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108일간의세계일주

찰라 2008. 8. 27. 07:53

 

'토끼 울타리'를 넘어서

  -Rabbit Proof Fence-

 

호주하면 흔히 장미처럼 아름다운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골드 코스트, 그리고 서호주의 퍼스 등 그림같은 도시를 를 떠 올리기 쉽다. 물론 여행자라면 그런 아름다운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친 심신을 쉬고 싶으리라.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는 마치 장미의 가시에 찔린 것처럼 아픔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바로 호주가 그렇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백인정부의 탄압에 시달리며 고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호주 토착민 애버리지니들이 그들이다. 어디 이런 일이 호주뿐인가? 아메리카에는 원주민 인디언이, 그리고 뉴질랜드에는 마오리족이 정복자의 탄압에 짓밟혀 고통을 당하며 사라져가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 퍼스를 이륙한 비행기는 호주 아웃백의 붉은 사막을 지나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붉은 사막! 호주대륙이 우리나라 남한의 100배나 큰 대륙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호주 내륙의 심장부인 울룰루를 향해 골든 아웃 백으로 들어갈수록 땅의 색깔은 점점 붉어진다. 

 

태초에 원시의 땅이 저랬을까? 한 낮의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여서인지 구름한 점 없는 사막은 더욱 붉게 타오른다. 호주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성소인 울룰루로 날아가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문득 무명의 원주민 작가 도리스 필킹톤이  쓴 '토끼 울타리를 따라가다(Follow the Rabbit Fence)'에 나오는 10대 소녀들의 탈출장면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시드니 출신 필립 노이스 감독이 '토끼 울타리(Rabbit Proof Fence)'란 제목으로 영화화 되면서 일약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1930년대에 영국 식민정부는 원주민 여성들과 백인 남성들 사이에 태어난 혼혈 아동을 엄마로부터 강제로 훔쳐 와서 수용소 등 열악한 환경에 집단으로 거주시켰다.

 

그런 다음 기독교로 개종시켜 남자 아이들은 목동이나 막일꾼으로, 여자 아이들은 하녀로 훈련시켜 호주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원주민의 고통스런 역사를 담고 있다.

  

소설 '토끼 울타리를 따라가다'는 필킹톤 여사가 그녀의 모친인 몰리(Molly Carig)가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이를 소설화한 것이다. 소설은 10대 전후의 세 자매-여덟 살 데이지, 열 살 그레이시, 열네 살 몰리가 서호주 오지 마을에서 원주민 아동 격리수용소를 탈출하여 집이 있는 지가롱이라는 곳까지 1,500마일(2,400km)의 머나먼 길을 6주 동안 걸어서 가족의 품에 안기는 감동적인 체험을 전하고 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토끼 울타리'는 원래 백인 목장 주들이 쳐 놓은 철조망 울타리이지만, 토끼처럼 어린 세 자매가 이 울타리를 이정표 삼아 거친 불모의 사막을 횡단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토끼 울타리는 토착민 애버리지니의 소유였던 거대한 대륙이 백인들에 의해 무단 점거되어 부당하게 철조망 울타리가 쳐진 '빼앗긴 땅'을 암시하고 있다. 이른바 '도둑맞은 세대Stolen Gerneration'의 고통을 나타내는 말이기도하다(◀지도: 서호주의 방대한 토끼 울타리.연도별로 둘러쳤으며, 노란선은 세 자매가 퍼스에서 지갈롱까지 2400km를 걸어간 경로다) 

 

지금도 애버리지니들은 자신들의 빼앗긴 땅에서 알코올 중독과 가난에 시달리며 방황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금년(2008년)에 새로 집권을 한 노동당의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과거 원주민들에 대한 호주 정부의 탄압을 캔버라의 국회 의사당에서 공식 사과문을 낭독하며 사죄의 뜻을 비쳤다. 그들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앞으로 더 지켜보아야 겠지만, 독일의 총리와 대통령이 과거 유대인학살에 대한 대한 사과를 천명했듯이 정부 최고책임자가 애버리지니들을 향하여 사죄의 뜻을 공식으로 나타냈다는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200년 호주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는 변화다. 바로 직전 정부까지도 결코 거부했던 사과를 현 정부에서 하지 않을 수 없는 호주의 사회적 변화는 무엇인가? 2008년 다보스포럼에 의하면 2030년이 되면 국가의 경계가 더욱 허물어지고 현재 존재하는 국가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 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래사회는 정보의 동시 공유로 개인의 힘이 커지고 정부의 권력이 크게 약화될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케빈 러드 수상은 바로 이런 점을 직시하지 않았을까?

   

 

  ▲군데 군데 소금 호수가 보이는 아웃백의 황량한 불모지(퍼스에서 앨리스스프링스로 가는 비행기에서 촬영) 

 

 

창밖에는 마치 대륙의 심장처럼 땅이 점점 더 붉어진다. 군데군데 하얀 소금호수도 보인다.  2400km를 걸어서 갔을 황무지의 모래사막을 나는 비행기라는 문명의 이기를 타고 훌쩍 넘어서고 있다. 영화속의 세 자매 얼굴이 창밖에 겹쳐진다. 이제 비행기는 문제의 '토끼 울타리'를 넘어서 앨리스스프링스에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저기 울룰루가 보인다!"

 

누군가 창밖을 손으로 가르치며 외친다. 일제히 시선이 울룰루로 향한다. 그곳에는 호주의 원주민 애버리지니들이 가장 아끼는 성소, 울룰루가 황량한 벌판 위에 우뚝 솟아있다.

 

 

(퍼스에서 앨리스스프링스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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