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우리강산/아름다운우리강산

찰라 2018. 11. 20. 10:33

천년고도 경주 토함산에 석굴암과 불국사가 있다면, 지리산에는 서암정사 석굴법당과 벽송사가 있습니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제2의 석굴암이라 할 만큼 지리산 대자연의 동굴 암반에 새겨놓은 불타의 세계입니다. 부처님의 참모습은 형상에 있지 않지만 우리는 상을 쫓는 중생이기에 부처님의 모습을 통해서 부처님 세계를 경험하고 마음을 정화할 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칠선계곡의 비경을 간직한 지리산에 연하봉과 마주하는 곳에 위치한 서암정사는 입구 암반에 조각된 사천왕상, 아자형(亞字形)대웅전, 대자연의 동굴 자연 암반에 하나하나 조각된 석굴암의 모습은 그저 놀라운 뿐입니다. '2의 석굴암'으로 불리는 중앙에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 8대 보살과 10대 제자, 나한, 사천왕을 비롯하여 용, 연꽃 등 아미타 세계가 벽과 천장, 기둥에 빈틈없이 빼곡히 새겨져 있어 이를 바라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지리산에 가거든 불자가 아니더라도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꼭 한 번 들려보아야 할 불교 유적지입니다.

 

우리는 서암정사와 벽송사를 점심 전에 둘러보기 위해 서둘러 금대암을 내려갔습니다. 금대암에서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 가팔라서 자동차가 계곡 밑으로 곤두박질 칠 것만 같습니다. 기어를 1단에 넣고 엔진 브레이크로 조심조심 내려오지만 워낙 수직으로 내리 뻗는 길은 위태위태하기만 합니다. 벼랑길을 내려가면서 조망하는 것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천 다랭이논은 이미 추수를 다 끝내버려 별로 볼거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잠깐 멈추어 서서 사진을 한 컷 찍어 봅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니 오전 1030, 지리산을 휘돌아 흐르는 임천강과 만납니다. 지리산 북쪽에서 발원한 임천강은 함양군 마천면으로 흘러가 남강과 만나고 낙동강으로 흘러내려갑니다칠선계곡으로 들어서니 곱게 물든 단풍과 산세가 수려합니다. 칠선계곡은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으로 보호를 하고 있는 계곡입니다. 천왕봉에서부터 장장 18km에 달하는 대자연의 파노라마가 유장하게 뻗어내려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가 펼쳐져 있습니다.

   

벽송사로 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다가 왼쪽으로 돌아서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서니 거대한 바위가 일주문처럼 우람하게 서 있습니다. 마치 천혜의 요새를 지키듯 견고하게 서 있는 바위를 지나자 양쪽에 돌기둥이 서 있습니다.

 

百千江河萬溪流(백천강하만계류) 수많은 강물 만갈래로 시내가 흐른 물은 

同歸大海一味水(동귀대해일미수) 큰 바다로 돌아가면 모두 다 한 물 맛이로다

 

 

 

 

 

물맛이 다 다르다고 콩이야 팥이야 하지만 결국 바다에 이르면 다 같은 짠맛이 아니겠는가? 이는 종교와 이념을 초월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렷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지나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궁극적으로 인간이 지향하는 마음은 하나라는 뜻이리라. 돌기둥에 물결치듯 새겨진 의미심장한 글씨를 바라보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 돌기둥을 지나 10여 미터를 올라가면 또 다른 두 개의 돌기둥이 우뚝 서 있습니다. 앞의 사각기둥과는 달리 기둥 전체가 용의 무늬로 꿈틀거리는 조각은 웅장함과 함께 힘찬 기개와 위엄을 느끼게 합니다. 돌에 새겨진 조각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데 돌기둥에 새겨진 글씨 한 자 한 자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摩河大法王 (마하대법왕) 거룩하고 위대하신 부처님께서는

調御三千界 (조어삼천계) 온 세상을 조화롭게 이끄시도다

 

 

 

 

힘찬 필치로 조각된 글씨는 무언의 힘을 느끼게 합니다. 돌기둥 뒤로 곧바로 계단이 이어지고 돌계단 양 옆에는 자연암반에 감실 형태로 안을 파내어 섬세하게 양각을 한 사천왕이 기세 등등하게 서 있습니다. 감실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죄지은 자를 벌하겠다는 역동적인 모습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서광목천왕과 남방증장천왕

