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건축기행

찰라 2017. 1. 4. 15:36

기회의 땅시카고를 가다 



어젯밤 아내의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느라 자정이 넘어서 글렌뷰 지역에 위치한 호텔로 돌아왔다. 글렌뷰 지역은 시카고 다운타운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시카고 한인 들은 학군이 좋은 북쪽으로 자꾸만 이주를 한다고 한다. 구한인 타운 로렌스 거리에서 94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30마일 쯤 올라가다보면 한인 들이 밀집하여 살고 있는 노스부룩, 글렌뷰, 버넌 힐스, 먼델라인 지역이 나온다.

 

▲시카고 한인거주지역. 학군을 따라 로렌스 지역에서 점점 북족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지역은 버넌 힐스 하이스쿨, 리버티 하이스쿨을 비롯해 사립 명문고인 레익 포레스트 하이스쿨 등이 위치하고 있어 학군을 중요시 하는 한인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자녀들의 교육을 가장 중요시하여 맹모삼천도 불사하는 한국인들의 교육열은 어디를 가나 식을 줄을 모른다.

 

글렌뷰 지역에 있는 베스트웨스턴 플러스 글렌뷰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일어나니 바람이 강하게 불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7시에 모닝콜이 울렸다. 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새벽 2시경에야 잠시 가까스로 잠이 들었던 아내는 겨우 일어났다. 부스스한 눈을 부비며 세면장으로 들어가는 아내가 걱정스럽다. 13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고 온데다 21년 만에 만난 동창생과 수다를 떠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다.



▲글렌뷰에 위치한 베스트웨스턴 플러스 글렌뷰 호텔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조상환 가이드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인사를 했다. 떡 벌어진 가슴에 거대한 몸집이 마치 프로레슬러였던 역도산을 연상케 했다. 매우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어제 다래정에는 잘 다녀오셨나요?”

보시다시피 무사하게 다녀왔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고요?”

진수성찬을 먹고 왔어요. 킹크랩, 염소탕, 불고기, 게장젓갈 등 한국토속음식점 보다 더 한국적인 토속음식을 실컷 먹고 왔습니다.”

와우, 킹크랩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저도 몇 번 갔었는데 정말 한국토속음식 그대로 맛을 내더군요.”

 

어젯밤 일정은 시카고 야경을 보는 것이었는데 일행들과 따로 떨어져 아내의 동창생을 만나러 갔던 내가 다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여행가방을 밀고 나오는데 맙소사! 여행가방 손잡이가 툭 부러지고 말았다. 이거야 정말, 여행 첫날부터 여행 가방이 부러지다니하기야 너무 오래되기도 한데다 싸구려 가방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새 가방을 사기 전까지는 애를 좀 먹게 생겼다. 가이드는 뉴욕 우드버리 커먼 아울렛에서 가방을 사면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하는데 그 일정은 거의 여행 막바지에 있다.

 

현관에 대기한 버스에 여행가방을 싣는데 가이드 못지않게 몸이 건장한 운전수가 여행가방을 받아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패키지여행은 쵸이스가 없지만 편하기는 하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태워주고, 설명해주고그런데도 이상하다. 패키지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지에 대한 강하게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건 너무 편해서일 것이다


이에 비해 배낭여행은 스스로 여행을 계획하고, 차표를 사고, 숙소를 찾아가고, 사 먹거나, 해먹고, 가이드북과 지도를 샅샅이 찾아보고고생을 바가지로 한다. 그러나 배낭여행지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배낭여행은 그런데다 나만의 쵸이스와 여유가 있다. 머물고 싶으면 더 머물고, 먹고 싶은 것을 식성대로 골라 먹거나 해먹고, 천천히 오래 둘러 볼 수 있고

 

어깨가 우람한 멕시칸 운전사는 우수에 찬 모습에 매우 과묵해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사랑하는 아내를 사별하고 홀로 살고 있다고 했다. 시카고는 기회의 땅이다. 어제 밤 다래정 주방에서 본 세 명의 노동자들도 모두가 멕시칸들이었다. 시카고는 흑인들과 히스패닉(Hispanic)계 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회의 땅이다.

