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여행

찰라 2013. 8. 12. 14:11

아라비아의 낯선 도시에 도착하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 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밀스런 삶. 고독한 삶이 아니라 비밀스런 삶 말이다.’-장그르니에 <섬> 중에서.

 

 

나는 어느 날 아라비아 도하라는 낯선 도시에 도착했다. 처음 도하라는 도시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도시가 중국이나 동남아사아 어디쯤에 있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 된 착각이었다.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도하라는 도시는 아라비안 해안 하고도 페르시아 만에 선인장처럼 생긴 카타르라는 나라에 있었다.

 

나는 뜨거운 햇볕이 내려 쪼이는 사막의 도시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한 참을 간 다음에야 플랫 홈 도착 할 수 있었다. 발칸반도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도착한 도하의 플랫 홈은 정말이지 낯선 풍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머리에 하얀 히잡(hijab)을 쓴 여인들, 온 몸에 검은 차도르(chador)를 두른 여인들, 그리고 더욱 이상스럽고 답답하게 보이는 것은 니캅(nicap)이란 두건을 쓴 여인들이었다. 눈을 제외한 얼굴을 모두 가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가지 전신을 검은 휘장을 드리운 여인들의 모습이란 정말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을 이상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더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모두가 외모가 어떻든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보다는 자신이 갈아탈 비행기를 찾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갈아탈 비행기는 고장으로 무려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려왔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승객은 공항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공항내의 면세점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면세점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나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잡지책을 뒤적거리고 있는 어느 노인을 발견하였다. 백발의 긴 히피머리칼에 허름한 잠바를 입은 그는 손가락이 절반쯤 나오는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는 혼자였다. 그는 잡지에 눈을 때지 않고 독서삼매에 젖어있었다. 저 노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는 마치 장그르니에가 말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비밀스런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부쩍 호기심이 일어났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등등. 좌우간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졌다. 나는 그 서가를 빙빙 돌며 그와 눈이 마주치기만을 기다렸다.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를 주고받을 수도 있고, 잘하면 짧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사실 내 옷차림도 배낭여행 차림이어서 남루하지는 않더라도 화려하지는 않게 보인다. 그런데 그의 옷차림은 정말 남루하게 보였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그 사람보다 더 보잘 것 없는, 만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좋다. 말하자면 외모의 차림으로는 내가 그보다 더 잘 차려 입은 꼴이다. 어쨌든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리며 서가를 서성거렸다.

 

마침내 그가 자기 곁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노인의 눈은 놀라울 정도로 형형했다. 나는 그 형형한 눈빛에 움찔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와 말을 걸을 있는 기회는 이 순간뿐일 것 같아 다짜고짜로 눈인사를 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는데요, 선생님은 어디서 오셨지요?”

“이태리.”

“지금 여행 중이신가요?”

“네, 그렇소만.”

“다음 여행지는 어디신가요?”

“방콕을 거쳐 중국으로 가려고 생각을 하고 있소만. 방콕에 도착한 후 다음여행지를 결정하려고 하오.”

“네에~ 저는 뮌헨을 거쳐 발칸반도로 떠납니다만, 선생님은 홀로 여행을 떠나세요.”

“그렇소. 홀로 다녀야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지 않겠소. 발칸이라… 좋은 곳에 가는 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댁도 좋은 여행되시길.”

 

 

뮌헨으로 갈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와 우린 그렇게 해어졌다. 그는 다시 잡지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낯선 도시 도하에서 만난 그 노인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비밀스런 삶. 그는 고독한 삶이 아니라 혼자만의 비밀스런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도하는 카타르의 수도로 2022년에 월드컵이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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