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종달리와 하도리 해안가 모습 (종달리 어항/생개납 돈짓당/엉불턱/종달리 전망대/하도리 해안가/토끼섬/문주란 자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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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여행/제주특별자치도

2016. 10. 2.



< 제주 해녀의 아픈 역사와 함께..제주 땅끝 하도리, 종달리 >







1. 여행개요


◈ 일 시 : 2016.08.21 (일), 날씨 : 맑음

◈ 장 소 : 종달리 & 하도리 해안가  

◈ 비 용 : 없음




2. 여행지 소개




제주 종달리


종달리는 한라산 동쪽 끝 해안가에 위치한다. 해발 고도 250m에 이르는 남쪽에서부터 북쪽 해안까지 길게 뻗어 있다.

남에서 북으로 동거문오름[340m], 손자봉(孫子峯)[255.8m], 용눈이오름[247.8m], 은월봉[197.6m]이 연이어 있으며,

해안가에는 바로 남쪽에 마을을 끼고 지미봉이 솟아 있다. 북쪽에는 넓은 모래 해안이 펼쳐진다.

주요 소득원은 당근과 감자이며 마늘도 많이 재배한다. 동남쪽 해안에는 천혜의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어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논으로 이용된다. 간조 때 넓은 백사장이 드러나는 동쪽 해안은 조개잡이 체험어장으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제주 하도리


하도리는 제주시 구좌읍의 동쪽 해안에 자리 잡은 반농반어 마을이다. 2007년 현재 면적은 7.37㎢이며 총 850세대에 2,14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면수동·창흥동·서문동·동동·굴동·신동·서동 등 7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당근이 가장 중요한 소득원이며 감자, 콩, 보리도 많이 재배한다.

해산물 채취와 축산도 활발하다. 동쪽 바닷가 인근 토끼섬의 제주도 구좌읍 문주란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별방진성은 제주도 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남쪽 만입부 해안 늪지대는

하도리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며 해안 백사장은 해수욕장으로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온다.







3. 여행 하이라이트 사진





4. 여행지도





5. 여행이야기 - 한적하던 제주 땅끝 동쪽 해안가.. 슬픈 이야기도 간직한 그곳.


지미봉 산행을 마치고 내려와 종달리 해안가에서부터 하도리 해안가를 돌아본다.

특별한 관광명소는 없지만 제주도 해안가를 가는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자세한 안내판까지 다 설치되어 있고 해변데크도 있다.

그 곳을 걸으며 예전 제주 사람들의 삶까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지미봉에서 내려온 후 들러본 종달리 어항..

성산포항 외에 우도로 가는 도항선이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게 된다.





뒤쪽으로 지미봉이 보이고..















종달리 어항..










지미봉이 서 있는 자리는 옛날 섬이었다. 오롯한 섬은 아니었고 물이 빠지면 뭍과 이어지는 모래펄이었다.
지미봉 북쪽 하도리 철새도래지의 습지가 옛날 바닷물이 들고 나던 물길이었다. 그 물길을 따라 펼쳐진 모래밭에 16세기 염전이 들어섰다.
이른바 ‘종달 염전’은 제주 제염의 효시다. 하나 종달 염전은 뭍에서 건너온 값싼 소금에 밀렸고, 소금밭이었던 모래밭은 100년쯤 전 농지로 변신을 감행했다. 둑을 쌓고 바닷물을 막아 논을 들인 것이었다. 간척사업의 결과 지미봉을 에워싼 종달리 땅은 엄연한 육지로 거듭났다.




종달리 어항을 지나쳐 해안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다보니 해안가에 무언가가 있다.

내려서서 확인을..





생개납 돈짓당





해신당은 해녀와 어부들이 물질작업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장소로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생개납 돈짓당은 종달리의 업와 해녀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해신당으로 용왕신과 선왕신을 모시고 있다.

갯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와 나무를 신목과 신석으로 모시고 있으며 자연 상태 그대로를 이용한 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생개납 돈짓당 옆으로 배 모양을 한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구경하러 가보자..ㅎ















이곳 종달리와 하도리 일대의 농지로의 변신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제주도 최초의 간척지였지만, 지반이 튼튼하지 못해 논에서 자꾸 바닷물이 올라왔다.
벼는 말라 죽었고, 논은 다시 소(沼)가 되었다. 소에 사람이 빠져 죽는 사고도 일어났다. 당시 간척사업을 주도한 인물이 대정군수를 지낸
채엄석(1850∼1920)이었는데, 종달리 사람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데다 사람만 잡아먹는 소를 ‘대정놈의 소’라 부르며 비아냥댔다.

