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정북동토성 일몰 - 청주 사진찍기 좋은 곳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청주여행/청주 가볼만한곳/청주 출사지/청주 일몰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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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여행/충청도 지역

2019. 6. 30.



<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 >







1. 여행개요


◈ 일 시 : 2019.01.25 (금), 날씨 : 맑음

◈ 장 소 : 충북 청주 정북동토성 ( 주차장소 : 충북 청주시 청원구 정북동 385-2 )

◈ 비 용 : 입장료 및 주차료 없음




2. 여행지 소개




정북동토성


청주 오근장동의 미호천변에 있는 정북동토성은 사적 제 415호로 청주시 북쪽 미호천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토성이다.

커다란 제방처럼 보이는 이 성은 서울 풍납토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토성이다.

정북동토성은 형체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토성으로 둘레가 650여 미터에 이르는 정사각형 형태의 성이다.

동서남북으로 문터가 남아 있는데, 남문과 북문은 성벽을 어긋나게 쌓았다. 이것은 적이 성으로 곧바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든 옹성의 초기 형태이다.

성의 네 귀퉁이와 성벽중간에는 앞으로 내어쌓은 곳이 보인다. 이것은 성벽을 옆에서 감시하고, 유사시 성벽으로 달려드는 적을 옆에서 공격하기 위한 것으로

치성의 초기 형태이다.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3C경 초기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3. 여행 하이라이트 사진





4. 여행지도




5. 여행이야기 - 청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평범한 논밭이 펼쳐진 곳에 토성 하나가 있다. 바로 정북동토성..!!

유적으로서의 가치도 상당히 높은 곳이지만, 이곳은 사진찍기에 정말 좋은 장소이다.

주경 사진도 괜찮지만, 특히나 일몰 사진이 괜찮게 나오는 지형을 지니고 있다.


오후 늦게 도착을 해서 우선 주변 지형을 돌아보고, 일몰 사진을 찍을 장소를 탐색해본다..ㅎ

이미 이 근방에서는 꽤 유명한 곳으로 알려졌기에 사람들이 평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이 몰려든다.


돌아다니다가 괜찮은 일몰 사진 포인트에 와서, 주변에 있는 여자분들에게 모델 요청을 해 본다..

이럴 때에는 참 생판 모르는 여자한테 말도 잘 거는 필자다..;;

당연히 사진은 원본 보내주는걸로..ㅎㅎ

그리하여 사진을 찍게 되고.. 나중에 필자도 사진을 남겨본다..^^








정북동토성으로 향하는 길.. 거의 근처에 다왔는데 도로가에 유적지 안내판이 서 있다. 달리는 차를 멈추고 잠시 구경을 하러 가본다.

청주 정하동 마애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였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상으로는 그 예가 드문 마애불좌상이다.

비로자나불은 화엄종 사찰에서 주존으로 모셔지는 불상으로 지권인을 한 손모양이 특징이다.

9세기경에 유행한 마애불 및 비로자나 불상의 흐름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불상은 머리 뒷부분에 원형 광배를 지니고 연꽃 대좌에 앉은 형태이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몸을 따라 흐르는 옷주름선이 돋보이고, 머리 모양은 모자를 쓴 듯하다.





손모양도 왼손 둘째손가락을 오른손으로 잡은 특이한 지권인을 하고 있다.

길게 네모진 형태의 얼굴, 잘록한 허리 그리고 볼륨 있는 무릎 등 앞 시대의 특징이 엿보이는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불상의 높이는 323 cm





원래 목적지인 정북동토성에 왔다. 많은이들의 방문을 예상했는지 적당한 크기의 주차공간이 있었다.










정북동토성에 관련된 안전수칙 및 설명문구를...우선은 대강 읽어보고..ㅎ





오후 늦은 시각.. 이 시간대의 햇살이 대지에 비춰지는 저 색감이 너무 좋다..





정북동토성의 성벽 밖 해자가 돌아간 구역의 남쪽 성문과 동쪽 성문 사이의 구역에서는 지금까지 우물 4곳이 확인되었다.

우물은 모두 둥근 강자갈을 이용하여 조성되었다.

복원된 우물들은 당초의 원형을 그대로 두고 윗부분을 보강하였으며, 뚜껑은 안전을 위해 새로 만든 것이다.




