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갈매못 성지 -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성지 (천주교 순교지/보령여행/보령 가볼만한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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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 여행/충청도 지역

2019. 8. 22.



<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 '갈매못성지'>







1. 여행개요


◈ 일 시 : 2019.02.17 (일), 날씨 : 맑음

◈ 장 소 : 보령 갈매못 성지

◈ 비 용 : 입장료 및 주차료 없음




2. 여행지 소개




갈매못 성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던 갈매못은 병인박해 때에 군문효수를 당했던 다블뤼 안 안토니오 주교, 위앵 민 마르티노 신부, 오메크로 오 베드로 신부와

황석두 루가 회장, 그리고 장주기 요셉 회장과 그밖의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로 물든(1866년 3월 30일 성금요일) 처형장이었다.

대원군이 이 자리를 처형장으로 택한 것은 명성황후의 국혼이 예정된 시기로서 수도에서 200리 이상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해야 탈이 없으리라는

무당의 예언도 있었고, 러시아와 프랑스 함대가 침략을 시도한 서해의 외연도가 아스라히 바라다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인근의 오천성은 좌수영 및 우수영과 함께 영향력있었던 충청수영이 있던 곳으로서

다른 지방과 다르게 전국의 죄인들이 여기까지 와서 처형당하기도 했던 역사가 있지 않았나하는 의견도 있다.

치명터임이 확인된 1927년부터 이 곳이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비가, 1999년 경당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3. 여행 하이라이트 사진





4. 여행지도




5. 여행이야기 - 충남지역에 분포한 순교성지..유일하게 바닷가에 위치한 성지


이곳 또한 무작정 해안가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가 갈매못 팻말을 보고 급하게 핸들을 돌렸다.

충남지역에 밀집해 있는 천주교 성지들.. 서산 해미읍성과 당진 솔뫼성지 등은 이미 가봤었고, 갈매못은 처음 방문이다.


갈매못성지는 1866년 3월23일 천주교 병인박해 때 서울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보령에 있는 충청수영으로 이송된 다섯 성인이

1866년 3월 30일 수영 근처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한 장소이다.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이 남아있는 이곳.. 한번 둘러보자~







이곳은 갈매못 천주교 순교성지~

순교성지라고 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조선시대에 박해받아서 세상을 떠난 곳을 의미한다.

보령에 있는 갈매못성지는 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있어서 종교와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예수 성심상





예수 성심상 뒤편의 푸르른 바다는 순교자의 넋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하고 한가롭기만 하다.

성심상 앞에서 바라본 기념관으로 바라본 갈매못 성지 전경이 아름답다.





충청남도는 예산의 여사울성지, 당진의 솔뫼성지, 천안의 성거산성지, 당진의 신리성지, 해미순교 성지, 청양의 다락골줄무덤 그리고 보령의 갈매못성지 등

많이 있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 중에는 거의 평지에 있는데 갈매못성지는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예전에는 섬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마당 한켠에 위치한 순교터는 1966년 3월 30일 수난 성금요일에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매트르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두 회장,

성 장주기 회장 등 다섯 명과 5백여 명의 이름 모를 교우들이 순교한 곳이다.
그 피의 순교터에 복자비와 성인비를 세워 성인들의 삶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다섯 성인의 순교를 보여주는 기념 전시관 앞 야외제대 좌우측에는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상과 성 황석두 루가 회장 상이 있다.





순교자 동판 부조가 벽면에 있고..





갈매못성지는 보령시 오천면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순교지인데 <한국 천주교회사> 하권의 434쪽에는

‘형장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고 나와 있고 교회 입구 돌에 새겨져 있다.





갈매못이 형장이 된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째, 1846년(헌종 12) 6월에 프랑스 세실 제독이 군함 3척을 이끌고 외연도에 정박해서 기해박해 때 앵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 등

3인을 처형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상자에 남겨두고 돌아갔는데 이 사건을 조정에서는 조선 영해 침범 사건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이것으로 인해서 옥중에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을 앞당기고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로 세실 함장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택하여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를 비롯하여 오메트로 신부, 민 위엥 신부, 황석두, 장주기 등 5명을 끌고 와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고종의 국혼을 한 달 남겨놓고 당시 궁중에서는 무당을 불러 점을 친 결과

국혼을 앞두고 한양에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니 사형수들을 이백 리 밖에서

형을 집행하도록 하라는 무당의 예언에 따라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라는 명이 내려졌다고 한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와서는 승리의 성모 성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14처로 이어지는 돌 조각상이 있다.





투박한 듯 하면서도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조각상들..





우측으로 갈매못 성지의 한켠에는 이렇게 차를 파는 곳도 있다.

아름답게 정원을 정말 제대로 꾸며놓은 모습..





이곳에서 산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승리의 성모 성당이 있다.





올라가는 길 왼쪽 성당 쪽으로 순교자들의 흉상이 있고 천천히 올라가 십자가 형태의 문의 형태 조형물을 통과해서 성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성당 안의 분위기와 함께해서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고 한다.

아쉽게도 내부는 들어가보지 못했다.

 



이곳은 1927년부터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 순교비가, 1999년 경당이 완공되어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전래적으로 무서운 곳으로 알려져 마을 사람들이 누구도 이 근처에 가지 말도록 해왔던 이곳은 길도 없어 인근 오천성에서 배를 타고 오던 곳이었다고 한다.





갈매못 성지 뒷편으로 한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산책길도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성지로 개발되어 지금은 천수만 변 도로를 통해 수많은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줄을 이어 방문하고 있다.

오천항이 가까워서 그곳에서 키조개 요리나 생선회를 즐길 수 있고 주변에는 도미부인 사당, 오천 향교 등 볼거리도 많이 있다.





자연 채광 빛이 만들어내는 은은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승리의 성모 성당 대성전의 모습은 아마 전국의 성당중 가장 아름다운 제대라고 한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보지 못한게 다소 아쉽다. 내부의 모습은 다음 기회에..^^

 

http://blog.daum.net/call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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