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산달림 2019. 8. 2. 19:15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야 한다.  그 추억을 만드는 데는 여행만하게 없다. 진정한 행복은 자기를 만나는 경험으로 소유보다 경험을 통해 이루어 진다. 수년전에 그토록 갖고 싶어 샀던 모피코트는 옷장에서 더 이상 나에게 행복감을 줄수 없지만 10년전에 다녀온 여행은 아직도 나에게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감을 안겨 준다.

행복은 의미있는 삶이다. 여행에서는 일상의 일을 하지 않고 먹고, 수다를 떨고, 걷고, 보고, 노는 그런 일들이 행복을 일으키는 것이며 한꺼번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행복 종합선물세트라 한다. 샤모니 마을을 둘러 본다.

 

샤모니는 프랑스 동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정식 명칭은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 Blanc)이다. , 몽블랑의 서쪽의 작은 도시다. 알피니즈므이 발상지이자 등반 깃점인 샤모니 계곡은꼴데 발마(Col de Balme)에서 꼴데 보자(Col de Voza)까지 장장 23km에 걸쳐 길게 누워 있다. 해발고도 1,035m로 드넓은 초원과 깊은 숲, 맑은 계곡과 높은 설산을 품은 마을이다. 발밑으로는 눈 녹은 강물이 경쾌하게 흘러가고, 고개를 들면 거대한 설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의 휴식처인 샤모니는 등반전문가와 일반 트레커까지 두루 만족시키는 다양한 길을 품고 있다.

 

근대 산악의 효시가 된 알피니즘의 단어가 만들어진 알프스. 오라스 베네딕드 드 소쉬르(Saussure)는 알프스의 탐험가로 1760년 샤모니를 처음 찾은 뒤 거대한 몽블랑에 반해 그 산을 오르는 이에게 20탈러(당시 통화) 상금을 걸었다.

 그 상금은 26년이 지난 후인 쟈크 발마(Balmat)와 피카드(Paccard)가 1786년 몽블랑을 초등하였고 자신도 1년 후인 1987년 정상 등정에 성공한다. 소쉬르(Saussure)는 지성인인 동시에 '등반의 아버지'로 알피니즘(Alpinism)의 효시가 된다.

 

그들의 흔적은 샤모니 발마광장에 발마와 소쉬르의 동상이 있으며 발마가 가르치는 방향에 몽블랑이 있고 몽블랑이 내려 다보 보이는 곳에 프랑스 샤모니가 있다. 뚜르드 몽블랑(Tour du Mont Blanc)의 시작점은 샤모니가 된다.

 

 

 

 

발마광장의 최초로 몽블랑(4,807m)을 등정한 가이드 자크 발마와 과학적 등산의 아버지 오라스 소쉬르(Horace Bénédict de Saussure) 동상

 

샤모니를 중심가를 흐르는 냇가의 광장에 설치된 등산 안내인 자크 발마와 마을 의사 파카르가 1786년에 몽블랑(4,807m)을 처음으로 등정하였으며 자크 발바가 오른손으로 가르키는 곳이 몽블랑이 있는 곳이다.

소쉬르는 제네바 근처 출생하였으며 알프스를 연구하여 지질학 ·물리학 ·기상학 ·생물학 등에 걸쳐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제네바대학 교수를 지냈다. 1760년 샤모니로 가서 그 때까지 미등정되었던 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에 매료되어, 이 산의 최초 등정자에게 상금을 수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샤모니의 등산 안내인 자크 발마와 마을 의사 파카르가 1786년에 몽블랑을 처음으로 등정하게 되었다. 소쉬르 자신도 이듬해 발마의 안내로 몽블랑의 두 번째 등정자가 되었다. 과학적 등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며 샤모니에는 그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주요 저서에는 《알프스 여행기》가 있다.

 

등산의 역사를 몽블랑에서 열다

밧줄도 없이 도전한 자크 발마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1786년)

 

1786년, 파카르와 발마가 밧줄도 없이 땅이 갈라진 틈 ‘크레바스’를 건너며 몽블랑에 도전했다. 두 사람은 잠이 모자란 데다 먹을 것도 떨어지고 동상에 걸리고 고산병까지 겪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파카르와 발마가 몽블랑 꼭대기에 올라서며 등산의 역사가 열렸다.
 