 

토성 주변의 해자가 참 인상적인 곳이다. 지금은 물이 말라있어서 약간은 건조한 느낌인데, 물이 차 있을 경우 참신한 사진이 나올 지 기대가 된다.





해자는 성 주변을 둘러 파서 만든 도랑으로 방어와 배수 등의 기능을 겸한다.
정북동토성의 해자는 두 차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첫 번째 해자는 성벽의 바깥을 따라 돌아가면서 파여졌다.

이 첫 번째 해자를 수리하고 만들어진 두 번째 해자는 안쪽과 바깥의 이중으로 만들었다.
정북동토성 해자의 특징은 바닥면이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천천히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런 구조는 해자가 물을 채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호천이 물을 일부 끌어들여 성을 돌아나가도록 배수시키는 기능을

겸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두 번째 해자는 토성이 방어의 기능을 잃게 되면서 폐기되어 메워졌으며, 그 메워 다져진 위쪽에

통일신라의 수레가 다니던 도로와 그 이후의 집터를 비롯한 생활유구들이 자리하게 되었음이 발굴을 통해 알려졌다.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기념물 제82호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10월 28일 사적 415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청주시 북쪽 미호천(美湖川) 연안에 펼쳐진 평야의 중심에 위치한 평지 토성이다. 정확한 축조연대를 알 수 없으나, 다만 영조 20년(1744)에

상당산성의 승장(僧長)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근거지로 삼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고, 상당산성의 서문 바깥 까치내[鵲江]의 곁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이로써 정북동 토성이 후삼국의 쟁란기인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게 하였으나,

성내 민가 신축시에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고, 성의 위치와 주변 여건이 비교적 성곽으로서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어,

삼국시대의 전·중기에 축성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토성 외부의 모습..





토성은 남북이 약간 긴 사각형이며 성안의 중심부에는 동서로 가로 질러 농로가 있다. 이 농로의 북쪽은 20여 호의 민가가 있고, 남쪽은 경작지로 되어 있다.

성벽은 단면이 사다리꼴로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으며, 4곳 모서리 부분은 약간 높고 바깥으로 돌출되어 치성 또는 각루의 시설이 있던 듯하다.

4면 성벽의 중간쯤에는 문터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으며, 문지와 모서리 사이에도 곡성(曲城)의 흔적이 있어 치성의 흔적은 12개소이다.





토성 안쪽은 꽤 넓은 평지로 조성되어 있다.





문터 가운데 동·서·북의 것은 지금도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엇갈리게 축조된 독특한 형태로서

옹성(甕城)의 초기형식으로 주목된다. 배수문제는 서쪽이 약간 높은 지세에 따라 서문으로 물의 유입을 막고,

성안의 물을 동쪽으로 흘려 동문으로 배수시켰다. 성안에서 빠져나간 물은 성밖을 둘러싼 해자(垓字)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96~1997년 서쪽 성벽 일부와 서문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고, 1999년에는 성내 동반부와 남반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성벽의 벽체부분은 안팎으로 나무기둥을 세워서 내부를 다지는 공법이 채택되고, 기단을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벽체의 안팎에 다시 기둥을 세워

축조한 방식을 취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서문터는 굴립주에 의한 문이 있었다가 후대에 냇돌적심을 이용한 초석 기둥으로 대체되었다.

그 외에도 성안에서 주거유구, 기둥구덩유구, 길 유구, 냇돌무더기 유구 등이 확인되고, 성외 동남부 및 남문 바깥에서 해자가 확인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2.7m~4.5m, 성벽의 윗부분폭은 2m, 성벽의 밑부분은 12.5m~17.5m이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185.5m, 서벽 165m, 남벽 155m, 북벽 170m으로 전체 675.5m이다.

이곳은 현존 유구의 상태가 가장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성의 구조나 출토 유물 등으로 미루어 한국 초기의 토성 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이중 해자의 흔적..





현장에서 급히 20대 초반의 여대생 모델을 섭외..ㅎㅎ 모델료는 사진원본으로 대체하고..^^





여러 컷 중 이 사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해가 지고 나서.. 필자도 사진에 담아본다..^^


다음에는 겨울철이 아닌 여름이나 가을에 다시 찾고 싶다. 해자에 물이 가득 담겨 있는 모습의 정북동토성은 어떤 모습일까..? ^^



 

 

 

http://blog.daum.net/call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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