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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한옥마을&송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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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2020. 2. 2.

종로3가 송해길&익선동 길

종로3가역(鍾路3街驛) 또는 종로3가(탑골공원)역(鍾路3街(탑골公園)驛)은

 서울특별시 종로3구 종로3가 돈의동 및 묘동에 있는 서울 지하철 1호선.3호선.5호선의 환승역이다.

 각각 종로3가역은 1호선과 3호선, 종로3가(탑골공원)역은 5호선의 공식 역명이다.



송해 길

1927년 출생 후 1949년에 국립음안학원을 졸업하고 졸업 발표회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1950년 6월 25일(당시 24세) 한국전쟁으로 인해 월남하여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으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통신문을 모스부호로 전송을 담당했다.

이후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정식 데뷔했으며, 1963년 영화 《YMS 504의 수병》에서

 단역으로 영화배우로로 데뷔했다. 그는 다양한 예능을 가져야 하는 악극단의 특징 덕분에

 만능 연예인으로 자라 여러 무대 및 방송에 출연했고, 1988년 5월부터 한국방송공사 전국노래자랑을

30년 동안 진행하고 있다.또한 그는 전국노래자랑을 무대에 서기 힘들 때까지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수로서의 대표곡은 (나팔꽃 인생), (신명나는 세상). (유랑청춘). (내 인생 딩동댕)등이 있다.



















부동산 개발업자 "정세권"

 정세권 일제강점기의 부동산 개발업자로 북촌과 익선동, 봉익동, 성북동, 혜화동, 창신동,

서대문, 왕십리, 행당동 등 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건설하였다. 당시는 흔히 집장사라고 불렸다.

1888년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에서 태어났다 .12세에 진주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고,

진주사범학교의 3년 과정을 1년 만에 수료하였다.



졸업 직후인 1905년 참봉에 제수되었고,

 1910년 하이면 면장이 되었다. 저축계 발족, 방풍림 조성 등 생활 환경 개선에 힘쓰며

전국 우수 면장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12년 면장에서 사임하였다.이후 한동안 하이면에서 생활하였다.

1919년 경성으로 이주하였으며, 1920년 9월 9일 건양사를 설립하였다.



1920년대 지금의 익선동 개발을 시작으로 가회동삼청동 일대 북촌 한옥마을을 만들고,

 봉익동성북동.혜화동창신동서대문왕십리행당동경성 전역에 한옥 대단지를 조성한 인물이다.

정세권은 ‘건축왕’이라 불리며 경성의 부동산 지도를 재편하고 도시 스케일을 바꾸었다.



정세권의 경성 개발은 토지를 매입해 대단위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하며

 도시 개발과 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근대적 개발업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정세권은 조선 최초의 근대적 부동산 개발업자라 할 수 있다. 정세권은 시대를 읽는 사업가의 통찰력과

 기획력으로 경성 전역의 부동산 개발을 주도하였다.



정세권은 전통 한옥에 근대적 생활양식을 반영한 개량한옥을 대량 공급하며

 조선인의 주거지를 확보하고 조선인의 주거문화를 개선하는 데 공헌하였다.

 또 부동산 개발로 자수성가한 식민지의 민족자본가로서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운동의 재정을 담당하며 일제에 맞선 민족운동가였다.



1945년 이후 일가가 행당동에 거주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1950년 9월 28일

비행기 폭격으로 다리를 크게 다치면서, 1.4후퇴에도 가족만 부산과 제주도로

피란하였을 뿐 그 자신은 왕십리에 머물렀다.1950년대 말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로

혼자 낙향하였으며 1965년 9월 14일 사망하였다.



익선동 한옥을 보존하다.

90년대 중반부터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한옥 보존 문제 등으로

 20년 가까이 표류하다가 2015년 재개발 추진위원회가 재개발 자격을 반납했다.
2014년 패션 사진작가 루이스 박이 카페 ‘식물’을 열고, 현재 ‘열두달’, ‘경양식 1920’ 등을

운영하는 익선다다의 ‘익동다방’ 등이 입소문이 나면서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2014년 1개뿐이던 가게는 3년 만에 50여 개로 늘었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생동감 넘치는 hot한 거리로 탈바꿈 되였다



가게가 생기면서 집주인과 땅주인들은 신이 났다. 2000년대 중반 재건축이

 좌초되면서 거래가 끊겼던 땅이 갑자기 팔리기 시작하고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한옥을 보존해 상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여전히 재개발에 대한 움직임도 있다. 한옥마을의 구조상 길이 끊겨 상권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는 여전히 재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2020 . 1 . 26 .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