 

 

"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업보가 많은 이 중생은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사대천왕은 수미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을 섬기며 불법과 불자를 수호하는 호법신입니다. 암반에 조각된 사대천왕의 기개는 일반 사찰문에 서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힘을 느끼게 합니다. 석주 쪽에서부터 남방증장천왕(검을 들고 있다), 서광목천왕(여의주를 들고 용을 데리고 있다), 동방지국천왕(왼쪽 발치에 비파를 놓고 있다), 북방다문천왕(오른손에 보탑을 들고 있다)의 순서로 부조되어 있는데, 이는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을 본떠 조각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사대천왕의 위엄을 느끼며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대방광문(大方廣門)이 대화엄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에 펼쳐진 대연화장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생각보다 좁습니다. 무한 광명의 비로자나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사대천왕의 검증과 호위를 받으며 들어가는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가는 문일까?  

 

동굴을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돕니다. 이곳에 절을 짓기 전 원응 스님이 석굴법당 전면에 도달했을 때 사람이 일부러 깎아놓은 듯한 거암을 보고 몸과 시선이 굳어진 듯 멈추었다고 합니다.

 

"여기로구나, ! 좋구나!"

 

 

바위마다 갖가지 모형을 이루고 있어 신비스러운 기운이 넘쳐흘러와 스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부처님의 영산회상, 그리고 아미타상을 상상했다고 합니다.

 

  

10년 전 서암정사 고풍스런 절집 미타굴

 

 

10년 후 찾아간 새로 지은 대웅전은 화려하다

 

 

대방광문을 지나니 10년 전에 서 있었던 예스러운 미타굴 절집은 사라지고 그 대신 화려한 대웅전이 화려하게 들어서 있어 옛날 절집을 생각했던 여행자를 다소 당황스럽게 합니다. 아자형(亞字形) 대웅전은 2012년도에 새로 완공된 건물로 대웅전 지하에는 금니사경(金泥寫經·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불경을 베껴 쓴 경문) 전시관이 있습니다. ‘화엄경 80권 본 사경금니사경은 원응 큰스님이 1985년부터 시작해 15년의 노력 끝에 완성한 대작으로, 고려말 이후 단절된 금니사경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서암정사 금니 화엄경 법당(사진:서암정사 홈페이지)

 

 

화엄경 전문 60만 자를 한지에 하나씩 옮겨 쓰는 데 4, 감지 닥종이를 그 위에 덧대고 금니(금가루와 아교)로 이를 다시 적는 데 6, 마무리에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금니 화엄경은 병풍형 책자 형태로 14~16크기의 병풍 80권이며, 전체 길이는 1300에 달하는 대작으로, 작업에 든 금은 신도들이 지원했고, 닳은 붓의 수만 60자루에 달 한다고 합니다. 적게는 하루 2~3시간씩 많게는 8시간씩 작업을 계속하는 바람에 한때 실명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을 잃기도 했습니다.

   

대웅전에 삼배를 하고 석굴 앞에 당도하니 아기자기한 정원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왼쪽 종루 옆에는 거대한 우산 같은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바위틈새에 잘 가꾸어진 나무, 그 나무들 사이로 크고 작은 불탑과 불상들이 불국정토의 동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반송 밑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있는 와불 상이 방문객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서암정사는 부처님의 상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바위()에 석굴법당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석굴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는 '하심(下心)'이란 붉은 글씨가 음각되어 있습니다. 석굴법당은 두 개의 출입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안양문이요, 다른 하나는 극락전입니다. '안양''극락'세계이니, 이 문을 통과하면 곡 극락세계로 진입을 하게 된다는 뜻이겠지요 

 

念念彌陀佛 (염념미타불) 생각 생각 아미타불 염불하면서

步步安養國 (보보안양국) 걸음 걸음 극락국에 들어가소서

 

 

 

안양문 양쪽에 새겨진 음각이 간절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안양문 왼쪽에는 반가부좌를 한 관세음보살이 편안한 자세로 앉아 중생을 굽어보고 있습니다. 불상은 크지 않으나 감실 안을 깊게 파내어 광배는 물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 주름과 연꽃, 장신구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사바세계와 극락세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석굴법당에 펼쳐진 극락세계란 어떤 것일까? 나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열어준 안양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국전쟁 상흔과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석굴법당

 

안양문을 열고 석굴법당에 들어서니 석굴법당 동서남북 사유상하 사방이 불보살의 조각으로 빼곡히 물결치고 있습니다. 어찌 인간의 손으로 저렇게 정밀하게 한 치의 틈도 없이 조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나니,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했거늘 여기 서 있는 이 중생은 상()을 쫓는 우매한 중생입니다. 

