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인삼이 재배된 개삼각이 있는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 (도구통바위, 관앙불봉, 개삼각, 보석사, 보석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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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등산/충청도 지역

2014. 5. 25.

 

금산 진악산 도구통바위에서..

 

 

 

 

 

 

금산 진악산

 

진악산은 인삼으로 유명한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위치하고 있어 산행 후 인삼 시장을 둘러 볼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우다 옥쇄한 7백인의 충혼이 깃들인 "칠백의총(사적 제105호)을 찾아 선열들의 깊은 뜻을 새겨볼 수 있어 가족동반 코스로도 적당하다

진악산은 높은 산이 많지 않은 충남에서는 서대산과 계룡산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데 아직도 오염이 안된 깨끗한 산이다.

진악산은 정상과 주능선을 에워 싼 아기자기한 기암 절벽도 볼만하고 산자락에 옛 정취가 물씬나는 천년 고찰 영천암과 보석사를 비롯해

선공암, 원효암이 자리하고 있어 관광을 겸한 산행코스로도 그만이다.

 

 

 

 

 

 

< 눈으로는 육산(肉山), 들어서면 골산(骨山) >

 

개삼터공원 → 개삼봉 → 도구통바위 → 물굴봉 → 정상(관앙불봉 or 관음봉) → 비조봉 → 덧메기재 → 개삼터공원 : (원점회귀)

 

 

 

 

1. 산행개요

 

◈ 산행일시 : 2014년 04월 05일(토), 날씨 : 맑음 

◈ 산 행 지 : 진악산(732.3m)  - 충남 금산

◈ 산 행 자 : 나홀로산행

◈ 산행코스 : 개삼터공원 → 개삼봉 → 도구통바위 → 물굴봉 → 정상(관앙불봉 or 관음봉) → 비조봉 → 덧메기재 → 개삼터공원 : (원점회귀)

◈ 산행시간 : 약 3시간 ( 휴식시간 포함 )

◈ 산행거리 : 약 7.2km

 

 

2. 산행지도

 

 

 

3. 금산을 수호해주는 진산, 진악산

 

대전 인근에 있는 금산 진악산을 찾았다.

겉으로 보이기엔 밋밋한 육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산으로 들어서면 곳곳에 아름다운 암골미를 감추고 있다.

특히 북서릉상의 관음봉 일원과 남릉 일원에는 단애를 이룬 바위마다 그림같은 절경이 발목을 잡는다.

 

옛날 봉수대였다는 정상에는 당시의 석축들이 남아 있고, 남동으로는 금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삼 전설이 전해지는 개삼터가 유혹한다.

기경으로는 관음봉 절벽 중턱에 패인 관음굴이 있다. 정상에서 남으로는 기암인 도구통바위가 눈길을 끈다.

도구통바위뿐만 아니라 그 남으로는 천년고찰 보석사가 옛 정취를 뿜어낸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는 보석사 은행나무는 등산인이 아니더라도 이 기이한 나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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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들머리로 잡은 개삼터공원에 도착했다 !!

 

 

 

 

인삼의 1년근부터 ~ 5년근까지의 형태를 설명해놓은...ㅎ

 

 

 

 

 

 

 

 

 

개삼터공원 위쪽편에 인삼 전설이 시작된 곳, 개삼각이 나온다.

 

 

 

 

 

 

 

 

 

인삼 재배를 처음으로 시작한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어떠한 연유로 인삼재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조형물들이 있다.

 

 

 

 

 

 

 

 

 

 

 

 

 

 

 

 

 

 

 

이 호랑이 왜이리 귀엽지...;;; 윤기가 반들반들하군..ㅋㅋ

 

 

 

 

 

 

 

 

 

 

 

 

 

 

강처사 고택, 개삼터

금산 인삼은 타지방에서 그 종자를 받아들여온 것이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약 1천5백년 전 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마저 병이 들어 자리에 눕자

진악산 관음굴에서 정성을 들여 모친의 쾌유를 빌던 중 어느날 꿈속에서 산신령이 현몽하여 '관앙불봉 암벽에 가면 빨간 열매 3개 달린 풀이 있을 것이니 그 뿌리를

달아드려라' 라는 계시가 있어 찾아가보니 과연 그러한 풀이 있어서 그 뿌리를 캐어 달여드렸더니 모친의 병환은 완쾌되었고 그 씨앗은 남이면 성곡리 개안 마을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인위적으로는 처음 재배하게 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빨간 열매가 3개 달리고 사람의 형체와 비슷하여 인삼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금산군은 1천 5백여년 전에 최초로 성곡리 개삼터에서 인삼이 시작된 뜻을 기리기 위해 1983년 7월에 개삼각을 지었다.

개삼각 안에는 진악산 산신령이 강처사에게 인삼을 하사하는 그림이 있으며 개삼각 앞에 강처사가 살던 고택을 재현해 놓았다.

