인가.

 

한미FTA를 추동한 지난 정권은 외부 충격으로 내부 구조 조정하겠다고 호언했다. 구조조정이라. 미국과 같은 국가가 주는 충격으로 조정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구조는 한심스러웠을까. 그렇다면 미국 사회의 구조는 건강한가. 세계의 금융을 한순간 나락으로 빠지게 했던 미국 사회의 구조를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 심장부인 월가를 가보라. 99퍼센트 시민의 권리를 착취하는 1퍼센트의 탐욕에 저항하는 물결은 예사롭지 않다. 금융은 물론이고 의료, 교육, 노동, 에너지, 환경, 어느 부문도 정의롭지 않다고 보편적인 미국인들은 시방 아우성인데, 미국발 충격은 우리 대부분에게 바람직할 것인가.

 

가만. 한미FTA를 반기는 이들은 월가에서 점유 시위하는 99퍼센트의 지탄 대상인 1퍼센트의 삶에 넋을 빼앗긴 듯 보인다. 우리보다 월등한 규모와 탐욕으로 세계의 인민과 자연을 착취하는 미국 자본의 충격으로 우리 사회의 구조가 미국화되면 우리나라 99퍼센트가 행복해진다는 겐가. 물론 그 근거는 없다. FTA는 투자하는 자본의 크기에 비례해 이익을 보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투자자의 돈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 미국은 자국의 투자자의 이익을 위해 우리 제도의 수정을 요구했고, 우리는 순응할 태세다. 이제 한미FTA가 통과되면 미국 1퍼센트가 차지한 탐욕의 지위, 그 일부를 양도받을 우리 1퍼센트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삶은 돌이킬 수 없는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잠시 문을 열었다 철수했던 미국의 월마트는 한국의 법에 우선하는 미국 국내법을 근거로 몰려와 문을 다시 열겠지. 세계 자원의 낭비와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으로 가격을 파괴한 월마트가 동네 상권을 짓밟으며 승승장구할 때, 우리 정부 고위층과 1퍼센트는 미국화되었다고 춤을 출지 모르지만,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수출을 위해 농업마저 포기한 우리는 굶주리지 않으려 오염된 수입 농산물을 먹어야 할 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자본의 눈치를 살피며 미국 기업의 제품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를 앞세우는 탐욕은 자본의 크기에 비례할 것이므로. (요즘세상, 201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