세월이 흘러 그 대정놈의 소 대부분은 들이 되었고, 하도리와 종달리를 잇는 물길만 소로 남았다. 인간에게 내팽개쳐진 소에 언제부터인가 철새가 내려앉았다. 하도리 철새도래지는 그렇게 시작됐다. 현재 철새도래지의 둘레는 약 3700m에 이른다. 한때는 세계적 희귀종 황새가 관찰되기도 했다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하도리 철새도래지에는 멸종위기종 저어새를 비롯해 도요새·청둥오리 등 20여 종의 철새가 날아든다. 하도리는 제주도 유일의 탐조 관광지다.




배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 장소도 어떠한 지명이 있는듯.

안내판이 있었다.





엉 불턱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하는 곳이며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지식, 물질 요령, 어장의 위치 파악 등 물질 작업에 대한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한다.


엉 불턱은 종달리 전망대 옆에 있는 자연형 불턱으로 염소머리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으며 '염소부리코지' 하고 부른다.

바위 하부 동남쪽에 제주어로 '엉' 이라 부르는 움푹 들어간 곳을 불턱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아담한 사이즈의 배 모양 전망대..





뱃머리는 우도가 아닌 성산일출봉을 가리키고 있다..ㅎ















한적한 종달리 해안가..





하도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해안..

해안가를 따라 데크길이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이동..

이제 종달리를 벗어나 하도리에 접어들었다. 하도 어촌체험마을.. 지명이름은 광시보리라는 곳..





이 마을은 제주 공항을 기점으로 동쪽 방향으로 약 4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이름은 별방이었다.

7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0여 명의 주민이 반농반어의 복합적인 산업구조를 가진 농어촌 마을로서

제주의 다른 마을과 비교했을 때 마을어장이 넓고 자원이 풍부하여 어업 의존도가 높은 해녀 마을이다.





방금 전... 흰색건물이 어촌체험 안내센터이기도 하고 무인카페 '진모살' 이라는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는 제주도 천연기념물 19호인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제주도 기념물 24호인 별방진,

세계적 희귀 조류인 노랑부리저어새, 황새, 백로, 가마우지류 등 수십 종의 철새가 찾아 드는 '하도 철새 도래지',

긴 해안선을 마주하여 길게 줄찌어있는 제주의 '밭담'과 해녀들의 어제 오늘의 삶과 애환, 모습 등을 함께 볼 수 있는 '해녀박물관' 이 있다.




조형물이 하나 있다. 작품명 ' 여명-희망의 빛'










원담이란 해변 조간대의 만을 이루는 곳에 돌담을 쌓아놓고 밀물 따라 몰려든 물고기들을 썰물이 나면 그 안에 갇히게 하여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돌을 쌓아 만들어 둔 곳을 말한다. 이르 ㄹ'갯담' 이라고도 하며 다른 지방에서는 '돌살' 이라고도 하고, 석전, 석방렴이라고도 불린다.

이 마을에서는 '개'라는 명칭을 써서 '멜케' 혹은 '닷지개' 라고도 하며, 또 '통' 이라고 붙여서 광어가 잘 들어오는 곳을 '광어통' 이라고 부른다.

현재 30여개의 원담이 있다.





테우도 전시되어 있다.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낚시질, 해초 채취 등을 할 때 사용했던 통나무 배로 여러 개의 통나무를 엮어서 만든 뗏목배라는 의미로 '떼배', '터위', '테'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테우는 부력이 뛰어난 구상나무로 만들어 암반 지대에서도 이용이자유로워서 연안에서 고기잡이,

채초류 채취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이동 수단으로 사용했던 제주인들의 삶의 산물이다.





불턱 체험장..




하도리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마을이다. 섬에서 해안선이 가장 긴 마을이기도 하지만, 백록담에서 가장 먼 마을이기도 하다.
하도리는 해안을 따라 마을이 들어앉아 있어 ‘웃뜨르’라 불리는 들판도 없고 비가 내려야 물이 흐르는 ‘건천’도 없다. 그 흔한(!) 오름도 없다.

그래도 하도리는 아쉬울 것 없는 마을이다. 미역·몸(모자반)·우뭇가사리·톳·감태 등 해초가 널린 바다를 길게 두른 마을이고, 사시사철 샘물이 솟는 용천수 20여 곳을 거느린 마을이다. 그러니까 하도리는 화산섬 제주도의 포구마을이라기보다는 다도해 작은 섬의 갯마을을 닮은 마을이다. 제주도에 있는 어촌체험마을 6곳 중에서 하도리가 제일 잘 된다. 하도리(下道里)라는 이름은 ‘도이탄’이라 불리던 옛 모래밭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하도리가 제주 역사에서 전면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1932년 1월 섬을 뜨겁게 달궜던 제주 해녀항쟁은 하도리 해녀의 봉기에서 시작되었다.
1932년 1월 7일 세화리 장날. 하도리 해녀들이 한 손에 호미, 다른 손에 빗창(해녀가 전복 따위를 딸 때 쓰는 기구)을 들고 오일장에 모여들었다.
오일장에서 다른 마을의 해녀와 합세한 하도리 해녀는 집회를 열어 수탈을 일삼는 일제와 해녀조합의 만행을 성토했다.
닷새 뒤에는 1000명이 넘는 해녀가 세화 오일장에 집결했다. 이번에는 제주도사로부터 해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그러나 막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해녀 시위는 1월 내내 이어졌다.
연인원 1만7000명의 해녀가 시위에 참가했다지만 주동자들이 검거되면서 제주 최대의 항일 운동은 막을 내렸다.