등산이 스포츠로 자리잡은 때는 1786년 이후이다. 1786년은 알프스 산맥에서 제일 높은 몽블랑(4,807m)에 사람이 처음 오른 해이다. 등산은 알프스에서 시작되었고, 등산을 가리키는 '알피니즘'이란 알프스에서 따온 말이다.

지구 위의 이름난 산들이 모두 정복된 오늘날, 여러 사람이 많은 장비를 갖추고 몇 달에 걸쳐 산을 오르던 '대원정 시대'는 끝났다. 사람들은 몇몇이 가벼운 차림으로 며칠 만에 산에 오른다. 이같은 '알파인 스타일'이 사실은 등산이 맨 처음 시작되었을 때의 방법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1760년 어느날, 알프스 기슭의 가난한 마을 샤모니. 스위스 제네바에서 80km를 걸어온 자연과학자 오라스 베네딕트 드 소쉬르가 식물을 채집하며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프레방 산에 올라가게 되었다. 2,526m 높이인 프레방에서 맞은편의 몽블랑을 보고 그 장엄함에 감동한 소쉬르는, 산을 내려오자 마을에 글을 써붙였다.

'몽블랑 꼭대기에 오르는 사람에게 많은 상금을 주겠음'.

그는 과학자로서, 또 철학 교수로서 사람들이 흰산('몽'은 산, '블랑'은 흰빛)이라고 부르며 신비하게 여기는 몽블랑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그때까지 알프스의 산간 마을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악마가 살면서 얼음덩어리를 굴리거나 눈사태를 일으켜, 농사를 망치거나 사람을 해친다고 믿어 왔다.

현상금을 걸었어도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지구 위에 히말라야 같은 엄청난 산무리가 있는 것이 알려지지 않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산이란 두렵고 외경스러울 뿐이었다. 소쉬르가 상금을 내건 지 22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산에 오르지 않았다.

마침내 1783년과 1785년 마르크 부리라는 사람이 몽블랑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헛된 일만은 아니었다. 등산대원이던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가 이 때의 경험을 살려 뒷나라 몽블랑 등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샤모니 마을에는 파카르말고도 자크 발마라는 사나이가 몽블랑에 오를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3년간 프레방에 올라 망원경으로 몽블랑를 살피며 준비를 했다.

 자크 발마

 

1786년 8월 7일 오후 3시. 파카르와 발마는 샤모니 골짜기를 벗어나 몽블랑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몽블랑에 도전한 것은, 그때로 보아서는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등산'이라는 말도 없었고, 산에 오르는 것을 스포츠라고 여긴 사람도 없었다.

산이란 나무를 얻고 사냥을 하는 곳이지, 얻는 것 없이 목숨 걸고 오를 까닭이 전혀 없는 곳이었다. 뒷날 조지 말로리는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하지만, 파카르와 발마야말로 미지 세계를 스포츠의 대상으로 개척한 선구자요 타고난 모험가였다.

두 사람은 밤 9시쯤 2,392m 지점에 올라 한데서 노숙했다. 다음날은 새벽 4시 30분부터 오르기 시작해 5시간 만에 얼음이 흘러내리는 보송 빙하와 타코나 빙하가 합치는 곳을 지났다. 밧줄도 없이 크레바스(땅이 갈라진 틈)를 건너고, 8월의 햇살에 언제 녹아서 무너질지 모르는 눈덩이 위를 위태위태하게 지나갔다.

뒤이어 눈 쌓인 벌판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언덕이 나타났다. 파카르와 발마는 그곳을 2시간 만에 빠져나왔다. 슈타이그 아이젠(신발 바닥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다는 쇠발톱)도 없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모를 일이다.

언덕에 오르자 거센 바람이 몸을 날려 버릴 듯이 몰아치는 눈벌판이 나타났다. 그곳의 높이는 3,900m였다.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곳을 단단히 밟아 다지면서 1km나 나아가는 강행군이었다. 앞장섰던 발마가 지쳐 쓰러지자 파카르가 그이 집을 받아 앞으로 나섰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그들은 눈벌판을 벗어났다. 그 다음은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 바위 마루턱 사이로 빠져 몽블랑의 북동쪽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 길은 눈벌판에서 정상에 이르는 루트 가운데 제일 어려웠다. 볕이 안 들어 얼음에 덮인 이곳 역시 무사히 넘어섰다.