 

 

 

 

 

 

 

 

 

개삼각 - 금산군 향토유적 제1호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개안 마을에서 처음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인삼이 나온 지점 이라하여 개삼터라는 명칭이 생겼다. 강처사가 인삼을 처음 심었던 곳은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946번지의 밭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개삼각이라는 건물을 짓고 산신령이 강처사에게 인삼을 하사하는 그림을 넣었다.

강처사가 기도 드렸던 관음굴은 진악산에서 가장 높은 관앙불보 동쪽 10여m에 있는 천연동굴이다.

 

 

 

 

개삼터공원에서..한컷~

 

 

 

 

 

 

 

 

 

 

 

 

 

 

 

 

 

 

 

개삼터공원에서 왼편으로 조금 가면 2012년에 신설된 등산로 길이 나온다.

그 전에 진악산은 보석사 코스, 수리고개 광장 코스, 원효암 코스, 선공암 코스 등 4개의 등산 코스가 있었지만 모두 다른 지점으로 내려와야 했기에 신실된 길이다.

이번에 원점회귀도 할 수 있고, 진악산의 전설이 담긴 명소를 모두 탐방할 수 있어 최적이다.

 

 

 

 

인삼밭 옆으로 ~~

 

 

 

 

개삼봉 부근에서~

 

 

 

 

 

 

 

 

 

진달래 꽃이~~

 

 

 

 

서서히 골산(骨山)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수령이 많아 보이는 거대한 나무...

인삼 전설이 시작된 곳이라서 그런가..나무가 꼭 인삼처럼 생겼다. ㅎ

 

 

 

 

그 옆에 샘터의 흔적이 있다.

물은 고여있지만 먹기에는 다소 껄끄럽다.

 

 

 

 

이 바위 위쪽에 도구통바위가 있다.

 

 

 

 

바로 이 바위가 도구통바위 !!

 

 

 

 

도구통은 절구통의 사투리로 예전에는 절구통 모양이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변했다고 한다.

 

 

 

 

바위 밑에 유치환 시인의 시가 붙여져 있다.

바위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모양이 도구통(절구통)처럼 생긴 바위로 물굴봉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바람맥이 날망에 있다.

풍수적으로 노적봉이 노적가리이고 금산읍이 확이며 도구통바위가 절구이고 방아고개가 방아다리 형국이라하여 금산이 부족함이 없이 풍요롭게 산다고 한다.

또한 선사시대 소도의 솟대라고도 전해지고 있다.

 

 

 

 

기념 사진 !

 

 

 

 

도구통바위에서는 조망이 시원하게 터져 주위 다른 산군들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왼편으로 노적봉이 보이고..

 

 

 

 

 

 

 

 

 

이렇게 높은곳에 무덤이 있다니...ㅎ

 

 

 

 

이 이정표에서 개삼터 방향으로 약 500m 정도 내려가면 물굴(용굴)이 나온다고 한다.

초행길이라 몰랐는데 산행후기를 쓰면서 다른분 산행기를 읽고서야 알게 되었다.

사진상으로 보니 한번쯤은 가볼만한 곳인듯..ㅎ

 

 

 

 

물굴봉이다.

진악산 정상보다 약 3m가 높은 봉우리(735.7m)로 봉우리 아래 바위굴이 있는데 너댓 걸음 들어가면 물소리가 요란하여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진악산 물굴봉이 머리이고 금성산과 서대산이 몸통이며 영동 양산이 용의 꼬리에 해당되어 용이 사는 굴이라 용굴이라고도 하며

날이 가물 때 호랑이 머리를 집어 넣으면 영험이 있다고 하여 기우제를 지냈다 한다.

진악산 정상인 관음봉(관앙불봉)보다 조금 높지만 금산군 시내에서 이 봉우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서쪽방향으로 채석장이 한곳 있었다.

 

 

 

 

 

 

 

 

 

진악산 정상방향 주능선을 걸어가면서 북동 방향으로 금산군 시내가 보인다.

 

 

 

 

연무가 끼어서 조금 시정이 좋지는 않다.

 

 

 

 

주능선으로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개삼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북서릉상의 관음봉 일원 암골미..

 

 

 

 

 

 

 

 

 

 

 

 

 

 

서북 방향으로 천등산과 대둔산이 보인다.

중간에 혼자 우뚝 솟아오른 봉우리가 천등산이고 오른쪽 뒤로 쭉 뻗어있는 능선이 대둔산 도립공원이다.

 

 

 

 

 

 

 

 

 

 

 

 

 

 

이 고개만 올라서면..

 

 

 

 

진악산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전망대가 아마 최근에 설치된 듯하다. 지은지 1~2년 정도 된듯.

 

 

 

 

정상에 전망대와 같이 헬기장도 같이 설치가 되어 있다.

 

 

 

 

 

 

 

 

 

 

 

 

 

 

인삼의 고장답게 곳곳에 인삼밭이 널려 있다.

 

 

 

 

 

 

 

 

 

전망대에서 금산을 굽어보는 필자..ㅎ

 

 

 

 

 

 

 

 

 

정상에서 조망을 충분히 즐기고~

이곳에서 수리고개 광장 방면으로 150m 정도 내려가서 우측으로 170m 정도 가면 관음굴이 있는데..

