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여행] 아름다운 성곽길을 따라 걷는 여행, 외침방어를 위해 축성한 자연석 성곽인 고창읍성 (고창 신재효 고택 / 고창읍성 / 고창판소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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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여행/전라도 지역

2015. 9. 5.

고창읍성 북문 전경..

 

 

 

 

 

 

 

 

고창읍성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총화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 졌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한 곳, 고창읍성 >

 

 

 

 

 

 

 1. 여행개요

 

◈ 일 시 : 2015.08.15 (토), 날씨 : 맑음

◈ 장 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

◈ 함께한 이 : 나홀로여행

 

 

 2. 여행지도

 

 

 

 3. 아름다운 성곽길을 따라 걸으며..

 

고창에 왔으니 고창읍성에는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기에 병바위를 본 다음에 길을 찾아나선다.

고창읍에 위치하고 주차장도 넓어서 접근성이 매우 용이했다.

처음 입구에 들어설때만 해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었지만 다 둘러보고 나니 약 2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꽤 넓었다.

성 외곽의 둘레길 한바퀴 돌고 나서 내부의 다른 관아건물 등을 다 둘러봄..ㅋㅋ

둘러보고 나오니 바로 앞에 고창 신재효 고택과 고창판소리박물관이 있어 마저 구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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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대 놓은 뒤 입구를 향해 가다보니 주변에 고창읍성 한옥마을이 있다.

공예품전시관, 도예체험장 등도 있고..

 

 

 

 

 

 

 

 

 

 

 

 

 

 

 

 

 

 

 

 

 

 

 

 

고창읍성의 북문이 통상적인 입구로 현재 쓰이고 있다.

 

 

 

 

고창읍성 성곽 위로도 통행이 가능하고 바깥쪽으로도 길이 성곽을 따라 나 있다.

 

 

 

 

 

 

 

 

 

답성놀이를 재현한 모습

음력 윤달이면 무병장수와 극락승천을 소원하는 부녀자들의 답성 행렬이 장관을 이루며, 국내 유일의 답성민속이 전승되고 있는 곳이다.

성을 한바퀴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성을 돌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하였다.

특히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고 있음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밟아 굳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함으로서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하는 의도에서 였을것이다.

 

 

 

 

고창현 비석군

이곳은 고창현, 고창군과 인연을 맺은 역대 관찰사, 현감, 군수들의 선정비를 모아놓은 곳이다.

고창읍내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것을 고창읍성 내부에 옮겨졌다가, 다시 이곳에 옮겨놓았다.

비석의 건립연대가 조선중기부터 근대까지 다양하여 고창의 역사와 비석 제작의 변천과정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내가 고창읍성을 찾은 날이, 70주년 광복을 기념하여 3일간 무료입장 행사를 하고 있었다.

고창군민과 경로자는 무료이며, 성인 기준 입장료 천원이다.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정도의 규모로 동, 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이 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길이다. ^^

 

 

 

 

 

 

 

 

 

북문으로 들어서보자~

 

 

 

 

공북루

이 건물은 낮은 기단위에 전면에는 자연석 주춧돌을 사용하고 배면은 화강석 돌기둥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 만든 2층 문루이다.
고창읍성에는 정문인 공북루(북문)와 등양루(동문), 진서루(서문)등 3개소의 성문이 있는데 성문앞에는 적으로부터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옹성을 둘러쌓고

그 위에 여장(여담)을 쌓아 성안에서 밖을 살필 수 있는 현안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근총안, 원총안)을 만들어 놓았다.
공북루 전후 사적기와 상량문에는 순치 3년 (인조 24년 : 1646) 병술 12월에 공북루를 소건하고 그 후 3회에 걸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옥은 죄인을 가두는 곳으로 감옥 또는 원옥이라고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옥은 대개 관아의 입구에다 짓고 동쪽 칸과 서쪽 칸에 남·여 옥을 나누어 만들고 높은 담을 둥글게 둘러 쳤는데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원옥이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옥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3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2000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이제 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볼까~~!!

 

 

 

 

 

 

 

 

 

 

 

 

 

 

 

 

 

 

 

 

 

 

 

 

 

 

 

 

 

고창시가지와 북동쪽 방향에 방문산 및 방장산이 보인다.

 

 

 

 

북서쪽 고창 시가지의 모습

 

 

 

 

 

 

 

 

 

동북치에서 동문으로 향하는 성곽길의 모습

 

 

 

 

고창읍성의 동문이 보인다.

 

 

 

 

 

 

 

 

 

 

 

 

 

 

성곽 직각방향으로의 뚫려진 입구가 아닌 성곽의 방향대로 뚫려져 있는 입구다.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고창읍성..

 

 

 

 

 

 

 

 

 

동치에서 바라 본 동문의 모습과 성곽

 

 

 

 

성 동남쪽으로 큰 아름드리 노송군들이 분포해 있다.

성의 역사를 말해주는듯..

 

 

 

 

저수지가 하나 보이는데 이름이 노동저수지이다.

 

 

 

 

 

 

 

 

 

성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볼 생각이다.

