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네팔방문기

찰라 2017. 2. 5. 06:23
기자는 네팔 대지진이 발생한 후 1년이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5일까지 네팔을 방문했다. 기자는 한국자비공덕회가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네팔 동부 칸첸중가 인근 오지에 있는 학교를 봉사차 방문한 후, 지진으로 복구사업을 재건하고 있는 지역을 돌아봤다. 몇 차례에 걸쳐 복구사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는 네팔 현지 사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 기자 말

 카트만두 북동쪽 17km에 위치한 샤쿠에서 지진복구 사업을 하고 있는 IOM(국제이주기구)과 주민들. 1000여 가구 중 800가구가 전파되었다.
▲  카트만두 북동쪽 17km에 위치한 샤쿠에서 지진복구 사업을 하고 있는 IOM(국제이주기구)과 주민들. 1000여 가구 중 800가구가 전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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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카트만두 중심가에 있는 다라하라 탑. 9층규모의 탑이 무너지며 132명이 사망했다.
▲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카트만두 중심가에 있는 다라하라 탑. 9층규모의 탑이 무너지며 132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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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아침 일찍 렌터카를 빌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현지가이드 파담 프라사이(Padam Prasai)의 안내로 카트만두 중심가로 향했다. 건기에다 가뭄이 겹친 카트만두 거리는 뿌연 먼지로 뒤덮여 앞뒤를 분간하기 어려웠다.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그 먼지 사이를 오가며 붐비고 있었다.
    
시내 중심가로 진입하자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더미와 금이 간 벽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카트만두 중심부에 서 있었던 다라하라 탑(Dharahara)에 도착했다. 9층 규모의 탑은 지상으로부터 10m 높이까지만 남았다. 처참하게 무너진 흉물스러운 잔해만 있었다. 이 탑은 네팔에서 가장 높은 건물(61.88m)로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다라하라 탑은 내부에 나선형으로 설치된 213개의 계단을 타고 8층으로 올라가면 원형 발코니가 있어 카트만두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되어있다. 파담은 "지난해 지진으로 무너진 다라하라 탑 잔해를 발굴하는 현장에 있었다"며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말해주었다. 이 탑에서 132명의 관광객이 사망했다.

 지진 당시 피해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현지 가이드 파담 푸라사이
▲  지진 당시 피해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 현지 가이드 파담 푸라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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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세계문화유산들, 처참했다 

 각목으로 아슬아슬하게 받쳐 놓은 문화재와 가디 바이탁 왕궁
▲  각목으로 아슬아슬하게 받쳐 놓은 문화재와 가디 바이탁 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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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르바르 광장 하누만 다카 궁전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고증을 거쳐 복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복구가 더 늦어지고 있다.
▲  더르바르 광장 하누만 다카 궁전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고증을 거쳐 복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복구가 더 늦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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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더르바르(Durbar) 광장에 도착하자 지진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무너진 벽돌 더미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금이 간 문화재는 각목으로 받쳐놓아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나라얀 사원 앞에 서 있었던 프라탑 말라 왕의 기둥(Pratap Mall Statue)은 상층부 첨탑이 떨어져 내려 벽돌 더미 위에 뒹굴고 있었다. 런던 국립미술관을 본떠서 건설되었던 유럽풍의 가디 바이탁(Gaddhi Baithak) 왕궁은 뒤틀린 채 벽 여기저기에 금이 가 있었다.

광장 남서쪽 코너에 있는 카스타만담(Kasthamandap)은 '카트만두'라는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된, 유서 깊은 건물이다. 원래 순례자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무너져 내린 푸라탑 말라왕의 기둥과 나라얀 사원 지붕에 수많은 비둘기들
▲  무너져 내린 푸라탑 말라왕의 기둥과 나라얀 사원 지붕에 수많은 비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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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누만 도카 궁전 입구 하누만 상에서 푸자를 올리는 사람들
▲  하누만 도카 궁전 입구 하누만 상에서 푸자를 올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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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왕궁 하누만 도카(Hamnuman Dhoka, 원숭이신 입구라는 뜻)도 무수한 각목으로 받쳐 겨우 버티고 서 있었다. 왕궁 입구에는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산을 씌워놓은 하누만상이 다행히 무너지지 않고 각목 사이에 버티고 서 있다. 사람들이 그 버팀목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푸자(기도)를 했다. 