 

 

이 석굴을 조성한 원응 스님은 석굴을 조성한 불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참모습은 형상에 있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형상에 빠져있기 때문에 형상을 통해 부처님의 모습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여주기 위한 것이 불사입니다. 그 불사를 통해 부처님의 세계를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화하는 것, 그게 바로 중생제도라. 모든 불사는 바로 불심으로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설치예술입니다.

 

자기 모습을 지워가는 게 참 수행이라 봅니다. 이것이 내가 한 불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옳은 불사가 아닙니다. 나도 내 모습을 모두 지우지 못한 사람이지만 내 모습을 지우는 것이 참 수행이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이런 것이 내 나름대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세계를 형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마지막에 가서 그런 그림자마저 지우는 것이 수행이라고 봐요.”

   

인도의 아잔타 석굴, 실크로드의 둔황 막고굴, 중국 낙양의 용문석굴이 부처님의 형상을 통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상을 쫒는 이 중생은 서암정사의 석굴에 그만 흠뻑 빠져들어 갑니다.

   

경주 석굴암은 통일신라 751(경덕왕 10)에 모든 디자인을 직접 실행한 건축가요, 조각가인 김대성이 진두지휘 하에 "무수한 석공들"에 의해 조각되었다고 합니다. 석굴암은 불국사를 중창할 때 왕명에 따라 착공을 한 것으로, 김대성은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리산 서암정사는 순전히 원응 스님의 대원력에 의해 한국전쟁의 참화로 지리산 주변에서 희생된 무수한 원혼을 달래고, 첨예하게 대립된 남북 냉전의 벽을 허물어 인류평화를 기원하며 부처님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서암정사는 민족상잔의 상처를 달래고,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대원력으로 세운 결정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도인의 대원력이 이처럼 대단한 결과를 이룩해 낸 것입니다.

   

화엄경 60여 만자 사경(寫經)으로 널리 알려진 원응(元應) 스님은 20대 후반 조용한 수행 처를 찾던 중 흰 구름 따라 발길 닿는 대로 온 곳이 지리산 벽송사였습니다. 감자를 심어 끼니를 때우고, 산더미 같은 일을 해내며 이어가는 수행은 고달프기 그지없었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떠나 버릴까 하는 마음이 수차례 일어났지만 탈금(脫金)이 다 되어 까만 모습으로 변한 부처님을 들여다보며 폐허를 일구어 벽송사를 중창해 냈습니다.

   

어느 날 포행을 하던 중 스님은 벽송사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지금의 서암정사 석굴 법당 전면에 다다랐습니다. 갖가지 바위들이 온갖 형상으로 숲 속에 감추어져 있고, 앞산 연화봉은 장엄하게 솟아올라 석양의 햇빛을 받으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어찌 억겁의 세월을 숲 속에 숨겨져 사람의 인연을 기다리는 성지가 아니고 무엇이랴? 여기가 만년 도량 자리로다.”

 

 

 