파카르와 발마가 몽블랑 꼭대기에 올라선 때는 1786년 8월 8일 오후 6시 32분. 노숙했던 곳을 떠나 온 지 14시간 30분이 지나서였다. 파카르가 지팡이로 썼던 긴 막대기를 세우고 거기에 빨간 천을 매달았다.

두 사람은 잠이 모자란 데다 먹을 것이 떨어지고 동상에도 걸렸다. 산소가 모자라고 기압이 낮아 고산병()까지 겹쳤으므로, 그 어려움이란 말로 나타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그들은 달빛 속을 4시간 30분이나 더듬어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

몽블랑이 정복됨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의 힘을 깨닫게 되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미지 세계에 대한 모험심과 등산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등산가들은 앞을 다투어 알프스의 험난한 고봉들-몬테로사(4,634m) · 아이거(3,970m) · 그랑조라스(4,208m)-을 차례로 올랐다.

1865년 마지막까지 완강히 버티던 마터호른(4,505m)마저 정복한 알피니스트들은 눈을 중앙아시아로 돌려 히말라야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1788년 8월 소쉬르도 몽블랑에 올랐다. 짐꾼 14명을 데리고 간 그때의 장비에는 이불(68kg)과 땔나무도 있었다.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참으로 원시적인 장비이지만, 모든 일의 처음은 다 그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네이버 지식백과] 등산의 역사를 몽블랑에서 열다 - 밧줄도 없이 도전한 자크 발마와 미셸 가브리엘 파카르(1786년) (세계 탐험사 100장면, 2002.7.18., 이병철)

 

 

 

최초 등정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나중에 홀로 설치된 의사인 파카르 동상 

 

파카르와 발마의 몽블랑 정복은 뒷날 발마 혼자 오른 것으로 굳어졌다. 발마가, 파카르는 설맹()과 동상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고 자기 혼자 올랐다고 퍼뜨린 까닭이다. 게다가 프랑스의 대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발마의 말만을 곧이듣고, 발마가 혼자 몽블랑에 올랐다는 모험담을 씀으로써 모든 사람이 믿게 되었다.

100년이 지나 샤모니에 소쉬르와 발마의 동상이 세워졌을 때도 파카르는 제외되었다. 몽블랑 초등의 진실은 세월이 훨씬 더 흘러서야 밝혀졌다. 두 사람이 산에 오르는 모습을 망원경으로 지켜본 바론 폰 겐스도르프의 스케치와 소쉬르가 파카르에게 들은 이야기를 쓴 일기가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 파카르 동상만 홀로 설치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시원한 생수가 팡팡 솟는 샤모니 어디를 가던 에비앙 생수가 흐르는 급수대

 

샤모니 수질이 얼마나 좋은지 아내는 머리를 감을 때 린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머리카락이 부드럽고 피부가 매끄럽다고 매일 극찬했다. 물 하나는 세계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다. 우리는 늘 빈 물통을 들고 다니며 물을 받아 마셨다. 물 걱정이이 없는 샤모니다.

 

 

 

하늘을 가득이 채우는 패러그라이딩

시리도록 파란하늘에 한마리 새가 되어 샤모니 하늘을 수놓는다. 

 

 

 

샤모니에서 숙소 '호텔 르 샤모니'는 플라제르 승강장 가는 길의 교회 앞에 있다.

창문만 열면 샤모니 주변을 감싸는 설산이 한눈에 들어 오고 나무로 지는 전통 알프식 건축물이라 걸을 때는 삐걱 거리는 소리를 낸다.

 

 

 

호텔 드 샤모니 옆에 있는 아담한 교회

 

 

 

블레방 가는 케이블 카를 타는 곳. 이곳에 오르면 샤모니와 몽블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오르면 패러그라이딩 활공장이 있다. 샤모니의 패러그라이딩은 여기서 출발한다.

 

 

 

한마리 새가 되어 '페러그라이딩'

 

 

 

건너편 능선을 따라 제일 높은 봉이 몽블랑(4,807m)이다. 뜻은 프랑스어로 몽(Mont)이 "산" , 블랑(Blanc)이 "하얀 색"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  "흰 산" 이란 뜻. 산 정상부를 만년설이 덮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잘 들어맞는 단어다.

 

 

 

건너편 산인 그랑드 조라스(4,208m)봉은 안개속에 가려져 있다.