살아있는 힌두교 처녀신을 모시는 쿠마리 사원은 큰 피해를 입지 않고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몇 개의 각목을 받쳐 놓기는 했지만 아름답고 정교한 목조 조각으로 만들어진 창문이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폐허처럼 변해버린 더르바르 광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무너진 사원과 칼리 바이러브 석상 앞에서도 정성스럽게 푸자(기도)를 올리는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무너진 사원에서 희망의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

 지진피해가 적은 쿠마리 신전
▲  지진피해가 적은 쿠마리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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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자(기도)를 올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힌두 사원으로 가는 카트만두 시민들.
▲  푸자(기도)를 올리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힌두 사원으로 가는 카트만두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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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르바르 광장 칼리 바이라브 부조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
▲  더르바르 광장 칼리 바이라브 부조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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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너진 사원에서 푸자를 올리는 사람들
▲  무너진 사원에서 푸자를 올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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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올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네팔의 희망을 본다. 폐허가 되어버린 사원 지붕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들이 무수히 진을 치고 앉아 있다가 떼를 지어 창공을 날기도 했다.
  
"저 비둘기처럼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야 파담이 살기가 편할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올해 들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작년보다는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지진 이전보다는 비교도 안 돼요. 생활비도 제대로 벌지 못해 걱정입니다."

 더르바르 광장 사원 지붕에 앉아 있는 수많은 비둘기들
▲  더르바르 광장 사원 지붕에 앉아 있는 수많은 비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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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풀풀 날리는 흙더미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다 보니 눈도 따갑고 목도 말랐다. 우리는 더르바르 광장 입구 쪽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커피숍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숍 창문 밖으로 더르바르 광장에서 좌판을 벌이고 장사하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고단한 삶이 엿보였다.

지진보다 더 힘든 건... 

"지진은 천재지변이라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인도 측의 국경봉쇄는 지진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동안 인도의 국경봉쇄조치로 네팔 사람들은 석유와 가스, 의약품, 그리고 생필품난에 시달려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단 국경봉쇄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도 서민들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파담의 말이 맞다. 재난은 막기 힘들지만 인재는 막을 수 있다. 네팔은 원래 전기 공급이 부족한 나라다. 그런데 지진 발생으로 수력발전 공급이 줄어든 데다 인도 측의 국경봉쇄 이후 하루 11시간 정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물 공급도 큰 문제다. 중류층에 속하는 지인인 케이피 시토울라씨의 부모도 시간제로 급수를 받고 있어 지하수를 끌어 쓰고 있다. 상수도 시설이나 발전 시설이 없는 지역은 공동수도나 우물에 의존하고 있지만 지진으로 지반이 갈라지고 가뭄이 겹쳐 우물도 마른 곳이 많다.

 가뭄으로 말라들어가는 우물(샤쿠 사내 우물)
▲  가뭄으로 말라들어가는 우물(샤쿠 사내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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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창문으로 각목으로 버티고 있는 문화재들이 보였다. 저 문화재들이 언제쯤 복원되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파담의 말에 의하면 정부의 재건 결정도 늦었지만,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이라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다고 한다.

고증을 거쳐 하나하나 복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 복원 사업은 더욱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 거기다 인도의 장기적인 국경봉쇄조치로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인프라 구축이 힘든 것도 복구를 더디게 하는 또다른 이유다.