스님은 이렇게 확신하고 불사를 시작 했습니다. 1975년 처음 터를 고르고 1988년에는 주변 부지를 매입해 본격적인 불사에 들어갔습니다. 김대성이 통일신라시대 가장 뛰어난 석공들을 불러와 석굴암을 조성하듯 원응 스님은 우리나라에서 현시대에 가장 뛰어난 석공들을 초청하여 석굴법당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조성한 석굴법당을 19896월부터 조각을 시작해 10여 년만인 2001년 스님의 대원력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이루어진 장소에 원응 스님의 원력과 수많은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며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극락전으로 아미타불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시고, 석굴법당은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바위에 굴을 파고 들어가 주로 양각(陽刻)의 조각 방식을 활용해 아미타세계의 내용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양각이란 가공된 공예품에 문양을 두드러지게 돌출시키는 시문기법(施紋技法)을 말합니다. 우선 그려진 문양을 공예품의 판에 대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 밑그림에 따라 문양의 외곽을 음각하고, 둥근 칼이나 매칼로 문양 부위를 따라 문양 이외의 부분을 깎아낸 다음, 문양 부분의 음양 높낮이를 조각합니다. 마무리 작업으로, 어피(魚皮)나 속새를 이용하여 면을 고르고, 호두기름을 칠하여 문지르거나 옻칠로 도장하여 표면 문양을 마감합니다.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하나의 거대한 바위에 이처럼 양각 기법을 통하여 아미타경의 내용을 음각해 놓은 거대한 아미타불경 서사시입니다. 밑그림을 그린 화가와 이를 깎아낸 석공들의 혼이 심어져 있는 법당은 장엄 그대로입니다. 장엄불토자 즉비장엄! 석공들은 장엄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돌을 깎는데 만 열중하였을 것입니다. 불법을 상이 아닌 마음으로 보라고 했습니다. 석굴법당에 조각된 불 세계에서 10년을 두고 조각해 열중해온 석공들의 공들인 마음을 봅니다. 그 석공들이 정성 들여 깎아낸 마음을 상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법당을 살펴보았습니다.

  

석굴법당은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고, 팔보살, 제석천, 범천, 십대제자, 법장비구, 타방세계, 신장단, 현왕단 등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장엄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벽면의 여백에는 구름과 물결이 불 세계를 장엄하고 있는데, 이는 불보살의 원대한 서원과 무한한 불법의 세계를 싱징 합니다. 

 

또한 십장생을 비롯한 갖가지 동식물과 연꽃이 양각되어 있는데 이는 극락세계를 우리 전통에 맞추어 이상향의 모습을 접목시킨 것이라고 합니다. 법당에는 비구 스님이 홀로 앉아 사시예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아미타부처님께 삼배의 예를 올리고 스님의 예불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차수를 한 채 꽃발을 디디며 조용히 경내를 돌아봅니다 

 

본존불 좌보처에는 관세음보살이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오른손에 자비의 감로수병, 왼손에는 감로수병에서 커 나온 연꽃을 쥐고 있습니다. 감로수로는 목마른 중생의 목을 적셔주고 연꽃은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물들지 않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미티불 좌측에 감로수병과 연꽃을 들고 서 있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고난에 빠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끝없는 방편으로 중생세간에 임하시어 32 응신(應身)으로 나투어 중생과 호흡을 같이 하고, 어려움에 처한 중생이 지극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즉시에 응하시어 고통을 면하게 해 주신다는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입니다. 

 

아미타불의 우보처에는 대세지보살이 머리에 지혜의 보병을 이고 두 손으로 연꽃을 들고 있습니다. 대세지보살은 지혜광명을 온 십방(十方)에 두루 비치어 삼도고(三途苦-지옥, 아귀, 축생)를 녹이고 무명의 적을 파하는 큰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세지 보살이 발을 디디면 삼천 대천 세계와 마군(魔群)의 궁전이 진동하므로 대세지라 합니다. 

 

 

 

 

대세지보살은 정수리에 보배병을 얹고 있으며 항상 아미타불의 바른편에 시립합니다. 아미타불이 임종하는 중생을 맞이하러 올 때 연꽃을 든 관음보살과 함께 합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보살입니다. 이 보살의 보배관은 500가지의 보배로 장식되어 있고, 그 하나하나의 보배 꽃에는 500여 개의 보배 꽃받침이 있으며, 그 낱낱의 꽃받침에는 시방세계의 청정 미묘한 불국토의 드넓은 모습이 다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입구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는 지장보살이 오른손에 육환장을 들고, 왼손에는 지혜의 보주를 들고 있습니다. 보주에서 나오는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의 무명을 깨우치고, 육환장이 진동하는 곳에 지옥의 철성을 무너뜨립니다. 지장보살은 이미 부처의 경지에 있지만 지옥중생들을 모두 구제하여 해탈을 시킨 후에 성불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살신보살입니다.