이것 역시 사전에 충분히 조사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ㅠ 

그냥 그대로 개삼터 방향으로 원점회귀를 위해 하산을..

 

 

 

 

한 7~8분 내려가면 작은굴이 하나 나온다.

어떤 산행기에서 보면 이걸 관음굴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정보이다.

 

 

 

 

어느덧 개삼저수지가 다가오고~

 

 

 

 

 

 

 

 

 

저수지 주변으로  저수지 주변 정비공사가 한창이었다.

 

 

 

 

 

 

 

 

 

 

 

 

 

 

처음 출발했던 개삼터공원으로 내려오게 된다.

 

하산 완료 후 진악산이 품고 있는 사찰, 보석사를 가보기로 했다.

 

 

 

진악산 보석사 일주문

기억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작년 12월달 금산군 적벽강 등등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었는데 너무 늦은 시각이라 여기서 그냥 발길을 돌린 적이 있었다.

4개월이 지나서 다시 찾게 된 금산 보석사

 

 

 

 

눈길을 끄는 나무 한 그루...ㅎ

 

 

 

 

 

 

 

 

 

 

 

 

 

 

의병승장비 - 충남 문화재자료 제23호

의병승장으로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로서 1840년(헌종 6년)에 보석사 입구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금산군수 조취영이 글씨를 썼고, 비는 비각 안에 있다.

1940년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혔던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로 ' 의병승장 ' 이 새겨져 있으나 자획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왼쪽 면에는 창건화주 낙봉대인 등 건립 당시의 관계 인물의 이름을, 오른쪽 면에는 앞면의 '의병승장'을 창녕위 김병주가 썼음을 기록하였다.

일본 원숭이들의 만행을 확인 할 수 있었던 장소이다.

 

 

 

 

 

 

 

 

 

보석사로 올라가본다.~

 

 

 

 

금산 보석사 - 전통사찰 제5호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보석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현재의 도량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한 때는 이곳에 강원이 있어서 많은 학승이 배출되었으며 31본산 중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33개 말사를 통괄한 사찰이었다.

조구스님이 창건 당시 절 앞산의 금광에서 채굴된 금으로 불상을 조성하였다하여 절 이름을 보석사라 하였다.

 

 

 

 

 

 

 

 

 

보석사 대웅전 - 충남 유형문화재 제143호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1년(885)에 조구선사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타 없어진 것을 조선 고종 19년(1882)에 명성황후가 다시 세웠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고풍스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보석사 의선각 - 충남 문화재자료 제29호

의선각은 의병승장 영규가 계룡산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수도할 때 머물던 건물이다. 영규대사는 조선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아 조헌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웠다. 청주성을 탈환하고 금산에 이르렀으나 8월 18일 왜군과 격전 끝에 순절하였다.

의선각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로 창녕위 김병주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금산 보석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 충남 유형문화재 제214호

보석사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은 중앙의 석가여래불과 좌우 협시보살로 이루어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이다.

이 불상은 전형적인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으로 단정한 인상에 신체는 균형 있으면서 안정감이 있다.

석가여래불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덮은 편단우견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지인을 맺고 있다.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모두 손에 연꽃 가지를 들고 있으며,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서로 다르다.

문수보살의 배 부분과 양 무릎에는 장식이 새겨져 있다.

 

 

 

 

 

 

 

 

 

 

 

 

 

 

보석사 담장 너머로 보이는 보석사 은행나무의 위용...

 

 

 

 

금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 천연기념물 제365호

보석사의 입구에 서 있으며, 높이 40m, 흉고두레 10.4m로 나무의 나이는 1,000년 이상 추정된다.

나무가 오래되어 위로 뻗은 가지가 땅으로 뻗었고, 다시 그 곳에서 가지가 자라 오르고 있으며, 뿌리가 100여 평에 걸쳐 땅속에 퍼져 있다.

장엄하고 위압적인 외형을 갖추고 있으며, 중심 가지는 부러지지 않고 남아 있어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886)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며 이 은행나무는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내어 울음으로서 재난에 대비하도록 알려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15일(경칩)에 보석사 신도들이 은행나무 앞에서 대신제를 지낸다.

 

 

 

 

은행나무 옆으로 제단으로 보이고 편평한 바위와 보통 바위는 아닌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바위가 몇개 있다.

 

 

 

 

기린암

기린은 성인이 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 속의 짐승.

사슴 같은 몸에 소의 꼬리를 달고,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으며 빛깔은 오색이라고 한다.

 

 

 

 

실로 위용이 참 대단하다.

 

 

 

 

 

 

 

 

 

 

필자가 나무 밑에 가서 찍힌 사진..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금산 진악산의 이모저모를 느껴 본 오늘 산행이었다.

 

 

- 진악산 산행후기 끝 -

 

 

 

 

 

 

 

 

 

 

 

 

 

 

http://blog.daum.net/call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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