 

 

 

 

성황사에 잠시 들러보고~

성황신은 고을의 평화와 풍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섬겨왔으며 서낭신이라고도 하는데 고을을 지켜주는 지신으로 풍수지리설과 더불어

민간신앙으로 발전되어 왔으며, 그 지역에서 산세가 수려하고 하늘과 가까운 가장 높은 곳에 모셔 왔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성황사가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서문의 모습

 

 

 

 

 

 

 

 

 

성곽을 한바퀴 다 돌고~ 이제 성안 내부의 관아건물들을 구경해보기로 한다~

 

 

 

 

 

 

 

 

 

 

 

 

 

 

배롱나무 꽃잎이 화사하게 피었다.

 

 

 

 

 

 

 

 

 

풍화루

 

 

 

 

연못과 풍화루

 

 

 

 

관청

관청은 관주라고도 하였는데 지방 관아의 주방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과 그 가족들의 식생활을 비롯한 빈객의 접대와 각종잔치에 필요한 물품의 조달 및 회계사무를 관장하였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관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92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지석묘

지석묘는 우리나라의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시대(BC 4~5세기경)의 무덤형식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고창군에는 2000여기의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창읍 죽림리 지역에만 각종 형식의 지석묘 447기가 분포되어 있어

1994년에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 391호)로 지정되고 2000년 12월 2일에 세계문화유산 (977호)으로 지정 되었다.
이 지석묘는 죽림리 일대의 지석묘가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결정된 기념으로 제 25회 모양성제 (1998. 10.28)날에

강호상공고 재학생 200여명이 지석묘 축조과정을 재현하면서 만든 것이다.

 

 

 

 

 

 

 

 

 

작청

작청은 질청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방과 아전들이 소관 업무를 처리하던 청사이다.

 

 

 

 

 

 

 

 

 

객사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에 객사라고 하는 관아가 있었다. 중앙의 몸채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그리고 나라에 경사와 궂은 일이 있을 때 대궐을 향하여 예를 올렸으며 왼쪽과 오른쪽 방은 조정에서 파견된 관원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본관의 현판에 쓴 모양지관의 모양은 예로부터 이 고장을 모양고을이라 하였고 이 성을 모양성이라 불러온데서 비롯된 당호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의 객사가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8년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 자료를 참고하여 1991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동헌

조선시대의 목과 도호부 ·군·현 등 각 행정단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이 정무를 보던 청사를 세웠는데 이를 일반적으로 동헌이라 하였다.
건물정면에는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의 평근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동헌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7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88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내아

동헌은 외동헌과 내동헌으로 나뉘는데 외동헌은 사무처로 흔히 이를 동헌이라 불렀으며 내동헌은 수령이 기거하던 살림집으로 내아라고 불렀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내아가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87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89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장청

조선시대에는 왕궁과 병영 및 진을 지키는 중앙군인과 지방의 군 · 현을 지키는 속오군 제도가 있었는데

장청은 속오군의 우두머리인 현감과 병방·군교들이 군무를 보살피던 청사이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장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1991년에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2000년도에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척화비

이 비는 조선말기에 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병인년(1866)에 비문을 만들고 신미년 (1871)에 세웠다.
당시 서양의 열강들이 무력을 앞세워 문호의 개방을 요구하고 엄청난 힘으로 밀어 닥치자 섭정의 자리에 있던 흥선대원군은

이들의 위협에서 나라를 지키는 길은 쇄국정책을 펴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비문의 내용은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을 하자는 것이고 화친을 하자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임을 온 백성에게 경계한다”라는 뜻이다.” 이 비문을 지은 병인년에는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도화선이 되어 병인양요가 발생하였고 비를 만들어 세운 신미년에는 미국군함이 강화도를 침범한 신미양요가 발생하였다.

 

 

 

향청

조선시대에는 대개의 고을에 향청이라는 관사가 있었다.

지방의 수령을 자문 보좌하던 자치기구로서 조선 초기에는 유향소라고 하였는데 임진왜란 이후부터 향청이라고 불렸다.
향청의 설치목적은 지방의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르게 하는 등 향촌교화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의 향청이 있었으나 건물은 없어지고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83년 발굴조사하여

확인된 유구와 각종자료를 참고하여 1993년 원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고창읍성 구석구석 거의 다 관람을 하고~

다시 북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고창읍성 앞 고창군립도서관의 모습

 

 

 

 

ㅎㅎ 이곳에서도 영화관이 있구나~~^^

 

 

 

 

 

 

 

 

 

고창읍성을 나오니 뭔가 있길래 가보았더니~~

 

 

 

 

고창 신재효 고택이 있었다.

이 집은 동리 신재효가 살면서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신재효는 심청가, 적벽가, 춘향가, 토끼타령, 박타령, 변강쇠타령(가루지기타령) 등 판소리 여섯마당의 체계를 세웠으며,

판소리의 창극화와 함께 판소리 사설을 집대성 하는 등 우리나라 판소리의 발전에 커다란 공을 세운 사람이다.

 

 

 

 

 

 

 

 

 

 

 

 

 

 

옆에 있던 고창판소리박물관도 광복70주년으로 인해 무료로 개방을 해놓은 상태~^^

 

 

 

 

 

 

 

 

 

 

주말 연휴였지만 더운 날씨 탓에 다들 바닷가로 떠났나보다..

한산한 고창읍성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난 좋았지..^^

 

고창읍성의 많은것을 알게 된 이번 여정이었다.~!!

 

 

 

 

 

 

 

 

http://blog.daum.net/call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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