 

 

 

"흰산"이란 말이 어울리는 몽블랑 정상부(4,807m)

 

 

 

알프스의 진달레 '알펜로제'는 잎은 타원 모양이고 표면에 윤기가 있으며 짙은 녹색이고 가장자리가 뒤로 말린다. 꽃은 7∼8월에 연한 붉은 색 또는 진분홍색으로 피고  열매에 비늘 같은 털이 빽빽이 있다. 에델바이스와 더불어 산악인을 즐겁게 해 주는 알프스의 진달레다.

 

 

7 ~ 8월에도 선선한 이곳은 피서지로 최고다. 휴식을 즐기는 한가족 여행자

 

 

 

몽블랑 산군은 산의 높이에 따라 눈의 두께를 달리한다. 위로 갈수록 눈의 깊이가 더하고 보숭빙하가 아래로 내려 와 있다. 보숭빙하는 몽블랑 정상의 4,807m에서 계곡 바닥의 1,300m까지로 빙하의 길이가 7㎞에 달한다.

 

 

 

겨울이면 스키의 마을로 여름이면 피서지로 붐비는 인구 만명의 프랑스 작은 마을

 

 

 

프랑스 전통마을로 통나무로 지은 건물이 많은건 이곳에 풍부한 목제를 재료로 지은 집이 많다.

 

 

 

중심부 거리는 레스토랑과 상가로 늘 붐비는 거리다.

 

 

 

 자크 발마와 과학적 등산의 아버지 오라스 소쉬르 동상을 뒤에서 본 모습으로 자크 발머가 가르키는 방향에 몽블랑이 있다.

 

 

 

샤모니를 흐르는

아르브(Arve)강

 

 

 

샤모니 중심가에 있는 중식당 설원(Chez Yang) 한식이 그리우면 대신 입맛에 맞는 중식을 먹을 수 있다.

 

 

 

프랑스 치즈 요리인 퐁듀를 먹을 수 있는 중심거리에 있는 La Caleche는 퐁듀 맛집

 

 

 

실내 보다 테라스를 즐겨 이용하는 손님들로 안은 조용한 반면 밖은 가득찼다.

 

 

 

 

퐁듀는 알프스 지방의 요리로 치즈를 백포도주와 함께 불에 녹여 구운 빵 조각에 묻히면서 먹는 냄비요리다.

 

 

 

식빵을 녹은 치즈에 찍어 먹는 간편한 요리로 이곳에 맛보 았다.

 

 

 

와인과 겯들여 먹으면 어울리는 요리

 

 

 

샤모의 버거집으로 맛집인 Poco Loco집 늘 손님으로 가득하다.

 

 

 

샤모니 중심가의 벽화 1821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벽화를 만들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폭염으로 이어지는 너무 더운 날씨입니다
항상 하절기 건강 유의하시고 보람되고 행복 가득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다녀오신 몽블랑 등정자 샤모니마을풍경 잘 보고 공감하고 갑니다
시원하고 행복 넘치는 휴일 되십시오
넘 더운 하루입니다.
알프스 자락을 생각하면 더워가 싹 ~ 사라집니다.
그곳은 선선하다 못해 추위를 느꼈습니다.
입추가 가까우니 곳 선선해 질것 같습니다.
영하의 날씨에는 여름이 그립겠지요.
작년 6월중순 샤모니에서 일주일을 보냈답니다. 그땐 눈이 미쳐 녹지않은 구간이 참 많았답니다.
산달림의 글을 읽으며 다시 그리워집니다.
매일 이곳저곳 트레킹을 하던 아름다운 샤모니의 전경이 눈에 선하네요.
알프스의 가장 머무르고 싶은 3대 도시가
샤모니, 코르티나 담페초, 체르마트라고 합니다.
3도시가 많이 비슷한 소도시가 여행자의 마음을 잡습니다.
그중에 샤모니는 몽블랑이 있어 두번째 방문입니다.
마음이 가는 여행지는 몇번이고 다시 찾게 되나 봅니다.
다음에 가시게 되시면 7월 초에 가시길 추천드립니다.
샤모니 몽블랑 여행을 다녀오려고 경험담을 구하다가 글을 접하게 되었어요 저희는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겨 지낸지 이제 일년이라 몽블랑은 근처임에도 아직 한번도 못가봤네요.. 글이 따뜻하게 잘 정리되어있고 초행인 저희 가족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도 있어 잘 참고해서 다녀오려구요 감사합니다~
샤모니에서 출발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쿠르마에유도 좋았습니다. 가능하시면 Tmb를 두발로 걸어 보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