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불기2559년 을미년 새해를 앞두고 경주 감포에 위치한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인 무일선원(無一禪院)을 찾았다. 무일선원은 3년 전부터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회주인 우학스님을 비롯한 10여명이 한국불교의 중흥을 발원하며 무문관(無門關)에서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는 정진 현장이다.

지난 12월16일 무일선원을 찾은 본지는 무문관 정진 이후 처음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우학스님을 만나 수행에 대한 이야기와 불교신문 독자들을 위한 새해메시지를 전달 받았다. 이 자리에서는 짧지만 그동안의 수행에 대한 감회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이와 함께 오는 17일 오전까지 나오는 문을 자물쇠로 잠그고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閉關)한 무문관 체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 위치한 무문관인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감포도량인 무일선원에서 목숨을 건 10명의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사진은 무일선원 무문관 전경.

갑오년 겨울추위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2월16일 경주에도 칼바람이 불었다. 2주 전에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에 경주 감포 무일선원 무문관 취재에 대한 협조요청을 넣은 후 찾아가는 감포의 바닷바람은 더욱 매웠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사방이 폐쇄된 공간에서 목숨을 건 수행을 하고 있는 거룩한 스님들의 이야기를 주변에서나마 취재해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불교신문 독자들에게 기자의 소명을 다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경주에서 취재협조에 응해 준 한국불교대학 최설아(법명 수향) 종무팀장이 점심공양을 하면서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었다.

“회주 스님(우학스님)에게 취재 온다는 전갈은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무문관에서 무슨 답변이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기자님을 위해 무문관 방 하나를 비워 놓았으니 오늘 오후에 들어가실 수가 있습니다.”

“면벽 참선 중에도 마장 많지만

얻는 것 또한 많습니다

제 스스로 경책하는 삶의 지표는

‘인이락(忍而樂)’인데

‘참되 즐긴다’는 뜻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올 한해

참되 즐기는 멋있는 나날 되시길

간절히 마라마지 않습니다”

3년째 정진 중인 우학스님

불교신문 독자에 신년메시지 전해

자신 돌아볼 수 있는 기회 얻어그동안 우학스님은 무문관에서 정진을 하면서도 불교신문에 ‘무문관 편지’라는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었다. 최 종무팀장은 “회주스님은 무문관 공양구를 통해 불교신문을 계속 받아보고 계신다”고 했다. 갑자기 우학스님을 만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여기에다 무문관 정진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심장이 두배로 뛰는 듯했다.

점심공양 후 취재차량은 감포를 향해 달렸다. 불국사를 지나 보문단지를 지나 터널을 통과하니 동해바다가 언뜻 언뜻 보였다. 도로개설 공사가 한창인 굽은 길을 돌고 돌아 바다와 인접한 도로에 다다랐다.

‘저 망망대해처럼 우리 중생의 마음도 넓었으면….’

갑자기 ‘해인삼매(海印三昧)’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쳐갔다. ‘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 같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님 선정의 마음’을 일컫는 불교용어다. 동해의 깊고 푸른 바다처럼 새해에는 부처님처럼 넓은 마음으로 주위의 이웃을 끌어안을 수 있기를 발원하며 무일선원으로 향했다.

목숨을 건 수행처이지만 무일선원 입간판은 눈에 띄지도 않았다. 세찬 바닷바람에 색이 바래서 눈여겨 살펴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베일에 싸인 듯 했다. 동해를 바라보며 길게 늘어선 연대산 무일봉 구릉지에 자리한 무일선원은 작고 아담했다. 큰법당과 산신각과 요사채가 사찰의 격을 세워주고 있고 ‘대도무문 무일선원(大道無門 無一禪院)’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무문관’ 앞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외호대중 스님이 기자를 반겼다. 스님은 ‘회주 스님(우학스님)이 기다린다’며 곧바로 무문관으로 향했다.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는 수행처는 재가불자들이 수행하는 무문관을 지난 외진 곳. 위로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잠겨 있었다.

“철커덕!”

열쇠를 돌려 열고 들어간 무문관의 문고리 한곳 한곳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잠겨 있었다. 그 아래 켠의 좌측에는 하루 한 끼의 공양이 전달되는 공양구(供養口)가 있었다.

한 손으로 툭툭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면서 공양구가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에 있던 스님이 문을 열었다. 한국불교대학 대관음사 회주 우학스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리는 산발(散髮)한 모습이었고, 수염도 길게 자라 있었다. 외형은 흡사 ‘임꺽정’ 같았지만 눈은 한없이 맑고 평화로워 보였고 안광(眼光)이 발했다. 20여년 동안 인연을 이어 온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잡은 손은 따뜻했다.

“여태동 기자 오랜만이예요.”

“네, 스님. 정진하시느라 힘드시죠.”

“힘들긴요. 밖에서 뒷바라지 하는 분들이 고생이죠.”

“건강은 어떠셔요.”

“몸무게가 한 10kg은 빠진 듯해요.”

“어서 회향하시고 나와서 큰 일(대중교화) 하셔야지요.”