 커피숍에서 바라본 더르바르 광장 노점상들
▲  커피숍에서 바라본 더르바르 광장 노점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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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여가구 중 800가구가 완전 붕괴되고 1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쿠 시내
▲  1000여가구 중 800가구가 완전 붕괴되고 1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샤쿠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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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버린 샤쿠
▲  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되버린 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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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아침, 파담과 함께 카트만두에서 북동쪽으로 17km 떨어진 샤쿠(Sankhu)로 향했다. 당초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신두팔촉 지역을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여정이 촉박하여 카트만두 인근에서 가장 피해가 심한 샤쿠를 돌아보기로 했다. 붉은 벽돌로 건설된 이 작은 도시는 고대 네와르 족이 살았던 아름다운 곳이다.

흙먼지를 휘날리며 도착한 샤쿠의 지진 피해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 도시에 있는 1000여 가구 중 800여 가구가 완전 붕괴해 마을 전체가 거의 초토화 되다시피 했다. 피해가 너무나 처참하여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마을을 조심스럽게 돌다가 어느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주민을 만났다. 다른 집들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는데 그나마 그 집은 벽돌을 쌓아 집의 형태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 "정부에서 집을 지어 주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숨을 쉬며 "자비로 보수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와 손녀는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 2시간이나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 되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지 할머니와 손녀는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마을에서만 115명이 사망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아직 천막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양철로 이은 움막에서 생활하거나 형편이 좀 나은 건물에서 집단으로 생활하며 겨우 삶을 연명하고 있었다.

무너진 건물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이들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2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할머니(우)와 손녀(뒤쪽)
▲  무너진 건물 더미 속에 2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할머니(우)와 손녀(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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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OM(국제이주기구)직원들과 주민들이 복구사업을 하고 있다.
▲  IOM(국제이주기구)직원들과 주민들이 복구사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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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서 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國際移住機構)에서 나온 직원들이 주민과 함께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겨우 건물과 벽에서 무너진 흙더미를 치우는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파담, 왜 이렇게 복구사업이 늦지요?"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국가재건국이 복구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각 정당 간의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복구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네팔 정부는 올해 초에 지진피해가 심한 40개 군의 피해 현황을 조사하여 피해 가구 당 최대 20만 루피(약 20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카트만두포스트>는 현재까지 국가재건국(NRA)이 지원한 주택은 겨우 700가구에 그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진피해 복구사업을 벌리고 있는 샤쿠
▲  지진피해 복구사업을 벌리고 있는 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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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쿠의 지진피해 현황을 둘러본 뒤 다시 카트만두로 돌아와 티베트 불교성지인 보드나트 사원으로 갔다. 보드나트 사원은 더르바르 광장보다 피해가 덜했지만 꼭대기 첨탑부가 붕괴해 한창 복구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보드나트 사원에는 여전히 많은 티베트 불교신자가 '옴 마니 반메 훔' 진언을 외우고 마니차를 돌리며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상단 첨탑부가 무너져 내린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드나트 사원
▲  상단 첨탑부가 무너져 내린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드나트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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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얌부나트 사원에 오르니 먼지와 스모그로 카트만두 시내 전경이 뿌옇게 보였다. 이곳에도 지진 피해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스님들이 살던 건물은 벽이 심하게 허물어 내리고 지붕도 크게 파손되어 있었다. 이곳에도 기도 행렬은 끊이지 않았다. '몽키 사원'이란 별명에 맞게 원숭이들도 여기저기서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스와얌부 사원내에 사원의 지진피해
▲  스와얌부 사원내에 사원의 지진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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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와얌부 사원 스님들의 거쳐
▲  스와얌부 사원 스님들의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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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와얌부 사원의 원숭이들
▲  스와얌부 사원의 원숭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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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와얌부 사원에서 바라본 카트만두 시내. 먼지와 스모그로 뿌옇다
▲  스와얌부 사원에서 바라본 카트만두 시내. 먼지와 스모그로 뿌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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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만두 시내를 바라보며 파담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서민들은 점점 살기가 더 힘들어지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 <AFP통신>에 따르면 네팔에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약 400만 명의 주민들이 아직도 천막 등 임시 보호소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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