 제주 역사에 무심한 사람이 흔히 품는 의문이 있다. ‘왜 해남(海男)은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해남은 있다. 아니 있었다. 옛날 물질하는 남자는
‘포작’이라 불렸다. 포작이 있던 시절에도 해녀는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잠녀’라 불렸다. 포작과 잠녀는 함께 물에 들어갔다. 다만 역할은 달랐다.
포작은 전복·소라 따위를 따고, 잠녀는 미역·톳 따위를 뜯었다. 전복을 따려면 멀고 깊은 바다까지 나아가야 했고,
미역은 가깝고 얕은 바다에서도 캘 수 있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물질은 나뉘었다.

 전복은 진상품이었다. 말린 전복이 수라상에 오르면서 공물의 압박이 거세졌다. 조선 후기 양반사회도 전복을 귀히 여겼다.
말린 전복은 권력층이 주고 받는 뇌물이자, 몇 배 부풀린 값으로 되파는 재테크 수단으로 쓰였다. 제주에서 아무리 전복을 갖다바쳐도
육지에서는 더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조정은 전복 공물의 물량과 시기를 일방적으로 정했고, 포작이 물량과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법에 따라 처벌했다.
가장 일반적인 처벌이 태형(笞刑)이었다. 제주의 남자는 곤장을 맞아가며 바다로 나갔다.

 조정은 섬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비바람이 들이쳐도 바다가 험해져도 물량은 달라지지 않았다. 참다 못한 제주 남자는 고향을 버렸다.
돛단배를 타고 몰래 바다를 건넜다. 그렇게 그들은 뭍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포작의 엑소더스(Exodus)가 이어지자 조정은 제주 사람의
육지 출입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1629년에 내려진 금지령은 1823년까지 무려 2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전복을 받아먹겠다고 나라가
백성을 섬에 가둔 셈이었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참혹한 역사였다.





남자들이 도망친 제주에는 여자들만 남았다. 그래도 공물의 압박은 잦아들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자도 먼바다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제주 바다에 여자만 남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해녀 사이에 내려오는 속담 하나를 소개한다. ‘여자로 나느니 쇠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지).’ 해녀라는 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들어왔다.

 지미봉 정상에 서면 발 아래로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인다. 그 바다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노랗고 빨간 점도 보인다.
바다에서 해녀의 지친 육신을 받쳐주는 ‘테왁’이다. 테왁이 보이면 해녀가 있다는 뜻이다. 테왁을 발견했으면 한동안 귀를 기울일 일이다.
휘이휘이, 바닷바람을 타고 숨비 소리가 먼 나라의 소식처럼 들려올 터이다. 혼자라면 울어도 좋다. 세상의 모든 땅끝은 서러운 사연을 품고 있다.










이곳을 떠나기전.. 잠깐 무인카페에 들어가볼려고 했는데.. 오늘 휴관이다..^^;;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으로 가보자..










이 식물이 문주란이다.

토끼섬 인근 해안이라 꼭 토끼섬에 가지 않더라도 볼 수 있다.





저 앞쪽에 보이는 섬이 토끼섬..

구좌읍 하도리 굴동포구에서 배로 5분 이내 거리에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야생 문주란 군락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이곳 토끼섬 뿐이다.

















문주란은 높이가 50cm가량 되는 다년생의 상록초본으로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산형의 꽃을 피우는데 특히 밤중에 꽃이 활짝 필 때 향기가 강하게 난다.

꽃이 진 다음 밤송이만 한 씨앗이 달렸다가 떨어지며 이들 씨앗에서 다시 싹이 나고 잎과 줄기가 자라나 토끼섬은 늘 문주란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섬 주위를 둘러친 갯바위 부분 등 일부를 제외하고 식물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곳 대부분이 문주란으로 뒤덮여 있어

천연기념물 제19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썰물 때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다음 기회에 한번 시각 맞춰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주의 동쪽 땅끝이자 해녀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종달리, 하도리 해안가를 돌아본 소중한 시간이었다. ^^






 

 

 

 

 

http://blog.daum.net/call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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