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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라 2020. 11. 22. 21:39

갑자기 지상 스님께서 오신다고 기별이 왔다. 웬일일까? 이 먼 데까지.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에 비구니 스님 혼자 운전하고 오신다고 하니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바람이 강하게 불고 가을비가 세차게 내린다. 아침 9시 정각에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으니 지금 시각이 1030분이니 지금쯤 도착을 할 시간인데 아직 오시지 않아서 다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거사님 여기 마을쉼터에 도착했어요.”

, 스님 어느 마을 쉼터지요?”
동이리 마을쉼터라고 되어 있네요?”

, 잠깐만 그곳에서 기다리세요. 제가 그리고 곧 가겠습니다.”

 

빗속을 뚫고 동이리 마을쉼터에 도착하니 스님 차가 비상등을 켜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스님의 차를 에스코트하여 금가락지로 인도를 했다. 집에 도착하자 스님은 트렁크에 좀 무거운 짐이 있으니 내려달라고 했다. 트렁크를 열어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트렁크 속에는 무언가 가득 찬 박스가 네 개나 들어 있었다.

 

이렇게 한 살림 듬뿍 싣고 오시다니...

 

스님, 이게 뭐지요?”

아하, 전방이라 시장 보시기가 어려울 것 같아 장을 좀 봐 왔어요.”

아이고, 여기도 전곡으로 가면 하나로 마트도 있고, 전통시장도 있어요.”

, 그래요?”

 

아무튼 짐을 트렁크에서 꺼내 들고 거실로 옮겼다. 아내가 박스에 가득 찬 물건들을 보더니 그만 입을 벌리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박스를 열어보니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었다. 토마토 1박스, 두부, 달걀, 상추, 버섯, 브로콜리, 호박, 시금치, 콩나물, 풋고추, 청상추, , 소고기, 국거리 등등. 아주 그냥 한 살림을 장을 보아 오셨다. 아내가 입이 벌어질 만도 했다.

 

스님, 여기서 한 달 정도 살다 가시지요? 저 반찬이면 한 달 정도는 먹겠네요. 호호호.”

호호, 그래요? 보살님, 요즈음은 여행도 가지 못하고 갇혀 사느라 힘들지요? 위로 겸 장을 좀 봐왔어요.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세요?”

할 수 없지요, 그나마 요즈음 가수 임영웅 씨의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다행이군요. 뭐든지 소일거리가 있어야지요.”

 

스님께서 장을 보아 온 한 살림을 보자 몇 해 전 몹시 추운 날 이근후 선생님께서 방문하셨던 생각이 났다. 하필 그날은 55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고 했다. 영하 20도를 밑돌 정도로 추위가 엄습했던 날이었다. 팔십 노익장이신 선생님은 러시아 군인들이 쓰는 털모자에 두꺼운 방한복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왔다. 선생님은 트렁크를 열어서 짐을 꺼내라고 하셨는데, 트렁크를 열어보니 쌀 한 포대와 라면 한 상자가 들어 있었다.

 

선생님, 웬 쌀과 라면을.”

이 추위에 전방을 지키고 있는 최 선생이 고마워서 내가 군량미를 좀 가져왔소. 허허.”

선생님, 우리 집에 쌀이 떨어진 줄 어떻게 아셨어요?”

 

아내가 기쁨을 참지 못하고 말하자, 선생님은 입김이 얼어버릴 것 같은 강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허허허, 하고 웃으셨다. 그날은 정말 내 영혼이 따뜻한 날이었다. 노익장의 방문만도 황송한데 군량미까지 사 오신 따뜻한 휴매니티는 강추위로 얼어붙은 내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날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홍합짬뽕으로 점심을 먹고 임진강변 화이트 다방에서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모닝커피'를 대접해드렸다. 추억의 모닝커피를 마시며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시던 선생님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오마이뉴스 기사 내용: 영하 20도의 날씨 녹여준 따뜻했던 시간들. http://bit.ly/Za7VIF)

 

그때를 상기하며 오늘 코로나로 두문불출을 하고있는 아내를 위해서 한 살림 장을 보아 오신 스님을 뵙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스님은 코로나가 아니면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사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식도 금지하고 있어 우리가 준비한 간단한 정심 공양을 드시고 휭~ 하고 곧 집을 나섰다. 한 살림 장을 보아 먼 길을 찾아오신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심장이식을 받은 아내는 면역이 어린아이처럼 약해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노출이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에 폐렴이 걸려 응급실과 중환자에 실에 입원하는 등 생사를 오갈 정도로 어려운 시련을 보낸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래서 외출하기도 어렵고, 누가 방문을 하는 것도 두렵다. 코로나는 시도 때도 없이 옮기기 때문이다. 여행을 유일한 낙으로 삼고 있던 아내도 자숙하며, 오직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그나마 임영웅의 노래라도 위안을 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좋은 싫든 누군가와 관계를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요즈음은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비대면)시대에 살다 보니 모두가 외로운 섬처럼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는 누가, 어디서, 무엇 때문에 발생했을까? 아마 이도 인간이 지구환경을 오염시킨 원인임이 틀림없으리라. 어쨌든 코로나가 빨리 물러나서 서로 자유롭게 오가고, 대면하고 살아가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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