“배움(공부)에 끝이 있나요. 여기서 한 2020년까지 있고 싶어요.”

우학스님은 불교신문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원고지 뒷면에 써서 담은 편지봉투를 건넸다. 개인선물이라며 직접 쓴 족자도 건넸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다시 공양구 문이 닫혔다. 1분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긴 여운이 남았다. 수행자에게서만 느껴지는 형형(炯炯)한 눈빛과 편안한 미소가 뇌리 깊숙이 자리 잡았다. 밖으로 나와 접견실에서 편지봉투를 열었다.

“불교신문 독자 여러분께. 귀의 삼보하옵고 먼저 여러분의 가정에 불은 충만하기를 축원드립니다. 저는 지금 무문관 3년 정진 결사 중, 마지막 해를 맞고 있습니다. 면벽 참선 중에도 마장이 많습니다만 ‘골 깊으면 산 높다’는 진리처럼 얻는 것 또한 많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경책하는 삶의 지표가 있다면 대표적인 것이 인이락(忍而樂)인데, ‘참되 즐긴다’는 뜻입니다. 온통 사방벽으로 둘러쳐진 이 곳 무문관에서의 수행은 인이락이 되지 않고는 안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올 한해 참되 즐기는, 멋있는 나날 되시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불기 2559년 새해 아침에 무이선원 무문관에서 無一 우학 합장.”

1박2일간 무문관 체험시간

처음에는 폐소공포증 엄습했지만

시간 지날수록 혼란한 마음

사라지고 내면의 모습 드러나

무문관을 외호하고 있는 스님은 현재 무일선원 무문관에는 10명의 스님이 3년째 정진하고 있고, 5명의 재가불자들이 20일, 한 달 등 각자 시간을 정해 정진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처음에는 12명이 입방했으나 개인사정으로 2명이 중도에 하차했다고 한다.

무문관의 일상은 오전9시에 공양구를 통한 공양물 수거와 오전11시에 다시 공양물을 넣는 것이 전부였다. 수행자는 각자 공양한 공양구는 깨끗하게 씻어 밖으로 내 보낸다. 그때 필요한 물품은 메모지를 통해 전달되는데 그것이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창구였다. 그리고 오랜 정진으로 잊어버릴 지도 모르는 말을 잊게 하지 않기 위해 오후4시부터 5시 사이에는 합송으로 경전을 독경하기도 한다.

저녁공양 후 기자를 위해 마련된 무문관으로 향했다. 재가불자가 정진하는 방 옆이다. 자물쇠가 열리고 문이 열렸다.

“철커덕.”

문이 닫혔다. 밖에서 자물쇠를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무문관에는 철저하게 혼자가 됐다. 폐쇄된 공간에서 사벽(四璧)과의 대화(對話)만 준비돼 있다.

간단하게 세면을 한 뒤 좌복을 펴고 앉았다. 전등불 조명을 낮게 맞췄다. 철저하게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폐소공포증이 밀려왔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으니 점차 마음이 안정됐다.

좌정한 지 3시간이 지나 자정이 가까워졌다. 외부의 바람소리, 댓잎 서걱이는 소리, 마을의 개짖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듯 가까이 들려왔다. 혼자 남은 공간에 자신과 마주하니 밖으로부터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가지런해졌다.

더불어 내면의 내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던 모든 것이 부질없이 사라질 것이었음에도 거기에 집착하는 내 자신이 보였다. 내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오롯한 기회가 내 앞에 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가는 제행무상(諸行無常)임을 알고 집착하지 말고 마주치는 인연에게 최선을 다하자.’

갈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건너편 공양실에서 행자가 아침공양을 준비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탁상시계가 새벽5시를 가리켰다. 다시 가식을 벗어버린 나 자신과의 대화가 면벽(面壁)한 채 진행됐다. 가늘게 뜬 눈꺼풀의 깜빡임이 몇 번. 2시간이 스르륵 지나갔다.

“거사님, 문을 열겠습니다.”

무일선원 스님이 열쇠를 돌여 자물통을 거두며 문을 열었다.

“수행 잘 하셨습니까.”

말문이 막혔다. 무슨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내 의지와 무관한 대답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네, 스님. 언제 시간이 되면 한달 정도 다시 이 방에 들어오고 싶습니다.”

  
 

■ 무문관(無門關)은…

‘무문관(無門關)’이라는 말은 중국 남송(南宋)시대 때 무문혜개(無門慧開)스님이 지은 책에서 유래한 것으로 철저하게 폐쇄된 공간에서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용맹정진하는 수행처를 말한다.

일반선원은 대중들이 모여 3개월 동안 일과표에 따라 수행하는데 비해 무문관에서는 3년, 6년, 10년 등 오랜기간을 정해놓고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문을 폐하고 목숨을 건 수행을 한다. 무문관 수행기간에는 음식을 넣어주는 공양구만이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서울 도봉산의 천축사에 무문관 선방(禪房)이 개설된 이후 계룡사 갑사 대자암, 백담사 무금선원 등 10곳에서 수시로 개폐(開閉)되고 있다.

[불교신문3071호/2015년1월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