   

연화대에 앉아있는 지장보살 왼쪽에는 도명존자, 오른쪽에는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도명존자는 중국 개원사의 승려로서 사후세계를 경험한 후 지장보살을 협시가 되었습니다. 무독귀왕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주는 왕으로 지장보살의 안내자로 등장합니다. 지장보살이 왼손에 들고 있는 보주는 지장보살의 몸과 일체로 연결된 돌을 연마하여 진주빛 구슬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석굴법당 중심부에는 석주가 무게를 잡아주고 있는데, 원통으로 깎은 석주에는 가지가지 형상의 불세계와 구름을 일으키며 출몰 자재하는 쌍용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석주는 시야를 가리는 방해열주가 아니라 오히려 벽면의 조각과 어울려 안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나한은 석가부처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로 부처님 생존 당시 직제자는 물론 역대 여러 나라에서 성자로 추앙받는 수많은 고승들도 아라한이라 하여 예부터 숭앙해 왔습니다. 나한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 에서 온 말로 아라한 (阿羅漢,Arhan) 또는 줄여서 나한이라고 하는데 뜻으로 옮겨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이라고도 합니다.

 

 

 

 

 

 

본래는 존경받을 만한 분,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로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음에는 아라한'이라 불렸습니다. 특히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 곧 현실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읜 해탈의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 이라고도 하고,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이라고도 하는 것인데, 대승불교에 이르러서는 불자들의 목표가 무수한 생을 거듭해서라도 보살도를 완성하여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 데 있었으므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나한은 화반과 지팡이 또는 연꽃을 들고 있거나, 입을 가리고 웃기도 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천진무구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상징하는 근엄한 존재라면 나한은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익살스러운 존재입니다.

  

흔히 나한은 중생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나한을 조성한 시대에 민중은 어떤 애환을 담고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비춰줍니다. 또한 나한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개성 있는 나한의 얼굴에서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인가. 어떤 모습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나한전에는 흔히 500 나한, 1250 나한이 모셔져 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나한의 모습일까? 불자가 아니라도 나한전을 찾아가 나와 꼭 닮은 아라한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협시하고 있는 남순동자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남순동자는 관세음보살의 좌보처로서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바닷가의 외로운 섬에 계시면서 항상 말씀 없이 온화한 미소를 띠고 계시지만, 말씀 없는 가운데 항상 푸른 버들잎과 대나무를 통하여 법문하고 계시며, 남순동자는 그 법문을 들음 없는 가운데서도 잘 듣고서 관세음보살님의 뜻을 잘 받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기 위해서는 남순동자와 같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될 것입니다.

 

 

석굴법당의 극락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면에 보이는 것이 신중단입니다. 신장(神將)은 불법을 옹호하는 선신으로서 화엄사상의 39위 신장을 위시해 수많은 신장이 있습니다. 극락전 신중단에는 합장을 한 중앙의 동진보안보살(童眞菩眼菩薩)을 위시해 각기 다른 복장에 다른 병기를 지닌 신장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신장단 맞은편 벽면 상단에도 두 분의 신장이 남자를 옹호하면서 금방이라도 잡신을 내리칠 자세로 서 있습니다.

   

염라대왕은 시왕(十王) 중 다섯 번째 대왕으로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는 발설지옥을 관장합니다. 염라대왕의 심판은 35일째에 행해집니다. 염라대왕은 살아생전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합니다. 업경(혹은 정파리)이라 불리는 거울을 통해 생전의 죄를 보게 되는데요. 그때 행한 그대로 벌을 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유명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염라대왕은 저승의 10명의 대왕중의 한 명으로 사람이 죽으면 바로 염라대왕에게 가는 것이 아니며, 단계를 거쳐 가야 합니다. 불교의 사당에서는 명부전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서 이 왕들의 심판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타방세계 불보살은 아미타불의 세계를 제외한 다른 무수한 세계의 보살을 의미합니다. 타방세계 불보살은 석굴법당의 벽면 상단 각처에 다수 부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타방세계 불보살은 아미타불이 구현해 놓은 극락세계의 장엄함과 거룩함을 찬양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보리존자, 법장비구, 10대 제자를 비롯해서 법당 안은 아미타불 세계가 장엄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석공들의 장인정신으로 조각된 조형예술의 극치

 

 

