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조단경 특강 ◈

    참좋은날 2020. 7. 13. 06:00

     

    제삼. 의문품(第三 疑問品)
    제15강-17

     

    사왈(師曰) 실무공덕(實無功德)이니 물의선성지언(勿疑先聖之言)이어다 무제(武帝)가 심사(心邪)하야 부지정법(不知正法)하고 조사공양(造寺供養)하며 보시설재(布施設齎)하니 명위구복(名爲求福)이라 불가장복(不可將福)하야 변위공덕(便爲功德)이니 공덕(功德)은 재법신중(在法身中)이오 부재수복(不在修福)이니라 사(師)가 우왈견성(又曰見性)이 시공(是功)이오 평등(平等)이 시덕(是德)이니 염념무체(念念無滯)하야 상견본성(常見本性)의 진실묘용(眞實妙用)이 명위공덕(名爲功德)이니라. 내심겸하(內心謙下)가 시공(是功)이오 외행어례(外行於禮)가 시덕(是德)이며 자성(自性)이 건립만법(建立萬法)이 시공(是功)이오 심체이념(心體離念)이 시덕(是德)이며 불리자성(不離自性)이 시공(是功)이오 응용무염(應用無染)이 시덕(是德)이니

     

    대사가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느니라.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라라. 무제가 마음이 삿되어 정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절을 짓고 공양하며 보시하고 재를 베푼 것은 이름 하여 복을 구하였을 뿐이다." 복은 공덕으로 삼을 수 없다. 공덕은 법신가운데 있지, 복을 닦는데 있지 않느니라. 하시며 또 말씀하셨다. “성품을 보는 것이<공>이요, 평등함이 곧<덕>이다. 생각 생각에 막힘이 없어서 항상 본성의 진실힌 묘용을 보는 것을 공덕이라 하느니라. 안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는 것이 곧 공이요, 밖으로 예를 행하는 것이 덕이며, 자성이 만법을 세우는 것이 곧 공이요. 마음바탕이 생각을 떠난 것이 덕이며, 자성을 떠나지 않음이 곧 공이요, 대응해 쓰되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덕이니,

     

     

    자성을 떠나지 않음이 곧 공이요, 대응해쓰되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덕이라.

    이말은 어렵습니다.

     

    '자성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바로 '공'이요, 대응해쓰되 물들지 않은 것이 곧 '덕'이라 했는데, 이것은 집착하지 않고 행위하는 것이 곧 덕이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성입범(聖入凡), 범입성(凡入聖)' 이런 말을 간혹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여기서 자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 곧 '공(功)'이고, 대응해서 물들지 않는 것이 곧 '덕(德)'이라 했는데, 이 고고함의 자리, 아주 청정한 자리, 위대한 자리가 바로 공의 자리입니다.

     

    '덕(德)'이라 하는 것은 거기에서 나와서 보살행을 하고, 바로 범부세계로 뛰어 드는 것을 '덕'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공과 덕의 개념이 좀 다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