 

19세기 미국의 노예해방이후 뉴욕과 시카고를 중심으로 공업과 도시가 거대해지며 노예의 신분에서 탈출이라도 하듯 흑인들은 흑인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 중심에 시카고가 있었다. 시카고가 흑인 대이동의 주요 목적지였던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시카고가 철도를 비롯한 남북 간 교통의 요지라는 점이다. 시카고는 노예제가 존재했던 시절부터 흑인의 도망을 비밀리에 돕던 지하철도망(underground railroad)의 종착지였고, 중남부 전 지역에서 철도망으로 연결되는 대도시였다. 현재 암트랙 유니언 역은 미국을 가로지르는 동서 횡단 철도의 출발, 도착역으로 하루 약 300회편이 운행되고 있다. 뉴욕, 보스턴, 시애틀, 포트랜드, 로스앤젤레스 등 동서남북으로 매일 열차가 수십차례 출발하는 교통 요충지다. 또한 그레이 하운드 역시 동서남북으로 종횡무진 연결되고 있다. 뿐망 아니라 오헤어 국제공항은 미국의 양대 항공사인 유나이트드 항공, 마에리카 에어라인의 허브 역할을 하는 공항으로 미국에서 가장 이착륙이 많은 공항이다.  



▲미국 동서남북의 교통 허브 시카고 유니온 스테이션


둘째는 시카고 지역에 진출했던 기존의 흑인들이 남부에 적극적으로 시카고를 홍보하고 원조를 보내 이주를 도왔다는 점이다. 그만큼 시카고는 흑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구는 시카고의 한인들

 

그들이 고향을 떠나 시카고로 향했을 때 어떤 기대와 희망을 품었는지는 익히 짐작할 만하다. 그들은 시카고에 도착하자마자 곧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 남부에서와는 달리 작업장에서 백인들과 함께 일을 할당받는다는 사실에 엄청 놀랐다. 또한 백인들에게 노예처럼 굽실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도 큰 충격을 받았다. 흑인도 열심히 일을 하면 제한적이나마 승진을 할 수 있었고, 열린 기회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들은 생애 최초로 인간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시카고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면 먹고 살 수 있는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시카고에는 히스페닉계를 비롯하여 아시아계와 한국인들도 꽤 많이 살고 있다.

 

김 선생님, 시카고에 한국인은 얼마나 거주를 하고 있나요?”

아마 한 20만 명쯤 될 겁니다.”

꽤 많이 거주를 하고 있군요. 그런데 우리 교포들은 시카고에서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지요?”

, 이민사회에서는 먹고살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닥치는 대로 해야지요. 1950년대에는 주로 행상을 많이 했다고 해요.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찾아다니며 비누 등 세탁소에 필요한 물품들을 팔았다고 합니다. 60년대 이후에는 남부 흑인 촌을 중심으로 가발가게와 옷가게, 보석가게 등을 하기시작 했고, 사업규모가 커지며 청소업, 세탁업, 자동차 정비업, 미용실, 이발소, 꽃집, 장의사 집수리 등 많은 일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서 흑인들이 머리를 치장하는 가발, 머리 염색약 소매상과 세탁소 등이 비교적 안전한 업종으로 부상했지요. 그래서 요즘도 주로 세탁소를 많이 하고 있지요.”

 

비행기에서 만난 시카고 재미교포 김 선생의 말이다. 시카고는 한국인에게도 기회의 땅이었다. 시카고에 한인이 처음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주로 하와이 이민을 거쳐서 오거나 유학생으로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로렌스, 링컨, 피터슨 파크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촌을 형성했다가, 최근에는 북쪽 글렌뷰, 버넌 힐스 지역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약 20만 명의 한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살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어디를 가나 한인들의 근면성과 끈기는 알아줄만하다. 오바마 대통령도 한인들의 근면성을 높이 사고 있다. 그의 저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어보면 근면한 한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버스는 글렌뷰 지역을 출발하여 미시건호수변을 천천히 달려갔다. 노스 레이크 쇼어를 지나 다운타운으로 접어드니 마천루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놀랍다! 킹콩처럼 거대한 빌딩 숲을 보노라니 과히 미국의 저력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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