석굴법당을 하나하나 돌아본 후 합장배례하고 안양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발아래 눈부신 햇빛이 부서지고 있습니다. 석공들은 무슨 마음으로 돌을 연마하고 부처님을 조각하였을까? 서암정사의 석굴법당을 조성하기까지는 원응 스님의 대원력과 사주들의 정성 어린 시주 공덕도 크지만, 저 거대한 돌을 깎아내어 불단을 조성한 석공들의 공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일 돌을 깎고 연마하며 칼과 끌로 조각에 열중하고 있었을 석공들을 생각하노라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서암정사의 홈 페이지에 실린 석공들의 영험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서암정사는 대자연의 섭리가 빚어낸 조화로 준비된 장소에 여러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공덕이 보태지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30여 년 전 불사(佛事)를 시작한 이래 적지 않은 난관과 고초를 겪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장엄한 사찰을 조성할 수 있었던 것은 불보살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주 들의 정성 어린 물심양면 공덕과 더불어 석공들의 공덕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홍덕회, 이종원, 이승재, 이금원, 이인호, 맹갑옥 석공은 지극한 정성과 노력으로 한치의 흘림 없이 조각을 완성했다. 

 

석굴법당의 아미타 본존불은 이승재 석공이 시작했고, 본존불 외에 석굴법당의 여러 부조는 홍덕회 석공이 조각했으며 맹갑옥 석공이 조역을 했다. 주산신과 독수성은 맹갑옥 석공이 겉석을 치고 홍석희 석공이 세조각(細彫刻 )으로 마무리했다. 사천왕상과 비로전은 이종원 석공이 중심이 되어 완성했고 배송대는 이금원 석공이, 용왕단은 이인호 석공이 각각 조각했다.

 

여러 석공 중에서 특히 홍덕희 석공은 서암정사에서 10년 이상 머물면서 석굴법당을 위시해 사자굴의 모든 조각을 마무리했다. 마천면 추성리와 의탄리의 몇몇 인연이 있는 분들은 처음 터를 닦을 때부터 시작해 도량 조성 과정의 크고 작은 일에 큰 힘을 보탰다. 

 

험한 장소에서 도량을 조성하다 보니 뜻밖의 사고로 자칫 불사가 중단될 뻔한 적도 있었으나, 그때마다 불보살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20여 년 전쯤일까. 지금의 사천왕성 맞은편에 있는 돌탑을 쌓을 때였다. 탑 쌍기를 끝낼 무렵 점심시간이 되어 일꾼들을 태워 경운기를 개조한 짐차(일명 탈탈이)를 몰고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다 브레이크가 고장 나버렸다. 

 

운전자를 포함해 일곱 명이 탄 짐차는 걷잡을 수 없이 언덕길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짐차가 쌓고 있던 탑에 부딪혀 탑을 무너뜨리고 멈춘 덕분에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대형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점검해보니 한 사람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살펴보니 무너진 돌 더미 속에서 옷자락이 내다 보였다. 황급 결에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무너진 돌 더미를 치워내자 탑 쌓는 기술자가 모로 누워 기절한 채 돌 밑에 깔려 있었다. 호흡도 거의 끊어져 있었으나 한 참 뒤에야 돌아왔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을 한 결과 갈비뼈 3대만 부러지고 다른 곳은 이상이 엇었다.

   

나중에 이야기하기를 이 사람은 사고가 나는 순간 비몽사몽간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자신을 밀어 올리는 것을 느낀 것 외에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해 있을 때도 같은 노인이 나타나 밀치는 바람에 병상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상처로 인하여 신체가 허약해지고 정신이 극도로 혼미해질 때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정신을 차리게 한 것이다.

   

 

평생을 사경통선 수행을 실천한 원응 큰스님은 금년 815일 지리산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세수 84, 법랍 66세로 원적에 드신 스님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암정사!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은 추모법어에서 "지리산이 높이 때문에 명산이 아니라, 원응 선사의 법향이 높기 때문에 명산이 된 것이며, 칠선계곡이 깊다고 명수가 된 것이 아니라 선사의 법수가 항상 흐르기 때문에 명수가 된 것"이라며 원응 선사의 가시는 길을 찬탄하였습니다. 

 

우리는 원응 선사의 법향이 흐르는 서암정사를 뒤로 하고 벽송사로 향했습니다.

 

 

 

 

* 서암정사 석굴법당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법당 내의 사진은 서암정사의 홈피 갤러리 사진을 인용하였으며, 조성과정, 조각에 대한 설명, 조성 경위도 동 홈페이지를 인용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